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 4 낭만주의 시기( 1820-1860)

2012.10.21 17:41

김영교 조회 수:1089 추천:12

두 개혁가

뉴잉글랜드는 남북전쟁 이전 몇 해 동안 지적인 에너지로 충만했다. 당시 유명했던 브라민 시인들보다 오늘날 더욱 빛나게 된 인물들은 가난이나 성과 인종 등의 이유로 빛을 발하지 못했다. 현대 독자들은 노예 제도 폐지론자였던 존 그린리프 휘티어와 페미니스트이자 사회 개혁가였던 마거릿 풀러의 작품을 점점 더 높이 평가하고 있다.

존 그린리프 휘티어(John Greenleaf Whittier, 1807~1892)

당시 가장 활동적인 시인이었던 존 그린리프 휘티어는 월트 휘트먼과 아주 유사한 배경에 처해 있었다. 그는 매사추세츠 주의 검소한 퀘이커 교도 농장에서 태어나 성장했으며 공식적인 교육은 거의 받지 못했고 훗날 기자로 활동했다. 노예 제도 폐지론이 대중의 공감을 얻기 몇십 년 전부터 그는 노예 해방을 열렬히 주장했다. 휘티어는 <슬프도다(Ichabod)> 등 노예 제도 반대 시로 존경받았고, 그의 시는 초기 지역적 리얼리즘의 예로 간주되기도 한다.

휘티어의 날카로운 이미지, 단순한 구조, 민요풍의 4보격 2행 대구 형식은 18세기 스코틀랜드의 시인 로버트 번즈의 단순하고 소박한 짜임새를 그대로 닮았다. 휘티어의 최고 작품인 장시 <눈에 갇혀(Snow Bound)>는 그가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냈으나 이제는 세상을 뜬 가족과 친구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린 작품으로, 그들이 뉴잉글랜드의 거센 눈보라 속에서도 훨훨 타오르는 화로에 오붓하게 둘러앉아 있는 풍경을 담았다. 이 단순하면서도 종교적이고 개인적인 시는 기나긴 악몽의 기간이었던 남북전쟁 이후에 나온 것으로 죽은 이들에 대한 만가이자 치유의 노래이기도 하다. 이 시는 외부의 폭력적인 정치 폭풍에도 굴하지 않는 영혼의 영원성, 기억 속 영원한 사랑의 힘, 꺼지지 않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긍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마거릿 풀러(Margaret Fuller, 1810~1850)

뛰어난 수필가인 마거릿 풀러는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검소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는 집에서 아버지로부터 교육을 받았으며(당시 여성은 하버드에 들어갈 수 없었다) 어렸을 때 고전과 현대 작품에서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독일 낭만주의 문학, 특히 괴테를 좋아해 그의 작품을 번역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주목할 만한 여성 저널리스트 1호인 풀러는 서평과, 여성 수감자 및 정신병자 대우 등과 같은 사회적 문제를 다룬 기사를 작성했다. 이러한 기사 일부는 그녀의 저서 《문학과 예술에 관한 글(Papers on Literature and Art)》(1846)에 실려 있다. 이보다 앞서 1845년에 그녀는 자신의 최고작 《19세기 여성(Woman in the Nineteenth Century)》을 집필했다. 이 글은 원래 초월주의자 잡지 《다이얼》에 실렸는데, 풀러는 1840년부터 1842년까지 이 잡지의 편집을 담당한 바 있다.

풀러의 《19세기 여성》은 여성의 사회적 역할을 탐구한 최초의 미국 서적이며 동시에 가장 미국적인 서적이다. 풀러는 종종 민주주의적, 초월주의적 원리들을 적용하여 성차별에 대한 수많은 미세한 원인과 사악한 결과에 대해 철저하게 분석하면서, 이에 대해 취해야 할 긍정적인 조치들을 제안했다. 그녀의 생각 중 다수는 매우 현대적인 것이다. 그녀는 ‘자립’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여성들이 “규율을 자신들 내부에서 이루어가려 하지 않고 외부로부터 습득하도록 가르침을 받았기에” 자립정신이 결여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풀러는 페미니스트였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창조적인 자유와 모든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명분에 헌신한 행동주의자이자 개혁주의자였다.

우리 이제 좀더 현명해져서 영혼을 저해하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우리 이제 하나의 창조적인 에너지를 지닙시다. 어떤 형태를 취하든 이 에너지를 받아들이고 남성이나 여성, 흑인이나 백인 모두에게 과거사로 이 에너지를 옥죄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 1830~1886)

에밀리 디킨슨은 19세기와 20세기의 문학적 감수성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과격한 개인주의자였던 그녀는 매사추세츠 주의 작은 칼뱅주의 마을 애머스트에서 태어나 평생을 보냈다. 그녀는 결혼하지 않았던데다 외부적으로는 별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내면적으로는 격렬한, 예사롭지 않은 삶을 살았다. 그녀는 자연을 사랑했으며 뉴잉글랜드 시골의 새, 동물, 식물, 계절의 변화 등에서 깊은 영감을 얻었다.

디킨슨은 감수성이 너무 풍부했던 나머지 말년을 은둔자로 보냈다. 그녀는 아마도 시를 쓰기 위해 은둔자가 되었는지도 모른다(그녀는 하루에 시 한 편 정도를 쓰곤 했다). 그녀는 시를 쓰는 것 이외에도 변호사이자 애머스트의 유명 인사이며 후에 연방의원이 된 아버지를 위해 집안일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디킨슨은 독서를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성경,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 고전 신화 관련 작품들을 꿰뚫고 있었다. 디킨슨은 당시 가장 은둔하는 문학인이었기에 이러한 책들만이 그녀의 진정한 스승이었다. 수줍음 많았고, 작품을 거의 발표하지도 않았으며, 또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았던 이 시골 여성이 19세기 최고의 미국 시들을 창조해냈다는 사실은, 그녀의 시가 재발견된 1950년대 이래 독자들을 매혹시키고 있다.

디킨슨의 간결하면서 이미지즘적인 스타일은 휘트먼에 비해 더욱 현대적이며 혁신적이다. 그녀는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 때 결코 두 단어를 사용하는 일이 없었고, 거의 속담처럼 응축된 스타일로 추상적인 사고와 구체적인 사물을 결합했다. 그녀의 수작들은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다. 다수의 시들은 현 시대의 감수성을 조롱하고 있고, 어떤 시들은 심지어 이교도적이기까지 하다. 그녀는 때로 놀라울 정도로 실존적인 깨달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녀는 포처럼 마음의 어둡고 감추어진 부분을 탐구하면서 죽음과 무덤을 극화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꽃과 벌 같은 단순한 사물들도 찬미했다. 그녀의 시는 대단한 지적 능력을 보여주고 있으며 시간에 갇힌 인간 의식의 한계에 대한 고통스런 역설을 일깨우고 있다. 그녀는 뛰어난 유머 감각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녀가 다루는 주제의 범위와 묘사 방법은 놀라울 정도로 다양했다. 그녀의 시의 제목은 일반적으로 토머스 H. 존슨이 1955년 표준판에서 할당한 번호로 알려져 있다. 그녀의 시는 불규칙한 대문자와 대시(dash, -)로 북적댄다.

