공자가 중국에 다시 온다면
2006.05.15 08:46
공자가 중국에 다시 온다면
전북대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야) 장 병 선
“요즘 것들은 게을러서 탈이야!”
공자가 중국 상하이(上 海 )에 다시 나타난다면 거리의 간판을 보고 놀라 자빠질 것 같다. 옛날에 사용하던 한자는 어디로 가고 공자도 모르는 한자가 어지럽게 거리거리 골목골목에 간판으로 걸려있어도 통 알아볼 수 없다고 한탄할지도 모른다. 젊은이들이 TV나 컴퓨터 오락에 시간을 다 빼앗기고 한자 공부에 게으름을 피웠다고 화를 낼지도 모른다. 나는 학생시절에 한자를 조금 공부한 덕에 약간의 한자를 안다. 그러나 그 실력으로는 중국 상하이의 거리 간판을 읽을 수가 없었다. 워낙 한자가 변형되어 약자로 써 놓은 글자가 많아 어리둥절했다.
그런데 만약 공자가 우리나라로 온다면 달라질 것 같다.
“아! 여기가 내 고향 같군!”
그러면서 고개를 끄덕일 것 같다. 오히려 우리나라에서는 옛날식 한자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려운 한자를 쓰다가 획수 하나만 빼먹어도 커다란 잘못을 저지른 듯 옥편을 뒤적이어 기어이 모자란 획수를 채우고 수염을 자랑스럽게 쓰다듬는다.
4박5일의 짧은 중국 여행이기에 중국으 한문에 대한 변화를 쉽게 점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중국은 워낙 땅덩이가 커 춘추전국시대로 갈라져 여러 부족을 이뤘던 나라가 이제는 하나가 되어 기지개를 켜고 있는 듯하였다. 아마 중국은 국토가 넓어 남부와 북부지방사람 사이에 의사소통이 매우 곤란하였을 것 같다.
진시황이 한족 통일의 명분을 조나라와 진나라가 문자가 다르니 천하가 어지럽다는 이유를 들었다고 한다. 한자는 글자 자체가 획수가 복잡하여 익히기도, 쓰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중국의 한자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실용화 과정에서 변화된 것은 자연적인 현상일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조개패(貝)가 들어있는 한자는 아래가 비어 있는 입구(口)에 사람인(人)을 집어넣어 패( 员 )로 쓴다. 전기(電氣)라는 한자도 전기(电气)라고 약자로 쓴다. 선풍기(电风扇), 전화(电话), 관심(关心),기차역(火车站)등등 일일이 한자 하나하나를 예로 들 수는 없다. 개업( 開業)을 개업(开业)으로 줄여쓰고 중국 사람들이 유달리 좋아하는 용(龍)자도 큰대(大)에 점 하나와 작대기를 받쳐 놓고 용(용)자로 쓰고 있었다.
중국에 처음 도착한 날, 거리의 간판글자를 알아볼 수 없었으나 가이드의 설명으로 몇 글자는 짐작으로 알 수 있었다. 세상이 빠른 속도로 변하듯 시대의 흐름에 따라 한자의 획수도 줄여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사실 언어와 글자는 사용하는 주민 서로 간의 약속이다. 그래서 어렵다는 한자도 시대에 따라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는 듯하다.
동양의 문화는 중국 한자의 영향이 크다. 한국, 일본 등 동남아에서 한자를 완전히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우리에게는 우수한 한글이 있다. 우리 한글을 더욱 닦아 발전시켜 사용해야겠지만 불가피한 경우 일부분은 공생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우리나라에서 실제생활에서 쓰는 한자도 좀 더 쉽게 고쳐서 사용했으면 좋겠다. 어려운 한자는 중국에서 만들어 사용하다가 원래 주인은 그 글자를 개량하여 쓰고 있는데, 우리 한국에서는 옛글자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고통을 받는 것은 모순이다. 재주는 중국 사람이 부리고 고생은 우리나라 사람이 하는 꼴이다.
가장 커다란 공룡도 지구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큰 덩치와 힘만 믿고 시대의 흐름에 따르지 못하여 결국 지구상에서 멸망하고 말았던 것이다. 우리는 온고지신을 곧잘 이야기한다. 까다롭고 복잡한 제도나 한자를 그대로 지키려고 고집해서는 안 될 일이다. 미풍양속 중에서 선조를 존중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마음은 지켜져야지만 버려야 할 것들도 많다. 아름다운 우리국토를 좁게 만드는 매장문화도 이제는 한 번쯤 검토가 되어야할 시점에 왔다. 수목장(樹木葬)이라는 신선한 바람이 바다 건너에서 서풍으로 불어오고 있다.
한자의 본 고장인 중국에서 어려운 한자를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바꾸어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한자도 좀더 쉽게 바뀌면 좋겠다. 만약 공자가 우리나라에 다시 왔을 때보다 중국의 거리에서 더욱 환영받는 학자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패.용자 등은 자판이 나오지 않아 기입하지 못함
전북대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야) 장 병 선
“요즘 것들은 게을러서 탈이야!”
