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찌
이월란(10/02/10)
아들이 만든 팔찌를 차고 다닌다
알록달록 유치하기 짝이 없는 색구슬 사이에
은빛 육면체에 새겨진 글씨까지
A, S, I, A, 한국말 한 마디 하지 않는 놈이 애국지사 났구나
싶었더니 곰곰 생각해보니 걸 프렌드 이름이었다
공부 잘 한다고 자랑할 만한 아들도 아니다
착하다고 칭찬할 만한 아들도 아니다
이제서야 그런 아들놈의 걸 프렌드라도 되고 싶어진다
가끔씩 맡아지는 마리화나 냄새도 이젠, 차라리 향기롭다
다 엄마 때문이야, 라고 소리치던 절규가
여태껏 얼어 있던 가슴이 이제서야 녹고 있다
엄마 차고 다닌다? 물었더니 엄마한테 어울리지 않잖아 한다
우리가 태어난 이 세상은 어디 우리에게 어울리는 세상이더냐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이 현실은
어디 너와 나의 꿈에 어울리는 현실이더냐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어디 어울리는 에미와 자식이더냐
이제서야 너의 방황을 눈물 없이, 웃으며 지켜봐 줄 수 있게 되었다니
핸들 아래 반짝이는 팔찌를
아들의 날카로운 가슴처럼 만지작거리는데
달려오는 길들이 뒤섞여 파도처럼 출렁인다
내 손목에 이처럼 잘 어울리는 팔찌가 또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