소로처럼 불순응주의자였던 그녀는 단어와 문구의 의미를 뒤엎으며 역설법의 효과를 충분히 활용하고 있다. 다음은 그녀의 시 435번이다.

구별할 줄 아는 눈으로 보면, 깊은 광기는
가장 신성한 감각이다.
깊은 감각은 순전한 광기일 뿐이다.
항상 그렇듯이 여기에서 우세한 것은
다수이다.
동의하면 당신은 제정신이다.
반대하면 당신은 즉각 위험한 존재가 되어
쇠사슬을 차게 된다.

그녀의 재치는 야망과 공인으로서의 삶을 조롱한 288번 시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전 무명인입니다! 당신은 누구인가요?
당신도 무명인인가요?
그럼 우린 같은 처지인가요?
입 다물고 있어요, 사람들이 소문낼지 모르니까 -- 아시다시피. 
정말 끔찍해요, 유명인이 된다는 건
정말 요란해요, 개구리처럼
긴긴 6월에 존경심 가득한 늪을 향해
개골개골 제 이름 외쳐대니.


디킨슨의 시 1,775편은 비평가들을 계속 자극하는데, 비평가들은 그녀의 시에 대해 대개 의견을 서로 달리한다. 어떤 비평가는 그녀의 신비로운 면을 강조하고 어떤 비평가는 자연에 대한 그녀의 감수성을 강조한다. 많은 비평가는 그녀의 독특하고 이국적인 호소력에 주목한다. 현대 비평가 R. P. 블랙머는 디킨슨의 시가 때로 “고양이 한 마리가 영어를 말하면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듯”하게 느껴진다고 논평했다. 디킨슨의 깨끗하고 투명하며 섬세하게 조각된 시들은 미국 문학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동시에 도전적인 작품들이다.

CHAPTER _ 4 낭만주의 시기 1820~1860 : 소설

월트 휘트먼, 너새니얼 호손, 허먼 멜빌, 에드거 앨런 포, 에밀리 디킨슨 그리고 초월주의자들은 미국에서 탄생한 첫 번째 위대한 문학인 세대를 대표한다. 소설가들의 경우, 호손이 ‘로맨스’라고 명명한 정서적이며 상징적인 소설 형태를 통해 자신들의 낭만주의적 비전을 표현하는 경향이 있었다. 로맨스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복잡하고 미묘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특별한 기술을 사용하는 진지한 소설 형태였다.

호손, 멜빌, 포는 대부분 영국 혹은 유럽 대륙 작가들처럼 풍부한 세부 묘사를 통해 사실적인 등장인물을 조심스럽게 그리는 것이 아니라 신화적 의미로 가득한 과장된 영웅들을 만들어냈다. 미국 로맨스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주인공들은 소외되고 고뇌에 찬 개인들이다. 호손의 《주홍글씨》에 나오는 아서 딤스데일이나 헤스터 프린, 멜빌의 《백경》에 나오는 에이합, 포의 단편소설에 등장하는 고립되어 있고 뭔가에 집착하는 인물들은 모두 외로운 존재들로, 자신들의 무의식 깊은 곳으로부터 나온 알 수 없는 운명에 처한다. 상징으로 풍부한 플롯은 고통받는 영혼의 숨겨진 행동을 드러내준다.

이렇듯 소설가들이 영혼의 숨겨진 구석을 허구를 통해 탐구했던 이유 중 하나는 미국에 안정적이고 전통적인 공동체 삶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인 오스틴, 찰스 디킨스, 앤서니 트롤로프, 조지 엘리엇, 윌리엄 새커리 등의 영국 소설가들은 복잡하고 유기적이며 전통적인 사회에 살았고, 리얼리즘 소설 내부를 형성하고 있는 태도를 독자들과 공유했다. 미국 소설가들은 고난과 혁명의 역사, 거대하고 황량한 지리, 유동적이고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 민주주의적 사회와 마주해야 했다. 미국 소설들은 대개 전통의 부재를 드러낸다. 반면 많은 영국 소설들은 훌륭한 결혼을 하거나 숨겨진 귀족으로서의 과거를 발견함으로써 경제적렌英맛?계단을 오르는 가난한 주인공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렇게 닫혀 있는 플롯은 영국의 귀족적인 사회 구조에 도전장을 던지지 못했다. 오히려 그런 사회적 구조를 확인시켜줄 뿐이었다. 주인공의 성공은 독자의 대부분인 중산층의 소원을 대리 만족시켜주는 일이었다.

반면, 미국의 소설가들은 나름대로의 자기 방식에 의존해야 했다. 미국은 부분적으로 외국어를 말하고, 이상하고 조잡한 생활 방식을 따르는 이주자로 가득한, 정의하기 힘든 유동성 가득한 미개척의 땅이었다. 따라서 미국 문학의 주요 인물은 멜빌의 《타이피(Typee)》처럼 식인종 부족 사이에 홀로 떨어져 있거나 제임스 페니모어 쿠퍼의 리더스토킹처럼 황야를 탐험하거나, 포의 고독한 개인들처럼 무덤에서 외로운 환영들을 목격하거나, 호손의 영 굿맨 브라운처럼 숲 속에서 길을 걷다가 악마를 만나게 된다. 사실상 미국 문학에 나오는 위대한 주인공들은 모두 고독한 존재들이다. 민주주의적인 미국의 개인은 스스로 자기를 창조해야만 했다.

진지한 미국 소설가라면 기이하게 길게 늘어진 듯한 멜빌의 《백경》과 포의 꿈에서처럼 배회하는 듯한 《아서 고든 핌 이야기(Narrative of Arthur Gordon Pym)》와 같은 새로운 형식을 개발해야만 했다. 미국인들은 이미 실험된 문학적 방법을 차용하기보다는 새로운 창작 기법을 개발하고자 했다. 미국에서는 과거의 전통 유산이 부족했기 때문에 고전적이고 한정적인 사회적 개체가 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따라서 새로운 혁신적 힘을 창조하는 일이 집중적인 조명을 받게 되었다.

