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시대적 사명과 기능 /안성수

2013.02.13 16:43

김영교 조회 수:564 추천:13

1. 여는 말

수필은 이 시대에 어떻게 존재하며 기능해야 하는가? 이러한 물음은 기본적으로 통시성과 공시성의 두 차원에서의 탐구가 가능하다. 전자는 본성 차원의 보편 미학에 대한 물음이요, 후자는 수필의 기능을 특수한 시대정신과의 관계 속에서 던지는 질문이다.

수필은 문학 장르 중에서 가장 자유로운 형식이다. 따라서 그만큼 타 장르의 작가들로부터 극심한 유혹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포스트모더니즘 하에서, 소설과 시가 수필의 형식을 활용하는 장르 혼용과 장르 확산의 현상 속에서 수필은 지금,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맞고 있다. 또한 타 장르는 괄목할 만한 질적 성장을 거두고 있는데 비해 수필은 정체(停滯)에 빠져있다는 점에서도 위기를 느끼게 한다.

문제는 수필문학이 역사의 대 전환기에 어떻게 장르적 정체성과 문학적 자율성을 신장시키면서 시대정신을 반영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시대로부터 소외된 예술이나 시대정신을 외면한 예술은 결코 긴 생명력을 보여줄 수 없다. 따라서 한국 수필은 스스로 이 시대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

필자는 공시성과 통시성의 관점에서 이 물음에 접근하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문학 장르란 수직적 전통과 수평적 전망의 역학 속에서 발전과 쇠퇴의 길을 가기 때문이다. 공시적 관점에서는 시대정신과의 관련 속에서 한국 현대수필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살피고, 통시적 관점에서는 시대를 초월하여 제기되는 보편적인 문제점을 제기하게 될 것이다.

2. 21세기와 시대정신

시대정신이란 한 시대를 이끌고 있는 보편정신으로서 철학적 사조나 이념 및 지배적인 정서 등을 총칭하는 개념이다. 그것은 당대의 보편적 신화소를 인식하는 열쇠가 될 뿐만 아니라, 당대인들의 의식구조와 비전을 읽어내는 핵심적인 코드가 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기 초의 시대정신은 철학 사조적으로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색채가 짙고, 정서적으로는 반휴머니즘적 태도가, 세계관이나 자연관은 생태주의적 관점이, 그리고 매체의 차원에서는 첨단 전자매체의 강력한 영향 속에서 존재한다. 우선, 포스트모더니즘은 앞 사조인 모더니즘에 대한 계승과 단절의 의미를 공유한다. 예컨대, 모더니즘의 기본정신을 계승 발전시키려는 속성과 그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양면성을 보인다. 이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후기 모더니즘과 탈 모더니즘의 양극개념 사이에서 존재한다.

이 시대의 포스트모더니즘은 고대 희랍 이후 지배해온 이성 중심의 합리주의 전통을 거부하고 해체하는 특성을 보인다. 모더니스트들은 인간과 세계와 예술을 설명하고 이해하는 방법으로 형식과 질서, 절대성과 확정성, 필연성과 개인적 창조성, 총체성과 확실성, 완결성과 연속성, 일원적 집중성과 종합성 등을 중시한다. 이에 비해,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반형식과 무질서, 상대성과 불확정성, 우연성과 임의성, 해체성과 불확실성, 불연속성과 다원성, 분산화 등의 방법을 중시한다. 그러한 이념이 문학 분야에서는 상호텍스트성과 탈장르화, 반리얼리즘과 자기 반영성,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 등으로 나타난다.

반휴머니즘적 정서도 세기 초의 시대정신 속에서 발견된다. 에리히 프롬은『휴머니즘의 재발견』에서 휴머니즘의 원리와 특성을 네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인류는 하나의 공동체라는 신념, 둘째 인간 존엄성의 강조, 셋째 스스로를 신장․완성시키는 인간 능력에 대한 강조, 넷째 이성과 객관성, 평화의 강조 등이다. 한편, 폴란드 철학자 아담 샤프는 휴머니즘을 “인간을 최고선으로 인식하여 인간 행복을 위한 최고의 조건을 현실에서 만들어 내기를 바라는 사유체계”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성 존중과 계발을 내세운 휴머니즘은 결과적으로 인간과 자연, 인간과 우주의 관계에서 지나치게 인간중심적 가치를 강조함으로써 그것들로부터 소외되는 결과를 낳았다. 인간은 끝없는 과학에의 도전과 이기적 물질욕에 현혹되어 자연환경과 인간성을 함께 파괴하는 자기모순을 저지르고 있다.

