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의 가을비 3

2012.09.30 08:52

김영교 조회 수:159 추천:5

그 해의 가을 비 / 김영교

‘어쩜 이럴수가’...
예기치 않은 슬픔의 쓰나미가 덮쳐왔고 너무 어이없고 놀라 모두 말을 잃었습니다. 금슬 좋은 부부 장례식은 갑작스러운 만큼 눈물도 많았고 애석해하는 마음들 뿐이었습니다. 그 기억을 더듬어보는 지금 제 가슴에 여전히 짠한 슬품이 고여듭니다.

정작 장례날은 맑게 개인 날씨에 실내는 온통 분홍색, 흰색의 장미 꽃밭이었습니다. 조용한 올겐 찬송가가 낮게 흐르고 검정색 정장의 직원은 바쁜 몸짓이었습니다. 앞에서 세 번째 줄 자리를 안내 받았습니다. 눈앞에, 지척에, 부부의 시신이 장미꽃에 덮혀 움직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감당하기 버거운 슬픔이 가슴을 눌러왔습니다. 남편은 흰장미, 부인은 분홍장미 아래 곱게 잠들어  정지해 있었습니다.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두분의 영정 사진에는 약간의 미소까지 머물고 있어 우리를 마주보고 말 할 듯 아는 채 할듯 그런 표정이었습니다. 부부 나란히 쌍관 장례식, 이 어처구니없는 슬픔은 제 인생에 있어 일찍이 들어보지도 목격하지도 못한 생전 처음 당해보는 장례식이었습니다.

귀가 길이 었지요. 그 날은 일요일, 가을비가 고속도로를 적신 것 빼고는 이른 오후 교통은 복잡하지도 않았습니다. 주일 예배 후 댁으로 돌아가시던 고등학교 선배님 내외분의 3중 교통사고!
중앙분리대를 박고 사모님은 현장에서 사망하고 최선배님은 UC병원에 도착한 후 사망한 사고 소식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어찌 이런 일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같은 날, 부부 같이 우리 곁을 떠난 선배 내외분, 그토록 급작스럽게 놀라운 비보를 안겨주고 총총 서둘러 떠나셔야 했는지 '청천 하늘의 날벼락’이 이런 때 적용되는 말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알 수 없는 미래를, 행여 한 치의 앞을 내다볼 수가 있었으면 하고 오늘처럼 바란 적이 없었습니다. 예감이라도 할 수 있었다면 60번 Fwy 그 길을 택하지 않았을 것이 아닙니까?

오랜 동창모임에 모처럼 참석한 지난 주말, 앞으로는 자주 얼굴보자 직접 말씀 하셨습니다. 그게 바로 일주일 전이라고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아침이 되면 눈을 뜨고 일어날 수 있다는 것, 자고나서 신었던 신발을 또 신을 수 있을까 , 손, 발, 몸을 움직여 걸을 수 있고, 눈알을 깜박이며 듣고 말하고 볼 수 있다는 것, 숨을 쉴 수 있고 불편함 없이 음식을 먹고 맛있게 먹었다고 감사 할 수 있고 또 안면 근육 펴서 웃을 수 있는 것이 사실은 모두가 놀라운 기적들입니다. 주위에 있는 장애우나 환자들을 보면 감사하지 않을 수 없고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라 여겨질 때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우리의 매일매일은 바로 기적 투성이며 커다란 손 안에서 돌보임을 받고 있다고 실감하게 됩니다.

부부 쌍 관을 놓고 장례 치룬 것, 처음입니다. 읽은 적도 들어 본적도 없습니다. 사고 시 차안에 자녀들이 동석하지 않아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가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미혼 딸의 통곡이 하늘을 찌르는 듯 가슴을 파고들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날은 10월 24일 엄마의 70회 생일이었습니다. 그토록 싱싱하던 육신이 화장을 통해 한줌 흙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길, 귀의였습니다.

인간은 풀잎의 이슬과 같은 존재라 했습니다. 육체의 탐욕을 위해 쌓아 놓은 것, 모든 것 내려놓고 떨어져 가는 한 잎 한잎의 사람낙엽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무는 봄이 되면 싹이 트지만 사람은 새싹을 틔울 수가 없습니다. 지음을 받을 때 1회의 한계성을 입력받았고 주위의 죽음을 접함으로 겸손과 감사를 배우게 해 주었습니다. 장례식은 그래서 잠시나마 목숨의 소중함과 유한성을 두눈으로 확인하는, 관속의 누운 훗날의 내 자신을 대입체험하는 예식이라 여겨졌습니다. '너도 언젠가 죽을 목숨이야' 계속 상기시키며 겸허하게 창조주를 경외하는 지혜를 일깨워 주는 체험실습장의 필요성도 그분의 배려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대속자 목수청년의 출현으로 희망이 생겨난 것입니다. 인류에게 구원의 길이 열렸고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영생을 약속, 그 약속을 믿기에 본향을 두고 이 세상 삶을 나그네 삶이라 하고 죽는 것을 돌아간다 하지 않습니까?  

선배님 내외분의 천국입성을 목격하며 가슴은 아직도 많이 놀란 상태입니다. 애처가로 소문난 선배님은 이 세상 고별식도 부부 함께 손잡고 가기를 기도하신것은 아닐까, 우리를 놀래키면서 하나님은 그 소원을 들어 주신것은 아닐까, 한없이 마음은 젖어들고 있었습니다. 악수하며 따스한 체온을 느낀다던가, 말할 때 침이 튀는 우리가 인식하는 성정으로는 만날 수 없는 아쉬움이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창조주를 묵상, 유가족에게 하나님의 위로를 기도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 안에서
최선을 다해 나누고 베풀며
서로 사랑하며
남은 시간을 아끼며 감사하며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남은 자의 몫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런 교훈을 남겨주신 선배님 내외분, 나란히 '이 세상 소풍 끝내고’의 천상병 시인 말처럼 아품도 이별도 없는 천국에서 안식하소서!

창밖에는 비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습니다. 겨울을 재촉하는 비, 이 가을 비소리 보다 더 크게 들리는 미혼 딸의 오열이 모든 사람의 단잠을 앗아 간다 해도 딸의 등을 쓰담아 주고 싶은 밤입니다.
인생의 가을 들녘에서 더 심한 어려움의 비가 억수로 쏟아져도
잘 버티어 낼 유가족과 우리 모두가 되기를 선배님의 쌍 관 장례식에 다녀오면서 간절히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10/1/2012 수필문학 14 서빙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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