로맨스

로맨스 형식은 어둡고 험악하며, 안정적인 사회가 아닐 때 정체성을 창조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고 있다. 낭만주의적 영웅 대부분은 생을 마감한다. 《백경》에서는 이스마엘을 제외한 모든 선원들이 익사하고, 감수성이 풍부하고 죄의식으로 가득한 《주홍글씨》의 성직자 아서 딤스데일은 마지막에 죽음을 맞이한다. 미국 문학의 자기 분열적이고 비극적인 어조는 1860년대 남북전쟁이라는 더욱더 큰 사회적 비극을 보여주기 전에도 이미 소설의 지배적인 요소였다.

너새니얼 호손(Nathaniel Hawthorne, 1804~1864)

영국인의 후손으로 미국에서의 다섯 번째 세대인 너새니얼 호손은 동인도와의 무역을 전문으로 하는 부유한 항구 도시 세일럼(매사추세츠 주 보스턴 북부에 있다)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상 중 한 명은 세일럼 마녀 재판 당시 판사였다. 이를 반영하듯이 호손은 소설 《일곱 박공의 집(The House of the Seven Gables)》(1851)에서 사악한 판사 집안에 내려진 저주의 이야기를 그렸다.

호손의 많은 이야기들은 뉴잉글랜드 청교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그의 최고 작품인 《주홍글씨》(1850)는 청교도적인 미국의 고전적 초상화가 되었다. 이 소설은 감수성이 풍부하고 신앙심 깊은 젊은이 아서 딤스데일 목사와 관능적이고 아름다운 도회지 여성 헤스터 프린의 금지된 사랑을 그리고 있다. 이 소설은 초기 청교도 식민시대인 1650년경의 보스턴을 배경으로 도덕성, 성적인 억압, 죄의식, 고백, 정신적 구원 등에 대한 칼뱅주의적 집착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당시 《주홍글씨》는 과감하고 심지어 도발적인 작품이었다. 그렇지만 호손은 부드러운 스타일, 현실과 거리가 있는 역사적 배경, 모호함 등을 이용해 암울한 주제를 유연하게 만듦으로써 일반 대중의 비위를 맞춰주었다. 그렇지만 랠프 월도 에머슨과 허먼 멜빌 같은 정교한 작가들은 이 책이 지니고 있는 몸서리쳐지는 힘을 인식했다. 이 소설은 새로운 것에 대한 충격과 자유로운 민주주의적 경험, 특히 성적려쓩냅?자유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이라는 19세기 미국에서 주로 은폐되었던 주제를 다루었다.

《주홍글씨》는 뛰어난 구성과 함께 아름다운 문체로 이루어진 소설이다. 이 소설은 또한 초기 청교도 식민지 이주자들이 사용했던 기법인 알레고리를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다.

호손의 다른 소설과 이야기에서도 그의 명성을 엿볼 수 있다. 《일곱 박공의 집》에서 호손은 《주홍글씨》에서처럼 다시 뉴잉글랜드 역사를 다루었다. 이 소설에서 ‘집’의 무너짐은 실제로 가옥이 무너지는 것일 뿐만 아니라 세일럼의 가족 붕괴를 의미한다. 이 소설의 주제는 유산으로 이어받은 저주와, 사랑을 통한 저주의 해결이다. 한 비평가가 지적했듯이 이상주의적인 주인공 홀그레이브는 호손 자신의 낡은 귀족 가족에 대한 민주주의적 불신을 대변하고 있다. 홀그레이브는 소설 속에서 “사실은 적어도 반세기마다 한 번씩은 한 가족이 인류의 위대하고 이름 없는 군중 속에 포함되어 자신들의 조상을 망각해야만 한다는 것이야”라고 말하고 있다.

호손의 마지막 두 소설은 그리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두 작품 모두 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로맨스의 매력을 제한하고 있다. 이중 하나인 《블라이스데일 로맨스》(1852)는 사회주의적이고 유토피아적인 브룩 농장 사회를 묘사한 흥미로운 작품이다. 이 책에서 호손은, 자기중심적이고 권력에 굶주려 있으며 민주주의에 대해 진정한 관심을 두지 않는 사회 개혁가들을 비난하고 있다. 《대리석 목신상(The Marble Faun)》(1860)은 로마를 배경으로 하지만 죄, 고립, 속죄, 구원 등 청교도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이런 청교도적인 주제들과 청교도 식민지 시대의 뉴잉글랜드라는 호손 특유의 배경은 그의 유명한 단편소설 <목사의 검은 베일(The Minister? Black Veil)>, <영 굿맨 브라운(Young Goodman Brown)>, <나의 친척 몰리노 소령(My Kinsman, Major Molineux)> 등의 특징이기도 하다. <나의 친척 몰리노 소령>은 시골 출신의 순진한 젊은이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권력 있는 친척으로부터 도움을 받기 위해 도시로 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이런 주인공의 행보는 도시화되는 19세기 미국에서 흔히 있는 일이었다. 주인공 로빈은 소령을 찾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다가, 마침내 불명예스러운 범죄자처럼 보이는 한 남자가 동네에서 우스꽝스럽고 잔인하게 추방당하는 한밤의 이상한 폭동에 휘말리게 된다. 로빈은 가장 크게 웃지만 ‘범죄자’가 다름 아닌 그가 찾으려 했던 친척(혁명적인 미국 폭도에 의해 막 전복된 영국인들을 대표하는)이었음을 알게 된다. 이 이야기는 모든 인류가 공유하고 있는 죄와 고통의 굴레를 확인시켜준다. 또한 자수성가에 대한 주제를 강조하는데, 즉 민주주의 사회의 모든 미국인들처럼 로빈 또한 부유한 친척으로부터 특혜를 받으려 하기보다는 스스로 열심히 일해서 성공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친척 몰리노 소령>은 호손 소설의 가장 특징적 요소 중 하나인 제 역할을 하는 가족의 결핍을 조명하고 있다. 쿠퍼의 《가죽 각반 이야기》가 가족들을 극단적인 장소인 황야에 위치시켰다면, 호손의 소설들은 붕괴되었거나 저주받았거나 인공적인 가족의 모습과 고립된 개인의 고통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혁명의 이데올로기 또한 자랑스럽지만 격리된 자유의 느낌을 미화하는 데 한 역할을 했는지도 모른다. 역사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미국의 독립혁명은 영국이라는 부모와 대영제국이라는 더 큰 가족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사춘기적 저항과 궤를 같이한다. 미국인들은 독립을 얻었지만 낡은 권위에서 떨어져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아야 하는 당황스러운 딜레마에 직면해야 했다. 이런 시나리오는 개척자들에게 수없이 발생했던 상황이며, 소설에서는 소외가 미국인들이 지닌 기본적인 삶의 조건인 것처럼 그려지게 되었다. 청교도와 프로테스탄트 분파들은 개인의 첫 번째 책임이 자신의 영혼을 구제하는 것이라고 설교함으로써 가족의 위상을 더욱 약화시켰을 수도 있다.