생태주의 세계관 속에서도 시대정신이 발견된다. 생태학(ecology)이란 유기체가 환경과 맺고 있는 총체적인 유기적 상호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생태계의 위기는 인류가 유사 이래 축적해온 자연 파괴의 결과물이다. 인간의 파괴적 자연 지배를 방임해온 예술과 문학 등도 그 위기조성에 동참한 공범이다. 생태주의자 배리 코모너의 말처럼, 만물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현대의 작가와 독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생태학이 아니라 생태주의이다. 생태에 관한 학문적 연구는 학자들의 몫이지만, 인간과 생태와의 관계를 깊이 인식하고 실천에 옮겨야 할 주체는 대중이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작가와 비평가가 사명감을 갖고 생태 문학적 글쓰기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마지막으로, 첨단 전자영상매체의 눈부신 영향 속에서도 시대정신이 발견된다. 첨단과학을 이용한 인터넷 문화는 현대과학이 쌓아올린 금자탑이다. 컴퓨터가 제공하는 사이버 세계는 새로운 삶의 시공간으로 인정되기 시작했다. 이제 고전적인 활자 책보다는 컴퓨터의 온라인상에 띄워놓은 전자책이 인기가 있고, 인류의 문화유산을 보관하던 전통적인 도서관도 인터넷을 활용한 전자도서관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특히, 작가의 글쓰기 방식에도 혁명적인 변화를 몰고 왔다. 인터넷을 통하여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작가와 독자간의 쌍방향식 대화와 상호 텍스트적 창조행위도 가능해졌다. 뿐만 아니라, 눈부시게 발달하는 전자영상매체의 효용성을 한껏 누리면서 장르의 확대를 꿈꾸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수필은 가상공간에서의 대중 접근이 가장 용이한 장르라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된다.

그러나 수필 차원에서 보면 현실은 불만스럽기 짝이 없다. 글쓰기의 자유로움과 무형식의 창조성을 내세우면서도 유독 수필작가들만이 전통에 기대어 느린 걸음을 걷고 있다. 독자들은 첨단 전자영상매체 시대를 만끽하는데, 문인들은 고전적인 방식으로만 창작에 매달리고 있다. 고통스럽게 육필 원고를 쓰던 시대는 이미 끝나가고 있지만, 수필가들은 찬란한 전자 문학시대를 외면한 채 수수방관하고 있다.

3. 수필의 통시적 기능과 사명

지금,한국 수필계는 장르 혼용과 장르 확산이라는 탈장르적 격변기를 맞고 있다. 장르의 세력이 강한 시와 소설이 수필 형식을 혼용하고, 수필과 음악, 수필과 그림이 혼합된 퓨전수필 등도 심심찮게 눈에 띄고 있다. 이런 역사적 전환기에, 작가들은 수필문학의 고유한 본질을 지켜나가면서 장르를 발전시켜 나가야 할 시대적 사명을 부여받고 있다. 이에 필자는 수필의 정체성과 형식미학, 언어미학, 비평, 시학 탐구, 전통의 계승과 계발 등을 주요한 과제로 제기한다.

1)수필의 정체성 탐구

수필의 정체성은 모든 시대의 작가와 독자들이 작품을 쓰고 읽을 때마다 항상 떠올리는 물음이다. 즉, 수필이란 무엇이며, 그 본질과 본성은 무엇인가? 등이 그것이다.

이 문제는 그 중요성에 불구하고, 본격적인 연구와 토론 과정을 거치지 않음으로써 서양의 전통에 뿌리박은 논의와 주관적인 창작경험에 의존한 몇몇 작가들의 피상적인 주장만이 난무할 뿐이다. 게다가 우리의 고전수필의 전통 속에서 유전되어온 정체성에 대한 연구 부족으로 한국 현대수필은 뿌리를 잃은 채 표류하고 있다.

탈장르적 분위기가 팽배해지는 포스트모던 시대에 수필이 생명력을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정체성에 대한 연구는 필수적이다. 우리는 이미 세계문학사에서 시대정신을 등에 업은 강한 장르가 약한 장르를 흡수한 것을 목격한 바 있다. 이런 혼란기를 틈타 자칫 수필이 고대 서사시나 중세 로맨스처럼 장르 흡수나 장르 소멸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21세기 초엽에도 소설과 시가 수필 형식을 활용함으로써 수필의 장르적 장점을 혼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배수아의 장편소설인『에세이스트의 책상』은 그 한 예가 된다. 그녀는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소설을 쓰기를 원했으나, 그것이 단지 소설의 형태로만 나타나기를 원하지는 않았다. 혹은 처음에는 그 기간 동안 내가 읽고 들은 몇 권의 책과 소소한 음악에 관해서 짧고 단조로운 에세이를 쓰고 싶었으나, 그러기 위해서 소설의 도움을 받기를 원했다. (중략) 글을 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유로운 글이란 그 형태로나 내용으로나 이미 규정되어 있는 어느 폐쇄된 영역 안에 머무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가능하다면 다른 것을 쓰되, 사람들이 그것을 소설이라고 불러도 아무래도 상관없는 그런 형태를 원했다.

