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에 만난 제비 두 쌍

2020.11.16 18:54

김삼남 조회 수:12

산책길에 만난 제비 두 쌍

 

                                       신아문예대학 수요 수필반 김 삼 남

 

 

 하루일과의 시작인 새벽 산책은 몸과 마음의 보약인 듯 싶다. 근무지 관사주변 낮으막한 산을 이른 아침마다 오르던 습성은 퇴직 20여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계속된다.

 

 불세출의 독일철학자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평생 재직한 쾨니히스 베르크대학 앞 낮으막한 산을 시계처럼 규칙적으로 산책했었다. 아침 5시에 기상하여 밤 10시 취침시까지 산책. 연구. 강의. 저술을 하고 특히 상인들과 대담을 좋아하며 독신생활로 일생을 마첬다. 옛날 독일 관광길에 그가 40년간 재직한 대학을 방문하고 그의 산책길을 걸었던 기억이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살고 있는 아파트 뒤의 완산칠봉 팔각정까지의 산책코스를 남대천 천변길로 바꾸었다. 완산칠봉은 사철 푸르른 숲속 향기에 취하여 좋지만 가파르고 단조롭다. 그러나 천변길은 계절따라 색다른 모습으로 변하고, 흐르는 냇물에 외발로 서서 먹이를 찾는 백로와 떼지어 물을 헤집는 물오리가 귀엽다. 경쟁하듯 거슬러 올라가는 송사리떼를 보며 약육강식하는 생태계 원리를 생각해 본다. 이른 새벽 매곡천변 시장은 옛날 시골 5일장처럼 팔고사는 촌노들의 정담과 공해없는 농산품들이 졍겨웁다.

 

 싸전다리 (전주교)를 건너 남부시장 천변길 매곡교까지는 한 평 남짓한 200호의 가설점포가 있다. 옛날 K시장이 무질서한 노변정리와 교통소통을 위한 아이디어로 만들였다

 

 어느날 무심코 걷는 길에 88호 점포에 이르러 점포 차양 밑을 지나는 전등 케이블선위의 제비집을 발견했다. 제비집은 익어가는 뽀얀 복숭아 같기도 하고 커가는 소녀 앞가슴처럼 아담하고 예쁘게 생겼다. 엄지 손가락 굵기의 케이불은 팽팽히 고정되어 있지만 외가닥 줄 위에 집을 앉힌 제비의 재주가 신기하고 놀라웠다.

 

 제비는 시장 주변에 집을 지을 마땅한 흙벽도 없지만 천변은 먹이사냥이 좋아 집터로 정한 듯싶다. 제비집 안에는 놀랜 기색의 제비 한 마리와 뒤켠 줄 위에 노려보는 제비 한 마리가 있었다. 집속의 제비는 알을 품은 어미이고 뒤켠 제비는 어미를 지켜주는 아비인 것 같았다. 뒤 떨어진 98호 점포에도 똑같은 제비집과 제비가 있어 더욱 반가웠다. 이들 2쌍의 제비는 고향에서 이웃집에 살며 의논하여 먼길을 동행한 듯싶었다.

 

   온 세계가 코로나 황톳물이 범람하는 이때 이를 헤치고 먼길을 날아 이곳에 안착한 것이 장하고 반가웠다. 매일 산책길은 제비집의 안전과 제비들의 안위를 점검하는 일이다. 추석전후 며칠간 출타하고 산책을 못하여 제비들 신변이 무척 궁금하던차 귀가하자마자 제비집부터 찾아보니 노란 부리의 새끼 3마리가 고개를 흔들며 어미의 먹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웃 98호 제비집에도 똑같이 새끼 3마리가 태어나 마치 삼대독자가 아들을 얻은 것처럼 신기하고 오랜 옛날부터 제비와의 인연이 새롭게 떠올랐다.

 

 제비는 동남아에서 유럽까지 분포된 온대성 철새다. 따뜻한 곳에서 한 철 지내고 추워지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귀소본능의 철새다.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파리 모기  등 곤충을 잡아 주고 낮게 날면 비가 와 가뭄에 풍년든다고 농민들의 귀여움을 받는 길조다. 판소리 흥부가의 박 타는 장면은 권선징악과 보은을 알려주는 은혜로운 새다.

 

 2020년은 코로나19로 세계적인 공포와 우울증의 시대, 경제적 공황과 언텍트 사회라는 소원한 인간관계까지 이르고 있다. 이런때 일수록 자연과 인류 공존의 필요성이 요구된다. 훨훨 나는 제비는 코로나를 역습하고 우리를 위로하는 길조가 아닌가! 무릇 휘귀하여 보호 받는 철새들이 조류독감(AI)을 전파시켜 사람까지 피해를 주는 것을 보면 보호조류 대접을 못 받는 제비는 보호조류 이상으로 보호 받아야 할 철새다.

 

 매일 산책길은 어미새가 새끼를 길들이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훨훨 날아 먹이를 찾고 먼길을 날아가 귀향 준비에 바쁜 듯 보인다. 그러던 어느날 산책길은 공허하고 쓸쓸했다. 제비집은 텅 빈채 고요하고 옹기종기 모여 정담하던 케이불선 제비들도 보이지 않았다. 행여나 하고 다음 또 다음날 굽어보아도 정적만 흘렀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춥기 전 따뜻한 고향으로 돌아간 듯 싶었다

 

 김영랑 시인은 '모란이 피기까지는'이란 시에서, 모란이 뚝뚝 떨어저 버린 날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젔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 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라고 서러워 했어도 모란이 피기까지 찬란한 슬픔의 봄을 기다린다고 했다.

 

 오늘도 나는 제비가 귀향한 쓸쓸한 천변길을 걷는다. 돌아오는 봄날 모란이 다시 피는 것처럼 코로나19가 소멸해 버리고, 제비들은 넓고 먼 대륙과 강을 건너 천변 옛집으로 다시 돌아 올 것을 기다리며 오늘도 나는 산책길을 걷는다.     

                                                     (2020.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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