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장환論
2003.04.30 10:18
1. 서론.
김기림이 오장환을 가리켜 아름다운 환상과 직관을 가진 시인이라고 했다. 열아홉에 첫시집 <성벽>을 내는 등 뛰어난 재능을 보여준 오장환의 활동은 1936년 서정주, 김동리, 여상현, 함형수 등과 시인부락 동인으로 참여하며 본격화된다. 이후, <헌사> <나 사는 곳> <병든 서울>과 역시집 <에세-닌 시집> 등과 같은 오장환의 시작활동은 우리 현대시사에서 큰 공적이 아닐 수 없다.
2. <목욕간> 등과 습작기의 활동
오장환의 시작 활동은 1933년 11월호 <조선문학>에 실린 <목욕간>과 1934년 <캐매라.룸> <전쟁> 등에서 비롯된다. 이들에서 드러나는 공통점은 전통관념과 낡은 인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진보적 사상이다. 특히 <전쟁>은 4백자 원고지로 36장이나 되는 장시로서, 생경한 관념어와 이미지 및 원색어를 구사하고 있으나, 후에 전개될 시인의 특유한 시적 요소들이 담겨져 있는 매우 중요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3. 전통의 거부반응과 퇴폐적 경향-1
시인의 전통에 대한 거부반응은 그 자신 서출의 신분으로 태어난 것과 무관하지 않은 듯 보인다. 이는 1936년 조선일보에 발표된 <姓氏譜>(성씨보)에 잘 드러나 있다. 그래서인지 오장환의 시에서 宗家의 모티프는 매우 중요한데, 첫 시집 <성벽>의 제목도 원래는 <宗家>로 기획되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유교적 전통의 낡은 관습에 대한 시인의 거부반응은 1936년 11월에 실린 <旌門>(정문)에 이르러 절정에 달하고, 결국 전통적인 모든 것은 진보를 가로막는 장애요소가 된다. <정문>은 지방에서 열녀가 태어나거나 충절을 지키는 유교적 풍습에 따라 세워주는 열녀문 같은 것이다. 따라서, 그는 과거를 회고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겨진 모순성을 비판하고 있다.
오장환의 초기시에서 병적 관능과 퇴폐성은 전통 및 낡은 유습에 대한 거부반응과 함께 또 다른 하나의 특색이 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집과 고향을 뛰쳐 나오는 방랑과 행려의식을 보여준다. 이들은 <海港圖>(해항도), <賣淫婦>(매음부), <海獸>(해수) 등에서 잘 드러나고 있는데, 이 시편들에서 보여지는 풍경은 곧 시인의 내면풍경이다. 김기림 시인이 말하기를 정지용 시인에게서 아름다운 어휘를 보고, 이상에게서 이미지를 보았다면 백석에게서 어두운 동양의 신화를 찾았다고 했다. 보를레르의 영향을 받은 오장환에게 이르러 시의 전통을 이루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또한 시인은 불법과 폭력이 난무하고 위선적인 삶을 영위하는 도시에서 좌절하기도 하는데, 결국 그곳에서 시인은 자신의 입지를 마련하지 못하고 방황하게 된다.
