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실이

2005.03.03 16:34

박영임 조회 수:36 추천:3

토실이
전북대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중급반 박영임



  갇혔던 우리에서 해방된 토실이는(수토끼) 10 년 만에 찾아온 무더운 날씨에도 옥상과 1층에 심어놓은 모든 잡초와 채소까지 자라기가 무섭게 잘라먹고도 옆집이나 길 건넛집 할 것 없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찾아 먹었다. 하루 두끼 주는 식사로는 양이 차지 않은지 급기야는 집안에서 곱게 자라는 베란다의 화초까지 욕심을 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은 아끼던 동양란 잎을 먹어버렸기 때문이다.
임시 가족회의를 열고 더 이상 토실이와 함께 살 수 없다는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이번에는 토실이 그 녀석을 누구에게 줄 것인가를 고민하며 신경이 곤두섰다. 끝없는 욕심 때문에 함께 살지 못하고 쫓겨나는 녀석의 신세가 가련했다.  

  시어머니 집으로 쫓겨난 토실이는 작년추석에 만나보니 잘 지내고 있었다. 자유도 없이 우리 속에 갇힌 채 포동포동 아주 건강해 보여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왔고 마음이 한결 놓였다. 몇 달 지난 뒤 설날 다시 만나니 토실이는 우리들을 보고 반가워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토실이를 목청껏 부르니 다가와 얼굴을 내밀었다. 얼굴을 쓰다듬으며 인사를 하니 예쁜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만 같았다. 그 사이에 많은 살이 붙었고 털은 윤기가 반질거렸다. 움직이기도 힘든 작은 집안에 갇혀서도 끊임없이 먹어대는 식성 때문에 앞으로도 몸은 한없이 비대해지겠지만 여전히 애교부리는 토실이를 바라보며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토실이는 나와 좀처럼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손을 모아 싹싹 빌며 데려가 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곳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숲 속으로 탈출하면 영원한 자유를 누릴 수가 있는데, 소음과 공해로 가득한 도시로 따라가겠고 울먹이는 이유를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상처' 그 동안 토실이는 서운했던 것일까? 아파도 내 마음이 더욱 아프고 배신감으로 따져도 내가 더욱 클 텐데. 저에게 자유뿐만 아니라 애써 가꾸어 놓은 채소며 과일도 모두 허락하였건만 야속하게도 내가 아끼던 동양란을 먹어치우다니……. 돈으로 따져보아도 제 몸값의 열 배도 넘을 것이고 나이로 보아도 저보다는 10년은 연상일 터인데, 단지 제가 강하다고 무참하게 망가뜨려 놓은 것을 어찌 곱게 보아줄 수 있단 말인가!
공기 좋고 먹을 것이 풍성하지만 작은 우리에 갇힌 신세가 누구 탓이란 말인가? 생각할수록 한없이 야속하기만 한 토실이지만, 돌아서는 발걸음은 왜 이리 무거울까? 개구리 올챙이 시절 기억 못하듯 몇 달 전 유난히 더웠던 한여름 체감온도 70∼80도의 옥상에서 갇힌 채 죽음을 앞에 둔 저와 함께 울었던 것을 기억하지 못한단 말인가!

  '자유' 생각만 해도 이 얼마나 좋으냐, 자유를 찾아가라고 문을 열어놓아도 꼼짝 않고 놀란 눈만 멀뚱거리고 있던 녀석이 아니던가! 얼굴 만져준다며 유혹하여 다가온 토실이를 밖으로 겨우 내어놓았다. 이제 자유를 찾아 떠나거라. 몽실몽실한 엉덩이를 밀어내니 불안에 떨던 토실이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작은 공간, 놀던 우리 문만 열어달란다. 할 수 없이 열어주니 육중한 몸인데도 사뿐히 뛰어 들어가더니 다시는 속지 않겠다는 듯 고개를 돌려버린다. 도대체 녀석의 아이큐가 몇이란 말인가? 영리한 개들의 IQ가 70∼80이라는데 토끼도 만만치 않다. 50∼60이라니 영물인 것은 분명하다. 용궁에 잡혀가서도 살아 나온 토끼의 우화가 있으니 말이다. 어려서부터 집안에서 자유롭게 성장한 우리 집 토실이는 IQ가 더 높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머리 좋은 녀석은 떼를 쓰면 다시 고향으로 데려다 놓을 것을 예상이라도 하고 있지 싶다.

                             (200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