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운영의 <바늘>
2003.06.08 09:21
감상문을 올려 봅니다.
1. 들어가며.
처음에 신춘문예(2000년 동아일보) 당선작이라는 것이 이유가 되어 재작년에 스치듯 본 것으로 기억한다. 그 때 내가 의문을 가졌던 것은 왜 제목을 '바늘'로 했을까 라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다. 내용을 보고 더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 바늘이기 보다 침이라고 했으면 어떠했을까? 또는 '바늘구멍으로 보는 저편의 세상'이라고 하면 어떨까 싶었다. 물론 주인공의 어머니가 옷을 수선할 때 쓰는 것은 바늘이다. 하지만 주인공이 쓰는 것은 문신을 새기는데 쓰이는 침의 종류로 머리부분에 구멍이 없는 것이 침의 종류이기 때문이다. 바늘과 침, 침은 바늘에 속하지만 바늘은 침에 속할 수 없고 용도도 확연하게 다르다. 어째든 세상을 살면서 좋든 싫든 인간관계가 어떻게든 성립되기 때문에 성별을 떠나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동물들과는 달리 인간은 인간과의 코드를 맞추며 살아가는 까닭이다, 바늘과 실처럼.
2. 작가의 구성 의도.
이 작품을 보면서 주인공의 인간관계와 프로정신에 입각한 직업정신의 심리적 갈등이 잘 나타내 진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주인공인 박영숙은 사람들의 몸에 문신(TATTOO)을 전문적으로 해 주는 사람으로 인물을 설정했다. 사회에서 보편적이고 일반적으로 설정되지 않고 툭 튀어나온 광대뼈와 곱추를 연상케 할 정도로 둥그렇게 붙은 목과 등의 살덩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목소리, 뭉뚝한 발가락 등 수려하지 않은 외모와 어눌한 성격을 그리고 있으며 내성적으로 많은 남자들이 그녀와 성행위조차 생각나지 않는 매력이 없는 여자로 묘사했다. 말까지 더듬으며 배와 가슴을 따라 급속 냉동되듯 마비증상이 오고, 결국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드러눕는 간질병환자다. 그리고 한국의 문화는 어떠한가? 문신을 하면 병역의무도 제외되는 어둠에서 활동하는 사회의 암적이거나 반하는 사람들의 특성이다. 사람과의 교류가 거의 없는 폐쇄적인 생활을 설정해 놓고 있다. 어느 남자의 몸에 골리앗 거미를 그려 넣는 그녀는 문신을 새기는 작업이 간접적 성행위의 전위를 느낄 만큼 심혈을 기울여 작업한다.
김형자라는 어머니가 주인공의 간질병을 고치기 위해 공양을 드리기 위해 절을 찾았고, 절에 있는 '미륵암'이라는 절의 스님의 살인사건에 깊숙이 관여된다. 갑자기 걸려 온 전화에 증인도 증거도 없는 현파라는 주지스님의 죽음을 그녀의 어머니가 죽였다고 자수한데서부터 까닭 모를 장면을 맞게된다. 주인공은 페미니즘적 인간관계를 스님과 어머니의 성행위도 있었을지 모를 것이라고 상상하게 된다. 왜 어머니는 스님을 죽였을까? 라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간질발작 증세가 나아지면서 절에서 내려온 모녀가 일상으로 돌아 온 듯 하지만 어머니는 꽤 많은 돈 뭉치를 남기고 스님의 옷을 만들어 다시 절로 들어갔다.
인물묘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아파트의 옆집에 사는 남자이다. 박영숙은 806호에 살고 그 남자는 801호에 산다. 쌀밥처럼 하얗고 말끔한 그의 얼굴로 연한 갈색을 띠는 눈은 꼭 고양이의 그것과 닮아 있다. 의심을 잔뜩 품은 눈. 순결을 바치기 직전에 소녀가 가지는 그런 눈을 가지고 있다. 전쟁기념관을 방문했을 때 어지럼증이 일자 전쟁 체험실을 갔다가 그 앞에서 매표소 직원으로 801호에 사는 그를 만났다. 발작의 전조증상과 같은 미세한 전율을 그것은 마치 어둠 속에서 사냥의 기회를 노리고 있는 맹수의 움직임과 같았다. 은밀하고 긴장된 숨소리. 뒷덜미에 소름이 돋는다. 두터운 귓불에 뜨뜻한 입김이 느껴진다. 숨소리는 점점 더 거칠고 빨라진다. 동시에 숨소리도 멎는다. 그와의 이성으로 생각하고 싶은 자신의 느낌을 그린 것 같다. 그는 어느 날 그녀의 아파트 초인종을 누른다. 그녀를 관찰한 것을 알게 되었고, 그는 군대에서 당한 성적 고통으로 이 세상은 강하거나 거세를 하고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녀에게 문신을 해 달라고 한다. 그에게 따뜻하고 보드라운 느낌을 받는다.
