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손친교 2박3일
2005.10.05 08:20
祖孫親交 2박3일
金 鶴
올 추석은 그 어느 해보다도 즐겁고 푸짐한 명절이었다. 둘째 며느리가 새 식구로 들어온 뒤 처음 맞는 명절이고, 두 며느리가 나란히 앞치마를 두른 채 주방에서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며 일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정겨워 보였다. 2박3일 동안 내 입가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지난 해 결혼한 딸이 추석 쇠러 시가(媤家)로 가는 바람에 고명딸의 자리가 비어 섭섭했지만 크게 허전한 느낌이 들지 않은 것은 오로지 두 며느리 덕이었다.
올 추석은 연휴가 짧았지만 그래도 나는 즐거웠다. 돌이 갓 지난 첫 손주 동현이랑 2박3일 동안이나 한 집에서 동고동락하며 얼굴을 익힐 수 있었으니 이보다 더 즐겁고 흐뭇한 일이 어디 있으랴.
핏줄은 땅기는 것이라 하더니 그것은 옳은 말이었다. 지난 번 서울에서 있었던 돌잔치 때에는 한 번 안아주다가 손주가 울어버리는 바람에 당황하고 난처했었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아 좋았다. 내 품에 안겨 벙긋벙긋 웃기도 하고 눈을 맞추며 즐거워했었다. 안아주고 함께 놀아주며 예뻐했더니 동현이도 나를 잘 따랐다. 손자와 할아버지로서의 정이 통한 셈이라고나 할까.
동현이는 우리 집에 오자마자 뒤뚱뒤뚱 아홉 발자국쯤 걷다가 주저앉았다. 얼마나 귀엽던지……. 거실에서 잘 놀던 동현이가 느닷없이 엄마를 부르며 주방 쪽으로 비호처럼 기어갔다. 나는 얼른 달려가서 그 아이를 안고 와야 했다. 2박3일 동안 그러기를 수십 번도 더 반복했었다. 갓 돌 지난 손자와 60대 할아버지의 재미있는 술래잡기였다고나 할까.
동현이가 사용할 줄 아는 단어는 '엄마'와 '나' 두 마디였다. 아직 '아빠'란 말도 못하는데 어찌 '할아버지'란 말을 기대할 수 있으랴. 엄마는 24시간 제 곁에서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며, 제 뒷바라지를 잘 해주니 엄마란 호칭부터 익히는 게 당연한 순서일 것이다. 동현이에게 벽에 걸린 액자 속의 제 사진을 보여주니 '나'라고 하는 게 아닌가. 깜짝 놀랐다. 이 어린아이가 '나'라는 말을 어떻게 배웠단 말인가. 어린아이들은 '나'부터 알고 한참 후에 '너'라는 단어를 알게 되는 것이로구나 싶었다. 또 '아빠' '할아버지'라고 하면 그쪽으로 얼굴을 돌리는 것으로 보아 발음이 어려워서 말로 표현을 못해 그렇지 가까운 식구들의 얼굴은 식별할 줄 아는 모양이었다.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눈·귀·코·입 가운데 어떤 기관부터 활용할까. 내 생각으로는 코가 첫 번째일 것 같았다. 막 태어나면서부터 숨을 쉬어야 하니 말이다. 그러나 제가 배설한 대변을 뒤치다꺼리하는 엄마를 바라보며 냄새도 맡지 못한 채 빙긋빙긋 미소를 짓는 걸 보면 코의 냄새 맡는 기능은 아직 감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두 번째로는 입이 아닐까. 엄마의 젖을 빨아먹어야 할 테니 당연한 순서일 성싶다. 입의 먹는 기능에 비해 말하는 기능은 늦게 개발되는 것 같다. 세 번째로는 눈이려니 싶다. 자라면서 엄마와 아빠를 구별할 줄 알고, 장난감이며 물체를 볼 줄 알기 때문이다. 네 번째는 귀가 아닐까. 엄마의 뱃속에서는 엄마아빠의 목소리를 듣고 태교음악도 듣는다지만, 태어난 뒤 갓난아기 때에는 귀가 제 기능을 못 하는 것 같다. 조금 자라야 귀가 트이니 말이다. 잠을 자다가도 주위가 시끄러우면 잠에서 깬다. 조금 더 자라면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춤추는 모습을 보고, 음악소리가 나오면 덩달아 춤동작을 흉내낸다. 귀가 트였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어떤 이는 엄마 뱃속에서 태아가 엄마아빠의 목소리나 태교음악을 듣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그건 태아가 귀로 듣는 게 아닌 것 같다. 소리로 듣는 게 아니라 파장으로 알아채는 게 아닐까.
