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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2016.12.22 12:38

최선호 조회 수:17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창세기 3:6-13

 

 

 

  아담과 하와는 옷을 입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들에게 옷을 입으라는 강요도 하시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알몸뚱이 그대로 살아도 무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옷을 입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은 부끄러움 때문이었습니다. 거짓과 허물을 감추기 위한 일이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더러운 것이 가려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때부터 하나님과의 대화를 하고 싶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때 아무리 무서운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예” 하고 나아가서 “제가 여기 있나이다. 제가 선악과를 먹고 싶어서 따서 먹었습니다”고 자기의 실체를 사실대로 고백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습니다.

 

  눅12:2절에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모든 죄를 끝까지 감추려고 하다가 더 키우고 벌을 받는 수가 있습니다. 행 5장에 나오는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생각하게 됩니다. 베드로는 그들에게 사람을 속일 수는 있으나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다고 말해 주었으나 그들은 거짓으로 끝내 고집하다가 물질과 함께 망하고 말았습니다. 만약 그 당시 속였던 사실을 정직하게 고백하였다면 따뜻한 용서를 받았을 것입니다.

 

  가룟 유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끝까지 “주여 내니이까?”라면서 감출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인간의 노력과 인간의 솜씨가 더하면 더 할수록 진실은 거짓으로 위장되어버리기가 쉽습니다. 계19:11절에 우리 주님의 대명사는 “진실”이라고 하였습니다. 진실은 언제나 진실과 통하게 마련입니다. 시15편 1절에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까?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는 자”라고 한 것입니다. 주님과 교제하려면 진실밖에는 없습니다. 진실이란 죄가 없는 것이 아니고 선량한 것이 진실이 아니라 죄를 짓고 불량해도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를 고백하는 것이 진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9절에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소망이 없을 정도로 타락하여 무서운 죄에 빠져가고 있는 다윗에게 나단 선지자를 보내셔서 다윗의 악독한 죄를 지적하셨습니다. 그때 다윗은 솔직하게 고꾸라지며 고백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어여삐 보시고 이전보다 더욱 사랑하시며 “나와 뜻이 합한 자라”고 하셨습니다.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는 축복까지 받았습니다.

 

  진실 속에는 인간의 힘으로는 잴 수 없을 정도의 위대한 힘이 있고 지혜가 있습니다. 그리고 진실은 영원히 변치 않는 특성이 있습니다.

 

  육체는 옷을 입고 살아야 하는 고등동물이라 할지라도 속사람마저 가려야 할 필요가 있습니까? 내 죄가 보이지 않으면 성령의 안경을 쓰십시오. 성경의 거울을 보십시오. 자만심의 위장은 없습니까? 교만의 위선도 벗어야 합니다. 자존심도 버려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겉치레를 싫어하십니다. 위장도 싫어하십니다. 나 지신을 과대평가할 필요도 과소평가할 필요도 없습니다. 내 모습 그대로 주님께 보여드리는 것이 최상입니다.

 

   내 주의 도움 받고자 주 예수님께 빕니다 

   그 구원 베풀어 주시사 날 받으옵소서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으옵소서

 

  죄를 그대로 자복한 자에게는 따뜻한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죄가 없는 척하고 나타난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죄 없는 척하고 제비를 뽑던 아간도 멸시를 받아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탕자는 제 모습 그대로 맨발로 거지행세 그대로 아버지 집을 찾아 왔습니다. 아버지는 그런 탕자를 따뜻이 맞아주었습니다. 이런 말씀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