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날의 악보
이월란 (2019-9)
첫 음을 누를 이는 늘 멀리서 온다
오선지에 걸치지 않은
지하 혹은 하늘로부터 온다
연주가 끝나기 전 서둘러 떠나간 이들
그림자 없는 날 거대한 그림자가 되어 온다
구름의 행보로
아다지오 아다지오
쓸쓸함의 음역을 넘어 슬픔의 음계는 늘
한 옥타브 위의 흐림
기울어진 음표마다 물기가 차오르고
빗방울 소름처럼 떨어질 때면
얼굴이 비치는 창을 닫는다
그리운 것은 늘 여백의 몫이었다
살풍경한 침묵의 역할이었다
결코 머물지 않는
구름이 낮은음자리표로 내려앉으면
눈 속의 새가 빛을 모아 날아가고
눈이 부시지 않는
저음의 응시만이 흐른다
누군가 소장하고 있을 기다림이
이윽고 눈이 부실 차례
우리가 떠나온 곳은 어쩌면 어둠이었다
빛이 사라진 곳에서
이토록 선명해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