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식혜 (추석 전야)                                                                                 연선 - 강화식

 

가마 솥에 군불을 지피고 있던 외할머니

감주빛깔 연기 속에 식혜 눈물이 흘러 곱지 않다

잿가루 묻은 손등으로 얼굴을 비벼서

 

끓는 물속에 하얀 밥알이 어느새 동동

불을 , 안에서 휴식을 찾아 눕는 밥알들

 

숯덩이를 꺼내 켠에 두고 고등어 손을 석쇠에 얹어 놓는다

 

앞에 둘러앉은 손주들에게 감주+식혜를 사발에 가득 채워주며

머리채가 먼저 소리가 나중에 저리 가라고 채근한다

할머니는 얼룩진 소매 끝으로 땀을 닦고 시간을 준다

 

속살 닮은, 젊고 뽀얀 윗물을 국자로 조심스럽게 떠서

새색시 닮은 반질반질하고 귀여운 단지에 담고

할머니의 흘림 방지 특기인가?

입을 작게 오므렸다 폈다 반복하며 윗물만 살살 떠서 넣는다

 

조심스럽던 시간이 빗겨가자 몸이 빨라졌다

할머니의 주름 늙은 빛깔 닮은 감주는

새우젓 독이라 불리는 기둥 같은 항아리에

바가지로 넣고 조금 흘려도 ?

모양은 변하는지

 

식혜는 손님과 공부 잘하는 막내 아들만 주고

감주는 손주들에게 인심 쓰며 주는 물이다

하얀 물을 몰래 떠먹다 사래 들린 유년의 비밀을

할머니는 모르고 가셨다

 

2020 1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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