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연필 이야기
2005.02.23 00:32
색연필 이야기
색연필을 보면 여러가지 생각들이 떠오른다. 비 개인 뒤의 무지개와,
제대로 된 색연필 한 번 가져 보지 못했던 초등학교 시절과,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있다.
작은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때의 이야기다. 작은아이가 비교적 온순한 편이라
과격한 아이들 틈에서 어떻게 적응하고 있는지 내심 염려되기도 했다.
하지만 엄마로서 그런 일에 관해 먼저 물어 본다는 것 자체가 과잉방어일 것 같기도 하고,
좀은 유약한 모습으로 키우는 것 같아 아이의 일은 그저 관망하듯 아이에게 내맡기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아이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엄마에게 자신의 현재 심경을 털어 놓았다.
아니나 다를까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가 있다는 것이었다. 몇 가지 사례를 들려주며
고개 숙인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로서의 내 마음은 보이지 않는 눈물로 얼룩이 졌다.
하지만 흥분된 엄마의 모습이야말로 아이를 더욱 불안하게 할 것 같아 이내 마음을 가라 앉히고,
작게 웃으며 아이의 맑은 눈망울을 바라 보았다.
"신의야, 문구점에 가서 색연필 좀 사올래?"
"엄마, 나 색연필 있는데요."
"음, 엄마가 필요해서 그래."
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12가지색이 든 색연필을 사왔다. 나는 예쁘게
포장해서 작은아이에게 주었다.내일 학교에 가면 그 아이에게 색연필을 주되
"우리 엄마의 선물이야"라는 말만 전해 주라고 했다.
몇일이 지나서 작은아이는 무슨 대단한 희소식이라도 전할 것처럼
희색이 만면하여 엄마를 불렀다.
"엄마, 그애 이제 내 보디가드 됐어요."
"응? 보디가드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이제는 그애가 무엇이든지 나랑 나누어 먹고, 또 다른 아이들이 나는
건들지도 못하게 해요."
"그래? 신의는 좋겠구나."
어쨌든 다행이라 싶었다. 하지만 어린 아이의 그런 태도가 얼마나 갈까 하는
의구심도 없진 않았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도 그 아이는 내 작은아이에 대한
보디가드로서의 본분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것 같았다.
색연필 하나 선물한 결과치곤 기대 이상의 성과였다.
작은아이의 방을 치우다 책상에 놓인 색연필을 보니 그 아이 생각이 났다.
내가 선물한 색연필을 쓸 때마다 선물한 사람의 귀한 마음을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색연필을 통해 암시적으로나마 친구 부모의 존재를 두렵게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
놀랍게도 그해 학년이 다 마칠 때까지 그 아이는 내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소임을
다 한 것 같았다. 이제는 나로서도 좀 더 진실된 마음으로 그 아이에게 선물 하나를
주고 싶었지만 오히려 첫 번째 선물의 의미를 상쇄시킬 것 같기도 했고,
어린 아이에게 선물의 의미를 잘못 심어줄 지도 몰라 마음은 간절했지만 삼가하기로 했다.
다만 내 작은아이와 통화할 때 잠시 바꾸어 달래서"그동안 신의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
주어서 고맙다"는 엄마로서의 소중한 마음만 전했다.
지금도 색연필을 보면 그 아이 생각이 난다.
어쩌면 그만한 나이에 체격 좋은 아이가 누릴수 있었던 호기같은 것이었을진대,
어른인 내가 선물이라는 무게로 제압해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미안한 마음도 들곤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아이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던 색연필의 힘은 무엇이었을까.
그 아이의 마음을 바꾸어준 색연필의 빛깔은 무엇이었을까.
풀처럼/김정희
색연필을 보면 여러가지 생각들이 떠오른다. 비 개인 뒤의 무지개와,
제대로 된 색연필 한 번 가져 보지 못했던 초등학교 시절과,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있다.
작은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때의 이야기다. 작은아이가 비교적 온순한 편이라
과격한 아이들 틈에서 어떻게 적응하고 있는지 내심 염려되기도 했다.
하지만 엄마로서 그런 일에 관해 먼저 물어 본다는 것 자체가 과잉방어일 것 같기도 하고,
좀은 유약한 모습으로 키우는 것 같아 아이의 일은 그저 관망하듯 아이에게 내맡기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아이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엄마에게 자신의 현재 심경을 털어 놓았다.
아니나 다를까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가 있다는 것이었다. 몇 가지 사례를 들려주며
고개 숙인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로서의 내 마음은 보이지 않는 눈물로 얼룩이 졌다.
하지만 흥분된 엄마의 모습이야말로 아이를 더욱 불안하게 할 것 같아 이내 마음을 가라 앉히고,
작게 웃으며 아이의 맑은 눈망울을 바라 보았다.
"신의야, 문구점에 가서 색연필 좀 사올래?"
"엄마, 나 색연필 있는데요."
"음, 엄마가 필요해서 그래."
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12가지색이 든 색연필을 사왔다. 나는 예쁘게
포장해서 작은아이에게 주었다.내일 학교에 가면 그 아이에게 색연필을 주되
"우리 엄마의 선물이야"라는 말만 전해 주라고 했다.
몇일이 지나서 작은아이는 무슨 대단한 희소식이라도 전할 것처럼
희색이 만면하여 엄마를 불렀다.
"엄마, 그애 이제 내 보디가드 됐어요."
"응? 보디가드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이제는 그애가 무엇이든지 나랑 나누어 먹고, 또 다른 아이들이 나는
건들지도 못하게 해요."
"그래? 신의는 좋겠구나."
어쨌든 다행이라 싶었다. 하지만 어린 아이의 그런 태도가 얼마나 갈까 하는
의구심도 없진 않았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도 그 아이는 내 작은아이에 대한
보디가드로서의 본분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것 같았다.
색연필 하나 선물한 결과치곤 기대 이상의 성과였다.
작은아이의 방을 치우다 책상에 놓인 색연필을 보니 그 아이 생각이 났다.
내가 선물한 색연필을 쓸 때마다 선물한 사람의 귀한 마음을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색연필을 통해 암시적으로나마 친구 부모의 존재를 두렵게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
놀랍게도 그해 학년이 다 마칠 때까지 그 아이는 내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소임을
다 한 것 같았다. 이제는 나로서도 좀 더 진실된 마음으로 그 아이에게 선물 하나를
주고 싶었지만 오히려 첫 번째 선물의 의미를 상쇄시킬 것 같기도 했고,
어린 아이에게 선물의 의미를 잘못 심어줄 지도 몰라 마음은 간절했지만 삼가하기로 했다.
다만 내 작은아이와 통화할 때 잠시 바꾸어 달래서"그동안 신의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
주어서 고맙다"는 엄마로서의 소중한 마음만 전했다.
지금도 색연필을 보면 그 아이 생각이 난다.
어쩌면 그만한 나이에 체격 좋은 아이가 누릴수 있었던 호기같은 것이었을진대,
어른인 내가 선물이라는 무게로 제압해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미안한 마음도 들곤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아이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던 색연필의 힘은 무엇이었을까.
그 아이의 마음을 바꾸어준 색연필의 빛깔은 무엇이었을까.
풀처럼/김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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