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비 내리던 날

2010.09.17 09:37

강성재 조회 수:764 추천:171

어머니가 남겨둔 한 아름의 가계부를 태웠다
고단한 한세월이 매욱한 연기로 피어 올랐다
눈이 쓰려 나는 눈물인지 슬퍼서 나는 눈물인지 앞이 흐리다
깨알같은 숫자들 안에 빈 곳간을 채우며
새끼들을 보듬어 사셨던 당신의 큰 어깨가
더러는 한줌 재가 되어 세상에 흩어지고
더러는 연기가되어 당신을 따라 하늘을 가고 있다
여우비 오락가락하는 뒷뜰,
당신이 손수 심고 가꾸셨던 고염나무 아래서
당신이 평생 일구어온 귀한 곳간이 타 들어가고 있다
눈물로 만든 당신의 귀한 집을 하늘로 날려 보내며
나는 젖은 목소리로 웅얼 거렸다
가계부 없이도 풍성한 그곳, 당신의 새 집에서
평안 하시라
여우비는 웬종일 오락가락 당신의 빈집을 맴돌았다


시작 노트:어머니 타계 하신지 일년입니다.먼 길 떠나시는 어머니
         배웅도하지 못한 죄가 가슴에 한이되어 어머닐  가슴에 품고 살았습니다.
문득 앉은뱅이 책상에 앉아 가계부를쓰시며
         하루를 마감 하시던 어머니를 생각 했습니다
         이제 내 가슴 속에서 어머니의 가계부를 태우며 어머니를
         보내 드립니다. 가계부 없이도 평안하신 그 곳으로.
   2010년 5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60 막국수가 먹고 싶은 날 [3] 강성재 2014.07.21 455
259 아내의 기도 제목 강성재 2013.10.16 8047
258 막걸리가 마시고 싶다 [2] 강성재 2012.10.11 792
257 콜럼비아강에 흐르는 한강의 숨결 강성재 2011.11.09 660
256 님이시여 이제 영원히 평안 하소서 [1] 강성재 2011.06.22 985
255 빈집 5 강성재 2011.03.09 929
254 바람소리에 강성재 2011.02.18 904
253 봄, 또 이렇게 강성재 2011.02.18 765
252 비망록 2010 [2] 강성재 2010.11.14 934
251 산 꼭대기 옥탑 방 강성재 2010.11.13 824
250 칼슨(Carson)의 겨울 강성재 2010.11.13 792
249 빈집 4 강성재 2010.10.10 739
248 빈집 3 강성재 2010.10.10 718
247 수령 500년 고사목 [1] 강성재 2010.09.23 722
246 가을 바다 강성재 2010.09.19 722
245 가을날 강성재 2010.09.18 720
» 여우비 내리던 날 [1] 강성재 2010.09.17 764
243 빈 집 2 강성재 2010.09.17 694
242 가을문이 열리다 강성재 2010.08.25 713
241 바람이나 불지 말든지 강성재 2010.08.21 712

회원:
0
새 글:
0
등록일:
2015.08.05

오늘:
2
어제:
22
전체:
51,4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