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 있기만 해도 미더운 사람
2005.03.09 07:52
곁에 있기만 해도 미더운 사람
전북대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기초반 김정자
8남매의 막내에게 시집가던 날, 첫날밤을 시부모와 따로 살던 큰동서 댁에서 맞게 되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음식을 장만하고 그 중에서도 음식솜씨 좋기로 소문난 큰동서는 아래동서들과 동네 친구들 사이를 오가며 함께 들이닥친 결혼식 손님들의 음식 대접에 분주하셨습니다.
친정 어머니와 나이가 같으셨던 큰동서는 그 후로도 갈 때마다 당신의 며느리 인 양 맛있는 음식을 예쁘게 담아서 우리 앞으로 밀어 놓으며 먹기를 권하고, 올 때엔 항상 푸짐하게 음식을 싸주시곤 했습니다. 인물도 곱고 마음씨도 비단결 같던 분이었습니다.
30년이 넘는 동안 직장과 내 아이들의 뒷바라지에 밀려 제사와 명절 외에는 큰댁을 찾지 못하는 동안 큰동서는 점차 옛 모습을 잃어갔고, 급기야 치매증세를 보이게 되었습니다. 이젠 그처럼 소중히 여기던 당신의 아이들이나 당신의 아들처럼 여겼던 내 남편까지도 구분하지 못하고 그냥 잔잔한 웃음만을 던져주곤 하는 게 벌써 3년이 넘었습니다. 조카들과 조카며느리들은 모두 직장에 다니고있어 시골에만 계시려하는 큰동서 내외를 모실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습니다.
갈 때마다 조금씩 더 심해지더니 이번 설날에 찾아갔을 때에는 누워서 일어나지도 못할 만큼 약해졌고, 몸을 씻겨줄 때도 아파서 견디지 못해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른 좋은 기억들은 모두 잊어버리는데 육체의 고통만은 잊혀지지 않는 모양이었습니다. 혹시 좋은 기억은 당신 혼자서 음미하고 있는 걸까요?
의자에 앉아 있거나 누워 있을 때에는 조용한 웃음을 보여주다가도 대상포진이 있는 몸을 씻기거나 옷을 갈아 입힐 때에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욕설까지도 서슴없이 한다고 조카며느리들이 들려주었습니다.
그래도 팔십이 넘으신 큰 아주버님께서는 "그래, 아프지. 조금만 참아. 그래 그래, 다 됐어, 아주 잘 참네." 하시며 아이를 달래는 것처럼 설날에 내려온 조카와 함께 몸을 씻기고 옷을 갈아 입히셨습니다. 몇 달 전, 아이들을 결혼시키고 인사차 찾아갔을 때 큰 아주버님은 곱게 옷을 갈아 입히셔서 양지바른 마루에 큰동서를 앉혀놓으시곤 "알아? 상윤 에미, 당신 좋아했잖아?" 하시니까 알 듯 모를 듯 웃음만 지으시더니 이번 설날에 찾아갔을 때는 그새 더 안 좋아지셔서 누워만 계시는 게 가슴아팠습니다.
젊은 시절 아궁이에 불을 지피다가 말싸움이 났을 때 화가 난 큰 아주버님이 부지깽이를 들고 뒤쫓자 이웃집으로 숨어들며 저런 양반과 어떻게 여생을 보낼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던 큰동서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그렇게 여생까지도 큰동서가 챙겨야 할거라고 생각했는데 운명은 다른 길을 만들어 놓았었나 봅니다. 항상 정결하고 좋은 음식으로 남편을 챙기던 큰동서가 이젠 남편의 수발이 아니면 생존까지도 위협받는 상황이 되었으니까요. 그러나 짜증내며 삶이 힘들다고, 자식들도 아무 소용없다고 말씀하실 것 같던 큰 아주버님의 얼굴은 그늘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전보다도 더 밝았고 말씀엔 기쁨이 엿보였습니다. 가정을 이루고 살면서도 미워하고 어떨 땐 헤어질 것까지도 생각했던 나를 부끄럽게 했습니다.
평소에는 소화에 부담 없는 식사를 준비하고, 기저귀를 갈아주시며, 팔십 노구를 이끌고 병원에서 약을 타오시고, 빨래까지 해가며 간호하시는 큰 아주버님을 보면 가슴이 메어집니다. 조카들이 모셔가려 해도 가시지 않는 마음을 헤아려보았습니다. 자식들에게 신세지지 않고 아내를 돌보는 일이 큰 아주버님의 존재이유가 아닐까요?
얼마 전 TV 프로그램에서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하신 할머니를 위하여 온갖 요리를 배워 그 동안 아내부터 받은 사랑을 갚으려 한다는 할아버지도 보았고, 또 우리 아파트에서 똑같은 시간이면 휠체어를 밀고 공원으로 운동을 다니시는 할아버지도 보았습니다. 나도 저처럼 힘든 노후가 되면 어떡하나 생각했지만, 아파도 곁에 배우자가 있어야 살아갈 힘이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사람에게 가장 무서운 건 고독이라고, 어느 시인이 써놓은 걸 본 적이 있습니다. 나 역시 나이가 들면서 아이들이 저마다 새살림을 차려 떠나버린 지금, 남편은 참 소중한 사람이구나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또한 독하기만 할 것 같은 남편에게도 큰 아주버님 같은 저런 따뜻한 마음이 어딘가에 숨어있을 것 같아 안도가 됩니다. 이 추운 겨울이 빨리 지나고 환자를 보살피기 좋은 봄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습니다.
