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격자
이월란(09/09/16)
아침 출근길
I-15 프리웨이 입구, 왕복 사차선의 원형교차로는 잠에서 깬지 오래였다
선두에서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비보호로 착각했는지, 급했는지 갑자기 옆 차선의 차가 둥근 질주를 시작했고
사각지대에서 직진해 오던 차와 순식간에 충돌했다
3초간, 목전의 필름 속에서 박살이 난 두 대의 차량
보닛은 반대기처럼 구겨지고 엔진은 설익은 만두소처럼 터져 나왔다
오차 없는 신홋불의 점멸을 기다리던 생의 로터리는
공소시효가 지난, 시제 없는 기억 속의 도로 같다
신호등 없는 마음의 거리는 무법천지다
밟아도 밟혀도 따질 수 없는 무성영화의 경적이 울리고 있다
마음이 꺾이는 환상교차로는 사방이 비보호다
몰몬 선교사처럼 하얀 셔츠를 입은 남자가 외상 하나 없이 차에서 내린다
붉은 얼룩을 기억색처럼 떠올리는 관중들에게 셔츠가 눈처럼 부시다
초록 신호가 동서남북으로 하루해처럼 한 바퀴를 혼자 돌고
남자는 천사처럼 생명의 복음을 들고 갓길로 쳐 박힌 충돌차량으로 걸어가고 있다
거리에서 픽업당한 조문객을 자가당착에 빠진 눈들이 주시하고 있다
핸들을 놓을 수 없는 사람들은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다
목숨이 꺾이는 사거리마다 제 시간에 닿고 제 시간에 떠나야 하는 생의 출퇴근 시간
나는 타인으로 규정되어 충돌의 잔해로 버석거리는 도로를
폐타이어 같은 네 발로 유유히 빠져 나간다
아무도 내게 증언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소 원시적이고 다소 비과학적인 공존의 법칙
완벽한 충돌의 장면은 항간에서 실수 없이 편집될 것이다
완전범죄와 미결사건으로 매끈히 다져진 교차로마다
나는 여전히 판결을 기다리는 미결수
예고편 없이 순간적으로 편집되고 마는 무작한 불특정다수의 돌발영상이었다
험로는 교묘히 은폐되어 있다 영혼의 직장으로 가던 사람들
3교대 밤일을 마치고 국적 없는 주소의 집으로 가던 사람들
오늘과 내일, 예측불허의 최종 경계선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경찰과 구급차량들이 후렴곡조 같은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오고 있겠다
사금파리처럼 반짝이는 파편들을 분리수거하는 아침햇살이
신호등 대신 후사경 속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이월란(09/09/16)
아침 출근길
I-15 프리웨이 입구, 왕복 사차선의 원형교차로는 잠에서 깬지 오래였다
선두에서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비보호로 착각했는지, 급했는지 갑자기 옆 차선의 차가 둥근 질주를 시작했고
사각지대에서 직진해 오던 차와 순식간에 충돌했다
3초간, 목전의 필름 속에서 박살이 난 두 대의 차량
보닛은 반대기처럼 구겨지고 엔진은 설익은 만두소처럼 터져 나왔다
오차 없는 신홋불의 점멸을 기다리던 생의 로터리는
공소시효가 지난, 시제 없는 기억 속의 도로 같다
신호등 없는 마음의 거리는 무법천지다
밟아도 밟혀도 따질 수 없는 무성영화의 경적이 울리고 있다
마음이 꺾이는 환상교차로는 사방이 비보호다
몰몬 선교사처럼 하얀 셔츠를 입은 남자가 외상 하나 없이 차에서 내린다
붉은 얼룩을 기억색처럼 떠올리는 관중들에게 셔츠가 눈처럼 부시다
초록 신호가 동서남북으로 하루해처럼 한 바퀴를 혼자 돌고
남자는 천사처럼 생명의 복음을 들고 갓길로 쳐 박힌 충돌차량으로 걸어가고 있다
거리에서 픽업당한 조문객을 자가당착에 빠진 눈들이 주시하고 있다
핸들을 놓을 수 없는 사람들은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다
목숨이 꺾이는 사거리마다 제 시간에 닿고 제 시간에 떠나야 하는 생의 출퇴근 시간
나는 타인으로 규정되어 충돌의 잔해로 버석거리는 도로를
폐타이어 같은 네 발로 유유히 빠져 나간다
아무도 내게 증언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소 원시적이고 다소 비과학적인 공존의 법칙
완벽한 충돌의 장면은 항간에서 실수 없이 편집될 것이다
완전범죄와 미결사건으로 매끈히 다져진 교차로마다
나는 여전히 판결을 기다리는 미결수
예고편 없이 순간적으로 편집되고 마는 무작한 불특정다수의 돌발영상이었다
험로는 교묘히 은폐되어 있다 영혼의 직장으로 가던 사람들
3교대 밤일을 마치고 국적 없는 주소의 집으로 가던 사람들
오늘과 내일, 예측불허의 최종 경계선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경찰과 구급차량들이 후렴곡조 같은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오고 있겠다
사금파리처럼 반짝이는 파편들을 분리수거하는 아침햇살이
신호등 대신 후사경 속에서 반짝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