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B 길와 4가에 있는 샌디에고 시빅극장(San Diego Civic Theater)으로 오페라 라보엠(La Boheme)을 보러 가는 기분 좋은 날이다. 지난해 4월 오페라 돈키호테 공연이 재정난 문제를 놓고 악전고투하기보다는 명예롭게 문을 내리겠다는 이사회의 결정으로 마지막 무대라고 선언하여 그리알았다. 사실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었다. 지난 몇 년 사이에 70년 역사의 뉴욕시 오페라가 문을 닫았고 보스턴, 클리블랜드, 볼티모어, 샌안토니오 오페라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하마트면 남가주에는 LA 오페라 하나만 남게 될 뻔했었다.

SD 오페라는 LA 오페라보다 역사가 길고, 무엇보다도 미국에서 이름있는 든든하고 실력 있는 오페라로 세계적인 공연을 수없이 샌디에고에 유치해왔다. 그동안 극적(Great Moments)인 여러가지의 출연장면도 50년의 공연 역사에 기록되었다. 1966년 젊은이였던 플라싱고 도밍고는 구노의파우스트에서 주인공 테너가 갑자기 아파서 빠지는 바람에 대역 공연을 했는데, 혼자만 프랑스어로 노래했던 일화가 있다. 1980년에는 유명했던 세계 3대 가수인 파바로티가 푸치니의라보엠(La Boheme)’에서 노래했다. 1974 Lonigo에서 프로로 데뷰하고 알려진 이탈리언 가수 페루치오 플라네토(Ferruccio Furlanetto)는 수차례 샌디에고 오페라에 초청을 받았다. 또 종종 로스앤젤러스의 한인 오페라 동호인 이주헌 씨가 이끌던 보헤미안의 회원들이 버스를 전세하여 샌디에고 오페라 공연을 감상하고 돌아가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오늘 일요일은 미국의 스포츠 애호가들이 열광하는 수퍼볼 게임날이라 거리가 너무 조용하여 궁금했는데, 오페라를 공연하는 극장 안도 만석이어서 흥미로웠다. 역시 세상은 각 분야에서 지덕체(智德體)로 사람들의 취향을 따라서 이렇게 균형을 맞추며 아름답게 희망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해주었다.

 

샌디에고 오페라는 클래식 애호가들과 후원자 대다수가 연장자들이라 몇 년 동안 중요한 후원자들이 계속 작고하면서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다시 살아낸 2015년 샌디에고 오페라도 Carol Anne Lazier라는 분이 백만달러 이상을, 또 이름을 밝히지 않는 다섯분과 여러 기업체와 수십 명의 큰 손들이 구천에서 오만달러를 기증해 주어 50년의 긴 역사를 고맙게도 이어가도록 해냈다.

공연 날의 안내 책자 뒤에는 300달러 이상부터 돈을 후원하는 약 천 오백 명 쯤 되는 분들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아시아인의 이름이 드물게 보이고, 김씨성을 가진 한국 부부의 이름도 적혀있었다. 자신만 호의호식하지 않고 도시의 문화 수준을 차원 높게 올려줄 뿐만이 아니라 인류의 아름다운 음악 예술을 간직하며 나누고 싶어하는 분들이다. 오페라와 클래식 음악계는 갈수록 티켓 판매가 줄고 있어 재정의 많은 부분을 후원자들에게 의존해왔기에, 세계 음악계의 취향과 판도가 변하고 있다며 오페라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하는 걱정을 놓아도 되겠다.

옆 좌석에는 코에 산소통을 연결하고 있는 남자와 지팡이를 짚은 노부부가 앉아 있다. 또 몇 해전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홀로 온다는 할머니. 나의 우측으로는 백달러짜리 넘는 표를 사서 나를 초청해준 미국인 친구가 앉았다. 세 해 전까지는 돌아가신 그녀의 친정어머니가 앉았던 자리였다. 앞줄에는 젊은 연인과 초등학교에 다닌 아들과 아버지, 가족들이 함께 앉아 있다. 아이는 조금 지루하고 어려운 시간같아 보였지만 훗날 어른이 되어 돌아보면 오페라를 구경했던 어린시절 추억은 정서적으로 훌룽한 교육이 될 것이다.

오페라 라보엠의 결말은 가난한 집시 미미가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하고 죽어 갔기에, 내 친구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모든 미국 국민도 의료보험 오바마 케어가 절실히 필요하다며 강조했다. 그녀는 늘 약자의 편에 서는 훌륭한 백인 미국 시민이다.

이민와서 오페라를 즐기는 언니 덕분에 우리 가족도 첫 발을 극장에 디뎠지만. 영어 자막을 빨리 읽지 못해 답답했다. 이민 올 때 들고 온 오페라 책으로 예습하며 준비했지만, 쉬는 시간이면 사전을 펴서 단어를 찾으면서 보았다. 그러다 집안에 힘든 시간들이 덥쳐 오페라 감상도 중단되었다. 이제 영어 듣기도 조금 늘었으니 종종 오페라를 보러 오고싶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선과 악의 관계, 인심은 똑같기에 아름다운 고전 음악을 통하여 인생을 배우며 나 자신을 돌아보아야겠다.

 다행스럽게도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온에서 열리는 LA 오페라는 언제나 만석이어서 재정도 튼튼하단다. 샌디에고도 그렇게 로스앤젤러스 오페라와 나란히 남가주의 문화적 위상을 지켜주기를 기대해본다.

우리가 발명한 편리한 기계문명 속에 빠지다 보니 때론 나의 두뇌가 슬그머니 바보가 되어가는 것을 느낀다. 만약, 음악이나 문화예술이 없다면 이 세상은 빙빙 돌아버릴 것이다. 샌디에고 오페라도 금요일과 토요일 밤에는 관객이 젊다고 한다. 여러 사람의 창의적인 노력과 땀의 손길이 지나갔을거라고 추측했던 멋들어진 회전무대가 아직도 감동으로 잔잔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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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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