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샤갈의 예술세계

2011.04.12 13:06

강학희 조회 수:370 추천:8






마르크 샤갈 Marc Chagall











샤갈은 실제로 시와 같은 그림을 그린 화가입니다.
혹자는 샤갈의 꿈결 같은 그림을 보며, 초현실주의의 추창자라고도
말하지만, 마르크 샤갈은 부정합니다.
자신은 어린 시절 실제로 경험했던 소중하고 아름다운 추억들을 생
각하며,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지요.

김춘수에게 시상을 주었던 샤갈의 그림 <나와 마을>을 보면 샤갈은
자신의 모습을 초록색으로 그렸습니다. 그리곤 자신을 바라보고 있
는 큰 눈망울의 소를 그렸습니다.

꼭 한편의 그림동화 같습니다.

이 그림을 그릴 즈음 샤갈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곳 파리에서 나는 마음속 행복한 감정, 그리고, 어린 시절의
추억을 그리는 방법을 찾았다”








김춘수 시인(1922.11.25-2004.11.29.-82세)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 김 춘 수 -



샤갈의 마을에는 3월의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靜脈)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 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3월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 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핵심정리

* 표현상의 특징: 현재형 시제 사용(생동감 있는 생명의식 표현에 적합)
* 주제: 맑고 순수한 생명감



감상포인트

▶ 봄의 생명감을 이미지로 포착하는 데 성공한 작품
▶ 이미지즘 시
▶ 이미지의 연결
눈 : 생동감 있게 온 천지를 덮는 주(主) 제재
새로 돋은 정맥(靜脈) : 퍼져 나가는 봄의 생명감
올리브빛 : 메마른 겨울 열매들에게 생명을 부여함
불 : 아낙의 맑은 마음

김춘수

1922.11.25-2004.11.29. 시인. 경남 충무시 동호동 출생.
경지중학을 졸업하고 니혼대한 예술과 3학년 중퇴. 통영중학교.
마산고등학교 교사. 마산대학 교수. 부산대학 연세대학(부산분교) 강사를
거쳐 경북대학 문리대 교수. 현재 한국시인협회 회장.
1946년 해방 1주년기념 시화집 <날개>에 시 '애가'를 발표하면서 시작을
시작했으며, 대구지방에 발행된 동인지 <죽순>에 시 '온실'외 1편을 발표.
첫 시집 <구름과 장미>가 발행됨으로써 문단에 등단, 이어 시 <산악>, <사>,
<기(旗)>, <모나리자에게>를 발표, 문단의 주목을 받았으며 이후 주로
<문학예술>, <현대문학>, <사상계>, <현대시학> 등에서 창작활동과 평론활동
을 전개했다. 시집으로는 첫 시집 외에 <늪>,<기>, <인연(隣人),<제일시집>,
<꽃의 소묘>, <부타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타령조 기타>, <처용>,
<김춘수시선>, <남천(南天)>, <근역서제>, <비에 젖은 달>, <김춘수전집>,
<처용이후>, <김춘수> 등과 시론집으로는 <세계현대시감상>, <한국현대시
형태론>, <시론> 등을 간행, 그의 초기의 경향은 릴케의 영향을 받았으며,
시가 아니고서는 표현할 수 없는 사물의 정확성과 치밀성 , 진실성을 추구
하였으나, 50년대에 들어서면서 릴케의 형행에서 벗어나, 이른바 의미의
시를 쓰게 되었으며 사실을 분명히 지시하는 산문적인 성격의 문장을 시의
형식으로 도입하였는데 <현대시학>연재 장시 '처용단장'에서 부터는 설명적
요소를 거세해버린 이미지 작품으로 변모하였다.

해설

단연 형태로 씌어진 이 작품은 순수한 생명 의식을 잘 포착했다.
이 작품 속 공간인 '샤갈의 마을'은 가공의 세계이다. 화가인 샤갈의 그림인
<눈 내리는 마을>이 연상이 되기도 하지만, 샤갈의 화풍인 초현실주의 경향
의 작품 세계와도연결이 된다. 시적 의미를 형상화한다기보다 그저 마음 속
에 떠오르는 '순수한' 심상들을 엮어놓았는데, 이는 순수한 마음 상태를 표
현하는 절대시(혹은 무의미시)추구의 경향을 보인 김춘수 시인의 60년대 작
품 경향을 잘 드러내 준다.
(50년대의 관념적인 시인 <꽃> 시리즈 작품과는 구별된다.)




"한국시단의 원로 대여(大餘) 김춘수(金春洙) 시인이 `꽃'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 다.

그의 대표시로 꼽히는 `꽃'은 시전문지 `시인세계'가 최근 실시한 `시인들
이 좋 아하는 애송시' 설문조사에서 1위에 오른 바 있다.

1946년 광복 1주년 기념시화집 `날개'에 `애가'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김 시인은 1948년 첫 시집 `구름과 장미'에 이어 `꽃의 소묘'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처용단장' `쉰한 편의 비가' 등 시선집
을 포함해 모두 25권의 시집을 발표했다.

