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에서 정림으로

2020.11.14 23:05

전용창 조회 수:6

'전하'에서 '정림'으로

꽃밭정이수필문학회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전 용 창

 

 

 부모님 산소에 시비를 세우려고 시창작교실에 나갔다시인들이 하는 것처럼 자작시를 발표하며 이름 앞에 호를 붙였다. 지도교수님은 내 아호를 보시고 깜짝 놀라셨다. 호가 ‘전하 殿下’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전하’라는 호를 지었냐고 물으시며 점잖게 말씀하셨다. “모든 문학가가 그러하듯이 시인도 겸손해야 하는데 ‘전하’는 자신을 높이는 ‘호’ 이기에 다시 지어야 한다.”고 하셨다. 그날 밤 나는 호를 짓는 방법을 공부하여 다시 호를 지었다. 그리고는 ‘전하’라는 호를 짓게 된 연유와 다시 지은 ‘호’의 의미를 시로 발표했다.

 

「전하 殿下에서 정림 停林으로」

 

 전하 殿下

 처음에는 호가 없었다 / 10여 년 전 독서동아리 / 모두 호를 부르네 /

 나에게 호를 물었지 / 없다하니 지으라고 해서 / 즉석에서 지었네 /

 

 양반집 마당 / 빗자루질 잘하는 / 마당쇠 좋게 보여 /

 ‘전하’ 殿下라고 지었는데 / 마당쇠가 아니고 / 임금님 되었네 /

 

 십 년 동안 전하로 대접받고 / 전하라 부르는 사람 / 아랫사람 다루듯  / 임금님 불렀으니 / 모두에게 / 기쁨을 주었네

 

 정림 停林

 부모님 산소 시비 세우려 / 시 창작교실 나갔더니 / 지도교수님 말씀 /

 시인은 겸손해야 한다며 / 다시 지으라 하시네 /

 

 오랜 세월 가슴속 / ‘다진 땅에 물이 괸다’ / 아버지 유훈

 머무를 정 그리고 / 호수 있는 숲속 살고파 / 정림 停林이라 지었네

 

 호를 짓고 보니 / 아버지 소지이호* 되었네

 하룻밤 작명가 / 하룻밤 시인 / 겸양지덕 갖추면 / 진짜 시인 되겠네

 

 임금님이란 호칭은 백성에게는 하늘이요, 무소불위의 상징으로 연상된다. 백성을 억울하게 죽일 수도 있고,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 지금은 다르다. 임금님이 구중심처에 사는 것도 아니고 하루하루 행적이 모두 다 노출되고 있다. 백성의 목소리가 10만 명이 넘으면 답변을 해주어야 한다. 그러니 임금님이 마당쇠가 되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방죽을 휘젓고 다녀도 그냥 바라볼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되었다. 공자도 노년에 깨달음을 얻어 ‘인과 예로 나라를 다스리라’고 하였다. 진정 마당쇠처럼 열심히 일하는 임금님이 ‘전하’였으면 좋겠다.

 

 한편, 머무를 정()은 내가 좋아하는 글자다. 장인어른께서는 큰딸 이름을 ‘희정(僖停)’이라 지으셨는데 장차 딸네 집에 가서 기쁘게 머무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었다고 하셨다. 내가 지은 큰아들 이름도 정()자가 들어있다. 항렬인 가()자를 조합하여 정기(停基)라고 지었다. 모두가 아버지의 ‘다진 땅에 물이 괸다.’라는 유훈이 들어있다. 그래서 나의 호에도 머무를 정()을 넣었고, 노년에 호수가 있는 숲속에 살고파 수풀 림()을 넣어서 정림(停林)으로 지었다. ‘추사 김정희’는 아호가 100개도 넘는다고 한다. 정녕 이름값에 걸맞은 인품이 갖추어져야 존경받지 않을까? 그러니 나의 인품도 향상된다면 ‘호’를 선물로도 받고, 여러 ‘호’ 로 불려지기도 하겠지.

                                                                   (2020. 11. 13.)

 

 

 

 

* 소지이호(所志以號) : 이루어진 뜻이나 이루고자 하는 뜻으로 호를 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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