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고기는 제발 그만

2017.08.28 06:43

최미자 조회 수:85

개고기는 제발 그만

한 해를 되돌아보는 즈음이 되었다. 올해는 유난히도 지구에 함께 사는 인간들의 잔인함과 소름끼치던 영상들로 슬픈 나날이었다. 말을 못하는 착한 개들과 동물 같은 인간들의 악인연은 도대체 어디서 내려오는 것일까.

우리가족이 모여 이야기하고 밥을 먹는 거실에는 자업자득이라는 커다란 액자가 걸려 있다. ‘콩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난다. 혹은 뿌리는 대로 거둔다.’ 라는 말이다. 미국에 와보니 같은 의미의 영어말도 있었다. 내 신혼 시절 어느 겨울날에, 송광사 방장 구산 스님께 공부하는 도반스님들이 드실 반찬으로 김 선물을 좀 보내면서 내가 청하여 받은 귀한 붓글씨이다.

결혼 후, 두 번 인공유산을 하고 가지가지 인간사를 배우고 반성하며 내 인생교훈으로 선택한 사자성어 같은 글귀였다. 우리의 육안으로 까닭을 알 수 없는 사건들이 조용히 일어날 때마다 나는 삶들에 대한 의문을 던지곤 했다. 세상에는 절대로 공짜가 없었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선한인연도 악한인연도 결코 우연히 아니었다. 내가 모르는 수억 겁의 생애로부터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하여 찾아오는 것 같았다.

그 중에도 왜 종종 고통스러운 병이 내 몸에 찾아오는가를 깊이 묻곤 했다. 또한 사람들은 왜 뜻밖의 사고로 단명하게 죽는지. 모르는 타인과 불의의 사고로 얽히어 세상을 떠나는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원인을 찾아 나는 추론하곤 했다.

세상에 자신의 먹이로 또는 보약으로 살아 있는 개를 펄펄 끓는 물에 마구 집어넣는 잔인무도한 사람들의 얼굴을 보았다. 철사로 온몸에 감긴 피멍이 든 개들의 비참한 모습은 인간들이 저지르는 행위였다. 하긴 오래 전 나라를 빼앗겨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같은 분들이 일본에 징용으로 끌려가 비슷하게 생매장을 당하기도 하였다. 중국과 아시아, 한국에서 개를 때려 죽여야 맛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는 숨이 멈추곤 한다.

경제대국이라며 큰소리치는 한국에서 똥개라며 잡아먹더니 이제는 작은 애견까지도 모두 고기감이란다. 이름도 이젠 보신탕이 아니라 사철탕이란다. 그런 야만적 식당 골목이 미국 텔레비전에 나올 때면 두려움이 앞서는 것은 어디 나뿐일까. 먹는 음식은 그 나라의 풍습이라며 가지가지 동물을 잡아먹는 이유를 말하는 무지한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할까.

오래전 나는 소가 도살장에 들어갈 때 눈물을 흘린다는 말을 듣고부터는 소고기를 삼키지 못한다. 또 대학생 시절 신부님이 운영하는 기숙사에 살 때, 밥상에 신부님이 사냥해 온 꿩고기 반찬이 올라온 사건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건너편 식탁에서 식사하는 성직자의 살기 어린 눈빛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당시 난 내 삶이 허무하고 힘겨워서 수녀가 되고 싶어 갈망하던 때였다. 비록 어린 시절 나는 못 먹고 자랐지만, 철이 들수록 고기 음식에 대한 나의 식탐이 차츰 없어지는 것도 이런 이유들이었다.

딸아이가 입양한 개를 함께 키우면서 나는 생명을 사랑하는 걸 많이 배웠다. 도인처럼 인간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우리 집 영특한 개의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나는 오금을 저리기도 한다. 개들도 우리처럼 각각 아이큐(IQ)가 다르지만 유별나게 주인에게 충성하는 동물이다. 불교에서는 인간이 되어가기 위한 가장 높은 동물의 단계가 개라고도 말한다. 사람은 날마다 씻지 않으면 몸에서 냄새가 진동하지만, 개는 일주일이 지나도 그런 정도가 아니다. 정말 누가 누구에게 손가락질을 해야 할까.

언젠가 폐결핵에 걸린 친척 어른이 약으로 여러 마리의 개를 드셨는데, 대학생 딸은 정신병에 걸려 살다 죽었다. 너무나도 예쁘고 착한 마흔 살의 내 사촌 동생이었다. 그렇게 개고기를 먹는 여러 집안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무서운 업보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우리 한국의 옛말에 조상이 잘못 살면 후손이 반드시 벌을 받는다.’는 말도 종종 생각해본다.

다행히도 세상에는 천사가 있다. 미국 로스앤젤러스에 사는 중국계 한 젊은이(Marc Ching)가 동물을 구출하는 재단(http://www.animalhopeandwellness.org)을 만들어 무자비하게 죽어가는 개들을 구하고 있다. 그는 올해도 중국 율린 축제(Yulin Festival)를 찾아가고 동남아들의 나라를 뛰어다닌다. 인정미가 있는 그 나라의 사람들과 합세하여 수많은 개들을 눈물로 구출하고 있다. 중국, 캄보디아, 베트남 또 트럼프 후보가 잘사는 나라라고 말하는 한국까지 개고기를 먹는 나라로 알려져 있으니 얼마나 부끄러운지. 미국의 동물 애호가들은 한국제품을 거부하자고도 외치고 있다.

고맙게도 한국에서 텔레비전의 동물 농장프로그램으로 착한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고, 언젠가 산속에서 수 십 마리의 유기 견을 돌보고 있는 나이든 아주머니 감동적인 신문기사를 읽은 적도 있었다. 지난 날 나도 무지할 때, 고기음식을 맛있다면서 먹곤 했지만, 이제는 최소한 작은 생명체의 살점을 뜯어먹는 미안함과 연민으로 음식을 대할 줄 아는 인간이 되었다. 내가 먹는 음식은 내 몸을 만드는 작은 세포가 되어가는 화학적인 변화를 거치기 때문이다. 이왕이면 선량한 품성으로 사는 인간이 나는 되고 싶다. 제발 사람과 그토록 가까운 개고기는 이제 그만 먹읍시다! 수준 높은 국가라면 한국의 국회도 이제 더욱 강하게 개고기 금지법을 만들 때가 되었다. (미주문학 2016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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