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돌한 10대
2005.03.08 06:50
당돌한 십대
전북대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 유영희
"글 한편 쓰면 얼마씩 받아요?" 친구 딸내미가 불쑥 던진 질문이었다. 작은 옷가게를 하는 친구의 딸인데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나간 길에 얼굴이나 볼까 싶어 들렀다가 친구의 딸을 그곳에서 만났다. 엄마 친구 누구라고 소개를 해주니 아이는 의자를 바짝 붙이며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작가를 꿈꾼다는 아이가 제일 먼저 글 한편에 얼마씩 받느냐고 물어오니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아줌마는 돈 벌려고 글을 쓰지 않아서 한편에 얼마짜리인지 잘 모르겠다." 순간 아이 얼굴엔 실망스런 기색이 스쳤다.
"어떤 장르를 쓰고 싶은데?" 아이는 특별히 생각해 본 장르는 없는데 수필은 쓰기 싫단다. 써서 돈이 되는 장르를 선택하고 싶다고 했다. "돈을 벌려면 문학을 택하지 말고 다른 쪽을 생각해보렴. 글쟁이는 돈 버는 것하고는 거리가 멀거든." 아이는 여전히 강하게 반발하며 문학상에 당선되면 큰돈(?)을 벌지 않았느냐고 했다. 아마도 친구가 내 글이 실린 작품집을 딸에게 건네주며 자랑삼아 부상(副賞)에 관한 얘기를 했던 모양이다. 평생 글을 쓰면서 어쩌다 오는 행운이며, 또한 드물기만 한 행운의 글 한편을 위해 어느 만큼의 수고를 필요로 하는지 말하는데 아이가 말허리를 잘랐다.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버는 글을 쓸 수 있어요?" 이제 17세인 소녀 앞에서 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내 말을 듣기보다는 제 말을 더 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돈이 인생의 최고라고 말한다. 이 다음 제 자식들에게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계획까지 벌써 세워두고 있었. 제 엄마는 손으로 누르면 터질 만큼 물러서 돈 관리를 너무 못한단다. 엄마가 그렇게 물러서 남 좋은 일만 시키고 돈을 모으지를 못한다고 했다. 딸을 키워본 적이 없는 어미인지라 거침없이 제 의견을 쏟아내는 딸내미의 얼굴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친구가 민망한지 몇 번이나 아이의 말을 막으려 했지만, 뭔가 작정을 한 모양인지 그치려 하질 않았다. 제재를 가하는 친구를 만류하고 아이의 말을 들어주기로 하였다.
아이의 계획은 이미 큰 부자가 된 상태에서 그 돈을 관리하는 일부터 시작하고 있었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내가 질문을 던졌다. "그래. 돈 관리를 위한 네 계획은 너무나 완벽하다. 그런데 그 돈을 모을 방법은 뭔데? 글을 써 가지고는 절대로 그런 돈을 벌 수가 없거든. 그리고 작가가 되기 위해 네가 지금 하는 일은 무엇인데?" 아이는 허를 찔린 듯 얼른 답변을 찾지를 못하더니 문화센터에 보내주지 않은 엄마를 탓했다. "문화센터에 가도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직접 가르쳐 주진 않아. 네 스스로 피나는 습작이 있어야 그 길을 갈 수가 있지. 지금 일기는 쓰니?" 일기를 쓰는 일은 세상에서 제일 싫단다.
정말 작가를 꿈꾼다면 자신을 포장하려 들지 말고, 자신에게 절대 관대하지도 말며, 뼈아픈 자기 성찰을 하는 진솔한 일기를 쓰라고 권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책을 많이 읽기를 권했다. 말문이 막혀버린 탓인가? 느닷없이 제 엄마를 향해 "엄마가 그만큼 책을 사주지 않잖아요."하며 버럭 짜증을 낸다. 그쯤에서 내 인내는 한계점을 달리고 있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목소리가 갈라져 나온 것 같았다. "그건 네 변명이지 않니? 학교 도서관이든 시립 도서관이든 무료로 책을 대여하는 곳이 얼마나 많은데? 책이 없어서 읽지 못 한다는 건 말이 안되지." 아이는 갑자기 허리를 바짝 구부려 제 허벅지 위에 얼굴을 묻었다. "돈을 벌려면 작가가 되려 하지말고 다른 일을 찾아보는 게 좋을 거야.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쓰는 글은 그 누구도 감동시킬 수가 없거든." 마음 같아선 무슨 말인가를 더 하고 싶었지만 자리에서 일어서 버렸다.