공자가 중국 상하이(上 海 )에 다시 나타난다면 거리의 간판을 보고 놀라 자빠질 것 같다. 옛날에 사용하던 한자는 어디로 가고 공자도 모르는 한자가 어지럽게 거리거리 골목골목에 간판으로 걸려있어도 통 알아볼 수 없다고 한탄할지도 모른다. 젊은이들이 TV나 컴퓨터 오락에 시간을 다 빼앗기고 한자 공부에 게으름을 피웠다고 화를 낼지도 모른다. 나는 학생시절에 한자를 조금 공부한 덕에 약간의 한자를 안다. 그러나 그 실력으로는 중국 상하이의 거리 간판을 읽을 수가 없었다. 워낙 한자가 변형되어 약자로 써 놓은 글자가 많아 어리둥절했다.
그런데 만약 공자가 우리나라로 온다면 달라질 것 같다.
“아! 여기가 내 고향 같군!”
그러면서 고개를 끄덕일 것 같다. 오히려 우리나라에서는 옛날식 한자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려운 한자를 쓰다가 획수 하나만 빼먹어도 커다란 잘못을 저지른 듯 옥편을 뒤적이어 기어이 모자란 획수를 채우고 수염을 자랑스럽게 쓰다듬는다.
4박5일의 짧은 중국 여행이기에 중국으 한문에 대한 변화를 쉽게 점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중국은 워낙 땅덩이가 커 춘추전국시대로 갈라져 여러 부족을 이뤘던 나라가 이제는 하나가 되어 기지개를 켜고 있는 듯하였다. 아마 중국은 국토가 넓어 남부와 북부지방사람 사이에 의사소통이 매우 곤란하였을 것 같다.
진시황이 한족 통일의 명분을 조나라와 진나라가 문자가 다르니 천하가 어지럽다는 이유를 들었다고 한다. 한자는 글자 자체가 획수가 복잡하여 익히기도, 쓰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중국의 한자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실용화 과정에서 변화된 것은 자연적인 현상일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조개패(貝)가 들어있는 한자는 아래가 비어 있는 입구(口)에 사람인(人)을 집어넣어 패( 员 )로 쓴다. 전기(電氣)라는 한자도 전기(电气)라고 약자로 쓴다. 선풍기(电风扇), 전화(电话), 관심(关心),기차역(火车站)등등 일일이 한자 하나하나를 예로 들 수는 없다. 개업( 開業)을 개업(开业)으로 줄여쓰고 중국 사람들이 유달리 좋아하는 용(龍)자도 큰대(大)에 점 하나와 작대기를 받쳐 놓고 용(용)자로 쓰고 있었다.
중국에 처음 도착한 날, 거리의 간판글자를 알아볼 수 없었으나 가이드의 설명으로 몇 글자는 짐작으로 알 수 있었다. 세상이 빠른 속도로 변하듯 시대의 흐름에 따라 한자의 획수도 줄여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사실 언어와 글자는 사용하는 주민 서로 간의 약속이다. 그래서 어렵다는 한자도 시대에 따라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는 듯하다.
동양의 문화는 중국 한자의 영향이 크다. 한국, 일본 등 동남아에서 한자를 완전히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우리에게는 우수한 한글이 있다. 우리 한글을 더욱 닦아 발전시켜 사용해야겠지만 불가피한 경우 일부분은 공생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우리나라에서 실제생활에서 쓰는 한자도 좀 더 쉽게 고쳐서 사용했으면 좋겠다. 어려운 한자는 중국에서 만들어 사용하다가 원래 주인은 그 글자를 개량하여 쓰고 있는데, 우리 한국에서는 옛글자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고통을 받는 것은 모순이다. 재주는 중국 사람이 부리고 고생은 우리나라 사람이 하는 꼴이다.
가장 커다란 공룡도 지구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큰 덩치와 힘만 믿고 시대의 흐름에 따르지 못하여 결국 지구상에서 멸망하고 말았던 것이다. 우리는 온고지신을 곧잘 이야기한다. 까다롭고 복잡한 제도나 한자를 그대로 지키려고 고집해서는 안 될 일이다. 미풍양속 중에서 선조를 존중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마음은 지켜져야지만 버려야 할 것들도 많다. 아름다운 우리국토를 좁게 만드는 매장문화도 이제는 한 번쯤 검토가 되어야할 시점에 왔다. 수목장(樹木葬)이라는 신선한 바람이 바다 건너에서 서풍으로 불어오고 있다.
한자의 본 고장인 중국에서 어려운 한자를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바꾸어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한자도 좀더 쉽게 바뀌면 좋겠다. 만약 공자가 우리나라에 다시 왔을 때보다 중국의 거리에서 더욱 환영받는 학자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패.용자 등은 자판이 나오지 않아 기입하지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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