4. 죽음 의식과 고향회귀의 관념-1
1939년 두 번째 시집 <獻詞>(헌사)와 다음 시집 <나 사는 곳>의 일부에서 보여주는 오장환의 시적 테마는 의식의 황폐화에 따른 민족관념과 죽음 및 묘지, 카인의 후예로서 악마주의와 원죄의식, 그리고 그가 회귀에 가려고 했던 고향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는 먼저 작품 <荒蕪地>(황무지)에서 잘 보여주고 있는데, 이런 절망적인 상황은 곧바로 민족관념과 연계되어 그 시대 우리 민족의 암울한 역사를 고발하기도 한다. 이는 죽음과 묘지에 대한 관념으로 그 사고를 더욱더 깊이 확대해가며, 결국 삶의 비애와 정감적 속성으로 형상화되어 서정적 극치를 보이고 있다. 오장환의 시중 <마지막 기차>와 <불길한 노래>에서 자신의 표상을 보여주며 부랑의식은 카인적인 악마주의와 연계된다. 그리고 이런 악마주의의 이면에는 살아있는 모든 것은 죽음으로 향해 간다는 허무의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후에는 그 내용이나 주제의식이 보다 심화 확대된 기독교사상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이를 통해 영원회귀사상을 보여주기도 하고,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을 보여주기도 하고, 잃어버렸던 육체성의 회복을 노래하기도 한다. <할렐루야>에서는 기독교 의식이 드러나며 신앙으로 퇴폐적이고 어두움에서 이겨내려는 변모를 보였다. 오장환의 시에서 고향과 관련된 이미지는 강물로 나타난다. 그런데 큰 홍수로 어두운 밤을 휩쓸고 가는 거친 몸짓으로 표현된 점이 또 특이하다.
<山峽>(산협)이라는 시에 오면 젊음의 정열과 병적 관능 및 퇴폐성과는 달리 사물을 관조하고 인간의 삶을 순리적으로 보려는 성숙한 태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5. 해방공간의 환희와 좌경적 이념의 추구-1
광복과 함께 오장환은 크게 시적 전환을 기도한다.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우리 라는 공동체 의식을 바탕으로 현실 참여의식이 강해진 것이다. 그러나 이후에는 사회주의사상에 기울기도 한다. 먼저 그는 <八月十五日의 노래> 등에서 광복의 감격과 환희를 즉흥적으로 노래한다. 그러나 이도 잠시, 시인은 <깽> <찬가> 등을 발표하며 계속되는 정국의 혼란 속에서 좌경적 이념의 징후성을 보여주는 시를 창작하고 있다. 1946년 초에 오면 오장환은 거의 좌경적 이념을 표방해서 시를 쓴다. 이는 <共靑(공청)으로 가는 길>에서 새로운 공동체에 참여하려는 의지를 드러냄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공청이란 공산주의 청년동맹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후 그는 월북을 하게 되고, 월북 후 발표한 <二月의 노래>를 보면 심화된 사회주의 사상을 고무 찬양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나 사는 곳>과 <병든 서울>을 통해 조선문학동맹은 조선시의 새로운 발전과 확고한 가능성을 창조적으로 표현했다고 했다. 해방을 맞이하는 날 늑막염으로 병원에서 맞는다. 오장환은 민족 공동체 의식을 노래했으며 좌경적 이념과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하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다. 작품으로는 <지도자>, <종소리>등을 통해 새로운 나라를 건설되기를 바라는 염원이 그려내고 있다.
반면, 고향과 어머니의 사랑을 나타낸 작품도 상당수가 있다. 경기도 안성 출신의 대표적 시인인 조병화와 정진규와 오장환이 있다. 원래 고향은 충청도 해인이라는 곳이지만 그곳은 강물이 없다. 강물이 흐르는 안성에서 자랐다. <고향 가는 길> <붉은 산>에서 고향으로의 향수를 그렸다. 이는 인간애의 보편적 속성으로서 고향과 깊은 연관이 있는 어머니를 노래함으로써 새로운 생명력을 가진 고향을 보여주고 있다.
오장환은 습작기의 시작품에서 이미 낡은 전통을 거부하는 징후를 보여주고 있다. 이후 시집을 발표하면서, 병적 관능과 퇴폐성에 빠져드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는 낡은 전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방랑과 행려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의식의 황폐화는 죽음과 묘지, 카인의 후예로서의 악마주의와 원죄의식과 결부되어 나타나기도 하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다가 해방 이후에는 해방의 감격을 보여주다가 사회주의에 경도된 공동체적 의식을 드러내고 마침내는 월북을 하고 말지만, 그의 시의 본령은 초. 중기의 시작품에서 잘 드러난 서정성에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김기림이 오장환을 가리켜 아름다운 환상과 직관을 가진 시인이라고 했다. 열아홉에 첫시집 <성벽>을 내는 등 뛰어난 재능을 보여준 오장환의 활동은 1936년 서정주, 김동리, 여상현, 함형수 등과 시인부락 동인으로 참여하며 본격화된다. 이후, <헌사> <나 사는 곳> <병든 서울>과 역시집 <에세-닌 시집> 등과 같은 오장환의 시작활동은 우리 현대시사에서 큰 공적이 아닐 수 없다.