작가의 고백은 소설 쓰기에 수필 형식을 빌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수필보다 더 짧은 ‘장편(掌篇)소설’과 ‘엽편(葉篇)소설’, 혹은 ‘60초 소설’ 등이 발표되는 이 시대에 수필이 장르적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찌해야 하는가. 그것은 창작과정에서 수필작가들이 사명감을 갖고 장르의 정체성이라는 DNA를 작품 속에 고이 간직하려는 장인적 노력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

2)수필의 형식미학 탐구

흔히, 수필은 무형식의 문학으로 일컬어진다. 이 세련된 수사는 그 의미가 적절하게 인식되지 못함으로써 한국 수필계를 혼란스럽게 만든 동기를 제공하였다. 수필의 무형식론은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의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창작 시에 형식상의 틀이나 조건이 없다는 점과 다른 하나는 작품을 쓸 때 내용과 주제를 가장 예술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최상의 형식을 적극적으로 찾아서 쓰라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무형식론이 수필가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으나, 창의성과 미적 실험성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자유로운 형식 탐구의 요구는 수필작가들에게 주어진 최대의 미적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한국 수필가들의 작품에 개성 있는 형식미를 찾아보기가 어려운 것은 작가들이 형식에 대한 미의식이 허약한 것을 반증한다. 등나무처럼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 속에는 등나무 형식이 제격이고, 바람처럼 살아가는 인물의 이야기에는 바람의 형식이 형상화의 원리가 되어야 한다. 감꽃 같은 품성을 지닌 어머니의 이야기에는 감꽃의 형식이 필요하고, 진눈깨비처럼 살아가는 이야기를 위해서는 진눈깨비 형식을 탐구해야 한다.

한국 수필 속에는 제재의 형식을 활용하여 주제를 형상화 하는데 성공한 작품이 많다. 윤오영은「달밤」과 「오음실 주인」에서 보름달과 벽오동 잎의 형식을 취하고, 반숙자는 「등나무집 형님」에서 등나무의 형식을, 신라의 설총(薛聰)은「풍왕서(諷王書)」에서 모란과 장미, 할미꽃의 형식을 취하여 형상화한 것 등은 좋은 예가 된다. 수필작가들이 형식미학을 탐구하는 것은 작품의 예술성을 높이는 필요조건임을 인식해야 한다. 제재의 형식으로부터 주제와 내용을 형상화하는 원리를 찾아내는 것은 모든 작가에게 주어진 영원한 과제이다.

3)수필의 언어미학 탐구

이 시대의 수필가들에게 주어진 통시적 사명 중에는 수필언어에 대한 탐구도 빼놓을 수 없다. 매체인 언어에 대한 탐구는 모든 시대의 수필가에게 주어진 최대의 사명이자 정체성의 본질을 이해하는 첩경이다. 시와 소설이 그 언어의 미학 속에 자신의 정체성을 함유하듯이, 수필의 정체성은 수필의 언어 속에 내포되기 마련이다.

수필언어는 본성적으로 시, 소설, 희곡의 중간 장르적 속성을 함유하고 있다. 그래서 수필은 시어가 지닌 함축성과 비유적 수사법을 활용하고, 소설언어의 산문성과 흥미 있는 이야기 전개방식을 도입하며, 희곡의 긴장감 넘치는 대화법을 적절히 사용한다. 수필언어가 산문이면서도 품위 있고 절제된 표현을 통해 문장의 향기와 문장의 맛을 창조하는 것도 이런 데서 연유한다. 수필언어의 품격미와 절제미는 전통으로부터 물려받은 측면도 있다. 우리의 고대나 중세 수필작가들은 대개 지식인들이어서 그들의 체험을 품위 있고 절제된 언어를 통하여 전달하기를 즐겼다. 게다가, 뜻글자인 한자를 매체로 사용함으로써 암시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를 내포시키는 함축어법을 즐겨 쓴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에 비해, 현대 수필작가들은 소설과 거의 구별되지 않는 언어를 구사함으로써 심각한 언어적 정체성의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현대 작가들의 고전수필에 대한 학습부족, 전문적인 수필이론과 문장수업을 받지 않는 풍토, 문장의 속성이 다른 타장르 작가들이 여기(餘技)로 쓰는 수필창작 경향, ‘무형식의 문학’등과 같은 수필에 대한 잘못된 통념들, 수필작가의 방만한 등단제도 등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따라서 현대 수필가들은 수필만이 보여줄 수 있는 독특한 언어의 맛과 향기를 품지 못하고 경박한 산문문장의 아류로 전락한 경우가 허다하다. 아직 수필문장의 기본조차 터득하지 못한 자들이 작가로 추천되는 현실 속에서 한국 현대수필은 심각한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수필의 언어미학에 대한 바른 인식과 탐구는 현대 작가들에게 주어진 시대적 요청이다.

