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디보'의 사중화음
2017.10.24 03:06
여름이면 샌디에고 심포니가 공연하는 바닷가 음악회가 있다는 정도만 알고 살아왔다. 먹고 살기에 분주한 우리의 이민생활이라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그런데 요즈음은 성인이 된 딸이 나서서 나이든 우리 부부를 챙긴다. 얼마 남지 않은 우리의 시간을 좀 문화적으로 멋지게 살잔다.
솔직히 몇 달 전, 딸이 비싼 티켓을 산 것에 대해 투덜거렸었다. 그런데 바닷가 보트 정착지를 바라보며 즐기는 아늑한 험프리 공연장이 있다는 걸 이제야 알고서 미안하다며 딸의 등을 두드렸다. 여유가 많은 사람들은 멋진 음악회를 보러 유럽까지 날아가기도 하는데, 이런 기회를 놓치지 말자며 딸은 일정을 강행했다.
반대편 길 건너 바다 쪽에 친정어머님의 유골을 뿌렸기에 종종 들러 평온한 바다를 바라보며 심호흡도 하고, 부모님 생전의 추억과 은혜를 생각하기도 하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 디보(Il Divo)’ 중창단의 생음악을 듣게 되었다. 입구에서 CD 값과 똑 같은 근사한 팜플렛을 사서 보니 올해는 북미와 남미 순회공연 일정이 있다.
모두 클래식 음악을 공부한 멤버들은 노래 중간에 자신들을 간단히 소개하며 자연스럽게 계단을 오르고 의자에 앉기도 하며 완벽하게 아름다운 화음으로 우리를 환상에 빠뜨렸다. 열광하는 관객들의 소리를 들으며 그들도 한없이 행복했을 것이다.
미국의 데이빗 밀러, 프랑스의 유알에스 비힐러, 영국의 세바스틴 이잠바, 스페인의 칼로스 마린. 그들은 14년 전 생전 처음 낯선 사람들로 만나 여기까지 왔다고 설명했다.
라스베가스에 사는 한 여성은 휴가를 샌디에고로 왔다가 음악회에 왔노라고 말했다. 우리 가족 옆에는 독일에서 이민 와 우리처럼 오랜 세월 샌디에고에 살고 있다는 독일인 중년의 여성들이 앉아 있었다.
흉금을 털어 놓으면 우린 모두 삶에 지친 사람들이다. 행복한 눈들이 서로 만나면 오늘처럼 음악을 통해 솔직해진다. 우린 코드가 맞아 환한 얼굴로 연주가 끝나고도 입구에서 한참 떠들었다. 바로 우리 뒤에 네 가수가 자동차를 타고 신호등을 한참 기다리는 것도 모르고. 그들이 지나간 후에야 아차 했다.
인생의 아름다운 화음은 어디쯤에 있을까. 가족끼리, 이웃 간에, 직장에서도 가수 ‘일 디보’의 고운 화음처럼 아름다운 조화를 흉내 내려면 얼마나 많은 인내와 피나는 노력이 필요할까.
(미주 한국일보 2017년 9월 30일 토요일자 ‘삶과 생각’ 컬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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