허먼 멜빌(Herman Melville, 1819~1891)

허먼 멜빌은 호손처럼 부유했으나 아버지가 세상을 뜨는 바람에 갑자기 빈곤 속으로 빠져든 가정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멜빌은 귀족적인 배경과 자부심 강한 가족 전통을 지니고 있었으며, 또한 열심히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대학 교육도 받지 못했다. 멜빌은 19살에 바다로 나갔다. 그의 소설에 드러난 선원들의 생활에 대한 관심은 경험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것이다. 그의 초기 소설 대부분은 항해 경험을 다룬 것이었다. 멜빌의 초기 소설에서 우리는, 젊은 멜빌이 겪었던 풍부한 민주주의적 경험과 독재 및 부정행위에 대한 그의 증오심을 읽을 수 있다. 그의 첫 번째 책인 《타이피》는 남태평양 마르키즈 군도의 식인종이지만 친절한 타이피 족과 함께 보낸 시절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이 책은 섬사람들과 그들의 자연스럽고 조화로운 생활을 찬미하며 기독교 선교사들을 비판하고 있는데, 멜빌은 선교사들이 그들이 개종시키러 온 원주민보다 실제로 더 미개하다고 보았다.

멜빌의 대작 《백경》은 포경선 피쿼드와 “신을 믿지 않는 신적인 남성” 선장 에이합에 대한 서사적인 이야기로, 하얀 고래 모비딕에 대한 에이합의 집착 때문에 배와 선원들은 파멸을 맞이하게 된다. 리얼리즘적 모험 소설인 이 작품은 인간 상황에 대한 명상을 담고 있다. 책 전체를 통해 포경은 지식의 추구에 대한 거대한 은유이다. 책 중간에 나오는 고래와 포경업에 대한 사실주의적인 묘사와 나열은 전체 이야기를 중단시키지만 상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15장 ‘큰고래의 머리’에서 화자는 큰고래가 스토아 학파의 특성을 지녔고 향고래는 플라톤적이라고 표현하면서 고대 철학의 두 학파를 고래에 견준다.

멜빌의 소설은 철학적이면서 동시에 비극적이기도 하다. 에이합은 영웅심에도 불구하고 불행한 운명을 타고났으며 마지막에는 저주를 받는 듯하다. 아무리 아름다운 자연도 낯설고 치명적인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백경》에서 멜빌은 인간이 자연을 이해할 수 있다는 에머슨의 낙관적인 사상에 도전장을 던졌다. 에이합의 마음을 사로잡은 거대한 흰고래 모비딕은 소설 전체를 주도하고 있는 파악하기 힘든 우주와 같은 존재이다. 고래와 포경에 관한 사실만으로는 고래 모비딕을 설명할 수 없다. 반대로 그 사실 자체들이 상징이 되는 경향이 있으며 모든 사실은 다른 사실과 우주적인 망처럼 모호하게 연결되어 있다. 멜빌이 ‘스핑크스’ 장에서 언급한 이 ‘상응(correspondence)’의 개념은 에머슨과는 달리 인간이 자연 속에서 진실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멜빌이 축적한 사실들 뒤에는 신비한 비전이 존재하지만 이 비전이 악인지 선인지, 인간적인지 초인간적인지는 결코 설명되지 않고 있다.

이 소설은 자기반영적인 경향을 지닌다. 다른 말로 하면 이 소설은 소설 쓰기 자체에 관한 것이다. 멜빌은 글쓰기, 독서, 이해 등 정신적인 과정에 대해 자주 논평한다. 예를 들어 한 장에는 화자가 철저하게 조사한 것을 분류하다가 마침내 포기하면서 “하느님은 무엇이든지 내가 마무리하지 못하게 하신다. 이 전체 책은 초고일 뿐이다, 아니, 초고의 초고일 뿐이다. 오, 시간이여, 힘이여, 돈이여, 인내여!”라고 말한다. 문학 텍스트를 완전하지 못한 작품 혹은 버려진 초고로 보는 멜빌의 개념은 매우 현대적이다.

에이합은 자신만이 사람들 위에 우뚝 서게 되는 영웅적이고 시간을 초월한 절대적인 세계를 계속 상상한다. 현명하지 못하게도 그는 정답, 마무리된 텍스트를 원하고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은 마무리된 텍스트가 없는 것처럼 죽음 말고는 최종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른 문학적인 텍스트를 참조한 점이 소설 내내 울림을 더하고 있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왕의 이름을 딴 에이합(아합)은 완전한, 파우스트적인, 신과 같은 지식을 원하고 있다. 잘못된 지식을 찾으려다 비극적 운명을 맞이하는 소포클레스 희곡의 오이디푸스처럼, 에이합은 다리에 상처를 입고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백경》은 ‘고아’라는 단어로 끝나는데, 화자인 이스마엘은 고아와 같은 방랑자이다. 이스마엘이라는 이름은 구약성경의 창세기편에 나오는 아브라함과 하갈(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시종)의 아들이다. 이스마엘과 하갈은 아브라함에 의해 황야에 던져지게 된다.

다른 예도 있다. 야곱의 부인 중 한 명인 레이첼(라헬)은 책의 끝에서 이스마엘을 구하는 배의 이름이다. 형이상학적인 고래 모비딕은 유대교와 기독교 독자들에게 성경 이야기 중에서 신의 노여움을 산 인물로 여겨져 동료 선원들에 의해 바다로 던져진 요나의 이야기를 연상시킨다. 성경에 따르면 요나는 ‘커다란 물고기’에 의해 삼켜져 그 뱃속에서 살다가 하느님의 개입으로 마른 땅에 돌아오게 된다. 요나는 하느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처벌을 두려워한 나머지 도망치려 했다가 더 많은 고통을 받게 된 인물이다.

역사적인 내용을 참조한 것 또한 소설을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 배 이름 피쿼드는 사라진 뉴잉글랜드 인디언 부족의 이름으로 배가 결국 파괴될 운명임을 암시한다. 사실 포경업은 특히 뉴잉글랜드의 주요 산업 중 하나였다. 포경은 에너지 자원으로서의 기름, 특히 램프 기름을 공급해주었다. 따라서 고래는 말 그대로 세상에 불을 밝히는 존재였다. 고래잡이를 하기 위해서 미국인들이 고래를 찾아 세상을 항해해야 하기 때문에 포경업은 본래 미국의 영토 확장주의 경향을 담고 있으며, 이를 정당화한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 개념과 연관성이 있다(사실 현재 하와이 주는 미국 포경선을 위한 주요 연료 보급소로 사용되어 미국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피쿼드 호의 선원들은 모든 인종과 다양한 종교를 대표하는데, 이는 용광로뿐만 아니라 인류 보편성이라는 미국의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한편, 에이합은 민주주의적이며 미국적인 개인주의의 비극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는 개인으로서 자신의 위엄을 주장하면서 냉혹한 외부의 압력에 과감히 저항하는 개인주의자이다.

