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문학사 / 20 세기 미국 연극

2012.10.21 17:55

김영교 조회 수:1273 추천:7

20세기 미국 연극

미국의 연극은 20세기에도 한동안 영국과 유럽의 연극을 흉내 냈다. 대개 영국에서 오거나 유럽 언어에서 번안된 작품들이 연극계를 주도하고 있었다. 극작가들을 보호하거나 홍보하지 못했던 부실한 저작권법은 독창적인 연극이 나올 수 없는 환경이었다. 또 실제 연극보다는 배우들이 찬사를 받았던 ‘스타 시스템’도 한몫 했다. 미국인들은 미국의 극장을 찾은 유럽 배우들을 보기 위해 모여들었다. 또한 수입 와인처럼 수입된 연극은 미국 내에서 제작된 작품들보다 더 높은 사회적 위치를 차지했다.

19세기에는 모범적인 민주주의적 인물이 등장하고, 선악이 뚜렷하게 구별되는 연극인 멜로드라마가 인기를 얻었다. 노예 제도 같은 사회 문제를 다룬 연극도 많은 관객을 불러 모았다. 이런 연극들은 때로 《톰 아저씨의 오두막》과 같은 소설을 각색한 것이었다. 20세기 전까지 미국에는 미학적 실험을 시도한 진지한 연극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중 문화는 특히 보드빌에서 결정적인 발전을 보였다. 백인들이 흑인 분장을 하고 공연한, 흑인의 음악과 풍속에 기초한 민스트럴 쇼(minstrel show) 또한 독창적인 형식과 표현 방법을 개발했다.

  

  

유진 오닐(Eugene O’Neill, 1888~1953)

 

유진 오닐은 미국 연극계에서 위대한 인물이다. 그의 많은 작품들은 상당히 독창적인 기교와 신선한 시각, 그리고 감성적인 깊이가 결합되어 있다. 오닐의 초기 작품들은 노동자 계급과 빈민 계층을 다루었으며 후기 작품들은 강박관념과 성性 등 주관적인 영역을 탐색하고 있다. 후기 작품들은 또한 프로이트적인 해석 및 자신의 죽은 어머니, 아버지, 형제와 화해하려는 고뇌에 찬 노력을 강조하고 있다. 그의 작품 《느릅나무 밑의 욕망(Desire Under the Elms)》(1924)은 한 가족 내에 숨겨진 욕정을 그려내고 있으며, 《위대한 신 브라운(The Great God Brown)》(1926)은 부유한 사업가의 무의식 세계를 모색한다. 또한 퓰리처상 수상작 《기묘한 막간극(Strange Interlude)》(1928)은 한 여성의 복잡하게 얽힌 사랑을 추적한다. 이러한 인상적인 연극들은 강렬한 억압 속에서 원시적 감정이나 혼돈 속으로 빠져드는 다양한 성격의 인물들의 내면세계를 드러내고 있다.

 

오닐은 계속해서 소포클레스의 고전 《오이디푸스》에 기초한 《상복喪服이 어울리는 엘렉트라(Mourning Becomes Electra)》(1931)라는 제목으로 묶은 희곡 3부작에서, 가족 내의 사랑과 지배에 관한 프로이트적인 억압을 탐색하고 있다. 후기 대작들로는 죽음을 적나라하게 다룬 《얼음장수 오다(The Iceman Cometh)》(1946)와, 하룻밤 사이에 일어나는 가족과 그들의 육체적려ㅍ탔?퇴화 과정에 중점을 둔 자전적인 희곡 《밤으로의 긴 여로(Long Day? Journey Into Night)》(1956) 등이 있다.

오닐은 전통적인 막과 장의 분리법을 파기하고(《기묘한 막간극》은 9막으로 되어 있으며, 《상복이 어울리는 엘렉트라》는 공연하는 데 9시간이 필요하다), 아시아나 그리스 연극에 등장하는 마스크를 사용하며, 셰익스피어적인 독백과 그리스 연극적인 코러스를 도입하고 조명과 음향을 통한 특수효과를 이용함으로써, 연극을 새롭게 정의했다. 그는 미국 최고의 극작가로 널리 인정받게 되었고, 1936년에 미국 극작가로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손튼 와일더(Thornton Wilder, 1897~1975)

 

손튼 와일더는 희곡 《우리 마을(Our Town)》(1938)과 《위기일발(The Skin of Our Teeth)》(1942), 그리고 소설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The Bridge of San Luis Rey)》(1927)로 알려져 있다.