2. <목욕간> 등과 습작기의 활동
오장환의 시작 활동은 1933년 11월호 <조선문학>에 실린 <목욕간>과 1934년 <캐매라.룸> <전쟁> 등에서 비롯된다. 이들에서 드러나는 공통점은 전통관념과 낡은 인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진보적 사상이다. 특히 <전쟁>은 4백자 원고지로 36장이나 되는 장시로서, 생경한 관념어와 이미지 및 원색어를 구사하고 있으나, 후에 전개될 시인의 특유한 시적 요소들이 담겨져 있는 매우 중요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3. 전통의 거부반응과 퇴폐적 경향-1
시인의 전통에 대한 거부반응은 그 자신 서출의 신분으로 태어난 것과 무관하지 않은 듯 보인다. 이는 1936년 조선일보에 발표된 <姓氏譜>(성씨보)에 잘 드러나 있다. 그래서인지 오장환의 시에서 宗家의 모티프는 매우 중요한데, 첫 시집 <성벽>의 제목도 원래는 <宗家>로 기획되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유교적 전통의 낡은 관습에 대한 시인의 거부반응은 1936년 11월에 실린 <旌門>(정문)에 이르러 절정에 달하고, 결국 전통적인 모든 것은 진보를 가로막는 장애요소가 된다. <정문>은 지방에서 열녀가 태어나거나 충절을 지키는 유교적 풍습에 따라 세워주는 열녀문 같은 것이다. 따라서, 그는 과거를 회고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겨진 모순성을 비판하고 있다.
오장환의 초기시에서 병적 관능과 퇴폐성은 전통 및 낡은 유습에 대한 거부반응과 함께 또 다른 하나의 특색이 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집과 고향을 뛰쳐 나오는 방랑과 행려의식을 보여준다. 이들은 <海港圖>(해항도), <賣淫婦>(매음부), <海獸>(해수) 등에서 잘 드러나고 있는데, 이 시편들에서 보여지는 풍경은 곧 시인의 내면풍경이다. 김기림 시인이 말하기를 정지용 시인에게서 아름다운 어휘를 보고, 이상에게서 이미지를 보았다면 백석에게서 어두운 동양의 신화를 찾았다고 했다. 보를레르의 영향을 받은 오장환에게 이르러 시의 전통을 이루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또한 시인은 불법과 폭력이 난무하고 위선적인 삶을 영위하는 도시에서 좌절하기도 하는데, 결국 그곳에서 시인은 자신의 입지를 마련하지 못하고 방황하게 된다.
