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2019년 당선 수필

2019.01.01 06:57

이인숙 조회 수:9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수탉의 도전’

 


[2019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수탉이 철조망 틈새 끼인 날갯죽지를 빼느라 발버둥을 친다. 눈망울을 껌뻑이고 붉은 볏을 움찔거리는 모습이 힘겨운가 보다. 틈새가 비좁아 수탉이 탈출하기엔 불가능해 보이건만, 포기할 수 없다는 몸부림이다. 탈출을 향한 집념이 팔월의 태양 볕보다 뜨겁다. 급기야 부리로 땅을 쪼아대며 용을 쓴다. 수탉의 몸짓에서 물러서지 않으리라는 오기마저 느껴진다.

 드디어 탈출이다. 수탉이 날개를 펴고 텃밭으로 쏜살같이 내달린다. 철조망 아래 땅을 파헤쳐 틈새로 탈출을 성공한 것이다. 닭이 머리가 나쁘다는 말도 옛말인 것 같다. 철망과 땅의 틈새를 파헤치면 구멍이 생기는 걸 어찌 알았을까. 수탉은 볏을 꼿꼿이 세우고 개선장군처럼 풀밭을 활보하고 있다. 그 모습은 더없이 늠름하다. 수탉의 탈출은 한 번에 얻어진 것이 아니다. 몇 번의 실패 끝에 얻은 값진 성공이다.

 수탉을 바라보다 문득 예전 내 모습이 떠오른다. 과연 나는 삶의 주인인 적이 있었던가. 돌아보니 목숨 줄인 생업을 ?느라 종종거리며 살아온 듯싶다. 좀 더 넓은 집을 얻고자 애를 쓴 것이 아니다. 남들보다 비싼 자동차와 좋은 옷을 입고자 치열하게 살아왔던 것은 더더욱 아니다. 낯선 세계의 도전은 고사하고, 세 목숨 부지하고자 일을 찾아 애가 탈 뿐이었다.

 두 딸의 손을 잡고 마주한 세상은 녹록치 않았다. 누구에게도 허둥대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때론 오기도 부렸다. 매순간 강해지고자 마음을 다잡았고, 그래도 두려움이 일면 들길을 달려 마음을 다독였다. 하지만, 스스로 생계란 목숨줄에 친친 감겨 벗어나지 못한 채 제자리를 맴돌았다. 나에게 수탉의 거침없는 도전이 절실하던 터였다.

 생명 앞에선 미물인 닭도 인간과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알을 품은 어미 닭은 모이를 먹을 때 외엔 둥지를 떠나지 않는다. 심지어 잠을 잘 때도 알을 품은 채로 잠이 든다. 새끼 외에 그 어떤 것도 욕심내지 않는다. 오직 알이 깨어 병아리가 되기를 염원할 뿐이다. 나 또한, 아이들을 온전히 지키고자 개인의 삶은 세상 밖으로 내던졌다. 어설픈 감상이나 불평불만을 할 여유도 없었고, 한낱 감정 타령은 사치라고 여겼다. 가장의 빈자리와 세 명의 목숨을 위하여 옥석을 가릴 여유가 없었다. 지난한 환경이 홀로 두 아이를 키우기에 역부족이었지만, 어미의 역할을 포기할 수 없었다.

 

  다행히 두 딸은 부족한 보살핌에도 밝은 모습으로 자랐다. 새벽일을 마치고 돌아와 서둘러 아침을 준비하였다. 아이들에게 부족한 사랑을 아침밥으로 대신이라도 할 양 바지런을 떨었다. 그렇게 다시 일터로 부리나케 향하던 참이었다. 먼지가 뽀얀 자동차 유리창에 언뜻 무언가 보였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가로등 불빛에 보이는 것은 ‘엄마 사랑해!’라고 또박또박 써놓은 문자였다.

 작은 녀석의 필체였다. 평소 표현이 적어 ‘시크소녀’라고 부르는 녀석에게 사랑 고백을 받으니 가슴이 뭉클했다. 아마도 학교를 마치고 오던 길에 적어놓았으리라. 병아리만 같았던 딸아이가 벌써 어미를 위로해 줄 정도로 성장한 것 같아 기특하였다. 딸의 무언의 표현은 천근같이 무거운 몸을 일으켜 새벽길을 달려도 지치지 않을 활력소가 되었다. 꿈쩍하지 않을 것 같았던 시간은 거침없이 흘러갔다.

