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
이월란(2011-10)
주연의 옆을 지나가기만 한다
잠시 앉아서도, 쳐다보아서도 안 된다
얼굴을 다 보여주어서도 안 되며, 아주 자연스럽게
그저 움직이는 배경이 되어야만 한다
출생이나 역사적인 배경처럼
훗날까지 휘둘릴 수 있는 그림이 아니어야 한다
시간적이거나 공간적인 배경처럼
필연적인 조건이 아니어야 한다
나무 뒤의 배경이 노을이어야 한다면
얼굴 한 번 붉히면 그만이었고
집 뒤의 배경이 푸른 강물이어야 한다면
파랗게 질린 가슴으로 흘러주면 그만이었다
맡겨진 역할은 극의 전개에 결코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표정 없는 건물들처럼, 흔들리다 지는 들꽃처럼
입장하는 순간도 퇴장하는 순간도 결코 편집되지 않는다
그러다
주연도, 출연진도 모두 머리 숙이는 순간이 있었다
정면으로 확대된 얼굴이 클로즈업 되는 순간이 있었다
모르는 세상의 모든 시선들마저 고정되던 순간
대사 한 줄 없이 오래 오래 그를 비추었다
영정사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