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당포
이월란(2011-10)
급전처럼 삶의 이유가 필요할 때면
결코 오지 않을 것 같아도 잡히면 하찮았던
고급 시계 같은 미래를 저당 잡히러 간다
세월의 점포가 차려 놓은 도시의 간판들은
예물 같은 포즈로 능숙하게 서로를 전시하고 있다
자격 없이 수령되는 소액 대출은
연체된 이승의 빚을 갚기에 더없이 어울린다
서랍 속으로 감금되는 나의 값진 것들에게도
은행잔고처럼 이자가 붙어
채무자가 되어서야 열고 나오는 문밖에는
채권자로 군림하는 세상이 눈부시다
그렇게 빚지고서야 편해지는 세상
자격이 없을수록 명부에 쉬이 오르는 고객들은
화수분 같은 아침햇살 아래
금으로 만든 꽃을 꺾으러 다니는데
구멍 난 솔기 사이로 다 흘리고 오기 마련이어서
빈손으로 돌아오는 길은 마른 꽃처럼
바람에 날려서야 집이라는 곳에 닿았다
훔쳐 보관 중이던 꿈이라도 도로 맡기고 나올라치면
하루를 탕진해버린 노을만 얼굴을 붉혔다
나마저 저당 잡히러 가는 오래된 길 하나
사라졌던 전당포들이 남아도는 꿈들을 탐하며
등 뒤에서 하나 둘 개업 중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