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의 눈동자
이월란(09/09/19)
철가방같은 용역루에 시급 4천원짜리 인간들이 갇혀 있다
그들은 인간과 기계의 중간 화석인 비정규직이다
아프면 굶어야 하는 포유류와 파충류의 중간쯤이겠다
숨소리는 전동 드라이버의 진동소리로 진화 중이다
영원히 보름달로 채워지지 못할 반월공단 컨베이어 벨트에선
인간의 몸뚱이를 녹여 만든 난로와 비데와 냉장고가 줄지어 탄생하고 있다
앞줄이 뭉텅뭉텅 잘리고 내가 배달된 곳은 석유난로가 조립되는
라인 55R, 로봇의 뇌파같은 종이 울리고 무한궤도의 라인이 돈다
내가 탄 급류는 열 두 시간 잔업까지 노 브레이크
해가 중천에 뜰 때쯤 머리가 없어지고 잔업으로 해가 질 때쯤
두 개의 눈동자 아래 가슴도 해를 따라 없어진다
서서 일하는 저주받은 자와 앉아서 일하는 복된 자 사이
악력으로 키운 심지마다 아슴거리며 목숨같은 불꽃이 피었다 진다
스멀스멀 고통을 느끼는 일조차 기계적이다
하룻새 양손에 물집이 잡히고 라인에 엎드린 착한 식민이 되었다
소리없이 증발했다 부속품처럼 갈아끼워지는 반자동의 인간들
울력의 얼굴은 매일 바뀐다 사지도 바뀐다
화장실마다 담배꽁초나 휴지처럼 수북이 버려지는 소속감
텅 비지 않으면 벨트 위로 내동댕이치질 것이다
운명도 캐터필러의 라인 위에서 다시 조립되고 싶었던
불량제품 재작업으로 하얗게 새운 어느날 밤의 그 야간 작업처럼
생활이 아닌 생존을 향한 침묵의 노동은 그래, 신성하다
신성하다 못해 인간미 하나 없이 거룩하다
막장노동판에서도 낙찰되지 못하는 불안한 열패감
마모되지 않는 공구들 앞에서 열손가락 지문이 닳는 동질감으로
인사조차 미소조차 시급으로 계산되지 않는 사치품목이다
집으로 가는 별뜬 어둠 속에서 백치처럼 자꾸만 웃음이 난다
최저생계비를 손에 쥐어준 오늘의 공정은 끝났다
파스 냄새가 가을처럼 얼룩지는 체취 속에서 밤새 자동이식되는 가슴
인조인간의 두 눈은 감길 뿐, 젖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