 큰 딸이 둥지를 떠나던 날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안정된 직장을 마다하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겠단다. 처음엔 무모하다고 생각했다. 경쟁이 치열한 광고계에 뛰어든 아이가 불안하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아이가 대학 시절 내내 몰입하던 분야였기 때문이다. 딸은 내로라하는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고 외국 연수도 다녀왔다. 그러나 자신의 꿈을 접고 직장을 택한 건 엄마와 동생을 염려한 결과였으리라.

 딸은 대입시험 준비도 홀로 무진 애를 썼다. 엄마의 경제적 짐을 덜어주고자 학원도 가지 않던 녀석이었다. 수능시험을 몇 달 앞둔 어느 날 독서실에 가고 싶다고 말하였다. 최선의 노력을 한 다음에야 다른 대안을 찾는 아이인지라 이번 일도 쉬이 결정하진 않았으리라. 그렇게 딸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었다.

 내 눈에 사회자로 선 딸의 모습이 제일 먼저 들어왔다. 연말 회사에서 주관하는 소외된 이웃을 위한 자선경매 자리였다. 큰 무대는 아니었지만, 자신의 자리를 굳히는 딸이 기특하였다. 아비의 부재와 어미의 나약함에 큰아이는 스스로 자신을 지키고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였나 보다. 막막한 현실을 탈출하고픈 의지는 누구보다 강했으리라. 그 덕분인가, 자신의 미래를 지키고자 도전하는 발길에 거침이 없었다. 과연 엄마보다 용기가 넘쳤다.

 딸의 모습은 좌중을 이끌고 있었다. 그날 자선행사가 대성황이었다며 보내온 영상에는 마치 수탉이 풀밭을 누리듯 활기가 느껴졌다. 아마도 행사를 준비하고자 녀석은 많은 시간 무던히 애를 썼으리라. 딸의 당찬 모습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삶이 고단하다고 절망하지 않아 고맙다. 단단한 세상의 철조망을 뚫고자 도전을 포기하지 않아 고맙다.’라고 딸에게 말하듯 중얼거렸다. 아이는 이제 걱정하지 말고 용기를 내라는 듯 화면 가득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내가 머문 세상을 돌아본다. 나는 한 동안 세상 속 두려움이란 감옥에 자신을 유폐시킨 듯싶다. 두려움은 실상 그 높이가 아닐지도 모른다. 차마 그 깊이를 바라보지 못하고 지레짐작 느끼는 공포감이리라. 수탉의 탈출과 딸의 거침없는 모습이 나를 일깨운다. 이제 딸들에게 진정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마음 깊이 숨죽인 모든 감각과 의지를 일깨우리라. 꿈을 마음껏 펼쳐 보고픈 강한 의욕이 불붙듯 일어난다.

 마당을 가로지르는 수탉의 자태가 늠름하다. 먹이를 사냥하고자 흙을 헤집는 발길질에도 힘이 넘친다. 울안에만 머물렀다면, 흙 속 산해진미와 새싹의 향긋함을 어찌 맛보았겠는가. 비록 수탉의 일생이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고 하나 삶을 선택할 권리는 오직 자신에게만 있다. 불굴의 도전이 있었기에 울안이 아닌 풀밭의 터전을 얻은 셈이다.

 용기도 절망도 자신의 마음에 달려 있다. 삶에서 쉽게 얻어지는 것이 어디 있으랴. 고통의 원인은 누구보다 본인이 잘 알고 있으리라. 그러니 극복하는 일 또한, 스스로 감당해야만 한다. 모난 돌이 몽돌이 되기까지는 거친 물길에 쓸리고 부딪히는 고난의 시간을 이겨내야 한다. 머물러 주춤거린다면 무엇 하나 얻을 수 없으리라. 수탉의 몸부림에서 포기하지 않고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거침없는 도전정신을 깨우친다.

 세상은 두려움이 아닌 도전의 장이다. 웅덩이에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다. 끝없이 물길을 다독여 강으로 바다로 주저 없이 나아가야만 한다. 저기 붉은 볏을 꼿꼿이 세운 수탉이 걸어오고 있다. 마치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한 딸들이 엄마에게 걸어오는 모습만 같다. 이제 딸들에게 나의 참모습을 보여 줄 차례이다. 가슴에 품은 꿈을 향하여 신발 끈을 단단히 묶는다.