3. 추리적 전개상황과 주인공의 의문.
철공소에서 용접을 하는 김사장에게서 맡을 수 있는 냄새가 났다. 쇠의 비릿함과 땀내가 섞인 그런 냄새. 사장의 팔뚝에 그려진 칼은 아름다웠다. 사장을 따라 서울로 올라왔다. 어머니의 바늘을 가지고 옷감에 수를 놓았다면 그녀는 인간의 연약한 육체에 수를 놓겠다. 사장은 그녀의 탈피를 도와줄 빛이었다. 그녀가 문신을 하게 된 동기이다.
그녀는 절을 찾아가면서 스님을 죽인 것은 어머니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머니가 스님을 죽였다고 생각한 것은 기념관에 전시된 무기들처럼 실현 불가능한 살의는 인간의 내면세계에 일어나는 일에 불과할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남녀의 성행위 이전의 상상적 관계를 가지는 것처럼 많은 전쟁들이 미화되어 있었듯이, 스님의 아름다움을 지켜 주기 위해 누군가가 사건을 은폐시켰을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다. 부엌은 흐트러짐 없이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다. 수챗구멍에 밥알 하나조차 남아 있지 않다. 식칼이나 길고 뾰족한 젓가락, 무쇠로 만들어진 솥, 아궁이 속에서 불타는 나무, 한 번의 점화로 요사채를 날릴 수 있는 프레온 가스... . 마음만 먹는다면 무엇이든 살인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머니가 스님을 죽였을 만한 증거는 어디에도 없어 보인다. 그리고 어머니의 자살소식을 문형사한테서 듣는다. 사체는 금정산 계곡 하류에서 발견되었다. 시체 보관 실에 보관되어 있는 시신을 인수해 가라고 들었다. 수화기 속의 목소리는 명부(冥府)를 읽고 있는 저승사자의 것 같았다고 했다. 왜 그런 비보를 듣고도 먹던 음식을 계속 먹을 수 있을까? 나는 여기에 의심을 했다. 그러면 감정이 없어서였을까? 아니면 슬픈 감정의 동요를 느끼지 못할 만큼 예측하고 있었을까? 얄팍하게 썬 마늘을 고기 사이에 올린다. 기름이 불 위로 떨어져 방안 가득 단백질 탄내를 풍긴다. 육즙을 흡수한 마늘을 입 속에 넣는다. 덜 익은 마늘이 혀끝을 아릿하게 자극한다. 마늘을 씹으며 바위에 찢긴 그녀의 어머니의 모습을 상상한다. 그러나 상처투성이 여자의 하얀 알몸만 떠오를 뿐 어머니의 얼굴이 생각나지 않는다. 어머니는 여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절에서 가져온 어머니의 침낭과 바늘쌈 속에서 왜 스님의 머리카락이 나왔을까? "바늘을 잘게 잘라 매일 마시는 녹즙에 넣어 봐. 가늘고 뾰족한 바늘 조각은 내장을 휘돌아 다니면서 치명적인 상처들을 만들지. 혈관을 따라 심장에 이르면 맥박을 잠재우며 죽음을 부르는데, 아무런 외상도 없어."
이건 그녀의 어머니가 남긴 마지막 말이다. 세상이 힘들고 어려울 때 닥치면 복수라도 하듯 유언처럼 남긴 이 섬뜩한 말. 하지만 어머니가 죽이지 않아도 노후한 스님은 죽게 되었을 텐데 왜 실행을 했는지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801호에 사는 남자는 매일 저녁 승강기에서 내려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다. 길게 두 번 벨을 누르지 않아도 그가 그녀에게 오고 있다는 것을 안다. 발끝으로 사뿐히 걷는 발소리와 문 앞에서 내쉬는 깊은 숨소리를 느낄 수 있다. 그녀는 그의 가슴에 새끼손가락 만한 바늘 하나를 그려 주었다. 티타늄으로 그린 바늘은 어찌 보면 작은 틈새 같았다. 어린 여자아이의 성기 같은 얇은 틈새. 그 틈으로 우주가 빨려 들어갈 것 같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무기를 가슴에 품고 있다. 가장 얇으면서 가장 강하고 부드러운 바늘이 바로 그녀 자신인 것이다.
