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조광숙 여사의 영전에

2017.02.28 05:09

최미자 조회 수:91

광숙아

227일 새벽에 눈을 감았다고?

내 슬픈 마음을 이해하듯이 여기는 그날부터 겨울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단다.

 

지난해 527일인 봐, 너의 깊은 배려 덕분에 졸업 후 처음 만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 송옥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우리 셋이서 궁동의 모교 전남여고의 자랑스러운 역사박물관을 방문했었지. 그 당시 그 놈의 대상포진 때문에 네가 고생한 이야기를 들으며 우린 안심을 했는데, 미국에 돌아오니 또 무슨 병이라는 소식에 그간 너의 가족은 얼마나 마음고생을 하셨을까.

  

지금 나는 지난 해 봄, 친구들과 놀았던 정든 나의 서석동 옛집 앞에서 우리 함께 찍은 사진을 컴퓨터에 들어와 보고 있단다. 이웃 전여고 선배님의 팔짱을 끼고 활짝 웃는 너의 환한 얼굴을 바라보니 눈물이 나의 눈에는 한없이 흐르고 있구나. 그리고 퍽이나 건강하던 너였기에 도무지 이 사실을 믿을 수가 없구나. 이제 너의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 차분하고 조용했던 오메 오메, 응응. 그래 미자야.” 하던 그 목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다니 너무 슬프구나.

 

너는 고등학교 일학년 때 교실에서 처음 만난 후 친하게 지내던 나의 뒤 짝꿍이었지. 어느 날 미국에 사는 나에게 전화해주던 그 행복했던 시간부터 지금까지 우리의 우정들. 또 내가 2007년 광주에 갔을 때 나의 출판기념회를 위해 친구들에게 연락 하느라고 애쓰던 고마웠던 시간도 난 갚지 못하고 있는데, 이렇게 여러 친구들을 두고 멀리 멀리 떠나버리는 거야!

다행이도

미국에서 네가 입원한 병원의 전화번호를 뒤지고 옥이가 이메일로 알려주어 병상의 너와 통화를 몇 번하고 부랴부랴 편지 쓰며 우리 가족이랑 눈물도 훔쳤던 시간이 있었구나.

 

, 깊은 병을 알고 나서 전화로 들려주던 너의 말들 하고 싶은 것 다해보았고, 아이들 결혼했고, 공평하신 하느님의 부름에 간다.”라고 말이야. 긍정적이고 너그러운 삶에 대한 너의 고백을 들으며 나는 부끄럽고 감동도 했었지.

생각해 보건데 30여년 가까이 전남의대 양호실을 찾아 온 수많은 의대생들이 얼마나 너의 따뜻한 마음의 손길을 거쳤는지 세상은 다 알 거야. 그 덕으로 너의 자손들이 반드시 잘 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친구들이 전남의대에서 너는 유명인사라고 말하더라. 평생 자신을 가식으로 꾸미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 온 너에게 나는 존경을 표한다, 조광숙 친구야.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부모님께도 사랑을 받았고 남편 살아 계시고, 세상에 드문 착한 아들과 며느리의 마지막까지의 특별한 보살핌에, 공부 잘하는 딸이 교수가 되고 손자 손녀까지 보았으니 행복한 생애였구나. 그러니 너무 슬퍼 말거라.

 

만약, 내생이 있다면 우리 다시 만나 더 가까이서 우정을 나누자꾸나.

먼저 보냄을 무척 아쉬워하는 친구가 미국에서 큰 절하면서 이별을 아쉬워합니다.

 

201731일 장례식 영전에

여고동창 재미수필가 최미자


(갑짜기 희귀암에 걸린 친구가 요즈음 세상에 보기 드문 특별한 며느리의 보살핌으로 생명을 연장하며

약 7개월 살다  떠났습니다. 평소에 너무나도 차분하고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화 한번 내지 않았고 

 오만 것을 서로 털어 놓았던 친구사이여서 장례식에 가지 못하는 죄송한 마음으로 글을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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