전북대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기초반 김정자
8남매의 막내에게 시집가던 날, 첫날밤을 시부모와 따로 살던 큰동서 댁에서 맞게 되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음식을 장만하고 그 중에서도 음식솜씨 좋기로 소문난 큰동서는 아래동서들과 동네 친구들 사이를 오가며 함께 들이닥친 결혼식 손님들의 음식 대접에 분주하셨습니다.
친정 어머니와 나이가 같으셨던 큰동서는 그 후로도 갈 때마다 당신의 며느리 인 양 맛있는 음식을 예쁘게 담아서 우리 앞으로 밀어 놓으며 먹기를 권하고, 올 때엔 항상 푸짐하게 음식을 싸주시곤 했습니다. 인물도 곱고 마음씨도 비단결 같던 분이었습니다.
30년이 넘는 동안 직장과 내 아이들의 뒷바라지에 밀려 제사와 명절 외에는 큰댁을 찾지 못하는 동안 큰동서는 점차 옛 모습을 잃어갔고, 급기야 치매증세를 보이게 되었습니다. 이젠 그처럼 소중히 여기던 당신의 아이들이나 당신의 아들처럼 여겼던 내 남편까지도 구분하지 못하고 그냥 잔잔한 웃음만을 던져주곤 하는 게 벌써 3년이 넘었습니다. 조카들과 조카며느리들은 모두 직장에 다니고있어 시골에만 계시려하는 큰동서 내외를 모실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습니다.
갈 때마다 조금씩 더 심해지더니 이번 설날에 찾아갔을 때에는 누워서 일어나지도 못할 만큼 약해졌고, 몸을 씻겨줄 때도 아파서 견디지 못해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른 좋은 기억들은 모두 잊어버리는데 육체의 고통만은 잊혀지지 않는 모양이었습니다. 혹시 좋은 기억은 당신 혼자서 음미하고 있는 걸까요?
의자에 앉아 있거나 누워 있을 때에는 조용한 웃음을 보여주다가도 대상포진이 있는 몸을 씻기거나 옷을 갈아 입힐 때에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욕설까지도 서슴없이 한다고 조카며느리들이 들려주었습니다.
그래도 팔십이 넘으신 큰 아주버님께서는 "그래, 아프지. 조금만 참아. 그래 그래, 다 됐어, 아주 잘 참네." 하시며 아이를 달래는 것처럼 설날에 내려온 조카와 함께 몸을 씻기고 옷을 갈아 입히셨습니다. 몇 달 전, 아이들을 결혼시키고 인사차 찾아갔을 때 큰 아주버님은 곱게 옷을 갈아 입히셔서 양지바른 마루에 큰동서를 앉혀놓으시곤 "알아? 상윤 에미, 당신 좋아했잖아?" 하시니까 알 듯 모를 듯 웃음만 지으시더니 이번 설날에 찾아갔을 때는 그새 더 안 좋아지셔서 누워만 계시는 게 가슴아팠습니다.
젊은 시절 아궁이에 불을 지피다가 말싸움이 났을 때 화가 난 큰 아주버님이 부지깽이를 들고 뒤쫓자 이웃집으로 숨어들며 저런 양반과 어떻게 여생을 보낼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던 큰동서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그렇게 여생까지도 큰동서가 챙겨야 할거라고 생각했는데 운명은 다른 길을 만들어 놓았었나 봅니다. 항상 정결하고 좋은 음식으로 남편을 챙기던 큰동서가 이젠 남편의 수발이 아니면 생존까지도 위협받는 상황이 되었으니까요. 그러나 짜증내며 삶이 힘들다고, 자식들도 아무 소용없다고 말씀하실 것 같던 큰 아주버님의 얼굴은 그늘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전보다도 더 밝았고 말씀엔 기쁨이 엿보였습니다. 가정을 이루고 살면서도 미워하고 어떨 땐 헤어질 것까지도 생각했던 나를 부끄럽게 했습니다.
평소에는 소화에 부담 없는 식사를 준비하고, 기저귀를 갈아주시며, 팔십 노구를 이끌고 병원에서 약을 타오시고, 빨래까지 해가며 간호하시는 큰 아주버님을 보면 가슴이 메어집니다. 조카들이 모셔가려 해도 가시지 않는 마음을 헤아려보았습니다. 자식들에게 신세지지 않고 아내를 돌보는 일이 큰 아주버님의 존재이유가 아닐까요?
얼마 전 TV 프로그램에서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하신 할머니를 위하여 온갖 요리를 배워 그 동안 아내부터 받은 사랑을 갚으려 한다는 할아버지도 보았고, 또 우리 아파트에서 똑같은 시간이면 휠체어를 밀고 공원으로 운동을 다니시는 할아버지도 보았습니다. 나도 저처럼 힘든 노후가 되면 어떡하나 생각했지만, 아파도 곁에 배우자가 있어야 살아갈 힘이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사람에게 가장 무서운 건 고독이라고, 어느 시인이 써놓은 걸 본 적이 있습니다. 나 역시 나이가 들면서 아이들이 저마다 새살림을 차려 떠나버린 지금, 남편은 참 소중한 사람이구나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또한 독하기만 할 것 같은 남편에게도 큰 아주버님 같은 저런 따뜻한 마음이 어딘가에 숨어있을 것 같아 안도가 됩니다. 이 추운 겨울이 빨리 지나고 환자를 보살피기 좋은 봄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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