민망하여 쫓아 나오는 친구가 딸이 울고 있다고 전해주었다. 당돌하기 이를 데 없는 십대 앞에서 사실 울고 싶은 쪽은 내 자신이었는데 당차고 야무진 십대가 울고 있단다. 달래줄 방법도 모르고 그럴 마음도 없어 친구의 배웅을 뒤로하고 집으로 향했다. 자꾸만 목구멍 저 밑에서부터 쓴 물이 올라오는 듯했다. 내 십대 시절엔 인생을 돈으로 계산하는 방법은 생각조차 하질 못하였다. 부모님의 돈이 많든 적든, 어떻게 돈을 관리하든 그건 우리들이 간섭해서는 안 되는 성역으로 알고 자랐다. 그런데 오늘 만난 십대는 돈 관리의 계획을 벌써 세워놓고, 제 계획만도 못한 어미의 허술한 돈 관리를 지적했다. "글 한편 쓰면 얼마 받아요?" 당돌하기 만한 아이의 질문이 저녁 내내 귓가를 맴돌았다.
아이가 현실에 눈을 뜨는 날, 돈하고는 거리가 멀기만 한 글쟁이의 꿈을 접으며 저를 울렸던 오늘의 나를 비웃을지 모른다는 생각마저 드는 밤이다. 아이가 흘렸던 눈물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당당하고 야무지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여 당돌하게 까지 비쳐졌던 십대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울어야 했을까? 별 재주도 없는 글을 쓰며 당찬 십대에게 괜한 상처를 준건 아닌지 싶어 마음이 영 편치 않다. 행복을 위한 수단으로 돈이 필요하던 가치관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고, 돈이 최우선의 가치를 달리는 세상. 17세의 소녀에게 그런 가치관을 갖게 한 책임은 기성세대인 바로 우리들 자신이 아닐까? (2005.2.14)
전북대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 유영희
"글 한편 쓰면 얼마씩 받아요?" 친구 딸내미가 불쑥 던진 질문이었다. 작은 옷가게를 하는 친구의 딸인데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나간 길에 얼굴이나 볼까 싶어 들렀다가 친구의 딸을 그곳에서 만났다. 엄마 친구 누구라고 소개를 해주니 아이는 의자를 바짝 붙이며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작가를 꿈꾼다는 아이가 제일 먼저 글 한편에 얼마씩 받느냐고 물어오니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아줌마는 돈 벌려고 글을 쓰지 않아서 한편에 얼마짜리인지 잘 모르겠다." 순간 아이 얼굴엔 실망스런 기색이 스쳤다.
"어떤 장르를 쓰고 싶은데?" 아이는 특별히 생각해 본 장르는 없는데 수필은 쓰기 싫단다. 써서 돈이 되는 장르를 선택하고 싶다고 했다. "돈을 벌려면 문학을 택하지 말고 다른 쪽을 생각해보렴. 글쟁이는 돈 버는 것하고는 거리가 멀거든." 아이는 여전히 강하게 반발하며 문학상에 당선되면 큰돈(?)을 벌지 않았느냐고 했다. 아마도 친구가 내 글이 실린 작품집을 딸에게 건네주며 자랑삼아 부상(副賞)에 관한 얘기를 했던 모양이다. 평생 글을 쓰면서 어쩌다 오는 행운이며, 또한 드물기만 한 행운의 글 한편을 위해 어느 만큼의 수고를 필요로 하는지 말하는데 아이가 말허리를 잘랐다.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버는 글을 쓸 수 있어요?" 이제 17세인 소녀 앞에서 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내 말을 듣기보다는 제 말을 더 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돈이 인생의 최고라고 말한다. 이 다음 제 자식들에게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계획까지 벌써 세워두고 있었. 제 엄마는 손으로 누르면 터질 만큼 물러서 돈 관리를 너무 못한단다. 엄마가 그렇게 물러서 남 좋은 일만 시키고 돈을 모으지를 못한다고 했다. 딸을 키워본 적이 없는 어미인지라 거침없이 제 의견을 쏟아내는 딸내미의 얼굴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친구가 민망한지 몇 번이나 아이의 말을 막으려 했지만, 뭔가 작정을 한 모양인지 그치려 하질 않았다. 제재를 가하는 친구를 만류하고 아이의 말을 들어주기로 하였다.