4)수필 비평의 탐구

한국 현대수필계가 당면하고 있는 중요한 과제의 하나는 비평의 빈곤 현상이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수필 비평가의 절대부족에서 오는 것인데, 작가의 건전한 창작 욕구를 촉진시킬 수 있는 시스템의 부재 현상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비평의 부재는 곧, 작품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과 평가의 부재라는 문제점 외에도 수필 이론의 생산과 도입의 한계로 작용한다. 이러한 결과는 한국 수필문학 발전에 심대한 저해 요인으로 기능하여 타 장르의 작가들과 독자들로부터 폄시받는 근거가 된다. 한국 수필문학의 질적 정체와 연구의 후진성 및 위상 악화는 전문 비평가의 부재 외에도 전문학자의 부족과 교육제도의 미비, 수필에 대한 왜곡된 정의도 한 몫을 해왔다. 우선, 수필 비평가의 부족은 체계적인 이론에 근거한 작품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작가의 창작활동에 대한 건전한 견제가 어려워진다. 둘째, 수필 전문학자의 부재는 수필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이론 부족현상을 낳게 된다. 비평가와 이론가에 의해 미학적 체계와 논리가 뒷받침되지 않음으로써 타 장르의 작가와 이론가들로부터 ‘수필은 이론이 없는, 그래서 아무나 할 수 있는 가벼운 장르’로 오인되는 결과를 낳았다. 셋째, 공교육 수준에서 수필에 대한 교육이 무시되거나 배제됨으로써 독자들에게 바른 지식을 전파할 수 없었다. 넷째, 수필은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거나, ‘무형식의 형식’이라는 등의 수사적 표현이 오히려 수필의 본질을 왜곡시킴으로서 위상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게 했다.

21세기의 장르 해체와 탈 장르 시대를 맞아, 수필이 정체성을 지켜내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식견을 갖춘 비평가의 양성에 힘을 쏟아야 한다. 그래서 작가와 비평가, 이론가와 문학사가 등이 건전한 상호보완적인 긴장관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제도교육과 사회교육의 양차원에서 대비책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5)수필시학의 탐구

한국 현대수필의 출발을 1920년대 초로 잡는다면, 거의 90년의 역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수필사에서는 아직까지 “수필시학”이란 책을 가져본 일이 없다. 이러한 현상은 한 마디로 한국 현대수필이 양적인 성장에도 불구하고, 질적 성장을 이루지 못했음을 뜻한다. 21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수필문학의 정체성에 대한 논의조차 부실했던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

츠베탕 토도로브는『구조시학』에서 시학(詩學)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시학은 개별적인 작품의 해석과는 반대로 의미를 규정하려고 하지 않고, 각각의 작품의 탄생을 주재하는 일반적인 법칙을 알아냄을 목적으로 한다. (중략) 그 법칙을 문학 자체 안에서 찾으려고 한다. (중략). 그러므로 모든 작품은 훨씬 일반적인 어떤 추상적인 구조의 발현으로밖에 간주되지 않는데, 즉 전자는 후자의 여러 가능한 실현태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중략) 다른 말로 하자면, 문학적 사상(事象)의 특이성을 이루는 그 추상적인 특성- 문학성을 다루는 것이다.

따라서 시학이란 개개의 작품 속에 보편적으로 내재한 문학성을 잉태시키는 보편문법이나 보편구조를 의미한다. 이러한 수필시학 연구의 부재현상은 수필 연구와 수필 이론의 후진성으로 나타나는데, 설상가상으로 서구의 이론에 의존함으로써 전통적 뿌리를 외면하거나 방치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우리의 고대와 중세의 수필문학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없이 서구 이론에 의존한 것은 한국 수필문학의 발전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시학의 탐구는 장르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기초가 된다는 점 외에도, 작가들에게는 작품 속에 전통과 정체성(DNA)을 함유시키는 미학 원리가 된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이런 수필시학이 우리 현대문학사에서 깊이 있게 탐구되지 않은 것은 불행한 일이다. 수필시학의 연구 부재는 체계적인 수필미학의 부재를 뜻하고, 수필미학의 부재는 수필에 대한 이론적 탐구가 미흡함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앞으로 수필계의 과제로 부각되어야 한다. 역량 있는 이론가나 비평가를 양성하여 수필시학을 탐구하는 일은 수필문학의 미래를 견고하게 준비하는 길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와 의의를 지닌다.