어떤 물 연구가의 주장에 따르면 똑 같은 물인데도 칭찬을 들은 물과 욕을 들은 물을 얼린 다음 그 결정체를 사진으로 찍어보면 칭찬을 들은 물과 욕을 들은 물의 결정체 모양은 다르다는 것이다. 칭찬을 들은 물의 결정체는 아름다운 무늬를 보여주지만 욕을 먹은 물의 결정체는 암세포처럼 보기 흉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물에 귀나 눈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내가 어느 자리에서 이런 의견을 제시했더니 어떤 젊은 여인이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응애!'하고 울 때 숨을 쉬게 되니 코와 입을 동시에 사용한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럴 듯한 의견이었다.
어린아이도 판단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은 웃으면서 받아들이지만 싫어하는 것은 도리질을 하거나 울음으로 싫다는 의사표시를 분명히 한다. 먹을 것을 주면 먹고 싶을 때엔 덥석 받아먹지만 먹기 싫으면 거부한다. 억지로 입에 넣어주면 모두 내뱉는다.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면 경이로운 발견을 많이 하게 된다. 신비롭기 그지없다.
손주 동현이와 처음 가진 2박3일은 오붓하면서도 뜻깊고 값진 조손친교(祖孫親交)의 시간이었다. 동현이가 추석날 저녁에 기차를 타고 서울로 떠났지만 어느 방에서든 금세 기어 나와 방긋방긋 웃음을 뿌릴 것 같다. 귀여운 동현이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삼삼하고 아기 냄새가 코를 후빈다. 사랑하는 손주 동현이가 어서 자라서 할아버지와 손자가 손목을 잡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경기전과 오목대 나들이를 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金 鶴
올 추석은 그 어느 해보다도 즐겁고 푸짐한 명절이었다. 둘째 며느리가 새 식구로 들어온 뒤 처음 맞는 명절이고, 두 며느리가 나란히 앞치마를 두른 채 주방에서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며 일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정겨워 보였다. 2박3일 동안 내 입가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지난 해 결혼한 딸이 추석 쇠러 시가(媤家)로 가는 바람에 고명딸의 자리가 비어 섭섭했지만 크게 허전한 느낌이 들지 않은 것은 오로지 두 며느리 덕이었다.
올 추석은 연휴가 짧았지만 그래도 나는 즐거웠다. 돌이 갓 지난 첫 손주 동현이랑 2박3일 동안이나 한 집에서 동고동락하며 얼굴을 익힐 수 있었으니 이보다 더 즐겁고 흐뭇한 일이 어디 있으랴.
핏줄은 땅기는 것이라 하더니 그것은 옳은 말이었다. 지난 번 서울에서 있었던 돌잔치 때에는 한 번 안아주다가 손주가 울어버리는 바람에 당황하고 난처했었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아 좋았다. 내 품에 안겨 벙긋벙긋 웃기도 하고 눈을 맞추며 즐거워했었다. 안아주고 함께 놀아주며 예뻐했더니 동현이도 나를 잘 따랐다. 손자와 할아버지로서의 정이 통한 셈이라고나 할까.
동현이는 우리 집에 오자마자 뒤뚱뒤뚱 아홉 발자국쯤 걷다가 주저앉았다. 얼마나 귀엽던지……. 거실에서 잘 놀던 동현이가 느닷없이 엄마를 부르며 주방 쪽으로 비호처럼 기어갔다. 나는 얼른 달려가서 그 아이를 안고 와야 했다. 2박3일 동안 그러기를 수십 번도 더 반복했었다. 갓 돌 지난 손자와 60대 할아버지의 재미있는 술래잡기였다고나 할까.
