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실
이월란(2011-12)
하늘에서 파견된 헬기 한 대가
알타 병원의 시트를 걷어내고 엘디에스 병원의 침상으로
그의 운명을 수송했다
고작 콩알만 한 담석 몇 개였지만
삶은 모니터 속 숫자들처럼 한계에 부딪힌
시술조건을 핑계로 수술대를 옮기기 마련이다
벗겨진 머리 아래 틀니마저 잇몸에 밀려나버린
벤자민 버튼* 같은 여든 살의 신생아
몰핀 주사바늘 같은 시침이 숫자를 갈아 채울 때마다
통증 아래 움켜쥐었다 놓아버린 시트 밑으로
앙상한 세월의 허벅지 사이로
평생의 기품을 지켜낸 비밀 같은 음모가 삐죽 드러나 보였다
고무줄 두 개로 부착된 산소 호흡기는
목숨을 구걸하는 듯 플라스틱 장난감보다 더 조악하다
구음장애로 써놓은 메모지에는 목, 에, 가, 래
그의 숨통을 조여 온 것은 고작 목에 걸린 분비물
꽃은 무덤 속처럼 허락되지 않았고
플라스틱 튜브들만 UFO 조종실처럼 얽혀 있다
통증이 아편의 수치를 넘어설 때마다 파자마 같은 간호복을 입은
저 육중한 미국여자를 하나님처럼 불러댈 것이다
이승의 병실이 밤새 별과의 교신을 시도하는 동안
누군가 강 너머로 옮겨 놓을 것만 같은 혼미한 육신의 발작
사슬처럼 삽입되었던 고무관들이 하나씩 제거되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돌아가거나 하늘로 날아오르는 작은 새들
아직은 강을 건널 수 없다는 붉은 신호등이 켜지면
더러는 구름을 만졌다고도, 하늘 위의 하늘까지 닿았다고도
하는 하늘과 가장 가까운 이곳에서
푸른 정맥이 다시 솟은 손으로 휠체어를 굴리고
집이라는 일반병실로 들어갈 것이다
어느 날엔가는 이곳을 거치지 않고 바로 하늘로 날아오르기를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다면 덤으로 받을 세월이 꼭 기다리고 있기를
달려오는 앰뷸런스 사이렌 소리에 파다닥, 날개를 다시 일으킨
새 한 마리, 둥지가 멀지 않다
*벤자민 버튼: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단편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주인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