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공원 나들이

2019.01.03 05:11

곽창선 조회 수:6

 화산공원 나들이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곽창선

 

 

 

 전주 화산공원은 원래부터 꽃이 많이 피고 수종이 풍부해서 시민들의 사랑을 받아 온 곳이다. 그래서 화산華山이라 불렀단다. 등산로가 완만하고 산책하기 좋아 시민들이 즐겨 찾는 힐 링공간으로 언제나 길 곳곳이 좁을 지경이다. 시내 중앙에 어머니 젖무덤처럼 봉곳하고 완만하게 뻗어 올랐다. 동서로 마주하며 동은 덕진구와 전주천을, 서쪽으로는 효자천과 완산구를 품고 전주의 역사를 지켜보고 있다.  

 

 요즘은 변화무쌍한 자연계의 변덕 때문인지 기상관측도 오보가 많다. 극성스런 날씨 탓으로 집안에만 있으려니 갑갑했다. 다행히 오늘은 추위가 없고 미세먼지도 양호하다는 소식이다.  산책을 하려고 밖에 나가는데 아내가 불러 새웠다. 내 모습을 살피더니 지팡이와 마스크를 쥐어주며 멀리 가지 말고 넘어지지 않도록 하라는 등 잔소리를 했다. 아내의 점검과 주의사항(?)을 듣고 집을 나섰다. 완산칠봉을 다녀올까 하다가 아내의 당부도 있어 집앞 화산공원으로 갔다. 나이가 들다보니 가벼운 추위나 더위에도 나약해진다. 추워지면 대부분 반갑지 않은 대사증후군이 찾아들어 호시탐탐 노리니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순간의 방심 속에 수많은 사람들이 쓰러져 후유증으로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나도 이런 증상이 있어 투약과 운동을 겸한 식이요법으로 다스리는 중이다. 아내의 잔소리가 심한 이유 중 하나다.  

 

 서신교를 지나 화산공원 입구에 다다랐다. 가파른 곳을 피하여 우신 빌라 쪽 완만한 길을 따라 올랐다. 중간쯤 오르다 보니 양지 바른 곳 떡갈나무에 마지막 잎이 떠나지 못하고 바람에 시달리는 모습에 눈이 끌려 발길을 멈추었다. 홀로 사투를 벌이는 모습에서 인생의 마지막 길을 보는 듯했다. 한 시절을 구가하고 뽐내며 누렸건만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모두 무리지어 떠나는 모습이 왠지 씁쓸하다. 햇빛을 받은 그 빛깔은 정겹고 나뒹구는 모습은 처량하기 그지없다. 마지막 온몸을 불태워 헐벗은 가지에 자양분이 되어 봄동산을 부르는 마중물이 되어, 봄이 되면 이곳에서 다시 만나리라. 정자 옆 멋진 소나무의 정답던 비둘기 한 쌍 간데없고, 빈 둥지만 스산하게 손님들을 맞이한다. 수북하게 쌓인 낙엽을 밟고 걸으니 사각거리는 소리에서 가냘픈 봄소식을 듣는다.

 

 "안녕 하세요?"

 "오랜 만입니다."

 산상에 위치한 모정을 주름 잡는 전직 K기자와 일행들이다. 평소 내 건강을 염려 해주시던 고마운 분들이다. 팔십 줄에 들어선 분들인데 건강관리를 잘해서 매우 활동적이다. 이 분들은 산상에서 그럴 듯한 소재로 정마을 이끌어 간다. 정자 둘레에 10여 명의 산객들이 모이면 세상사를 안주 삼아 갑론을박하며 자못 위기감이 돌 때도 있으나 슬기롭게 웃어넘기는 재기들이 가슴 졸이게 한다. 어깨 넘어로 듣는 귀동냥이 쏠쏠하다. 오늘은 현 시국에 대한 소회를 곁들인 풍자로 ‘들쥐들의 광란이라’ 며 껄껄거리던 웃음소리가 귓가에 멤돈다.

 

  숲 사이사이에 숨은 듯 솟아오른 무연고 무덤들이 보인다. 오늘 따라 친근한 감이 든다. 여름에는 잡풀과 나무에 휩싸여 황량하기 짝이 없었으나 풀잎이 지고 낙엽으로 뒤덮인 모습은 한결 단정하다. 가난 때문에 어쩔 수 없어 남 몰래 매장한 주검들이다. 묘지난으로 신음하는 요즈음 추세로 보아 수목장이 성행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이곳 무덤들은 가난이 점지해준 선견지명이었다. 이렇게 산자수려한 시민들의 쉼터에 느긋이 자리하고 있으니 명당이 아닌가? 이제 가난의 질곡에서 시달릴 염려도 없이 영면을 누리기 때문이다. 오직 드높은 하늘과 햇볕과 바람, 구름을 벗삼아 꽃이 피고 숲이 되어 어울릴 뿐이다. 중국의 시인 이백의 산중문답 ‘門如何事恓壁山 ,,,,,,,, 非人間‘ 이란 싯구가 고요히 마음에 흐른다.

 

  정상에서 본 모악산이 오늘따라 선명하다. 심호흡을 길게 하고 사방을 둘러보니 한눈에 시내를 조망할 수 있어 흐뭇하다. 아쉬운 듯 가슴이 열린 시내 곳곳의 속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보인다. 화산공원과 다가공원은 일란성 쌍둥이 산이다. 호남 기독신앙의 샘터 같은 곳이다. 다가교 건너에 선교백주년을 이룬 서문교회, 김가전 목사와 기미독립만세의 주역 신흥, 기전학교며 의료봉사의 모테 예수병원이 자리하고 있다. 이들은 상호 유기적으로 협력하여 호남지역의 독립운동과 만세삼창의 횃불을 당긴 주역들이다.

  다가 산에 자리 잡은 신궁 참배를 거부하며 저항한 신흥, 기전 두 학교는 폐교처분을 당했는데 신궁을 부수고 충혼탑을 건립한 것은 매우 잘된 선택이었다. 요즘 호국운동의 열기가 식어가는 현실이 답답한지 우뚝 솟은 충혼탑은 빛을 잃어 우중충하다. 새롭게 가꾸어 민족혼을 일깨우는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산 아래로는 전주천이 유유히 흐른다. 물줄기는 시내를 가로 질러 서해로 흐르고 흐르며 언제나 시민들의 마음을 씻어줄 것이다. 바람이 차게 느껴지지 앉는다. 한가롭게  걷고 생각할 수 있어 즐거운 시간이었다. 답답하던 몸과 마음이 바람에 씻긴 듯 개운하다. 저 멀리 모악산이 옅은 미소를 짓는 것 같다. 

                                                  (2018.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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