동현이가 사용할 줄 아는 단어는 '엄마'와 '나' 두 마디였다. 아직 '아빠'란 말도 못하는데 어찌 '할아버지'란 말을 기대할 수 있으랴. 엄마는 24시간 제 곁에서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며, 제 뒷바라지를 잘 해주니 엄마란 호칭부터 익히는 게 당연한 순서일 것이다. 동현이에게 벽에 걸린 액자 속의 제 사진을 보여주니 '나'라고 하는 게 아닌가. 깜짝 놀랐다. 이 어린아이가 '나'라는 말을 어떻게 배웠단 말인가. 어린아이들은 '나'부터 알고 한참 후에 '너'라는 단어를 알게 되는 것이로구나 싶었다. 또 '아빠' '할아버지'라고 하면 그쪽으로 얼굴을 돌리는 것으로 보아 발음이 어려워서 말로 표현을 못해 그렇지 가까운 식구들의 얼굴은 식별할 줄 아는 모양이었다.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눈·귀·코·입 가운데 어떤 기관부터 활용할까. 내 생각으로는 코가 첫 번째일 것 같았다. 막 태어나면서부터 숨을 쉬어야 하니 말이다. 그러나 제가 배설한 대변을 뒤치다꺼리하는 엄마를 바라보며 냄새도 맡지 못한 채 빙긋빙긋 미소를 짓는 걸 보면 코의 냄새 맡는 기능은 아직 감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두 번째로는 입이 아닐까. 엄마의 젖을 빨아먹어야 할 테니 당연한 순서일 성싶다. 입의 먹는 기능에 비해 말하는 기능은 늦게 개발되는 것 같다. 세 번째로는 눈이려니 싶다. 자라면서 엄마와 아빠를 구별할 줄 알고, 장난감이며 물체를 볼 줄 알기 때문이다. 네 번째는 귀가 아닐까. 엄마의 뱃속에서는 엄마아빠의 목소리를 듣고 태교음악도 듣는다지만, 태어난 뒤 갓난아기 때에는 귀가 제 기능을 못 하는 것 같다. 조금 자라야 귀가 트이니 말이다. 잠을 자다가도 주위가 시끄러우면 잠에서 깬다. 조금 더 자라면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춤추는 모습을 보고, 음악소리가 나오면 덩달아 춤동작을 흉내낸다. 귀가 트였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어떤 이는 엄마 뱃속에서 태아가 엄마아빠의 목소리나 태교음악을 듣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그건 태아가 귀로 듣는 게 아닌 것 같다. 소리로 듣는 게 아니라 파장으로 알아채는 게 아닐까.
어떤 물 연구가의 주장에 따르면 똑 같은 물인데도 칭찬을 들은 물과 욕을 들은 물을 얼린 다음 그 결정체를 사진으로 찍어보면 칭찬을 들은 물과 욕을 들은 물의 결정체 모양은 다르다는 것이다. 칭찬을 들은 물의 결정체는 아름다운 무늬를 보여주지만 욕을 먹은 물의 결정체는 암세포처럼 보기 흉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물에 귀나 눈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내가 어느 자리에서 이런 의견을 제시했더니 어떤 젊은 여인이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응애!'하고 울 때 숨을 쉬게 되니 코와 입을 동시에 사용한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럴 듯한 의견이었다.
어린아이도 판단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은 웃으면서 받아들이지만 싫어하는 것은 도리질을 하거나 울음으로 싫다는 의사표시를 분명히 한다. 먹을 것을 주면 먹고 싶을 때엔 덥석 받아먹지만 먹기 싫으면 거부한다. 억지로 입에 넣어주면 모두 내뱉는다.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면 경이로운 발견을 많이 하게 된다. 신비롭기 그지없다.
손주 동현이와 처음 가진 2박3일은 오붓하면서도 뜻깊고 값진 조손친교(祖孫親交)의 시간이었다. 동현이가 추석날 저녁에 기차를 타고 서울로 떠났지만 어느 방에서든 금세 기어 나와 방긋방긋 웃음을 뿌릴 것 같다. 귀여운 동현이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삼삼하고 아기 냄새가 코를 후빈다. 사랑하는 손주 동현이가 어서 자라서 할아버지와 손자가 손목을 잡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경기전과 오목대 나들이를 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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