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현대 미술가 잭슨 폴록 · Jackson Pollock (1912~1956)은
1940년대 후반 바닥에 펼친 캔바스에 물감을 뿌리고 흘리고 붓는, 이른바
'드리핑 기법(Drip Painting)' 으로 작품을 제작하여 서양 회화사에 일대 혁신을 가져온 미술가다.
당시 2차 대전이 남긴 상처는 이성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자로 잰 듯한 기하학적인 추상대신
감성과 무의식에 기댄 폴록의 '액션 페인팅 (Action painting)'에 미술가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입체파나, 야수파, 기하학적 추상 등 어지간한 '추상'에 익숙해진 유럽 관객들에게도 바닥에 캔바스를
깔아 놓고 붓도 대지 않고 물감통에 구멍을 뚫어 물감을 흘려 그린 그림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그의 독특한 작업 방식이 대중매체를 통해 널리 소개되면서 폴록은 대중적 관심과 인기를 한몸에 받았다.
잭슨 폴록은 흔히 '미술계의 제임스 딘'으로 표현된다. 제임스 딘에 비유되는 이유는 그의 괴팍스럽고 반항적인 행동과 비극적인 삶도 한몫을 차지한다.
평생에 걸친 음주와 일련의 반사회적인 행동들로 감옥과 정신병원을 번갈아 드나들었던 그는 광폭한 영혼의 소유자였다.
현대 미술가의 후원자였던 페기 구겐하임의 벽난로에 소변을 본다던가, 만찬의 식탁을 뒤엎는다던가,
바에서 패싸움을 벌인 일 등으로 그는 늘 구설수에 올랐다.
1956년 8월 11일, 친구들과 술을 마신 뒤 과속으로 운전하다 전복 사고로 생을 마감했던 당시 그의 나이는 44세,
알코올 중독자이면서 정신 분열증 환자 그리고 신비주의자였던 그는 '미술계의 제임스 딘' 혹은 '도발적이고 반항적인
전위 미술가'의 상징으로 대중들에게 인식되었다.
폴록과 드 쿠닝(de Kooning)의 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 는
역사상 처음으로 전 세계를 평정한 미술사조엿다. 20세기 들어 인상주의, 야수파 등이 큰 인기를 누렸으나
그것은 유럽인들의 유행이었다. 뉴욕에서 출발한 추상표현주의는 대서양을 건너 유럽을 휩쓸었고
남미와 아시아에 까지 영향을 미쳤다. 문화 수신자였던 미국을 단번에 문화 발신자로 변신시킨 주역이면서
서양 미술의 중심을 구대륙에서 신대륙으로 옮기는 단초를 마련한 것이 바로 추상표현주의였던 것이다.
폴록에 의해 시작된 세계 미술의 중신축 이동은 1960년대 미국의 전위 미술가 라우센버그가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마침내 대상을 수상하면서 완결됐다고 미술평론가들은 평가한다.
여기에는 잭슨 폴록에 대한 CIA의 배후 지원설이 끊히지 않을 정도로 미국 정부의 후원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폴록은 당시 비평가들로부터 환대를 받지는 못했다.
'그린다'라는 회화의 고전적 임무를 내팽개친 채 우연성을 강조한 그의 작업 방식은
대중적 관심을 끌기 위한 제스처로 끊임없이 의심 받았다. 다른 한편으로는
화가의 무의식과 감성에만 몰두하느라 대상을 화면에서 완전히 지워버림으로써
일반인들과 미술사이의 거리를 그만큼 벌려 놓았다는 비판도 늘 따라다녔다.
Left: Jackson Pollock / Middle: Thomas Hart Benton. Pollock was Benton's student for three years. / Right: Photograph of Jackson Pollock at age 16.
  
Jackson Pollock, Number 1, 1950 ( Lavender Mist ), National Gallery of Art, Ailsa Mellon Bruce F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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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vender Mist epitomizes Pollock's ultimate style, in which physical action and emotional expression achieve balance. It is an astounding tapestry of color, poured, dripped, and flung on the canvas.
1950년 11월 20일자 타임 매거진에는 잭슨의 작품에 대한 혹독한 비평의 기사가
"빌어먹을 카오스(Chaos, damn it!)" 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잭슨의 뿌리기 기법은 전혀 무의미한 혼돈의 극치, 다시 말해 '카오스 그 자체' 라는 내용이었다.
평소 평론가들의 냉정한 비판에도 아랑곳 하지 않던 폴곡은 다음 달 11일자 같은
잡지에 "No chaos, damn it!" 이라는 제목으로 반박의 글을 썼다. (-- --)
To his detractor, whose words were reprinted in a November 1950 Time magazine article, Pollock replied:
"NO CHAOS, DAMN IT!"
이 두 글을 읽어보지 않더라도, 이들 제목을 장식하고 있는 '카오스'라는
단어가 얼마나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에게 있어 카오스는 '어떠한 질서나 잘 짜여진 구조도 가지지 않은 채 그저
혼란스럽고 뒤죽박죽 엉킨 상태'를 의미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그의
작품은 그저 '카오스'에 지나지 않았을까?
폴록이 사망한 지 40년이 지난 지금 현대 물리학자들은 최신 물리학 이론으로
그의 작품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그들에 따르면, 폴록의 작품이 '카오스'인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서 '카오스'란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사전적 의미로서의 카오스가 아니라, 모든 자연 현상에 본질적으로 내재된 특징 중 하나인
'카오스와 프랙탈'이 놀랍도록 정교하게 반영된 작품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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