아이의 계획은 이미 큰 부자가 된 상태에서 그 돈을 관리하는 일부터 시작하고 있었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내가 질문을 던졌다. "그래. 돈 관리를 위한 네 계획은 너무나 완벽하다. 그런데 그 돈을 모을 방법은 뭔데? 글을 써 가지고는 절대로 그런 돈을 벌 수가 없거든. 그리고 작가가 되기 위해 네가 지금 하는 일은 무엇인데?" 아이는 허를 찔린 듯 얼른 답변을 찾지를 못하더니 문화센터에 보내주지 않은 엄마를 탓했다. "문화센터에 가도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직접 가르쳐 주진 않아. 네 스스로 피나는 습작이 있어야 그 길을 갈 수가 있지. 지금 일기는 쓰니?" 일기를 쓰는 일은 세상에서 제일 싫단다.
정말 작가를 꿈꾼다면 자신을 포장하려 들지 말고, 자신에게 절대 관대하지도 말며, 뼈아픈 자기 성찰을 하는 진솔한 일기를 쓰라고 권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책을 많이 읽기를 권했다. 말문이 막혀버린 탓인가? 느닷없이 제 엄마를 향해 "엄마가 그만큼 책을 사주지 않잖아요."하며 버럭 짜증을 낸다. 그쯤에서 내 인내는 한계점을 달리고 있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목소리가 갈라져 나온 것 같았다. "그건 네 변명이지 않니? 학교 도서관이든 시립 도서관이든 무료로 책을 대여하는 곳이 얼마나 많은데? 책이 없어서 읽지 못 한다는 건 말이 안되지." 아이는 갑자기 허리를 바짝 구부려 제 허벅지 위에 얼굴을 묻었다. "돈을 벌려면 작가가 되려 하지말고 다른 일을 찾아보는 게 좋을 거야.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쓰는 글은 그 누구도 감동시킬 수가 없거든." 마음 같아선 무슨 말인가를 더 하고 싶었지만 자리에서 일어서 버렸다.
민망하여 쫓아 나오는 친구가 딸이 울고 있다고 전해주었다. 당돌하기 이를 데 없는 십대 앞에서 사실 울고 싶은 쪽은 내 자신이었는데 당차고 야무진 십대가 울고 있단다. 달래줄 방법도 모르고 그럴 마음도 없어 친구의 배웅을 뒤로하고 집으로 향했다. 자꾸만 목구멍 저 밑에서부터 쓴 물이 올라오는 듯했다. 내 십대 시절엔 인생을 돈으로 계산하는 방법은 생각조차 하질 못하였다. 부모님의 돈이 많든 적든, 어떻게 돈을 관리하든 그건 우리들이 간섭해서는 안 되는 성역으로 알고 자랐다. 그런데 오늘 만난 십대는 돈 관리의 계획을 벌써 세워놓고, 제 계획만도 못한 어미의 허술한 돈 관리를 지적했다. "글 한편 쓰면 얼마 받아요?" 당돌하기 만한 아이의 질문이 저녁 내내 귓가를 맴돌았다.
아이가 현실에 눈을 뜨는 날, 돈하고는 거리가 멀기만 한 글쟁이의 꿈을 접으며 저를 울렸던 오늘의 나를 비웃을지 모른다는 생각마저 드는 밤이다. 아이가 흘렸던 눈물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당당하고 야무지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여 당돌하게 까지 비쳐졌던 십대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울어야 했을까? 별 재주도 없는 글을 쓰며 당찬 십대에게 괜한 상처를 준건 아닌지 싶어 마음이 영 편치 않다. 행복을 위한 수단으로 돈이 필요하던 가치관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고, 돈이 최우선의 가치를 달리는 세상. 17세의 소녀에게 그런 가치관을 갖게 한 책임은 기성세대인 바로 우리들 자신이 아닐까? (2005.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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