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늦은 후회

2020.03.23 07:30

최정순 조회 수:3

 때늦은 후회 

        안골노인복지관 수필반 최 정 순

 

 

  모래내시장에 가면, 콩나물을 비롯하여 푸성귀들을 파는 가게가 있다. 가게 주인은 '바보 처세술'을 알고 있나 보다. 겨우 상추 2,000원어치를 샀는데 기어이 콩나물 한 주먹을 뽑아주면서 김치랑 넣고 끓이면 시원하다 덤으로 덕담까지 보따리에 넣어 주었다. 이러니 단골손님이 될 수밖에.

 

  어느 날부터인가 가게문이 닫혀있었다. 넓은 마포가 가게 문이었다. 며칠이 지났을까? 다시 가게문이 열렸다. 예쁘장한 딸이 어머니 대신 물건을 팔고 있었는데 아줌마는 의자에 앉아서 돈만 챙기고 있었다. 무릎을 수술하여 여태 병원생활을 하다가 이제 나왔단다. 손님이 뜸한 틈을 타서 엄마 어깨를 주무르고 손가락 빗질을 하여 머리를 다시 묶어드리고 무릎 덮개로 엄마 무릎을 감싸는 모습이 마치, 강아지가 엄마 몸에다 비벼대며 어리광을 부리는 것 같아보였다. 다정해 보이는 두 모녀가 얼마나 부럽던지 말을 자꾸 건네고 싶었다. 딸은 모 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다닌다고 엄마가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나는 아줌마 딸을 빤히 바라보며 왜, 나는 그때 저렇게 하지 못했을까 후회를 했다. 

 

  어머니가 장조카 집에만 갔다 오시면 조카딸 이야기를 넌지시 하셨다. 딸도 듣고 깨우치라는 눈치였다. 나와 동갑내기인 조카딸은 직공생활을 하는 터였다. 성격이 활달하여 지지배배 조잘대기도 잘했다. 곗돈으로 어머니 금반지를 해드렸다는 등 어디서 냄비랑 솥단지까지 타왔다는 자랑이 늘어지면 어른들은 효녀라고 칭찬을 했다. '남의 손에 든 떡이 더 커 보인다.' 하지 않던가? 딸이 방안퉁수짓을 하는 꼴을 보면서 내색은 안 하셨지만 얼마나 속이 터졌을까? 어머니의 심중을 읽지 못했던 내가 이제야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다니, 정말 후회막급이다.

 

  전주에서 장사를 하시는 어머니한테 수업료를 타러 갈 때는 된장, 간장이며 때로는 쌀자루도 가지고 가야 했다. 지금처럼 플라스틱 페트병이 있었다면 간장쯤이야 별 것 아니었을 것이다. 대두병에 간장을 담아 야무지게 마개를 틀어막았지만 찔끔찔끔 흘러나온 간장 냄새가 상상을 초월했다. 기차를 타고 싶지 않을 만큼 창피하고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간장병을 동이리역 한구석에 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질러버렸다. ‘버렸다’는 말을 여태껏 하지 못했다. 쌀자루는 왜 그렇게 무겁던지, 자취생인 줄 알고 들어다 준다는 남학생들도 있었다. 아무튼, 어머니한테 돈 타러 갈 때 생기는 이런저런 일들이 참 재미 없었다. 학교에서는 월사금 납부 기간을 넘기면 집으로 돌려보내기까지 했다. 아무도 없는 집에 가봐야 뻔한 일이었다. 아버지는 논에 가시고, 사립문에 매 놓은 강아지 밥그릇에 물 한 바가지 퍼주고 타박걸음으로 다시 학교로 갔던 일이 새삼스럽다.  

 

  직접 오고가지 않으면 기별할 도리가 없던 시절이었다. 별 수 없이 내가 어머니한테 가는 날이면 저녁 막차로 갔다가 첫차로 돌아오곤 했다. 시골뜨기 눈에 비친 전주거리는 휘황찬란했다. 남문을 몇 바퀴 돌아야 가게를 찾을 정도였다. 이런 맹꽁이가 졸업하고 나서 전주에 취직이 되었다. 자연히 어머니와 같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공휴일이나 일요일이면 익산 집으로 도망치듯 가버렸다. 아니면 방에 처박혀 나오지 않는 딸을 지켜보는 어머니 마음은 답답하여 속이 탔을 것이다. 더군다나 어머니는 밀어붙이는 성격에다가 하면 된다는 주의다. 여상을 졸업한 딸을 기어이 교대시험을 응시하도록 몰아세웠으니, '내가 비록 노점상을 하고 있지만 내게도 예쁘고 착한 딸이 있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근데 철없는 딸은 어머니가 노점상을 하는 것이 싫었다. 물건을 사러 오는 손님들 눈에 띄는 것도 싫었다. 우리 어머니도 다른 어머니들처럼 저녁밥을 지어놓고, 밖에서 놀고 있는 자식들 이름을 부르며 “어서 밥 먹어라!” 고함치는 소리가 무척 듣고 싶었다. 등잔불 밑에서 구멍 난 양말도 꿰매고, 풀 먹여 다듬이질한 홑청을 낀 이불속에서 사그락 소리를 들으며 잠들고 싶었다. 소풍 가는 날이면 김밥을 싸주는 어머니이기를 바랐다. 그러나 아버지의 몸에서는 늘 짚불 냄새가 났고 어머니는 밖으로 돌아야만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할이 바뀐 셈이다. 아마 그때는 어머니 몸이 열이라도 모자랐을 것이다. 한참 세월이 흐른 뒤에서야 어머니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곰곰 생각해 보면 나는 아주 맹랑한 딸이었다.

 

  만약에 어머니가 살아계신다면 이런 일들을 하고 싶다. 노점상이면 어떻고  다리 밑이면 어떠랴. 어머니 곁에 앉아 정답게 푸성귀를 팔고, 쪽진 머리를 파마머리로 바꿔 드리고 싶다. 한 번도 신어보지 못한 구두도 사드리고, 무거운 보따리를 평생 이고 다니셨으니 이젠 내려놓으시고 소지품만 넣을 수 있는 예쁜 가방도 사드리고 싶다. 부엌문을 닫고 등물을 하셨던 그 때처럼, 어머니 등에 물도 퍼붓고 그림을 그리듯이 안마도 해드리고 싶다. 커플분홍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화창한 봄날 흐드러지게 핀 목련꽃 아래서 어머니와 사진을 찍고 싶다. 스마트폰에 저장했다가 보고 싶을 때마다 꺼내 보면 얼마나 좋겠는가?

 

  마지막으로 무릎 덮개로 어머니를 감싸서 휠체어에 태우고 다정하게 이야기하며 산책을 하고 싶다. 누군가가 그 모습을 보고 “딸이 참 효녀네요!”란 말을 어머니 귀에 대고 속삭여 주면 참 좋겠다. 아무리 잘해드리고 싶어도 어머니는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 이제는 휠체어도 사드릴 수 있는데 사드릴 필요가 없다. 아니 오늘밤 꿈속에서라도 해보면 얼마나 좋을까?

 

                                                   (2020.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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