6)전통의 계승과 계발

T. S. 엘리엇은 “전통과 개인의 재능”에서 전통은 역사의식을 내포한다고 역설한다. 그에 따르면, 역사의식은 과거의 과거성에 대한 인식일 뿐만 아니라, 과거의 현재성에 대한 인식도 포함한다. 이것은 자기 세대와 자국문학 전체를 골수에 간직하면서 작품을 쓰게 강요하는 힘이다. 이것은 일시적인 것에 대한 의식인 동시에 영속적인 것에 대한 의식이며, 또한 일시적인 것과 영속적인 것을 일시에 의식하는 것으로서 작가를 전통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작가로 하여금 자기의 현대성을 가장 예민하게 의식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전통과 역사의식은 자신의 정체성에 바탕을 두고 미래의 비전을 꿈꾸게 하는 문화 창조의 에너지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 수필문학의 전통에 대한 논의는 때늦은 감이 있다. 한국의 고전 수필 속에서 발견되는 탁월한 전통적 요소로는 풍류(風流)의 미학이 있다. 이것은 한국 고전수필의 작가층을 이루었던 선비들이 한결같이 품고 있었던 예술정신의 원형으로서, 현대의 수필가들이 사명감을 갖고 계승해야 할 소중한 유산이다. 신은경에 의하면, 풍류는 한 마디로 “예술적으로 노는 것”을 의미하는데, 놀이적 요소와 미적 요소, 자연친화적 요소, 자유로움의 추구 등을 본질로 갖는다. 수필가들은 한국인의 삶 속에 잠재되어 있는 이러한 미적 전통을 작품으로 계승해야 할 사명이 주어져 있다고 본다.

4. 수필의 공시적 기능과 사명

여기서 공시적 기능이란 수필이 당대인들을 위해 어떤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세기 초라는 특수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수필이 어떻게 기능하고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미적 당위성과 기대감을 함께 제시하게 될 것이다.

반전통과 탈장르의 시대에 수필은 자신과 독자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필자는 주로 거울과 등불, 위안과 치료, 대화와 수행, 일상성과 정체성 대결, 철학성과 영성 함양, 장르 혼용과 실험, 매체와 시대정신의 탐구, 작가양성과 등단제도 등을 제기한다.

1)거울과 등불

세기 말과 세기 초는 대개 불안과 혼란의 시대를 연출한다. 21세기 초 역시 20세기 후반부터 지속되어온 포스트모더니즘이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으면서 전 세기를 이끌어온 가치관과 철학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플라톤과 아리스트텔레스 이후 2,500년 동안 지속 되어온 서구의 합리주의 전통은 거부되거나 해체되면서 새로운 세계관이 자리 잡고 있다. 전통적 가치관과 철학, 윤리의식이 해체되는 혼란기에 문학과 예술은 어떤 기능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가? 우선, 거울(mirror)과 등불(lamp)로서의 역할이다. 흔들리고 있는 자아와 사회를 반추해보는 거울로서의 기능과 어둠을 밝혀주는 등불처럼 독자들에게 꿈과 비전을 심어주는 역할로는 수필이 제격이다. 수필은 본성적으로 자기 체험을 진솔하게 들려주고 바람직한 인생을 꿈꾸게 해준다는 점에서 여타 장르에 앞선다. 또한 수필 쓰기는 작가의 본성을 찾아가는 행위인 동시에 바람직한 삶의 진실을 찾아가는 자기수행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수필은 평이한 문장과 내용으로 만인을 독자로 확보하고 있는 가장 대중 친화적인 문학이란 점에서도 거울과 등불로서의 공리적 기능을 수행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그러나 수필이 독자들에게 시대의 거울과 등불이 되기 위해서는 역사와 시대에 대한 작가의 건전한 비판의식과 삶에 대한 균형 잡힌 철학과 예지가 필요하다. 또 그러한 기능을 작품의 문학성 속에 무루하게 녹여서 예술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점에서 작가들의 탁월한 능력이 요구된다. 자칫, 문학성이 미흡할 경우, 미적 울림이 적은 교훈적인 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위안과 치료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문학이 주는 심미적 기능에는 카타르시스 효과가 있다. 이는 비극이 연민과 공포의 감정을 불러일으켜 감정의 정화(淨化)에 이르게 한다는『시학』6장에 근거한다. 이러한 카타르시스의 논리에서 볼 때, 수필은 피로하고 지친 현대인의 감정과 영혼을 위로하고 정화시켜 주는데 가장 효율적인 장르이다. 그것은 수필이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작가의 체험에서 나온 사실담으로서 강한 공감력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수필은 시와 소설처럼 구조가 난해하지도 않고 감정이입이 수월하여 짧은 시간에 공감 유발이 가능하다. 달리는 출근버스 속에서, 혹은 커피 한잔의 짧은 휴식 시간에도 눈시울을 적실 수 있는 것이 수필의 속성이다. 게다가, 수필은 접근하기 쉬운 친근성과 가독성, 그리고 강력한 카타르시스의 유발력 등으로 인하여 문학치료의 텍스트로도 활용할 수 있다. 문학치료(literatherapy, Bibliotherapy)는 독서와 쓰기 활동을 통해 수행하는데, 주로 감정의 배출과 감정 이입에 의해 달성되는 심미적 효과를 이용한다.

