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지탱하는 힘
2018.02.01 04:24
생명을 지탱하는 힘
고열과 식은땀으로 폐렴을 걱정하며 독감과 사투하고 있던 무렵인데, 두 사람의 부고가 내게 날아왔다. 한분은 무서운 암을 이겨내며 이년 넘도록 강하게 살아 온 지인의 남편이다. 그는 효선암이라는 희귀암으로 병환이 시작되었지만 삼십년 넘게 일해 온 미국 굴지회사에서 넉넉한 의료보험 혜택을 받던 행운의 환자였다. 그는 지금도 살아있는 미국의 카터대통령이 치료를 받은 것처럼 비싼 주사를 맞으며 지난해도 여행 다니며 잘 지낸다고 난 들었었다.
또 두해 전쯤, 여고 동창회에서 반갑게 먼저 나에게 인사를 건네주던 고인의 통통하고 환한 얼굴이 지금도 내 눈에 아롱거린다. 아파있는 동안 전혀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퍽 안타깝고 최근 두어 달은 암이 온 몸에 퍼져서인지 곁의 가족을 꽤나 힘들게 했다고 한다. 아마 아내에게 정을 때느라고 그랬을 거라며 우린 유가족께 위로를 드렸다.
한편 고인은 고국의 양로원에 계시는 87세 어머니를 걱정하며 앞으로 5년은 더 살아야한다는 말을 자주했다는 이야기가 눈물겹다. 미국에 살아야 하는 장남으로서의 강한 책임감과 효심이 그를 암에서 긴 세월 살아남게 했던 위대한 힘이 아니었을까. 유가족으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감기 앞에서 비실거리던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웠다. 속이 뒤틀려 6일간 죽도 못 먹던 나였지만, 그의 마지막 장례식에 참여하겠다는 한 생각이 나를 바꾼 것이다. 나물에 비빈 밥을 꼭꼭 씹어 먹으며 며칠 후 가족과 함께 장거리 나들이 갈 준비를 했다.
그런데 얼마 전 장례식에서 근사하게 생긴 관속에 다소곳이 누워 있는 그의 모습은 전혀 다른 외계인의 얼굴 같아서 난 지금도 혼동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모두 언젠가 앞서거나 조금 늦게 떠나면서 당연히 맞아야 할 죽음이 아니던가. 더구나 이미 몸 안에 진행된 암은 어찌되었든 인정해야하는 시한부 인생인 것을.
또 다른 한 사람의 죽음은 한국의 고시원에서 외롭게 병사한 위암 환자였다. 그는 중학생 때 내가 담임하며 가르쳤던 제자였다. 질문도 잘하고 장난기 넘치는 야무지고 똑똑한 학생이었지만, 가난을 극복하고 대학까지 마친 회계사였기에 그가 대견스러웠다. 우리가 삼십년 후에 다시 만나던 날, 그가 담배를 즐겨 피우는 걸 보고 나는 은근히 걱정했었다.
친구를 통해 나에게 전해진 선물을 열어보며 얼마나 속이 깊은 사람임에 놀라지 않을 수 없던 지난날이었다. 언제나 명랑하여 친구들도 그의 속내를 잘 몰랐다고 한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가족도 싫고 우울증 환자가 되어버렸을까. 그는 치료를 받던 6년 동안 생의 낙오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무슨 이유인지 부인과도 별거 중이었고 가까운 친구와 마지막 카톡을 나눈 게 마지막 대화라고 전해졌다. 고시원 청소를 하던 아주머니가 최초의 발견자라 하니, 오늘도 우리주변에는 나의 제자처럼 병고로 외롭게 홀로 눈을 감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지 가슴이 아프다.
고인이 된 두 사람 모두 오래 앓았고 죽음을 대처하는 방법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어렵겠지만 일상에서 작은 감사한 일을 찾았더라면 긍정적인 생각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인생여정을 바꿀 수 있지는 않았을까. 응급실에 두 번이나 들어 가 살아 난 나는 매순간을 주어진 마지막 시간으로 여기면서 후회할 일을 줄이고 최선을 다하며 살아간다.
(1-20-2018 토요일 미주중앙일보 ‘이 아침에’ 컬럼 글)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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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de to joy.
버리긴 아깝고/ 박철
일면식 없는
한 유명 평론가에게 시집을 보내려고
서명한 뒤 잠시 바라보다
이렇게까지 글을 쓸 필요는 없다 싶어
면지를 북 찢어낸 시집
가끔 들르는 식당 여주인에게
여차여차하여 버리긴 아깝고 해서
주는 책이니 읽어나 보라고
며칠 뒤 비 오는 날 전화가 왔다
아귀찜을 했는데 양이 많아
버리긴 아깝고
둘은 이상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뭔가 서로 맛있는 것을
주고받은
그런 눈빛을 주고받으며
- 시집 『작은 산』 (실천문학사, 2013)
시집을 내본 경험이 있는 시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이와 유사한 상황에서 씁쓸함을 겪었음직하다. 시집을 내는 방식에는 자신이 소요경비를 모두 부담하는 자비출판과 상업적 판매를 염두에 둔 기획출판이 있다. 그런데 기획출판은 전체 시집의 5% 안팎, 넉넉히 추정해도 10%를 밑돌고 나머지는 거의 자비로 출판하는 것이 문단의 현실이자 비애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처럼 어중간한 시인이 기획출판을 하게 되면 오히려 출판사 측에 손해를 끼치진 않을까 그 부분이 또 걸리고 염려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상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뭔가 서로 맛있는 것을 주고받은’ 시인으로서는 잘 알지도 못하는 평론가에게 보내기보다 백번 잘 한 짓이라 생각했으리라. 이렇게 매콤한 아귀찜이 되어 돌아오는 시를 쓰기만 해도 시인은 참 행복하겠다. 나도 이런저런 고민이 없는 건 아니지만 꼭 보내고 싶은 곳만 시집을 보내고자 한다. 내 시운동의 궁극적 목표 가운데 하나가 시집의 무상증정 풍토가 바뀌어 시집을 사서 읽는 분위기의 조성이다. 시원찮은 내 시집 역시도 언감생심 그 같은 대접을 받으면 좋겠지만, 내 아는 사람 가운데 아무리 그래봐야 소용없을 분들에게는 도리 없이 시집을 보내드릴 작정이다.(해설,권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