릴케와 실존주의 철학의 영향을 받은 그는 `꽃'을 소재로 한 초기시부터,
관념 을 배제하고 사물의 이면에 감춰진 본질을 파악하고자 한 '무의미시'
에 이르기까지 60년 가까이 한국시단에서 모더니스트 시인으로서 위상을
지켜왔다.

그의 문학세계 를 총정리한 `김춘수 전집'(현대문학ㆍ전5권)이 지난 2월
출간됐다. 전집 출간 직후 서울 종로구 팔판동에서 만난 김 시인은
대표시 `꽃'에 대해 " 언젠가 연예인들이 좋아하는 시의 1위로 뽑힌 걸
보면 일반인들은 이 시를 연애시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면서 "사실 이 시
는 언어문제와 실존문제에 대해 쓴 철학적인 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시세계를 `꽃의 소묘'로 대표되는 초기 관념시에서 `무의
미시' 로 일컬어지는 `처용단장'등 중기시, 관념시와 무의미시의 변증법적
지양을 통해 형성된 `쉰한 편의 비가'등 후기시로 나눌 수 있다고 설명했
다. 김 시인이 평생 이데올로기가 배제된 `무의미시'를 썼던 것은 일제시대
겪은 개 인적 체험과 무관하지 않다. 전집 출간을 계기로 만났던 그는 "일제
에 저항하거나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한 것은 아니지만 니혼(日本)대학 유학
시절인 일제말기에 옥살 이를 했고 이로인해 학업을 중단해야 했다"고 숨은
사연을 공개했다.

경남 통영의 만석꾼 집안에서 태어난 김 시인은 일본 유학시절, 이웃에 살
던 한 국인 고학생들을 따라 도쿄 인근의 가와사키 항구에 하역작업을 하러
몇 차례 간 적 이 있었다. 돈이 궁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었다
고 한다. 휴식시간에 한국인 7-8명이 모여 일본 천황이나 총독정치 등에 대
해 한국말로 비판한 것이 문제가 됐다. 요코하마 헌병대에서 헌병보로 일하
던 한국인 유학생이 그 자리에 섞여 있었던 것이다.

이로인해 7개월간 옥살이를 했고, 퇴학을 맞았으며, 고향에 돌아온 뒤에는
불령선인의 딱지가 붙은 채 살았다. 그는 연작시 `처용단장' 을 통해 당시
수감 경험 등을 일부 밝히기도 했다. 그는 일제말기 냉수탕 고문이 두려워
모든 것을 털어놓았던 자신을 보며 기질적 으로 항일운동 등에 맞지 않다는
것을 알고 많이 좌절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함께 수감돼 있던 일본의 유명
한 좌파 교수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빵을 혼자 먹는 것을 보고 이데올로기
를 믿지 않게 됐다고 했다.

그는 "사상가(관념가)와 실천가는 다르다는 것을 그 때 깨달았다. 관념을
배제 한 `무의미시'들은 이런 경험이 바탕이 됐다"면서 "내 또래의 윤동주
시인도 독립운 동을 맹렬히 했다기보다 나처럼 우연히 고역을 치르다 생체
실험의 대상이 된 것"이 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제말의 수감 경험이나
5공 때 전국구 의원이 된 것은 모두 내 의지가 아니었던 인생의 아이러니"
라고 덧붙였다.

김 시인은 5년전 부인과 사별한 뒤 경기도 분당에 사는 큰딸 영희(59) 씨의
아 파트 근처에 살았다. 직장에 다니는 외손녀 두 명과 함께 살았던 그는
지난 8월 4일 기도폐색으로 쓰러지기 직전까지 시작(詩作) 활동을 멈추지 않
았다. 전집 발간 이후 써온 시를 엮은 신작시집 `달맞이꽃'이 12월에 출간될
예정이다.

그의 대표적 산문 으로 엮은 단행본도 함께 출간된다. 그는 투병중이던
지난 11일 제19회 소월시문학상 특별상 상금 300만원을 불우이 웃돕기 성
금으로 전액 내놓아 각박한 세상에 훈훈한 감동을 전하기도 했다. 큰딸
영희 씨는 "건강하게 생활하다가 갑자기 쓰러졌기 때문에 아버지는 아무런
유언을 남기지 않았다"면서 "평소 입버릇처럼 광주 공원묘지의 친정어머니
(부인) 곁 에 묻어 달라고 했다"고 전했다.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눈시울에 젖어 드는 이 무명
의 어둠에/추억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나는 한밤내 운다.//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밤 돌개바람이 되어/탑을 흔들다가/돌에까지 스미면 금(金)이 될
것이 다.//......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여."(`꽃을 위한 서시' 전문)라는
영혼의 울림 을 지상에 남기고 그는 `하늘의 꽃밭'으로 떠났다.

<`꽃'의 시인 김춘수 씨의 삶과 예술>
(서울=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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