《우리 마을》은 긍정적인 미국적 가치들을 전달하고 있다. 이 작품은 원형적이며 전통적인 작은 시골 읍내, 다정한 부모와 장난꾸러기 아이들, 젊은 연인들 등 감상적이며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모든 요소들을 지니고 있다. 유령, 관객 속에서의 목소리, 과감한 시간 전환 등 실험적인 요소들이 이 연극을 흡입력 있게 만든다. 사실 이 작품은 비록 잠시지만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는 삶과 죽음에 대한 연극이다.

  

  

클리포드 오데츠(Clifford Odets, 1906~1963)

 

사회 연극의 거장인 클리포드 오데츠는 동유럽 출신 유대 인 이주자 가문에서 태어났다. 뉴욕에서 성장한 그는 해럴드 클러먼, 리 스트라스버그, 셰릴 크로포드 등이 조직하여 인디언 연극만을 연출하는 ‘그룹 시어터(Group Theater)’의 최초의 배우 회원 중 한 명이 되었다.

오데츠의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노동조합 결성을 열렬히 옹호하는 실험적인 1막짜리 연극 《레프티를 기다리며(Waiting for Lefty)》(1935)이다. 그의 향수 어린 가족 드라마 《깨어나 노래하라!(Awake and Sing!)》는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둔 또 다른 작품이며, 이어 《골든 보이(Golden Boy)》 또한 성공을 거두는데, 이 작품은 이탈리아에서 온 젊은 이주자가 돈의 꼬임에 넘어가 권투 선수가 되어 손을 다치는 바람에 바이올린 연주자로서의 음악적 재능을 망치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와 드라이저의 《미국의 비극》처럼 《골든 보이》 또한 지나친 야망과 물질주의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CHAPTER _ 7 1945년 이후 미국 시 : 반反전통

  

  

  

  

문학적 상상력에서의 전통적인 형식, 사상, 역사가 인간의 삶에 의미와 연속성을 제공할 수 있다는 가정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미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에서 일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사건들은 불연속적인 역사관을 초래했으며 각각의 행동, 감정, 순간이 따로 떨어져 있는 별개의 것으로 파악되기 시작했다. 스타일이나 형식은 창작 과정과 작가의 자의식을 반영하는 일시적이고 임시적인 방법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익숙한 표현 방법들은 이제 의심의 대상이 되었고, 독창성이 새로운 전통으로 부상했다.

미국에서 이러한 분열적 감수성이 생겨나게 된 역사적 원인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거대한 도시사회에서의 익명성과 소비자 중심주의, 1960년대 저항운동, 10년 동안 지속된 베트남 분쟁, 냉전 시대, 환경 파괴 등이 미국 문화에 미친 충격은 다양했다. 그러나 미국을 가장 많이 변화시킨 것은 대중매체와 대중문화의 발생이었다. 처음에는 라디오가, 이후에는 영화가, 그리고 전지전능한 텔레비전이 미국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았다. 책과 눈, 독서에 기초한 교양 중심의 개인적 엘리트 문화가 물러가고, 라디오에서 들리는 음성, CD와 카세트에서 들리는 음악, 영화, TV 스크린에 비친 이미지에 눈높이가 맞춰진 미디어 문화가 새롭게 떠올랐다.

