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내미 시중들기

2019.06.10 23:43

이진숙 조회 수:2

딸내미 시중 들기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수요반 이진숙

 

 

 

 ‘쿵쾅 쿵쾅’ 계단을 오르내리는 소리에 집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역시, 어디든 젊은 사람이 있을 때 기운이 넘치고 생기가 도는 것을 느낀다. 늘 남편과 나 이렇게 둘이만 사는 집이니 목소리를 크게 할 일도, 그렇다고 소리 높여 웃을 일도 별로 없었다. 단지 나이가 들어가니 남편이 귀가 잘 들리지 않아 내가 큰 소리로 말할 때만 빼곤 조용하다 못해 적막하다. 그런 우리 집에 딸내미가 할아버지 첫 번째 기일을 맞아 찾아왔다. 딸내미는 오는 9월이면 이미 핀란드에 가 있는 남편과 아이들에게 간다. 친척들을 찾아다니며 인사를 할 수 없으니 짬을 내서 내려오라는 말에 일감을 가득 안고 왔다. 회사가 바빠서 쉴 수가 없단다. 일거리를 가지고 와 2층 방에서 일을 하며 계단을 내려왔다 올라갔다 하는 소리가 나에게는 무슨 경쾌한 음악 소리처럼 들린다. 모처럼 집이 크게 숨을 쉬는 것 같아 듣기도 좋다.

 요즈음 직장은 굳이 회사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일을 하는 ‘재택근무’를 하는 곳도, 또 출‧퇴근 시간까지도 누구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근무하는 직장이 많다. 우리가 직장 생활을 할 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다.  인터넷이 터져 네트워크만 연결되면 세계 어느 곳에서든 업무를 보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회사 일이 바쁘다며 이른 아침부터 2층으로 올라갔다. 쟁반 가득 토스트와 우유, 과일을 챙겨 들고 올라가니 얼굴 가득 웃음을 띠며 “역시 집이 최고야!”하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나도 좋다, 이렇게 딸내미 시중을 든다고 쟁반을 챙겨 본지가 아마 20년도 훨씬 넘었을 것이다.

 한참 예민한 고등학생 때 예고 없이 학교가 일찍 끝나고, 엄마가 있는 직장에 전화를 했는데 통화가 되지 않아 어렵사리 집까지 한 시간 넘게 걸어왔다며, 퇴근해서 집에 들어간 내게 “나 하숙시켜 쥐!”하며 크게 짜증을 부렸던 때가 있었다. 그땐 휴대폰도 없었고 또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차편도 없었다. 그래서 출‧퇴근길에 같이 승용차로 다녔었다. 내 기억에 그렇게 크게 엄마에게 짜증을 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곧 바로 모래내시장 근처 학교 정문 앞에 하숙을 시켰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집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두고두고 그때 이야기를 하며 놀리곤 한다.

 조금 있다가 맛있게 내린 커피와 간식을 챙겨 올라가서 살며시 놓고 내려왔다. 오늘은 몇 시와, 몇 시에는 meeting이 있다고 알려준다. 나는 평생 아이들을 가르치며 보냈기에 회의하면 ‘교직원 회의’만 생각하는데 요즈음 회의라는 것은 ‘이어폰’을 꽂고 앉아서 정해진 시간에 인터넷을 접속하여 화상회의나 말로 주고받는 회의를 한다니 참으로 희한하다.

 딸이 다니는 회사는 7월이 ‘회계연도’ 이기에 일 년 중 가장 바쁜 시기가 6,7월이다.

 점심시간에 잠깐 짬을 내어 또 ‘쿵쾅’거리며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점심을 먹으며 내가 궁금하여 이것저것 물으면 친절하게 요즈음 회사 모습을 이야기해 주지만 도무지 모르겠다.

 오후에는 맛있는 참외를 깎아 접시에 담아 가져다 주니 무척 좋아한다. 아이들을 모두 핀란드로 보내고 혼자 있으니, 과일이 먹고 싶어도 한 개씩 파는 곳이 없어 먹을 수 없었단다.

 

 이렇게 바쁜데 시간 내서 내려오라는 내 말에 군소리 없이 내려와 주어 고마웠다. 시아버님 첫 번째 기일에 모처럼 형제들과 가까운 친척들 20여 명이 넘게 임실군 운암 산소까지 찾아 와 주었다. 지난 일 년이 ‘휙’하고 바람이 지나가듯이 지나가 버렸다. 어쩌면 첫 번째 기일이니 모두들 기억하고 와 주었지만 차츰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에서 점점 멀어져 자식들이나 모여 조촐한 기일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래도 잊지 않고 찾아 준 친척들이 고마웠다. 또 딸내미도 이런 기회에 핀란드에 간다는 인사를 할 수 있으니, 이래도 저래도 ‘조상덕’이다. 덕분에 딸도 보고 녀석이 근무하는데 오랜만에 엄마가 챙겨주고 싶은 것도 챙겨 주고 또 오랜만에 나에게 응석도 부리니 참 좋다.

 다음 날 해외 출장을 위해 주말이 끼었음에도 서울로 올라가며 “다음번에 내려와서는 엄마와 같이 시간을 보낼께요.”한다.

딸내미가 빠져 나간 집은 또 다시 숨을 죽이고 조용해졌다.

 밤늦은 시간에 잘 도착했다며 ‘카카오 톡’을 보내 왔다. 쉽게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괜히 스마트 폰만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스마트 폰을 켜고 ‘인스타그램’을 보니 딸내미가 올린 사진이 나왔다. 할아버지 제사상 사진과 함께 ‘저희 엄마 아빠 외롭지 않게 해 주세요’라는 글이 보였다. 순간 울컥해지며 대책 없이 눈물이 흘렀다. 눈물  범벅이 된 채 그 아래 ‘아들딸이 모두 외국에 살다니!’라고 쓰여 있는 글귀가 희미하게 보였다.

‘걱정마 지은아, 엄마 아빠 씩씩하게 잘 지낼게!’ 눈물이 흘러 베개를 적셨다.

                                                              (2019.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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