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임신 4
이월란 (2019-1)
멋모르고 낳은 아이가 멋모르고 아이를 낳을 때쯤
아이 하나 더 배고 싶다
말이 씨가 되었나 교활한 난자 하나 아직 살아있었다
품에 안고 잔 것들이 한 뼘씩 내려와 배를 맞춘다
한 번도 내 손을 타지 않은 자궁이 나를 엄마라고 불렀다
흘려보낸 핏덩이를 헤아리다
타락하지 않은 수컷으로 동그랗게 부푼 꿈이 착상하는 소리
퍽 하고 터지던 양수에 철퍼덕 엎어지던 아이들은 죽고
착한 노예 같은 아기가 초음파로 논다
2만 헤르츠의 진동이 느린 호르몬을 먹고 팽팽해진다
눈뜬 아침이 입덧을 하면
장난감 모빌 사이로 바람이 먼저 태어나고
예정일에 눈 맞출 때마다 이목구비 달리듯 체중이 늘었다
만삭의 기억마다 다시 차려지는 분만실
철지난 태동의 끝에서
탯줄로 배불리는 얼굴 없는 아기가 한 번씩 배를 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