4. 죽음 의식과 고향회귀의 관념-1
1939년 두 번째 시집 <獻詞>(헌사)와 다음 시집 <나 사는 곳>의 일부에서 보여주는 오장환의 시적 테마는 의식의 황폐화에 따른 민족관념과 죽음 및 묘지, 카인의 후예로서 악마주의와 원죄의식, 그리고 그가 회귀에 가려고 했던 고향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는 먼저 작품 <荒蕪地>(황무지)에서 잘 보여주고 있는데, 이런 절망적인 상황은 곧바로 민족관념과 연계되어 그 시대 우리 민족의 암울한 역사를 고발하기도 한다. 이는 죽음과 묘지에 대한 관념으로 그 사고를 더욱더 깊이 확대해가며, 결국 삶의 비애와 정감적 속성으로 형상화되어 서정적 극치를 보이고 있다. 오장환의 시중 <마지막 기차>와 <불길한 노래>에서 자신의 표상을 보여주며 부랑의식은 카인적인 악마주의와 연계된다. 그리고 이런 악마주의의 이면에는 살아있는 모든 것은 죽음으로 향해 간다는 허무의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후에는 그 내용이나 주제의식이 보다 심화 확대된 기독교사상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이를 통해 영원회귀사상을 보여주기도 하고,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을 보여주기도 하고, 잃어버렸던 육체성의 회복을 노래하기도 한다. <할렐루야>에서는 기독교 의식이 드러나며 신앙으로 퇴폐적이고 어두움에서 이겨내려는 변모를 보였다. 오장환의 시에서 고향과 관련된 이미지는 강물로 나타난다. 그런데 큰 홍수로 어두운 밤을 휩쓸고 가는 거친 몸짓으로 표현된 점이 또 특이하다.
<山峽>(산협)이라는 시에 오면 젊음의 정열과 병적 관능 및 퇴폐성과는 달리 사물을 관조하고 인간의 삶을 순리적으로 보려는 성숙한 태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5. 해방공간의 환희와 좌경적 이념의 추구-1
광복과 함께 오장환은 크게 시적 전환을 기도한다.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우리 라는 공동체 의식을 바탕으로 현실 참여의식이 강해진 것이다. 그러나 이후에는 사회주의사상에 기울기도 한다. 먼저 그는 <八月十五日의 노래> 등에서 광복의 감격과 환희를 즉흥적으로 노래한다. 그러나 이도 잠시, 시인은 <깽> <찬가> 등을 발표하며 계속되는 정국의 혼란 속에서 좌경적 이념의 징후성을 보여주는 시를 창작하고 있다. 1946년 초에 오면 오장환은 거의 좌경적 이념을 표방해서 시를 쓴다. 이는 <共靑(공청)으로 가는 길>에서 새로운 공동체에 참여하려는 의지를 드러냄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공청이란 공산주의 청년동맹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후 그는 월북을 하게 되고, 월북 후 발표한 <二月의 노래>를 보면 심화된 사회주의 사상을 고무 찬양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나 사는 곳>과 <병든 서울>을 통해 조선문학동맹은 조선시의 새로운 발전과 확고한 가능성을 창조적으로 표현했다고 했다. 해방을 맞이하는 날 늑막염으로 병원에서 맞는다. 오장환은 민족 공동체 의식을 노래했으며 좌경적 이념과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하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다. 작품으로는 <지도자>, <종소리>등을 통해 새로운 나라를 건설되기를 바라는 염원이 그려내고 있다.
반면, 고향과 어머니의 사랑을 나타낸 작품도 상당수가 있다. 경기도 안성 출신의 대표적 시인인 조병화와 정진규와 오장환이 있다. 원래 고향은 충청도 해인이라는 곳이지만 그곳은 강물이 없다. 강물이 흐르는 안성에서 자랐다. <고향 가는 길> <붉은 산>에서 고향으로의 향수를 그렸다. 이는 인간애의 보편적 속성으로서 고향과 깊은 연관이 있는 어머니를 노래함으로써 새로운 생명력을 가진 고향을 보여주고 있다.
오장환은 습작기의 시작품에서 이미 낡은 전통을 거부하는 징후를 보여주고 있다. 이후 시집을 발표하면서, 병적 관능과 퇴폐성에 빠져드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는 낡은 전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방랑과 행려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의식의 황폐화는 죽음과 묘지, 카인의 후예로서의 악마주의와 원죄의식과 결부되어 나타나기도 하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다가 해방 이후에는 해방의 감격을 보여주다가 사회주의에 경도된 공동체적 의식을 드러내고 마침내는 월북을 하고 말지만, 그의 시의 본령은 초. 중기의 시작품에서 잘 드러난 서정성에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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