《백경》의 에필로그는 선박 파괴의 비극성을 완화시켜준다. 멜빌은 내내 우정의 중요성과 다문화적인 인간 사회를 강조하고 있다. 배가 가라앉자 이스마엘은 친한 친구이자 영웅, 문신을 한 작살잡이이자 폴리네시아의 왕자인 퀴퀘그가 만들고 장식한 관을 이용해 죽음을 모면한다. 관의 원시적이고 신화적인 장식은 우주의 역사를 통합하고 있다. 이스마엘은 죽음과 관계된 물건에 의해 죽음을 피하게 된 셈이다. 결국 죽음으로부터 삶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백경》은 사냥꾼 신화, 통과의례에 대한 주제, 에덴 같은 섬에 대한 상징주의, 기술시대 이전 사람들의 긍정성 부각, 부활에 대한 의지 등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원시적인 자연을 배경으로 인간 정신을 훌륭하게 극화시킨 ‘자연 서사시’라고 일컬어진다. 인간을 자연에 위치시킨 점은 뚜렷하게 미국적인 것이다. 프랑스의 작가이자 정치인인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Democracy in America)》(1835)에서 민주주의의 결과물로 이와 같은 주제가 미국에서 부상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자신의 열정, 의심, 특이한 성향 그리고 상상하기 힘든 비참함을 지닌 채, 자신의 국가와 자신의 시대에서 동떨어져 홀로 자연과 신 앞에 서 있는 한 인간의 운명이 (미국) 시의 유일한 주제는 아니더라도 주요한 주제가 될 것이다.

토크빌은 민주주의에서 문학은 단순한 외양이나 계급이나 지위 등의 피상적인 분류가 아니라 “비물질적인 인간 본성의 숨겨진 깊이”를 강조할 것이라고 추론했다. 확실히 《백경》과 《타이피》 두 소설 모두 《허클베리 핀의 모험(Adventures of Huckleberry Finn)》, 《월든》과 함께 이런 묘사에 들어맞는 작품들이다. 이 책들은 자연을 찬미하면서 계급 중심의 도시 문명을 목가적으로 전복시키고 있다.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 1809~1849)

미국 남부 출신의 에드거 앨런 포는 어두운 형이상학적 비전을 리얼리즘, 패러디, 희극적 요소들과 결합한 점에서 멜빌과 통한다. 포는 단편소설 장르를 세련되게 만들었으며 탐정소설을 개발하기도 했다. 포는 단편소설 다수를 통해 오늘날 인기 있는 공상과학소설, 공포소설, 판타지 장르의 초석을 깔아놓았다.

포의 짧고 비극적인 생애는 불안함으로 가득했다. 19세기 주요한 미국 작가들 다수처럼 포도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었다. 포가 1835년에 14살도 채 되지 않은 사촌 버지니아 클렘과 결혼한 것은 자신에게 없는 안정적인 가족을 찾으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포는 ‘이상함(strangeness)’을 아름다움의 필수 요소로 믿었기에, 그의 글은 이국적인 특성을 갖게 되었다. 그의 단편소설과 시들은 비극적 운명을 지닌 내성적인 귀족들(포는 미국 남부 사람들이 그렇듯이 귀족적인 이상을 소중하게 여겼다)로 가득하다. 이러한 어두운 인물들은 일을 하거나 사교적인 생활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대신 그들은 실제 세계인 햇살, 창문, 벽, 바닥 등을 가리고 있는 괴이한 융단이나 천으로 상징된, 어둡고 허물어지고 있는 성 안에 자신들을 가두고 있다. 성 안에 있는 숨겨진 방들에는 오래된 책들, 기이한 예술 작품, 다양한 동양 물건 등이 채워져 있다. 귀족들은 악기를 연주하거나 오래된 책들을 읽으면서 비극, 특히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

삶 속 죽음(death-in-life), 특히 등장인물이 생매장되거나 무덤에서 흡혈귀처럼 다시 살아나는 것 등으로 표현된 이 주제는 <때 이른 매장(The Premature Burial)>, <리지아(Ligeia)>, <아몬틸라도의 술통(The Cask of Amontillado)>, <어셔 가의 몰락(The Fall of the House of Usher)> 등을 비롯한 다수의 소설에 나타나고 있다. 생사의 중간 영역에 대한 묘사와 화려하고 고딕적인 배경은 단순히 장식적인 것만은 아니다. 이러한 배경은 심적으로 불안한 등장인물이 지나칠 정도로 문명화되었지만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내부 세계를 지니고 있음을 반영하며, 무의식 세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는 포의 예술세계의 큰 특징이다.

많은 남부 시인들의 시처럼 포의 시 또한 매우 음악적이며 지나칠 정도로 운율적이다. 당시나 지금이나 가장 많이 알려진 포의 시는 <갈가마귀(The Raven)>(1845)이다. 이 음산한 시에서 죽은 자의 영혼에 사로잡혀 잠 못 이루는 화자는 자정에 독서를 하면서 떠나간 리노어의 죽음을 추모하고 있다가, 썩은 고기를 먹는, 따라서 죽음의 상징인 갈가마귀의 방문을 받는다. 갈가마귀는 문 위에 내려앉아 불길하게 이 시의 유명한 후렴구이자 갈가마귀의 울음소리를 흉내 낸 ‘이젠 끝이다(nevermore)’라는 단어를 반복한다. 이 시는 삶 속 죽음을 보여주는 정지된 장면에서 끝맺는다.

그리고 갈가마귀는 날아가지 않고 아직도 앉아 있었다,
나의 침실 문 바로 위 팔라스의 창백한 흉상 위에 아직도;
그의 두 눈은 꿈꾸고 있는 악마의 모든 모습을 담고 있고
그의 위에서 흐르던 등잔불이 마루 위에 그의 그림자를 던지고 있다;
나의 영혼은 마루 위에 누운 채 떠돌아다니는 그 그림자를 떠나
떠오를 것이다 -- 이젠 끝이다!