 

▲ 이인숙 씨 당선 소감

당선 전화를 받는 순간, 마음속 음지에 웅크리던 내가 밝은 빛으로 걸어 나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외롭지 않은 삶을 위한 유대인의 지혜’에선 ‘온전히 그 슬픔의 감정을 말할 수 있도록 들어준다.’라고 했지요.

수필 속에서 제 모습이 그랬습니다. 전국의 명소나 사찰, 전시회를 데리고 다니며 ‘많이 보고, 읽고, 듣고, 깊이 사유하여 좋은 수필을 쓰자.’고 가슴에 묻어둔 언어를 꺼내 글로 표현할 수 있도록 지도해주신 이은희 작가님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 좋은 수필을 쓰도록 도전의 기회를 열어준 전북도민일보 관계자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독자와 소통하며 서로의 삶을 응원하는 글을 낳도록 정진하겠습니다.
 

▲ 김경희 수필가 심사평 “삶의 본질적인 울림이 큰 작품”

그동안 수필이 양적 만족감은 맛보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수직적인 질적 상승에 따른 문학 장르적 신분 상승 차원에서는 아쉬움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 마음을 안고 응모작품 앞에 앉으며 내 가슴은 설레고 무거웠다. 반면 대어를 낚는 어부의 손맛 같은 것을 은근히 기대했다.

심사가 끝난 뒤 알게 된 사실이지만, 경기 고양, 광명, 경북 칠곡, 청도, 영덕, 포항, 대구, 부산, 충남 천안, 전남 나주, 캐나다 그리고 전북의 각 시군에서 150여 명의 응모자들이 보낸 작품이 책상머리에 가득 쌓여 있었다. 나는 속으로 ‘이 사람들이 ‘전북도민일보’가 1988년 언론민주화 이후 도민 주식으로 창간되어 그 이미지를 잘 가꾸어 가는 언론사로서의 공정함을 알고 있는 것인가?’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어서 이름 대신 번호만 기재된 작품을 한 편 한 편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이른 시간부터 늦은 시간까지 응모작품과 씨름하듯 집중하여 읽고 또 읽었다. 문학 작품은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에게나 인간으로서의 자기 증명이라고 했다. 서로가 성실한 자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고민 없이 ‘이거야! 자연산 활어 같은 언어 감각이요. 삶의 질서가 녹아 있는 작품’ 그게 바로 이것이야! 라고 말할 수 있는 작품이 나타나기를 기대했다.

응모자의 400여 편에 이르는 작품에서 일곱 편을 건졌다. 그리고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묘한 일이었다. 일곱 사람 모두 거주지가 달랐다. 청주 전주 광주 대전 울산 서울 대구이었다. 최종심에 오른 세 명은「수탉의 도전」과 「사람의 노래」와 「숫눈길」의 응모자이었다. 그중에서도 「수탉의 도전」은 문장의 은유법이 돋보였다. 눈물 어린 삶 속에서도 그늘 없이 사회적 희망을 살아내는 작가의 정리된 영혼이 아름다웠다. 어두운 배경인데도 화사한 문장의 표현 기법과 문학적 새로운 감각이 느껴졌다. 때문에 「수탉의 도전」을 당선작으로 미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응모한 모든 분에게 당선의 기회를 주지 못한다는 데 있어 마음 무겁다. 많은 분에게서 수필을 고민하고 심혈을 기울인 내공이 느껴졌다. 그러나 지나치게 안정적인 글쓰기가 흠결이라면 흠이었다. 그런 면에서 당선자는 살아 있는 작가로서 힘차게 뛰는 심장 소리로 수필계의 희망이 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언어의 부림에 있어서는 단어의 성격과 글꼴까지를 자세히 검증하고 성찰하여 문학성 풍부한 수필을 생산하는 수필가이어야 할 것이다. 이어서 늠연한 자세로 세월이 푹 고아낸 곰국 같은 글맛의 수필을 창작하는 수필가로 다시 태어나야 할 것이다. 위해서는 응모자가 「수탉의 도전」마지막 문장에서 밝혔듯 해현경장(解弦更張)이라, 거문고 줄 다시 조이듯 들메끈을 고쳐 매는 자세이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오늘의 영광을 안겨 준 전북도민일보에 대한 애정이 변하지 않기를 당부하며 축하드린다.


▲남계(南谿) 김경희 수필가

前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전북위원회 회장
수필집 <징의 침묵 · 도공과 작가 · 내 생명의 무늬 · 사람과 수필이야기>외
현대수필가 100인선 (좋은수필사) <나이의 무게> 기행수필 <아름다운 성지순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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