미국의 시는 매스 미디어와 전자 기술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게 되었다. 시 낭송과 시인과의 인터뷰를 담은 영화, 비디오, 녹음 테이프 등이 속속들이 시장에 진출했고, 값싸고 정확한 인쇄 방법은 젊은 시인들에게는 자비 출판의 기회를, 젊은 편집자들에게는 문학잡지 창간의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그러다 보니 이제 문학잡지의 수는 2천 종을 넘어섰다. 195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미국인들은 자체적으로는 아주 유용한 테크놀로지가 잘못된 충격적 이미지들을 통해 위험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조금씩 인식하게 되었다. 대안을 찾으려는 미국인들에게 시는 전보다 더욱 적절한 표현 도구인 것처럼 보였다. 왜냐하면 시는 주관적인 생활을 표현하고 테크놀로지와 대중 사회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는 지역적이고, 일부는 유명한 시파 혹은 시인들과 관련된 다양한 스타일의 시들이 독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경합을 벌이면서, 현대 미국 시는 탈중심화하며 매우 다양해져 요약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편의를 위해서 이들을 하나의 선상에 위치시키면, 서로 겹치는 부분을 지닌 세 집단으로 나눌 수 있다. 선의 한쪽 끝에는 전통적인 시인들, 중간에는 특이한 시인들, 다른 끝에는 실험적인 시인들을 위치시킬 수 있다. 전통적인 시인들은 시적 전통을 유지하거나 부흥시켰으며, 특이한 시인들은 독특한 음색을 창조하기 위해 전통적인 기법과 새로운 기법을 모두 사용했다. 한편 실험적인 시인들은 새로운 문화적 스타일을 찾기 위해 애썼다.

  

  

  

  

전통주의 시인들

  

  

전통주의 시인들은 대개 각운이나 정형시 형태를 사용하면서 이미 익숙한 기법으로 시를 쓰는 전통적인 형식과 어법의 대가들이다. 이들 대부분은 미국 동부 연안이나 남부 지방 출신으로 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리처드 에버하트와 리처드 윌버, 탈주자 그룹의 나이든 시인들인 존 크로 랜섬, 앨런 테이트, 로버트 펜 워런 그리고 뛰어난 젊은 시인들인 존 홀랜더와 리처드 하워드, 그리고 초기 로버트 로웰이 전통주의 시인들의 예이다. 이들의 작품은 시선집에 자주 실릴 정도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제6장에서 다루었던 탈주자 그룹은 섬세함, 자연에 대한 존경심, 보수적인 가치 기준 등을 지니고 있었다. 이런 특징들은 전통적인 형식의 많은 시들을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 전통주의 시인들은 일반적으로 정확하고 사실적이며, 재치가 넘친다. 리처드 윌버(1921~ )처럼 그들은 종종 T. S. 엘리엇이 선호했던 15, 16세기 영국 형이상학파 시인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윌버의 가장 유명한 시 <사물이 없는 세상은 감각이 있는 공허다(A World Without Objects Is a Sensible Emptiness)>(1950)는 형이상학파 시인 토머스 트라헌의 시에서 제목을 따왔다. 이 시의 생생한 서두는 일부 전통적인 시인들이 각운과 형식적인 규칙성에서 얻어낸 투명함을 보여준다.

  

  

영혼의 키 큰 낙타들이

사막으로 나아간다, 매미들이 제재소의 톱 소리처럼

날카롭게 소리 지르는 작은 숲을 지나

건조한 태양의 완전한 달콤함

속으로. 그들은 느리고, 거만하다…

  

‘너무나 시적인’ 시어들을 믿지 않았던 많은 실험주의 시인들과는 달리, 전통주의 시인들은 울림이 있는 시적 표현들을 선호했다. 로버트 펜 워런은 어떤 시를 “세상을 정말로 사랑하여 결국 하느님의 존재를 믿도록”이라는 표현으로 마무리했다. 앨런 테이트(1899~1979)는 어떤 시에서 “우리 모두의 나이를 세고 있는 무덤지기!”라고 끝맺었다. 전통적인 시인들은 독특한 형용사[예를 들어 ‘음산한 부엉이(sepulchral owl)’처럼]를 자주 사용하거나, 자연스러운 회화체 어순을 부자연스럽게 변경하는 도치법을 이용하며, 이제는 쓰이지 않거나 이상한 단어들을 수사적으로 활용했다. 워런의 글귀에서 보이듯이 그 효과는 때로 고상하다. 그러나 때로는 “어리석게 신비 의식 사제의 옷단을 만졌다”라는 테이트의 글귀처럼 과장되고 실제적인 감정에서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편 홀랜더, 하워드, 제임스 메릴(1926~ ) 등의 시에는 자의식적인 내용이 위트, 동음이의어, 문학적 인유 등과 결합되었다. 도시적인 주제, 각운이 맞지 않는 시행, 개인적인 소재, 가벼운 대화체 등에서 신선함을 보인 메릴은 <상심(The Broken Heart)>(1966)이라는 시에서 결혼이 마치 칵테일인 것처럼 묘사하면서 전통주의 시인들과 위트 넘치는 창작 습관을 공유하고 있다.