그러므로 문학적 글쓰기와 독서는 그 자체로서 심리적 위기 극복을 위한 삶의 처방전이 될 수 있다. 작가는 자기 성찰의 기회를 통해 치료효과를 획득하고, 독자는 대리만족을 통해 치료효과를 거두게 한다. 이러한 수필의 문학치료적 효과는 특유의 대중 친화적 성격 과 순진무구한 진실 고백의 속성으로부터 나온다. 따라서 수필은 앞으로 쓰기와 읽기의 두 측면에서 문학치료의 방법과 텍스트로 유용하게 쓰이게 될 것이다.

3)대화와 수행

문학작품은 작가와 독자 사이에서 심미적 대화와 소통을 목적으로 창조되는 담론이다. 인간은 작품을 쓰고 읽으면서 스스로 자신의 의식과 잠재의식 속에 내재한 풍부한 인성과 배경지식 등을 총 동원하여 대화에 참여한다. 이러한 내적 요소들은 양자 모두에게 유기적으로 반추되면서 심미적 교정 과정을 거치게 한다. 글쓰기와 독서가 작가와 독자의 인격도야를 위한 자기 수행의 한 방법이 될 수 있는 것은 이런 심리적 기능 때문이다.

작가와 독자는 자신의 전 지성과 감성, 그리고 상상력 등을 총 동원하여 텍스트와의 총체적 대화를 시도한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감정이입이나 대리보상 등과 같은 역동적인 심미 작용과 총체적인 독서과정을 경험하면서 카타르시스의 정화 과정을 거치게 된다. 따라서 작가와 독자는 글을 쓰면서, 혹은 독서를 하면서 자신의 사상과 감정, 지식, 상상력, 인생관, 세계관 등에 보이지 않는 변화를 경험하면서 인간성을 다스리고 조절하게 된다.

문학작품은 타 작가들의 글쓰기에도 상호 텍스트적 영향을 준다. 모더니스트들은 작품창작이 작가의 창조능력에 전적으로 의존한다고 보았으나,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상호 텍스트적 대화의 결과로서 얻은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결합하고 조합한 것으로 이해한다.

수필은 여타의 문학 장르보다도 대화성과 자기 수행(修行)적 기능이 강한 특성을 지닌다. 수필은 자기 고백의 형식이라는 점에서 작가와의 대화성이 강하고, 독자에게는 대리보상적 공감작용을 잘 일으키는 대화적 속성을 지닌다. 그리고 수필은 비허구적인 진솔한 삶의 이야기로서 부담 없이 읽히면서 공감적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평이한 텍스트란 점에서 독자 대중을 위한 수신서(修身書)로서 효용성이 크다.

현대처럼 지나친 물질주의와 개인적 이기주의로 인해 상처 받은 대중들에게 수필이 순정한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함으로써 몸과 마음을 교정하게 하는 자기수행적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4)일상성과 정체성의 대결

현대인은 정체성을 상실하기 쉬운 시대에 살고 있다. 반복적으로 전개되는 일상의 타성에 흡수되어 개인의 주체성과 정체성을 유지하며 살기가 힘든 상황에 놓여있다.

