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간에서
이월란 (2016-7)
길이 끊어진 자리에 자라난 소멸의 문
디딜 수 없는 깊이가 왠지 환하다
팽팽한 절벽 앞에서 잡는 곳마다 손이 되고
닫아도 열어도, 아무도 전율하지 않는다
장애를 쉬이 뛰어넘은 넋은 어느새 두 날개가 돋고
놓을 수 없는 이들을 향해 짧은 손을 흔든다
땅과 바다의 경계처럼 지워졌다 다시 그려지는 구조물
나무를 닮아 뿌리가 깊다
베란다의 덩굴은 알피니스트처럼 타고 올라
쇠붙이마저 끌어안으며 붙어살고 있는데
밤을 보내는 자리마다 그 날의 정상이었으리라
누군가 떨어진 자리에
보수되지 못하고 방치된 꿈이 달려 있다
해 아래 체온처럼 따뜻해진 시간을 꼭 쥐어본다
꼭 아기 손목만한 굵기를 따라 몇 걸음 떼어본다
삶의 외곽은 늘 단단하다
경사 깊은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꽉 붙들었던 꿈은
내려가서 보면 언제나 내려다보고 있었다
화려한 장식을 달수록 속절없이 장엄해지는 높이
삶의 중력은 한 뼘 너머에서 어김없이 작동할 것이다
어디에고 매달리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어제도 이 자리에 있었다
백지 위의 선 같은 기둥에 잠시 기대어 보면
가장자리를 벗어나는 무늬가 있다
다시 호명되는 꿈이 있다
신발 한 짝을 흔들어보다 아차, 떨어뜨리고 말았다
절뚝거리며 집으로 돌아가야 할까
맨발이 낫겠다, 뿌리 뽑힌 난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