  

  

항상 같은 이야기이다 -

아버지 시간과 어머니 땅

무너지고 있는 결혼*

* A marrige on the rocks:‘on the rocks’는 술잔에 얼음을 넣는다는 의미와 결혼 생활이 파탄에 이른다는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옮긴이

  

  

비록 메릴, 존 애쉬베리와 같은 일부 시인들은 유창하고 화려한 언어로 전통적인 시인으로 성공했지만, 그들의 시는 철저하게 새로운 방법으로 시를 재정의하고 있다. 랜덜 자렐(1914~1965)과 A. R. 아몬스(1926~ )의 경우에서처럼 스타일의 우아함은 일부 시인들을 실제보다 더욱 전통적인 시인인 것처럼 보이도록 한다. 아몬스는 인간과 자연의 밀도 있는 대화를 창조했으며, 자렐은 다음에 나오는 <포탑 사수의 죽음(The Death of the Ball Turret Gunner)>(1945)에서처럼 여성, 아이들, 죽을 운명에 처한 군인들 등 소유하지 못한 자들의 갇혀 있는 의식에 발을 들여놓고 있다.

  

  

내 어머니의 잠에서 나는 그 상태로 떨어졌다

나는 내 젖은 털옷이 얼 때까지 그 배 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땅에서 6마일 떨어진 곳에서 삶의 꿈에서 풀려나

나는 검은 포화와 악몽과 싸우는 사람들의 소리에 깨어났다

내가 죽자 그들은 호스로 포탑에서 내 흔적을 씻어냈다.

  

  

전통적인 많은 시인들이 각운을 사용했지만, 그렇다 해도 모든 시가 주제나 음조 면에서 전통적인 것은 아니다. 시인 그웬돌린 브룩스(1917~ )는 도시 빈민가에서의 글쓰기의 어려움과 삶의 고단함에 대해 시를 쓰고 있다. 그의 <간이부엌 빌딩(Kitchenette Building)>(1945)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꿈은 양파 연기 속으로 흰색과 보라색 빛을

쏘아 올릴 수 있을까, 튀긴 감자와 싸우면서

어제의 쓰레기는 복도에서 익어가는데…

  

  

브룩스, 에이드리언 리치, 리처드 윌버, 로버트 로웰, 로버트 펜 워런 등 많은 시인들은 각운과 운율을 맞춘 전통적인 시로 출발했지만, 1960년대에 여러 사건들과 점진적으로 자유시 형태를 선호하는 경향에 눌려 전통적인 시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로버트 로웰(Robert Lowell, 1917~1977)

 

최근에 가장 영향력 있는 시인인 로버트 로웰은 전통적인 시로 시작했지만 실험주의에 영향을 받게 되었다. 그의 삶과 작품은 에즈라 파운드 같은 후기 모더니즘 대가들과 현대 실험주의 작가들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로웰은 학자 시인의 유형에 들어맞는다. 그는 백인이며 남성이고, 신교도로 태어났으며, 교육을 잘 받았고, 정치사회적 기득권 세력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는 보스턴 브라민 가문의 자손으로 태어났으며, 이 가문에는 19세기의 유명한 시인 제임스 러셀 로웰과 최근 하버드 대학교 총장이 있었다. 로버트 로웰은 그러나 자신의 엘리트적인 배경 밖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다. 그는 하버드에 가지 않고 오하이오에 있는 케니언 대학에 갔으며 그곳에서 청교도적인 계통을 거부하고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양심적 전쟁 반대자로 1년 동안 수감되었으며, 이후에는 공개적으로 베트남 전쟁에 반대했다.

《닮지 않은 땅(Land of Unlikeness)》(1944), 퓰리처상을 받은 《위어리 경의 성城(Lord Weary? Castle)》(1946) 등의 초기 시집은 전통적인 형식과 절제된 스타일, 강렬한 느낌, 개인적이지만 역사적인 시각 등을 담고 있다. 인디언을 죽인 청교도들과 남은 곡식을 가난한 이들에게 보내지 않고 그냥 태워버리는 청교도의 후손에 대해 날카롭게 비난하고 있는 시 <빛의 아이들(Children of Light)>(1946)과 같은 초기 시들은 독자를 압도한다. 로웰은 “우리의 아버지들은 가축과 돌로 빵을 얻고/인디언들의 뼈로 정원의 울타리를 만들었다”라고 적었다.

