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며 사는 인생

2019.01.01 06:11

한성덕 조회 수:5

버티며 사는 인생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한성덕

 

 

 

 

  작년부터 국민연금을 받는 게 너무 기뻐서 2018년도 우리 가정의 10대뉴스 타이틀로 잡고 하나둘씩 엮어나갔다. 그 무술년도 이제는 영영 사라졌다.

  어느 덧, 격동과 파란의 50년대생 막내가 환갑을 맞는 돼지해, 그것도 황금돼지해다. 그 기해(己亥)년의 태양이 활짝 얼굴을 내밀었다.

  럭키아파트는 전주시내 중심지에서 동쪽으로 비껴 앉은 끝자락에 있다. 무주, 진안, 장수군을 묶어서 ‘무진장’이라고 부르는데, 무진장한 산골짜기여서 ‘무진장’이라 하는가? 그야말로 오지중의 오지란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아파트 뒤편 저 멀리서 진안고원의 올망졸망한 산들이 손짓하고 있다. 아파트를 벗어나면서 곧바로 고향쪽  도로로 들어서니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시골집은 자동차로 50분 거리다. 꼬불꼬불한 산길 도로를 오르내리는 스릴과 창밖의 풍광을 즐기는 재미에 취한다. 50분을 단숨에 달려가는 기분이 무척 상쾌하다.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도 무주가 고향이 아니라면 그 기분을 어찌 알겠는가? 나만이 갖는 맛이요, 즐거움이다.  

  럭키아파트에서 전주역까지는 걸어서 10분 거리다. 전주역을 새로 건축한다는 낭보와 함께, 그 뒤쪽의 드넓은 뜰을 새로운 주거지와 공원으로 탈바꿈한다는 소식이 반갑다. 나와는 별로 상관없어 보이고, 공사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가슴이 쿵쾅거린다. 전주역 바로 옆에 30층짜리 오피스텔 아파트와 함께 대형마트가 들어선다며 공사가 한창이다. 그 대형마트가 10분 거리에 있다는 것이 좋아서 설레는가 보다.  

  2,3년 전부터 전주역사 앞거리가 달라졌다. 1km 가량은 직선도로를 시골스러운 길로 바꾸면서 여유를 더했다. 도로양쪽의 느티나무가 멋을 뽐내니 살아 숨 쉬는 거리공원이 되었다. 몇 십 년만 지나면 아름드리나무로 가득한 싱가포르의 거리를 방불케 할 것이다. 차들은 공원 양쪽도로를 타고 서행한다. 거리의 작은 것이 낭만을 이루고, 도심 속 허파가 되어 꿈틀거린다.

  자동차로 생을 꾸리는 사람들은 투덜거리고, 삶에서 재미를 느끼고 사는 사람들은 춤을 춘다. 이 작은 것에서도 희비가 엇갈리는데 국정을 운영하는 대통령은 어떨까?

  크리스마스 전부터 공원은 초롱초롱한 야등으로 출렁거린다. 사람들은 추억을 담아내고, 불빛아래 연인들이 가슴을 맞대면, 야등은 깜박깜박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이처럼 달라지는 것들이 많아서 럭키아파트가 점점 좋아지고 사는 맛도 매일처럼 새롭다.

  목회에서 조기은퇴하고 보금자리를 ‘럭키’(lucky)아파트로 정한 것 자체가 복이다. 이름처럼 여기저기서 ‘행운’이 퐁퐁 솟아나고 있다. 그 행운(?)이 안겨주는 희망을 단단히 붙잡고, 럭키아파트에서 끝까지 살련다. 앞으로 그 주변에 더 좋은 일이 많아질 것 같아서 버티고 살아 볼 참이다. 버틴다니까 얼핏 씨름의 ‘버티기’ 생각이 난다.

 

  씨름이라야 고작 초등학생시절이 전부이고, 그마저도 장난기서린 씨름이어서 씨름다운 씨름을 해 본 적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씨름하면 이만기요, 이만기하면 씨름이 떠오른다. 지금은 다소 시들해진 감이 있어도 한 때는 미칠 정도로 씨름을 좋아했다.

  씨름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게 버티기라고 한다. 실제경기에서 제일 많이 쓰이는 것은 공격보다 버티기라니 알만하다. 다리에 힘을 잔뜩 줘서 상대공격에 안 넘어져야하고, 두 팔로 샅바를 굳게 잡고 잘 견뎌내야 한다. 팔다리에 쏠리는 힘은 배와 팔뚝에서 땀방울을 만들고, 장딴지까지 땀이 송골송골 맺힌 것을 보았다. 서로가 힘껏 버티다가 약점이 느껴지면 후다닥 기술을 걸어서 쓰러뜨린다. 약점으로 무릎을 꿇으면 남는 것은 후회뿐이다.

  인생도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루하루 버티고 사는 생애를 보면서 하는 소리다. ‘작년에도 잘 버텼으니, 올해도 잘 버티고 살아야지’하는 생각이다. 무엇을 이루어서가 아니라 넘어지지 않고 굳건히 살아온 게 감사해서다.

  전주시 우아동 럭키아파트 3901, 우리 집에서 살기 시작한 1년이 너무 좋다. 전주역 둘레가 180도 달라진다니 더없이 기쁘고 행복하다. 후회 없는 인생이 되려면, 잘 버텨야한다는 생각으로 새로운 한 해를 시작했다.

                                           (2019. 1. 1. 새해 첫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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