앞에 언급된 소설들을 비롯한 포의 단편소설들은 공포 소설로 간주되고 있다. 한편 <황금 풍뎅이(The Gold Bug)>, <도난당한 편지(The Purloined Letter)> 같은 이야기는 추리 소설에 가깝다. 포의 공포소설은 H. P. 러브크래프트, 스티븐 킹 등 호러 판타지 소설 작가들의 작품에 모체가 되었으며, 포의 추리소설은 대쉬엘 해머트, 레이먼드 챈들러, 로스 맥도널드, 존 D. 맥도널드의 작품들이 탄생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었다. 포는 또한 공상과학 소설이 나올 수 있는 여지 또한 마련해주었다. 포의 모든 단편소설은 그가 19세기 세계관을 급진적으로 세속화하는 획기적인 과학적 지식과 사고방식에 대해 매력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포는 모든 장르를 통해 정신세계를 탐험하고 있다. 심오한 심리적 통찰력은 그의 단편소설 전체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포는 <검은 고양이(The Black Cat)>에서, “수백 번씩이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오히려 사악하거나 어리석은 일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지 않은 자 어디 있겠는가?”라고 질문하고 있다. 심리적인 과정의 이상하고 괴상한 면을 탐구하기 위해 포는 광기와 극단적인 감정이 담겨 있는 이야기를 깊이 파고들었다. 고통스럽게 씌어진 정교한 스타일과 상세한 설명은 사건들을 더욱 생생하고 그럴듯하게 만들어 무서운 느낌을 한층 배가시킨다.

포가 ‘데카당스(decadence)’와 낭만적 원시주의를 결합한 점은 유럽 인들, 특히 스테펜 말라르메, 샤를르 보들레르, 폴 발레리, 아르튀르 랭보 등 프랑스 시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렇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귀족적 거부감, 이국적인 것의 선호, 비인간화에 대한 주제들에도 불구하고 포는 미국적인 작가임에 틀림없다. 그는 오히려 미국 민주주의가 정신세계의 깊고 숨겨진 면들을 드러내주는 작품들을 생산하게 될 것이라는 토크빌의 예견을 거의 교과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작가이다. 유럽 인들에게는 적어도 정신적 안정성을 부여해주는 복잡하지만 확고한 사회적 구조가 있기에, 깊은 근심이나 심리적 불안감은 유럽보다는 미국 사회에서 먼저 발생한 듯하다. 미국에서는 안전성을 보상해줄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모두 혼자인 것이다. 포는 자수성가한 사람이라는 아메리칸 드림의 이면을 정확하게 묘사했으며 물질주의와 지나친 경쟁 사회에서 지불해야 하는 대가인 외로움, 소외, 삶 속 죽음의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포의 ‘데카당스’는 또한 19세기에 발생한 상징에 대한 평가절하 경향을 반영하고 있다. 상징 평가절하 경향은 다양한 시대와 장소에서 온 예술 작품들을 난삽하게 결합하여 각 작품의 특징적인 면을 제거하고 전체 작품 속에서 각 작품을 단지 장식적인 것으로 축소시키는 경향이었다. 이로 인한 스타일의 혼돈은 대개 자체적 전통 스타일이 부족한 미국에서 특히 눈에 띄게 나타났다. 이렇게 뒤섞는 기법은 이민, 도시화, 산업화가 가족과 전통적인 방식들을 뿌리째 뒤흔들면서 일관성 있는 사고 체계가 상실되고 있음을 반영한다. 상징들의 혼란스러운 사용은 예술에서 그로테스크한 효과를 유발했는데, 포는 단편소설 모음집 《그로테스크하고 아라베스크한 이야기들(Tales of the Grotesque and Arabesque)》(1840)에서 이런 효과를 충분히 활용하고 있다.

여성 작가들 및 개혁가들

19세기 미국 여성들은 숱한 차별을 감수해야 했다. 그들에게는 참정권이 없었고 전문학교 입학이나 고등교육이 금지되었으며, 공공장소에서 말하는 것이나 심지어는 집회에 참석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고, 사유재산을 소유하는 것 또한 불가능했다. 이런 장애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튼튼한 연결망을 구축하게 되었다. 서신 왕래, 개인적인 친분 교류, 공식적인 모임, 여성 신문, 서적을 통해 여성들은 사회 변화에 한몫을 했다. 지적인 여성들은 자신과 노예의 처지를 비교했다. 여성들은 사회로부터 추방당하고 때로 경제적 파산에 직면하긴 했어도, 용기 있게 노예 제도 폐지 및 여성의 참정권 등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들은 감상소설(sentimental novel)을 포함한 작품들을 통해 규모가 방대한 여성 문학 전통의 선구자 역할을 하고 있다. 해리엇 비처 스토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Uncle Tom? Cabin)》과 같은 여성의 감상소설은 당시 인기가 아주 좋았다. 감상소설은 감정에 호소하며, 종종 논쟁중인 사회 문제들, 특히 가족 및 여성의 역할과 책임 등에 대한 문제들을 극화했다.

마거릿 풀러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친 노예 제도 폐지론자 리디아 차일드는 여성들의 네트워크 구축에 앞장선 인물이다. 그녀의 성공적인 소설 《호보모크(Hobomok)》(1824)는 인종적려쓩냅?관용이 필요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 소설의 배경은 너새니얼 호손이 미리 다루었던 매사추세츠 주에 있는 청교도 땅인 세일럼이다. 행동주의자였던, 차일드는 사립 여성 학교를 설립하고 미국 최초의 아동 잡지를 창간, 편집을 직접 담당했다. 그녀는 또한 1883년에 첫 번째 노예 제도 반대 소책자인 《아프리카 인이라고 불리는 미국인을 위한 호소(An Appeal in Favor of that Class of Americans Called Africans)》를 발표했다. 이 도발적인 작품 때문에 그녀는 좋지 않은 명성을 얻게 되었고 경제적으로 파산까지 하게 되었다. 그녀의 《다양한 시대 및 국가 여성들의 상황에 대한 역사(History of the Condition of Women in Various Ages and Nations)》(1855)는 역사 속에서 여성들의 업적을 지적하면서 여성의 평등을 주장하고 있는 글이다.

안젤리나 그림케(1805~1879)와 사라 그림케(1792~1873) 자매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의 우아한 도시 찰스턴에서 노예를 소유하고 있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림케 자매는 흑인과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해 북으로 이주했다. 그들은 뉴욕 노예 제도 반대학회의 대변인으로 일하면서 남성을 포함한 청중에게 공개적인 강연을 한 미국 최초의 여성들이 되었다. 그림케 자매는 편지, 수필, 연구서를 통해 인종 차별과 성 차별을 연결시켰다.