로웰의 다음 작품 《카바노프 가의 방앗간(The Mills of the Kavanaughs)》(1951)은 가족 구성원들이 각자의 온화함과 결점을 드러내는 감동적이고 극적인 독백들로 구성된다. 로웰의 스타일에는 항상 웅대함과 인간적인 면이 혼합되어 있다. 종종 전통적인 각운을 사용하지만, 구어체적인 가벼움 때문에 이는 거의 배경 음악처럼 느껴진다. 오히려 이 시집은 로웰이 창조적인 개인적 언어를 만들 수 있는 돌파구를 마련해준 실험적인 작품이었다.

로웰은 1950년대 중반 시낭송 순회를 하다가 처음으로 새로운 실험적인 시들을 접하게 되었다. 아직 출간되지 않았던 앨런 긴즈버그의 《울부짖음(Howl)》, 개리 스나이더의 《신화와 텍스트(Myths and Texts)》가 샌프란시스코 북쪽 해변에 있는 커피 전문점에서 재즈 연주와 함께 낭송되었다. 로웰은 이런 시들에 비해 자신의 시는 형식적이고 수사적이며, 관습에 얽매여 있다고 느꼈다. 시를 크게 읽으면서 그는 즉각적으로 더욱더 구어체적인 어법으로 자신의 시를 수정하게 되었다. 나중에 그는 “내 시들이, 늪지로 끌려와 그들의 육중한 무기에 죽임을 당하는 선사시대 괴물처럼 느껴졌다. 나는 내가 더 이상 느끼지 못하는 것들을 낭송하고 있었던 것이다”라고 적었다.

이 시점에서 로웰은 그를 이은 수많은 시인들이 그랬듯이 미국의 대안적인 전통, 즉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학파로부터 배우기로 결정했다. 그는 1962년에 “윌리엄스처럼 미국을 진정으로 바라보고 미국의 언어를 제대로 들은 시인은 없었던 것 같다”라고 적었다. 이후 로웰은 자신의 스타일을 완전히 바꾸고 윌리엄스의 시에서 가장 높이 샀던 “음조, 분위기, 속도의 빠른 변화”를 사용하게 되었다.

로웰은 모호한 인유 등 초기 시의 특징들 다수를 포기했다. 그는 각운을 강제로 부여하지 않는 대신 시 속의 내적인 경험과 긴밀히 연결되도록 했다. 연으로 구성된 구조 또한 무너졌으며, 새로운 즉흥적 형태가 생겨났다. 《삶의 연구(Life Studies)》(1959)에서 그는 자신의 가장 고통스러운 개인 문제를 아주 정직하고 강렬하게 드러낸 새로운 시 형태인 고백시(confessional poetry)를 처음으로 선보였다. 본질적으로 그는 자신의 개성을 발견했을 뿐만 아니라 가장 어렵고 사적인 표현 방법으로 자신의 개성을 찬미했다. 그는 자신을 동시대적이고, 자아를 다루고 있는 파편적인 시로, 그리고 창작 과정으로서의 형식으로 변형시켰다.

로웰의 새로운 시는 전후 시의 분수령이 되어 많은 젊은 작가들에게 새로운 길을 터주었다. 시집 《죽은 연방군에게(For the Union Dead)》(1964), 《노트북 1967~69》(1970), 그리고 기타 후기작들에서 로웰은 심리 분석 경험을 다루면서 자전적인 탐색과 기법 실험을 계속했다. 로웰의 고백시는 특히 많은 영향을 미쳤다. 존 베리먼, 그리고 그의 제자였던 앤 섹스턴과 실비아 플라스 등은 로웰과 따로 떼놓고 상상하기 힘든 시인들이다.

  

  

  

  

특이한 시인들

  

  

전통적인 글쓰기를 이용해 독특한 스타일을 개발하면서도 이를 동시대적인 맛을 지닌 새로운 영역으로 확대한 시인들에는 실비아 플라스, 앤 섹스턴, 존 베리먼, 시어도어 레트키, 리처드 휴고, 필립 레빈, 제임스 디키, 엘리자베스 비숍, 에이드리언 리치 등이 있다.