노벨상 작가인 오에 겐자부로의 지적처럼, 매스미디어의 폭력이 난무하고 지배하는 세상이 바로 우리의 일상 공간이다. 따라서 현대인들은 끊임없이 자아를 ‘낯설게 하기’를 통해서 잃어버린 주체성과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일상성은 자아와 주체성을 잃어버리고 타성에 젖게 하여 평균인(das Mann)의 상태로 살아가도록 인간의 감각을 마비시키고 영혼까지도 오염시킨다. 뿐만 아니라, 일상성은 대상의 본질을 숨기거나 은폐시킴으로써 진실로부터 자꾸 멀어지게 유도한다.

그러므로 깨어있는 자는 항상 일상에 속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서, 잃어버린 자아와 정체성을 찾아 나서기 마련이다. 정체성(identity)이란 한 개인이 주체성을 갖고 자신의 본성을 일관되고, 연속적으로, 동일하게 유지하며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수필은 이러한 일상성의 함정과 효율적으로 대결하며 살아가게 하는 장르이다. 작가에게는 끊임없이 진솔한 삶의 고백을 통한 정화와 조정의 여과과정을 제공하고, 독자에게는 순수한 감정이입을 통한 대리보상의 체험 과정을 제공함으로써 일상성 속에 묻혀있는 정체성을 발견하도록 도와준다. 이 시대는 바로 수필의 그런 구원의 기능을 필요로 한다.

5)철학성과 영성 함양

한국 수필계에 끊임없이 제기되는 과제의 하나는 철학성의 빈곤과 심미적 가벼움이다. 수필이 철학성을 함유하지 못하면 자칫 신변잡기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수필가가 체험에서 건져 올린 철학은 삶의 진실에 대한 깊은 안목이나 깊은 사유의 바다에서 채취한 인간과 인생에 대한 소소한 깨달음 정도면 족하다.

작품에 철학성이 없으면 문학성도 빈곤하기 마련이다. 철학성 속에서 문학성이 나오고, 문학성 속에서 철학성이 나온다는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소재에 대한 깊은 성찰과 체계적 인식의 힘에서 나오는 것이 철학성이라면, 그러한 성찰 과정이나 인식 방법을 예술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문학성이다. 이러한 과제는 제재와 인간과 우주를 유기적으로 사유하는 본질 인식의 훈련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 소재를 육안, 뇌안, 심안, 영안 등을 동원하여 입체적으로 바라보고 사유하는 총체적인 대화의 길이야말로 소재로부터 철학적 깨달음을 건져 올리는 첩경이다.

그러나 인간은 대상 인식의 유일한 매체인 언어를 가지고 있음에도 대상에 대한 완벽한 인식과 완벽한 표현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영성(靈性) 훈련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영성(spirituality)이란 작가가 대상의 본질과 교통할 수 있는 영적인 힘을 가리키는데, 그것은 작가 나름의 고도한 정신 수행을 통해서 터득될 수 있는 본질 인식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길 위에 한국수필의 질적 발전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 숨어있다.

6)장르 혼용과 실험

세기 말과 세기 초에 가장 두드러진 문학적 경향의 하나는 장르 혼용과 장르 실험이다.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적 경향은 긍정과 우려의 양면성을 갖게 한다. 그것은 수필 형식의 자유로움을 탐하는 시나 소설의 작가들이 수필 형식을 빌려 혼용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목적은 수필로의 귀화가 아니라, 타 장르와의 혼용 실험이나 장르 확산에 있다.

모더니즘 시대에는 장르적 특성의 집중화와 총체화를 통한 장르간 거리두기를 즐겼으나,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는 장르의 해체와 분산화를 위한 탈 장르적 실험이 유행하고 있다. 이성에 기반을 둔 모더니즘적 사고는 감성 중심의 포스트모더니즘에 의해 해체되고 있다. 문제는 자칫, 수필이 흥미성과 서사성이 강한 소설과 함축성과 서정성이 강한 시에게 장르의 영토를 내주는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이다. 넓은 의미로는 문학 장르간의 발전이나 진화의 한 조짐으로도 이해할 수 있으나, 그 과정에서 세가 약한 수필이 장르적 기초를 잃을 수도 있다는 걱정이 앞선다.

수필 장르의 무형식성은 포스트모더니즘의 핵심개념인 다양성과 불확정성, 미완결성, 혹은 비종결성 등의 개념과 상통한다. 그러나 수필가들은 정작, 수필의 본성 속에 형식의 자유로움과 실험성 등을 함유하고 있음에도 장르 발전을 위한 실험에는 보수적 태도를 취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수필가들은 기로에 서있다. 타 장르의 작가들이 탈장르의 분위기에 따라, 수필과의 장르 혼용을 시도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장르를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한 전략이 무엇인가를 숙고해야 할 처지에 와있다.

