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공 씨들

2005.09.12 06:09

이금주 조회 수:80 추천:33

우리 집 공 씨들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중) 이금주

            
  나는 공 씨 남자 3명과 함께 산다.
  내가 처음 만난 공 씨는 참 편안한 느낌으로 다가왔으며 20여 년이 가까워진 지금까지 그런 편안함은 무리 없이 지속되고 있다. 항상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마음으로 사는 것 같아 심하게 화를 내는 일도 없고, 계획한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 상황에도 악착같이 풀어내려 하기보다는 슬그머니 포기하는 것으로 대처한다.

  무엇이든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야 직성이 풀리고, 보람이 있는 듯한 일속으로 나 자신을 채근하는 것이 충실한 삶이라 생각하는 나인지라 그런 공 씨에게 적응하는 데는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렸다. 전업주부이면서도 소파에 누워 늘어지게 낮잠 한숨 자는 것조차 내 삶이 뒤쳐지는 것 같아 용납하지 않는 나로서는 주일날 오후를 TV보고 신문 뒤적거리며 낮잠을 자는 공 씨를 보면서 몹시 안타까웠다.

  나는 왜 그렇게 맹물처럼 사느냐, 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무언가에 열정적으로 살아야 나중에 후회가 없지 않겠느냐, 직장 일에 에너지를 몰두하든지, 돈 버는 일에 머리 굴리며 관심을 두든지,  자기 시간을 즐길만한 취미에 열정을 쏟든지, 아니면 교회생활에 전념하여 반듯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설 수 있도록 노력한다든지 해야 될 게 아니냐고 다그친다. 이런 불만을 시어머니에게 토로하면 우리 시어머니 말씀은 더 걸작이다.

“얘야 맹물이 얼마나 좋으냐, 사이다나 콜라가 처음에는 시원하게 갈증을 풀어 주지만 나중엔 더 목마르지 않더냐? 맛도 냄새도 없지만 정말 목이 마를 때 가장 좋은 물은 맹물이 아니더냐?”


  공 씨는 공 씨대로 “버스 타려고 집을 나서는데 버스가 지나가면 당신은 헐떡거리고 뛰어가 타면서 버스를 놓치지 않은 것에 안도할 테지만, 나는 헐떡거리고 뛰어가며 조바심 치지 않는다. 다음 버스를 탄다고 해서 크게 문제될 것이 없는데 왜 서두르는가?  사람들의 생각은 다 다른데 자기와 같지 않다고 뭐 그리 애태우는가? 내 맘과 네 맘이 항상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고 사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한다.


  내가 만난 두 번째 공 씨는 지극히도 상식적이어서 내가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쪼끄만 아이일 때부터 엉뚱한 논리로 날 무척이나 힘들게 했다. 어릴 때 꿈이 뭐냐고 물으면 과학자나 대통령이라고 대답하기는커녕 “아들 딸 낳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이라고 했다. 시험 볼 때 공부 좀 하라 하면 “시험은 그 사람의 실력을 알아보려는 것이니 있는 그대로 봐야한다.”며 가방조차 열어 보지 않았다. 밤늦도록 소설책이나 만화책을 읽다가 늦잠을 자고 아침밥도 먹지 못한 채 허둥대며 현관문을 나서는 아이에게 게을러서 어떻게 네 밥벌이라도 하고 살겠느냐 소리치면 “학교는 안 빠지고 다닐 테니 걱정 마세요.” 한다. 공부는 다 때가 있으니 지금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면 “내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내가 하고 싶을 때 하겠다.”는 말을 인심 쓰듯 내뱉는다. 말로 당해낼 재간이 없어 내가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 줌으로서 아이에게 무언의 교훈을 주려던 의도는 여지없이 빗나갔다.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인데 뭘 그리 정신 없이 사십니까?”