 

실비아 플라스

(Sylvia Plath, 1932~1963)

 

실비아 플라스는 스미스 대학을 장학생으로 다닌 후 수석으로 졸업했으며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들어가는 등 외면적으로는 모범적인 삶을 살았다. 케임브리지에서 그녀는 카리스마적인 영국 시인 테드 휴즈를 만나고 그와 함께 아이 둘을 낳아 잉글랜드의 작은 시골집에 정착했다. 그러나 그녀의 소설 《유리 그릇(The Bell Jar)》(1963)에 나타나듯이 동화 같은 성공 뒤에는 해결되지 않은 심리적인 문제들이 곪고 있었다. 그녀가 안고 있던 문제들 중 일부는 개인적인 것이었지만 나머지는 여성에 대한 1950년대의 억압적인 풍조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런 풍조 중에는, 여성은 분노를 표출하지 말아야 하며 자신의 경력을 야심적으로 추구하지 말아야 하고, 대신 남편과 아이들을 돌보는 데서 성취감을 찾아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는데, 대부분 여성들 또한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실비아 플라스 같은 성공한 여성들은 이러한 모순 속에서 살아야 했다.

플라스의 동화 같은 삶은 휴즈와의 별거로 무너졌고 그녀는 극도로 추운 겨울날 런던의 아파트에서 아이들을 돌보게 되었다. 아프고 고립된 채 절망에 싸인 플라스는 부엌에서 가스로 자살하기 전까지 시 창작에 몰두했다. 이 시들은 그녀가 죽은 지 2년 후에 출간된 시집 《아리엘(Ariel)》(1965)에 수록되었다. 이 시집의 머리말을 쓴 로버트 로웰은 그녀와 앤 섹스턴이 1958년 자신의 시 수업을 듣던 때에 비해 플라스의 시가 급격하게 발전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플라스의 초기 시는 깔끔한 정통 시들이었지만, 후기 시는 대담성과 원형 페미니스트다운 고통스런 울부짖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원자(The Applicant)>(1966)라는 시에서 플라스는 아내를 무생물인 ‘그것(it)’이라고 축소하며, 아내 역할의 공허함을 폭로하고 있다.

  

  

살아 있는 인형, 너는 어디서나 본다.

그것은 바느질하고, 요리할 수 있으며,

그것은 말하고, 말하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잘 한다, 거기에는 잘못된 것이 없다.

너는 구멍이 있다, 그것은 땜질한 것이다.

너는 눈이 있다, 그것은 그냥 환상이다.

내 아이야, 그것은 네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그것과 결혼, 결혼, 결혼하겠니.

  

  

플라스는 동요적인 운율과 잔인할 정도로 직접적인 표현을 과감하게 사용했다. 그녀는 대중문화에서 나온 이미지들을 솜씨 있게 활용했다. 아기에 대해 그녀는 “사랑은 너를 뚱뚱한 금시계처럼 움직이게 만들었다”고 적고 있다. 시 <아빠(Daddy)>에서는 자신의 아버지를 영화에 나오는 드라큘라로 상상하고 있다. “당신의 기름진 검은 심장엔 말뚝이 박혔고/마을 사람들은 당신을 결코 좋아하지 않았어요.”

  

  

앤 섹스턴(Anne Sexton, 1928~1974)

 

플라스처럼 앤 섹스턴도 미국에서 여성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전에 아내, 어머니, 시인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려고 했던 열정적인 여성이었다. 그녀도 플라스처럼 정신 질환으로 고생했으며,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섹스턴의 고백시는 플라스의 시보다 더욱 자전적이며, 플라스의 초기 시가 가진 능숙함은 지니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섹스턴의 시는 강렬하게 감정에 호소하고 있다. 그녀의 시는 성, 죄의식, 자살 등 금기시되었던 소재들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녀는 종종 여성의 관점에서 본 임신, 여성의 육체, 결혼 등의 여성적인 주제들을 과감하게 도입했다. 시 <그녀의 종류(Her Kind)>(1960)에서는 화형에 처해지는 마녀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다.