7)매체와 시대정신 탐구

시대정신을 포착하는 것은 작가의 사명이다. 달라진 시대환경은 달라진 생활방식을 요구하고, 생활방식이 바뀌면 대중들의 예술적 취향도 바뀌기 마련이다. 문학은 본질적으로 시대정신의 반영물이이서 그것을 반영하지 못하는 예술은 시대에 뒤처지거나 대중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사태를 자초하게 된다.

현대는 철학적으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이며, 매체적으로는 초고속 전자영상매체의 시대, 환경적으로는 생태주의 시대, 일상적으로는 유비쿼터스의 시대,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창의성과 개성 존중의 시대이다. 특히, 인터넷은 정착문화 시대의 인쇄매체를 노마드(nomad, 유목) 시대의 전자매체로 이행시키는 촉매가 되고 있다.

이런 격변의 시대에 수필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 스스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런 역동적인 변화를 작품에 수용하면서, 그 변화를 이끄는 매체와 시대정신과의 상관관계를 적극적으로 탐구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이런 시대에 과연 수필가의 역할과 임무는 무엇일까. 시대정신을 깊이 있게 반영하여 공감의 영역을 넓히고, 사이버 매체를 적극 활용하는 창작 메커니즘의 변화를 인정하고 적극 수용해야 한다. 그리고 수필의 정체성과 시대정신과의 조화로운 만남을 주선해야 한다.

8)등단제도와 작가 양성교육

한국 현대 수필계가 안고 있는 병적 징후의 한 가지는 등단제도에서 발견된다. 역량 있는 작가를 발굴하는데 목적이 있음에도, 함량미달의 신인들을 적당주의와 친분관계, 혹은 잡지사의 상업적 목적에 맞춰 추천하는 풍토 속에서 수필문단에 대한 불신과 질적 저하 현상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제, 등단제도에 대한 개선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실정이다. 우선, 단회 추천제를 2회나 3회 추천제로 바꾸는 것을 권하고 싶다. 심사위원의 구성방식도 공정성과 객관성을 위해 작가, 비평가, 학자 등이 참여하는 4-5인 이상으로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신춘문예나 작품집 공모제를 활용하는 방식도 바람직한 처방일 수 있으나, 몇 가지 점을 보완하여야 할 것이다. 신춘문예는 3편 이내의 작품을 가지고는 응모자의 능력을 검증할 수 없으므로 필력을 검증할 수 있는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

등단이란 전문작가로서의 능력을 인증하는 등용문의 최종 절차라는 점에서 언어와 문장, 수필에 대한 기본 교양과 전문 지식, 작가의식, 작품의 질적 수준 등을 종합적으로 점검하는 노력이 요청된다. 이런 요구들이 받아들여 질 때 요즘처럼, 아무나 수필가가 된다는 식의 비난과 비판은 사라질 것이다. 아울러, 제도권 교육이나 권위를 인정할 수 있는 사회교육기관 등을 중심으로 작가 양성교육의 기회를 넓혀나가는 노력도 필요하다.

5. 닫는 말

이제, 이 글을 마무리 하면서 수필과 시대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본다. 수필이 영원히 발전하는 장르로서 살아남기 위해서, 그리고 격변기의 인간과 사회를 이끄는 감동적인 등불과 거울이 되기 위해서 우리가 수필을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여기에는 작가 개인적 차원의 임무도 있고 집단이나 공동체 차원의 사명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우선돼야 할 것은 작가 개개인의 차원에 부여된 사명이다. 작가는 수필의 전통과 정체성을 골수에 간직하면서 수준 높은 작품생산에 장인정신을 걸어야 한다. 그리고 비평가는 객관적이고 엄정한 평가를 통해서 작가의 창작 욕구를 드높이고, 이론가는 비평가가 활용할 수 있는 연구방법과 비평방법을 꾸준히 개발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제도적 차원에서의 사명의 수행도 필요하다. 이런 노력들이 유기적이고 상보적인 협조관계를 구축할 때 바람직한 수필의 시대가 열릴 것으로 확신한다.

끝으로, 모더니즘적 근대의 잠에 빠져 아직도, 격변기의 발자국 소리에 무심한 한국 현대 수필계의 자각과 도약을 기대한다. 그리고 한국 수필이 건강하게 성장하기를 기원한다.

<필자 약력>
안성수
*제주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문학평론가(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제주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교실 지도교수.
*『현대수필』에 “수필 오디세이”를 장기 연재중에 있음.
*“작가의 영성과 수필미학”, “낯설게 하기와 수필미학”, “수필의 정체성과 실험정신”,
“자연의 형식과 수필의 형식”, “수필의 구성미학” 등의 논문과 평론이 다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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