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철한 직업의식

2019.07.01 18:28

김성은 조회 수:4

투철한 직업의식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김성은

 

 

 

 

 

 618일은 전북보성원 개원기념일이다. 1953년에 헐벗은 시각장애인들의 주거 시설로 고 권태용 목사님께서 설립하신 보성원에는 현재 46명 가량의 생활인이 살고 있다. 개원을 기념하기 위해 같은 법인 내 덕암, 보성원 그리고 전북맹아학교 식구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사장님께서는 시각장애인도 양질의 교육을 받는다면 얼마든지 어엿한 사회인으로 자립할 수 있다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들의 끊임 없는 전문성 개발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셨다. 특정 직종에서 오랜 세월 몸담고 일한 실무자들에게는 고유의 노련미가 묻어난다.

 

  지난 4월 우연히 전주소리문화의전당에서 열린 ‘김재동 토크 콘서트’에 다녀왔다언변 좋기로 소문난 김재동이었지만 혼자서 3시간 남짓 단독 공연을 어떻게 끌고 갈 지 궁금했다. 내심 지루하지나 않을까 염려하며 자리를 잡았다.

 1인 당 10만원에 육박하는 관람료가 기실 만만치 않은 금액이었음에도 객석은 2층까지 붐볐다. 씨즌 9의 인기를 증명하듯 관객들은 어디까지나 자발적으로 돈과 시간을 투자하고 있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카메라맨은 관객들의 표정을 생중계 했고, 곳곳에서 폭소가 터졌다. 주인공이 등장하기도 전에 장내는 관객들의 열기로 달아 올랐다.김재동은 노련하고 여유있게 무대를 이끌었다. 무릎을 꿇고 앉은 자세로 헌법 전문을 줄줄이 읊기도 했고, 직접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가 하면, 귀가하는 관객들에게 따끈따끈한 백설기를 선사하기도 했다.

 성의 있게 고객을 대접한다는 느낌을 받았고, 무엇보다 그의 치밀한 준비에 나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혼자서 무려 세 시간을 말하고 노래하는 동안 그는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았다. 정치적 발언으로 종종 신문과 방송에서 그의 이름을 목격하지 않았던가? 적어도 게그맨으로서 그의 자부심과 능력은 탁월했다. 마음만 먹으면 객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 중 서넛 정도는 웃다가 죽게 만들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는 넉살도 밉지 않았다.

 

 세 자매가 일본 여행을 함께 했을 때 가이드는 50대 중반의 관록 있는 여성이었다. 대학 때부터 일본에서 유학했고 이제껏 수도 없이 일본을 오갔다며 전투적으로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설파했다. 국가적으로 큰 슬픔이 된 헝가리 유람선 침몰 사고를 당한 여행사 직원이었던 만큼 가이드는 안전에 대한 촉수가 예민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현지에서 우리를 마주하자마자 어떤 사고에도 여행사는 책임이 없다는 고지서에 사인을 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헝가리 사고 당시 가이드가 죽지 않고 살아났다면 더 큰 곤욕을 치렀을 거라는 자조도 서슴치 않았다.

 그녀는 일본어에 능통했고 해박했다. 2시간이 넘는 이동 거리를 쉴새 없이 말할 수 있을만큼 소재의 스팩트럼이 넓었다. 30년이 넘도록 가이드 생활을 하면서 온갖 풍파를 다 겪은 처연함 같은 것이 느껴지는 태도였다. 자신감이 넘치고 당당한 그녀의 언변은 막힘이 없었다. 일본에 대하여 너무 익숙해서였을까? 정작 고객들이 궁금해하는 사소한 질문에는 말끝을 흐리는 모습이 민망했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여행 일정을 사전에 검토하지 않았다는 것을, 숙소의 규모나 온천 설비 등에 대한 구체적 정보를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새내기 가이드라면 결코 범할 수 없는 과오였다. 본인의 경력과 경험을 믿은 나머지 그녀는 사전 준비를 하지 않고 여행에 임했던 거다. 긴장감이 완전히 풀려 버린 경력자의 태만함을 나는 누구보다 민감하게 포착해 냈다.

 나도 자행한 적이 있는 경력자의 무모하고도 부끄러운 나태함이었으므로. 그녀 개인의 일본에 대한 경험과 지식은 중요치 않았다. 일본을 처음 접하는 여행객들에게 최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그녀의 책무 아니겠는가? 그녀는 여행객들 앞에 개인의 지식을 뽐내기 바빠 정작 직업인으로서의 임무를 잊고 있었다. 일행들이 식사도 마치기 전에 가이드가 먼저 자리를 뜨기도 했고, 노천이 어디 있는지, 어떻게 이용하는지에 대한 안내도 없어 우리 세 자매는 직접 일본인 직원에게 문의하여 숙소 부대 시설을 향유했었다.

 

 ‘남극의 눈물’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송인혁 PD가 쓴 책을 읽었다. 그는 황제펭귄의 생태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 무려 1년 동안 추운 남극에 머물렀다. 동상에 걸려서 얼굴이 터지고 피부 곳곳에서 피가 나는가 하면, 촬영에 착수하기 전 유서를 썼다고도 했다. 그의 열정은 기꺼이 목숨을 담보로 한 도전이었다. ‘아마존의 눈물, 아 에베레스트, 대하 드라마 대장금· 이산, 베토벤 바이러스’ 등의 감동적인 작품들은 진정한 프로 송인혁 PD의 피땀이었다. 그렇다면 17년차 특수교사인 나는 어떤 교사인가? 송인혁 PD의 열정을 감히 흉내라도 낼 수 있을까?

 

 김재동의 그 치밀한 기획과 준비, 정성과 집념, 소신과 성의를, 나는 내 수업시간에 과연 얼마나 쏟았던가? 돌이켜 보니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을 뿐이었다.

                                                                                              (20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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