  

나는 당신의 수레에 탄 적이 있어요, 마부여

내 벌거벗은 팔을 지나가는 동네사람에게 흔들면서

마지막 환한 길을 배우며, 생존자여

당신의 화염이 내 정강이를 아직도 물어뜯는

그리고 당신의 바퀴가 구를 때 내 갈비뼈에는 금이 가는 그곳을.

죽는 것에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 여성.

나는 그녀와 한 종류였다오.

그녀의 작품집 제목을 보면 광기와 죽음에 대한 그녀의 관심을 읽을 수 있다. 그녀의 작품집 중에는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과 돌아오는 길 일부(To Bedlam and Part Way Back)》(1960), 《살거나 아니면 죽거나(Live or Die)》(1966), 그리고 사후에 출간된 《하느님을 향한 서툰 배젓기(The Awful Rowing Toward God)》(1975) 등이 있다.

  

  

존 베리먼(John Berryman, 1914~1972)

 

존 베리먼의 삶은 로버트 로웰의 삶과 유사한 부분이 있다. 베리먼은 북동부에 있는 사립 고등학교와 콜럼비아 대학교에서 교육받았으며, 프린스턴 대학교 연구원이 되었다. 전통적인 형식과 운율을 따랐던 그는 초기 미국 역사에 영감을 받았으며 《꿈 노래(Dream Songs)》(1969)를 통해 자기 비판적이고 고백적인 시들을 발표했다. 이 시집에서 베리먼은 헨리라는 괴이한 자전적 인물을 통해 자신의 일상적인 교편 생활, 만성 알코올 중독, 야심 등에 대해 회고하고 있다.

동시대 작가 시어도어 레트키처럼 베리먼은 민담, 동요, 상투어, 속어 등의 구문으로 활기를 더해 유연하고 쾌활하며 동시에 심오한 스타일을 개발했다. 베리먼은 헨리에 대해서 “그는 폐허를 바라보았다. 폐허가 대답하듯 그를 쳐다보았다”라고 적고 있다. 다른 곳에서 그는 “이런, 이런, 이런/무관심이 언제 올 것인가, 나는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며 기뻐 소리친다네”라고 쓰고 있다.

  

  

  

  

시어도어 레트키(Theodore Roethke, 1908~1963)

 

온실 주인의 아들로 태어난 시어도어 레트키는 작은 벌레들과 보이지 않는 뿌리로 채워진 ‘온실 세계’를 그려내기 위해 특별한 언어를 개발했다. “벌레야, 내 곁에 있어주렴/내가 아주 힘들거든.” 《바람을 위한 말(Words for the Wind)》(1958)에 실린 그의 사랑시는 순수한 열정으로 아름다움과 욕망을 찬미하고 있다. 그의 시 하나는 “나는 바짝 말라 아름다운 여성을 알고 있는데/작은 새들이 한숨을 쉬면 그녀 또한 한숨으로 답했다”라고 시작한다. 때때로 그의 시는 자연에 관한 짧고 오래된 수수께끼 같다. “누가 먼지를 기절시켜 소리 지르게 만들었는가?/두더지에게 물어보렴, 그가 알고 있으니.”

  

  

리처드 휴고(Richard Hugo, 1923~1982)

 

워싱턴 주 시애틀에서 태어난 리처드 휴고는 시어도어 레트키의 문하생이다. 그는 비참한 도시 환경 속에서 가난하게 자랐으며 미국 북서부를 배경으로 노동자들의 희망, 공포, 좌절 등을 표현하는 데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휴고는 과감하게 억양격을 활용해 미국 북서부의 허름하고 잊혀진 작은 마을에 대한 향수 어린 고백적 시를 창작했다. 그는 인간관계에서의 수치, 좌절, 배척 등을 다루었다. 또한 자세하고 이치에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디테일에 독자가 관심을 집중하도록 하면서 동시에 더 많은 것을 느끼게 만든다. <당신이 매우 사랑하는 것은 여전히 미국적인 것이다(What Thou Lovest Well, Remains American)>(1975)라는 시는 자신의 고향에 대한 기억을 음식인 것처럼 지니고 다니는 사람의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당신이 이상한 텅 빈 마을에서 길을 잃고

배고픈 연인들을 친구로 삼고 싶고 그들이 만든

길가 선술집에서 환영을 받고 싶다면…

  

  

필립 레빈(Philip Levine, 1928~ )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난 필립 레빈은 날카로운 관찰력으로 노동자들의 경제적 고통을 본격적으로 다루었다. 휴고와 마찬가지로 레빈도 도시 빈민 출신이다. 그는 산업 사회에 갇힌 외로운 사람들을 대변해왔다. 그의 시 다수가 우울하며, 정부 체제가 계속 유지될 것임을 아는 가운데 느끼는 무정부적 경향을 반영하고 있다.