  이런 아이에게 반장선거에 나가 보라든지, 시간 맞춰 영어학원에 다니라든지, 매일 학습지를 풀라고 하든지 하는 일은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내 아이가 나보다는 더 잘난(?) 사람이 되어야 함을 당연하게 여기며 키우고자 했던 내 바람은 여지없이 무너졌고, 하루에도 몇 번씩 벌어지는 갈등구조에서 나는 항상 패자가 되어 맥이 빠진다. 뒤돌아서 생각하면 내 주장이 일반적 논리여서 더 설득력이 있을 법한데 항상 상황논리에서는 내가 먼저 기운이 빠져 판정패를 당한다.


  내가 만난 세 번째 공 씨 역시 만만치 않다. 내 성향의 자식이 한 명쯤은 태어났으면 하는 바람이었으나 이 아이 역시 공 씨 기질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어릴 때 코펠 한 세트만 주면 크고 작은 뚜껑들을 맞추어 가며 한나절씩을 꿈쩍도 않고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더니만 학교생활 중 가장 지겨운 날이 체육대회 날이란다. 다른 집 아이들은 휴일이면 놀러 나가자고 원성이라는데 우리 집 세 번째 공 씨는 내가 사정을 해야 마지못해 선심 쓰듯 따라 나선다. 워낙 소극적이어서 수영장에 등록시켰더니 20여 일간 물 속에 한 번도 들어가지 않고 빙빙 주위만 돌다가 그만 두었다. 초등학교시절 옆에 앉은 여자 짝꿍에 대해 물어보면 서너 달 이상 같이 앉았다는데도 이름조차 알지 못했고, 등굣길에 집 앞 신호등을 건너다 어깨에 책가방이 없음을 깨닫고 다시 집으로 온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 아빠가 저녁을 드시고 오신다는 전화를 받고서도 저녁 먹을 때가 되면 "아빠가 왜 안 오시지?" 하며 물어 볼 정도니 내가 없을 때 받은 전화내용은 거의 전달되지 않는다. 자기가 관심 있는 일이 아니면 깡그리 잊어버리는 참 편하게도 사는 아이다.


  이런 공 씨 세 사람과 살아가다 보니 우리 집에선 항상 나만이 유별나고 극성맞은 여자요, 쓸데없는 일에 열 내는 여자이며, 욕심을 다 채우려고 안달하는 여자가 된다. 옆집 누구는 1등을 하여 좋겠더라, 동창 누구는 어디다 땅을 사서 돈을 많이 벌었더라 따위의 내 말에 세 공 씨 모두 사바세계에서 허우적거리는 영혼을 보듯 안타까운 시선을 내게 보낸다. 보통사람들이 가지는 작은 소망조차도 우리 집 공 씨들은 덧없는 뜬구름으로 여기니 어떤 때는 수적으로 열세인 내가 사이코 취급을 받기도 한다. 공자 님 후손 철학자 세 분과 함께 살다보니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 부대껴야 하는 외로움을 누가 알아주랴! 처음엔 답답하고 울화통이 터지며 나 혼자 열낼 일이 많았지만 같이 살다 보니 점차 닮아 가는 것일까, 나이가 먹어 가는 탓일까, 세상일이 내 맘대로 살아지지 않음을 몇 차례 경험한 탓일까? 그러려니, 그러기도 하겠지, 하는 쪽으로 나도 많이 바뀌었다.


  우리의 행복은 주어진 상황이 어떠한가가 아니라 그 상황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마음공부 하시는 선생님들의 지론에 따른다면 어쩌면 우리 집 공 씨들의 삶의 방식은 나보다 한 수가 위인지도 모르겠다. 요즘 들어 작은 일들에도 신경이 예민해지는 나를 뒤돌아보며 나도 공 씨들처럼 넉넉하고 여유롭게 살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하는 부러움이 들기도 한다. 열심히 산다는 것과 잘 산다는 것은 분명히 다른 것임을 우리 집 공 씨들은 천성적으로 깨우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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