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삭바삭 김부각을 만들며

2018.11.13 12:53

최미자 조회 수:119

바삭바삭 김부각을 만들며

   언젠가 두 번째 응급실과 병실을 거쳐 퇴원하던 날 다시는 오지 않아야 할 곳이라며 다짐을 했건만, 또 나는 병원 신세를 졌다. 생소한 이상한 증세들과 높은 수치의 고혈압이 한밤중에 가족을 놀라게 했다. 그때마다 딸은 앰뷸런스 역할을 하며 나를 실어 나른다. 결근하면서 병실에서 밤을 지새우며 영어통역을 해주고 엄마를 지켰다. 다행히 여러 검사 결과가 좋아 나는 퇴원할 수 있었지만 귀는 여전히 울고 있다. 그래도 마음을 비우는 연습을 하며 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갑자기 병원에서 고생한 딸에게 무엇인가를 상으로 나는 선물해주고 싶었다. 냉장고 속의 묵은 김을 꺼냈다. 몇 해 전 함께 김부각을 만들자며 사두었던 김이었는데 여태 미루던 일이었다. 삶의 활력이 넘칠 때는 우리 집에 찾아오는 손님께 식사 대접하는 재미로 살았는데, 나는 점점 게으른 주부로 변해 간다.

예쁘고 맛있는 김부각을 만들려면 실고추가 있어야 하는데 미국에선 신선한 재료를 본적이 없다. 대신 고춧가루로 고명을 만드는데 이번에는 우리 가족이 먹을 것이니 찹쌀 풀에 간만 맞추고 간단히 김부각을 만든다. 간간이 창밖을 바라보며 홀로 플라스틱 채반에 놓으면서 풀을 부지런히 바르고 있노라니 무아지경이다. 

밖에서 일을 보고 돌아온 남편이 아직도 그걸 하느냐며 놀라 말을 걸었지만, 나는 오늘은 김부각을 만드는 날로 작정했다. 지금은 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스님 두 분이 마련한 밥상에서 부각을 처음 맛보았다. 문득, 다시마, 깻잎, 고추 부각이 푸짐하게 한 접시 놓여있던 무등산 아랫자락의 흥룡사 객실 정경이 뇌리를 스친다. 교사가 된 내가 어머니와 종종 시주하던 절이었다. 나물 반찬이랑 금방 튀겨서 나온 바삭바삭 고소한 맛을 난 잊을 수가 없다.

    1950년대 우린 너무나 배고프고 고생스러운 어린 시절이 있었다. 겨울이면 어쩌다 어머니는 햇김이 나왔다며 동그란 밥상에 김 한 장씩을 우리에게 배분해 주셨다. 지금은 별의별 고급 김들이 시장에 나와 있지만 당시는 값도 비싸고 귀한 김이었다. 이젠 여러 장 구워서 가위로 잘라 먹지만 당시엔 김 한 장을 아끼느라고 모퉁이부터 조금씩 뜯어 먹으며 참기름 양념 간장에 밥 한 그릇을 감사히 먹던 시절이다.

내가 창조한 요리법인 김부각은 튀기지 않는다. 오랜만에 만들다 보니 온도를 깜박하여 처음 것은 태웠다. 마른 김부각에 올리브 기름을 조금 바르고 오븐에 살짝 굽는다. 색깔이 붉게 변해 맛이 없는 묵은 김을 난 멋지게 요리했다. 직장에서 집에 온 딸이 놀라 좋아하며 몇 개를 먹을 수 있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동안 병원에서 고생했던 고마움의 선물로 만들었으니 마음껏 먹으라고 나는 답했다. 함박웃음으로 가족이 바삭바삭 소리를 내며 먹는 저녁이다.


-LA중앙일보 2018/11/06 에서 오피니언 '이아침에'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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