노예 제도 폐지론자이자 여권운동가였던 엘리자베스 캐디 스탠튼(1815~1902)은 잠시 동안 보스턴에서 살다가 리디아 차일드와 친분을 가지게 되었다. 캐디 스탠튼은 루크레시아 모트와 함께 1848년 세니카폴스 여권신장대회를 조직했다. 그녀는 또한 이 대회의 《소신 선언문(Declaration of Sentiments)》을 집필했다. 그녀의 <여성의 독립 선언(Woman? Declaration of Independence)>은 “남성과 여성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라는 문구로 시작하며 여성에게도 참정권이 주어져야 한다는 결의문을 포함하고 있다. 캐디 스탠튼은 1860년대와 1870년대에 수전 B. 앤서니와 함께 여성 참정권을 위한 운동을 펼쳤으며, 노예 제도 폐지를 위한 전국여성연맹과 전국여성참정권협회를 조직했고, 주간 신문인 《레볼루션(Revolution)》을 공동 편집했다. 캐디 스탠튼은 여성참정권협회의 회장직을 21년 동안 맡으면서 여권 신장을 위한 투쟁을 이끌었다. 그녀는 몇몇 주에서 공개 강연을 가졌는데, 부분적으로는 자신의 자녀 7명을 경제적으로 부양하기 위해서였다.

캐디 스탠튼은 남편이 죽은 뒤 남녀 차별에 대한 분석의 깊이를 더했다. 그녀의 책 《여성의 성경(The Woman? Bible)》(1895)은 유대 기독교 전통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 반여성적인 편견을 구별해내고 있다. 그녀는 86살의 나이에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여성의 참정권을 지지해달라는 편지를 쓰고 난 직후 세상을 뜨기 전까지, 이혼렛㈀퓐종교에 관한 주제들로 강연을 했다. 그녀가 처음에는 가명으로, 이후에는 실명으로 낸 수많은 책들 중에는 공동 집필한 세 권짜리 책 《여성 참정권의 역사(History of Woman Suffrage)》(1881~1886)와 솔직하고 유머러스하게 쓴 자서전 등이 있다.

소저너 트루스(1797경~1883)는 이 비범한 여성들의 인내력과 카리스마를 요약하고 있는 인물이다. 뉴욕에서 노예로 태어난 그녀는 네덜란드 어로 의사소통을 하며 자랐다. 그녀는 1827년에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 따뜻하게 자신을 대해주는 네덜란드 계 미국인 반 바게너 가족을 위해 하녀로 일하면서 아들과 딸을 데리고 정착했다. 그 가족은 그녀가 아들의 자유를 위한 법정 투쟁에서 승리하도록 도와주었고, 그녀는 그들의 성을 자신의 성으로 택했다. 그녀는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다가 매춘부들을 기독교인으로 개종시키는 한 전도사와 같이 일했으며 진보적인 공동체 사회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이 경험하기 시작한 신비로운 목소리와 환영 때문에 ‘소저너 트루스(Sojourner Truth)’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환영에 의한 가르침의 진리를 널리 퍼뜨리기 위해 그녀는 혼자 살면서, 30년 동안 여러 주를 돌아다니며 강연을 하고, 성가를 부르며, 노예 제도 폐지론을 주창했다. 그녀는 엘리자베스 캐디 스탠튼에 고무되어 여성의 참정권을 옹호하기도 했다. 그녀의 삶은 올리브 길버트가 받아 적고 편집한 자서전 《소저너 트루스 이야기(Narrative of Sojourner Truth)》(1850)에 묘사되어 있다. 평생 문맹으로 살았던 그녀는 네덜란드 어 악센트로 영어를 발음했다. 소저너 트루스가 한 여권신장대회에서 남자가 아니냐는 비난을 받자 가슴을 드러내 보였다는 이야기도 전하고 있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연약하다고 말한 어느 남성에게 그녀가 들려준 답변은 이제 전설적인 말이 되었다.

난 밭을 갈고 곡식도 심었으며 헛간에도 들어갔지만, 어느 남자도 내 주인이 될 수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여자가 아닌가? 나는 남자만큼 일하고 남자만큼 먹을 수 있으며 -- 물론 먹을 음식이 있다면 -- 남자만큼 채찍을 감당할 수 있다. 그런데도 난 여자가 아닌가? 난 아이 열셋을 낳았고 그 아이들 대부분이 노예로 팔려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내가 내 어머니의 슬픔을 느끼며 소리쳤을 때 예수님만이 내 목소리를 들으셨다. 그런데도 난 여자가 아닌가?

이 유머러스하고 불경스럽기까지 한 연설자는 위대한 블루스 가수와 비견된다. 해리엇 비처 스토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믿기 어려운 이 흑인 여성을 통해 지혜를 발견했다. 트루스는 한때 “신이시여, 신이시여, 난 심지어 백인도 사랑할 수 있다오!”라고 선언한 바 있다.

해리엇 비처 스토(Harriet Beecher Stowe, 1811~1896)

해리엇 비처 스토의 소설 《톰 아저씨의 오두막》은 19세기 가장 인기 있었던 미국 서적이다. 잡지 《내셔널 이러(National Era)》에 처음 연재되었던 이 소설은 발표와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영국에서만 40개 출판사에서 이 소설을 인쇄했으며, 이내 20개 국어로 번역되었고, 프랑스의 조르주 상드, 독일의 하인리히 하이네, 러시아의 이반 투르게네프 등의 작가들로부터 격찬을 받았다. 스토가 작품에서 표현한 미국 노예 제도 폐지에 대한 열정적인 호소는 10년이 채 지나기 전에 미국 남북전쟁(1861~1865)의 단초가 된 논쟁에 불씨를 댕겼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 성공한 이유는 명백한 것이었다. 민주주의와 만인의 평등을 구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국가 미국에서 노예 제도는 엄청난 규모의 부정행위나 다름없다는 생각을 이 소설이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스토 자신은 뉴잉글랜드 청교도 출신을 전형적으로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그녀의 아버지, 형제, 남편 모두 이름 있고 학식 있는 프로테스탄트 성직자 및 개혁가였다. 스토는 교회 예배에 참석했다가 매를 맞고 있는 늙고 남루한 노예의 환영이 떠올라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 후에 그녀는 소설이 하느님에 의해 영감을 받고 “하느님에 의해 씌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가 소설을 쓰게 된 동기는 삶을 경건하게 만들려는 종교적 열정에서 비롯되었다. 낭만주의는 감정의 시대를 이끌었고, 가족과 사랑이라는 미덕은 최고로 군림하게 되었다. 스토의 소설에서 노예 제도가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은 가정의 가치를 침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노예인 주인공 톰 아저씨는 친절한 주인 세인트 클레어를 개종시키려 노력하고, 그가 죽었을 때 주인을 위해 기도하며, 여성 노예들을 보호하려다 살해당하는 진정한 기독교적인 순교자이다. 노예 제도는 정치적이거나 철학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가족들을 강제로 헤어지게 하고 정상적인 부모의 사랑을 파괴하며 내재적으로 비기독교적이기 때문에 사악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감상적인 장면은 고통받고 있는 여성 노예가 울부짖는 자신의 아이를 도와주지 못하는 장면과 아이의 아버지가 가족과 떨어져 팔려가는 장면이다. 이는 신성한 가족간의 사랑에 대한 범죄 행위였다.