어떤 시에서 레빈은 용기와 꾀로 사냥꾼들의 위험한 세계에서 살아남은 여우와 자신을 비교하고 있다. 초기 작품에서는 전통적인 운율법을 사용하다가 후기로 가면서 더욱 자유롭고 형식에 개의치 않는 시를 창작했다. 또한 그는 현대 사회의 악에 대한 외로운 저항을 작품에 담았다.

  

  

제임스 디키(James Dickey, 1923~1997)

 

시인이자 소설가, 수필가인 제임스 디키는 조지아 주 출신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 주제가 자아와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혹은 존재해야만 하는 연속성에 대한 것이라고 스스로 주장한 바 있다. 그의 작품들 다수는 강과 산, 날씨 변화,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 등 자연에 뿌리를 두고 있다.

1960년대 후반에 디키는 남성간 우정의 어두운 면을 다룬 소설 《석방(Deliverance)》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 책이 출간되고 나중에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그의 명성은 높아졌다. 그의 최근 시집들은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예리코:남부 관망(Jericho:The South Beheld)》(1974)에서는 남부의 풍경을, 《신의 이미지(God? Images)》(1977)에서는 성경의 영향 등을 보여주고 있다. 디키는 종종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필사적으로 이루고/요구 이상으로 해내며”라는 표현에서 이를 알 수 있다.

  

  

엘리자베스 비숍(Elizabeth Bishop, 1911~1979)과 에이드리언 리치(Adrienne Rich, 1929~ )

 

특이한 여성 시인들 중에는 엘리자베스 비숍과 에이드리언 리치가 최근 가장 많이 존경받고 있다. 비숍의 투명한 지성, 외진 풍경에 대한 관심, 여행과 관련한 은유들은 정확성과 섬세함으로 독자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비숍은 자신의 정신적 선배인 메리앤 무어처럼 결혼하지 않았고, 철학적 깊이를 내포하고 있는 냉담하고 묘사적인 스타일로 멋진 시들을 창작했다. <어시장에서(At the Fishhouses)>처럼 매우 추운 대서양 북부의 묘사는 비숍의 스타일을 잘 보여준다. “그것은 우리가 지식이 그러했으면 하는 것들과 닮았다/검고, 짜고, 맑고, 움직이고, 완전히 자유로운.”

 

플라스, 섹스턴, 에이드리언 리치 등의 ‘뜨거운’ 시들과 비교해서, 비숍의 시는 무어의 시와 함께 에밀리 디킨스까지 족적을 찾아갈 수 있는 ‘차가운’ 여성 시 전통에 위치시킬 수 있을 것이다. 리치는 비록 전통적인 형식과 운율에 맞춰 시를 쓰기 시작했지만 그녀의 작품들, 특히 그녀가 1960년대에 열렬한 페미니스트가 된 후에 쓴 작품들은 강렬한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그녀가 특히 재능을 보인 곳은 은유인데, 그녀의 뛰어난 작품 <난파선으로 잠수하기(Diving Into the Wreck)>(1973)는 여성의 정체성 찾기를 난파선을 찾아 잠수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난파선은 여성의 자아 상실과 같은 것이라고 화자는 말하고 있다. 여성은 남성이 지배하는 영역을 뚫고 자신의 길을 개척해야 한다고 화자는 주장한다. 시인 드니즈 레버토프에게 바치는 리치의 시 <루프워커(The Roofwalker)>(1961)에서는 여성의 시 창작을 위험한 작업과 동일시하고 있다. 지붕을 만드는 남성들처럼 그녀는 “실제보다 크고, 노출되었으며/언제라도 목이 부러질” 것처럼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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