스토의 소설은 원래는 남부 지역을 공격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지 않았다. 사실 스토는 남부를 방문하고 남부 사람들을 좋아했으며 그들을 친절한 사람들로 묘사했다. 소설 속에서 남부의 노예 소유자들은 좋은 주인들이고 톰을 잘 대우한다. 세인트 클레어는 개인적으로 노예 제도를 싫어하며 자신의 노예 모두를 해방시켜주려 한다. 반면 사악한 주인 사이몬 레그리는 북부 사람이며 악당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소설이 10년 뒤 전쟁을 치르게 되는 미국 북부와 남부를 화해시키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이 책은 남부에 대한 논쟁서로 노예 제도 폐지론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활용되었다.

해리엇 제이콥스(Harriet Jacobs, 1818~1896)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노예로 태어난 해리엇 제이콥스는 여주인을 통해 글을 배웠다. 제이콥스는 여주인이 죽자마자 다른 백인 남성 주인에게 팔려가게 되었는데, 그 주인은 그녀와 강제로 성관계를 맺으려 했다. 그녀는 그를 거부하고 다른 백인 남성을 만나 두 아이를 낳았고, 두 아이는 그녀의 할머니와 같이 살게 되었다. 그녀는 솔직하게 “강제에 복종하는 것보다 자신을 줘버리는 편이 자존심에 상처를 덜 받는 것 같다”고 적었다. 그녀는 주인으로부터 도망친 다음, 자신이 북쪽으로 갔다는 소문을 내기 시작했다.

그녀는 붙잡혀 다시 노예가 되어 처벌받게 될까 두려워하면서, 주인이 살고 있는 같은 읍내의 할머니 집에 숨어 캄캄한 다락방에서 거의 7년을 보냈다. 그녀는 천장에 뚫어놓은 구멍을 통해 사랑스러운 자신의 아이들을 훔쳐보면서 삶을 이어갔다. 그녀는 마침내 북부로 도피해, 뉴욕 주 로체스터에 정착하게 되었다. 로체스터는 프레더릭 더글러스가 노예 제도 반대 신문 《노스 스타(North Star)》를 발행한 곳이며 가까운 곳에 있는 세니카폴스는 여권신장대회가 열렸던 곳이었다. 로체스터에서 제이콥스는 퀘이커 교도이며 페미니스트이자 노예 제도 폐지론자인 에이미 포스트와 친구가 되었다. 포스트는 제이콥스에게 자서전을 쓰도록 권고했다. 《노예 소녀의 인생에 일어난 사건들(Incidents in the Life of a Slave Girl)》은 ‘린다 브렌트’라는 가명으로 1861년에 출간되었으며 편집은 리디아 차일드가 담당했다. 이 책은 흑인 여성 노예들에 대한 성적 착취를 거리낌없이 비판하고 있다. 제이콥스의 책은 더글러스의 책처럼 식민시대의 올라우다 에퀴아노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노예설화(slave narrative) 장르에 속한다.

해리엇 윌슨(Harriet Wilson, 1807경~1870)

해리엇 윌슨은 미국에서 소설을 출간한 최초의 아프리카 계 미국인이다. 그녀가 쓴 소설은 《우리의 검둥이:혹은 북부의 하얀 2층집에 사는 자유로운 흑인의 삶에 대한 스케치, 노예 제도의 그림자가 거기에도 드리워져 있음을 보여주는(Our Nig:or, Sketches from the life of a Free Black, in a two-storey white house, North. showing that Slavery? Shadows Fall Even There)》(1859)으로 백인 여성과 흑인 남성의 결혼을 사실적으로 극화하고 있으며, 부유한 기독교 집안 흑인 노예의 어려운 생활도 묘사하고 있다. 이 책은 전에는 자전적인 이야기로 여겨졌으나 요즘에는 허구로 이해되고 있다.

제이콥스와 마찬가지로 윌슨도 자신의 본명으로 책을 출간하지는 않았으며(‘우리의 검둥이’라는 표현은 아이러니하다), 그녀의 작품은 최근까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그 당시 대부분 여성 작가들의 작품도 마찬가지였다. 흑인 소설 연구의 선봉으로 주목받고 있는 아프리카 계 미국인 학자 헨리 루이스 게이츠 주니어는 1983년에 《우리의 검둥이》를 다시 출간했다.

프레더릭 더글러스(Frederick Douglass, 1817~1895)

당시에 가장 유명한 미국 흑인 노예 제도 반대 지도자이자 연설가인 프레더릭 더글러스는 메릴랜드의 대농장에서 노예로 태어났다. 그는 운이 좋아 어렸을 때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볼티모어에 보내졌으며 그곳에서 글을 배웠다. 1838년 21살의 나이에 매사추세츠로 도망친 더글러스는 노예 제도 폐지론자이며 편집자인 윌리엄 로이드 개리슨의 도움을 받아 노예 제도 반대 학회에서 강연을 시작하게 되었다.

1845년에 더글러스는 노예설화 중 최고작이며 가장 인기 있는 《미국 노예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인생 이야기(Narrative of the Life of Frederick Douglass, An American Slave)》(1855년 재판, 1892년 개정판)를 출간했다. 당시 노예설화는 종종 백인 노예 제도 폐지론자들이 문맹인 흑인의 이야기를 받아 적은 것으로 선전용 글로 사용되었는데, 남북전쟁 직전 몇 년 동안 유명했던 장르였다. 더글러스의 노예설화는 생생하며 매우 잘 씌어진 글이다. 또한 독특한 통찰력을 통해 노예의 심리 상태 및 노예 제도가 흑인들에게 안겨준 고통을 보여주고 있다.

노예설화는 미국에서 흑인 문학 최초의 산문 장르였다. 노예설화는 아프리카 계 미국인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하는 어려운 임무를 맡은 흑인들에게 도움을 주었고, 20세기 내내 흑인 소설의 기법 및 주제 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정체성 찾기, 인종 차별에 대한 분노, 쫓기며 지하생활을 하는 느낌 등은 리처드 라이트, 제임스 볼드윈, 랠프 엘리슨, 토니 모리슨 등 20세기 미국 흑인 작가들의 작품에서 반복된 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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