4. 결론.
주인공인 박영숙은 절에서 고양이를 죽일 만큼 잔인할 수도 있으며 프레온 가스를 이용해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도 알만큼 잔인한 면이 드러난다. 이것은 사회의 적응하지 못하고 평범하지 못한 태생과 신변의 일들이 어둡다는데 결론을 내린다. 그녀가 하는 일조차 조직폭력이나 일반인이라도 올바른 사고보다 강인해지려는 사람들의 표상처럼 문신을 해주는 역할이다. 신체적 결함과 지병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인간의 내면에서 거부할 수 없는 성욕을 그려내고 있다. 어머니의 유품에서 나왔던 바늘과 없어진 바늘의 촉수 끝은 어디로 갔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살인의 동기이다. 작품에는 나타나 있지 않는 내용이다. 801호에 사는 남자가 군대에서 성추행을 당했던 것처럼 스님에게 욕을 당했던 것인지 스님과의 사랑을 느끼고 연정을 품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전자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신도들의 반대로 부검조차하지 않은 상황이니 알 길이 없다. 단지 어머니의 자살로 어떤 인연에 대한 결자해지(結者解之)의 마음을 가졌던 것 같다.
직접적 성행위가 없이 생각과 갈등만을 가지고 그녀는 모종의 삶에 대한 쾌감을 느끼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모른다. 고기를 먹어도 야채와 다른 음식들을 곁들이지 않고 고기만을 먹는 것처럼.
1. 들어가며.
처음에 신춘문예(2000년 동아일보) 당선작이라는 것이 이유가 되어 재작년에 스치듯 본 것으로 기억한다. 그 때 내가 의문을 가졌던 것은 왜 제목을 '바늘'로 했을까 라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다. 내용을 보고 더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 바늘이기 보다 침이라고 했으면 어떠했을까? 또는 '바늘구멍으로 보는 저편의 세상'이라고 하면 어떨까 싶었다. 물론 주인공의 어머니가 옷을 수선할 때 쓰는 것은 바늘이다. 하지만 주인공이 쓰는 것은 문신을 새기는데 쓰이는 침의 종류로 머리부분에 구멍이 없는 것이 침의 종류이기 때문이다. 바늘과 침, 침은 바늘에 속하지만 바늘은 침에 속할 수 없고 용도도 확연하게 다르다. 어째든 세상을 살면서 좋든 싫든 인간관계가 어떻게든 성립되기 때문에 성별을 떠나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동물들과는 달리 인간은 인간과의 코드를 맞추며 살아가는 까닭이다, 바늘과 실처럼.
2. 작가의 구성 의도.
이 작품을 보면서 주인공의 인간관계와 프로정신에 입각한 직업정신의 심리적 갈등이 잘 나타내 진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주인공인 박영숙은 사람들의 몸에 문신(TATTOO)을 전문적으로 해 주는 사람으로 인물을 설정했다. 사회에서 보편적이고 일반적으로 설정되지 않고 툭 튀어나온 광대뼈와 곱추를 연상케 할 정도로 둥그렇게 붙은 목과 등의 살덩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목소리, 뭉뚝한 발가락 등 수려하지 않은 외모와 어눌한 성격을 그리고 있으며 내성적으로 많은 남자들이 그녀와 성행위조차 생각나지 않는 매력이 없는 여자로 묘사했다. 말까지 더듬으며 배와 가슴을 따라 급속 냉동되듯 마비증상이 오고, 결국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드러눕는 간질병환자다. 그리고 한국의 문화는 어떠한가? 문신을 하면 병역의무도 제외되는 어둠에서 활동하는 사회의 암적이거나 반하는 사람들의 특성이다. 사람과의 교류가 거의 없는 폐쇄적인 생활을 설정해 놓고 있다. 어느 남자의 몸에 골리앗 거미를 그려 넣는 그녀는 문신을 새기는 작업이 간접적 성행위의 전위를 느낄 만큼 심혈을 기울여 작업한다.
김형자라는 어머니가 주인공의 간질병을 고치기 위해 공양을 드리기 위해 절을 찾았고, 절에 있는 '미륵암'이라는 절의 스님의 살인사건에 깊숙이 관여된다. 갑자기 걸려 온 전화에 증인도 증거도 없는 현파라는 주지스님의 죽음을 그녀의 어머니가 죽였다고 자수한데서부터 까닭 모를 장면을 맞게된다. 주인공은 페미니즘적 인간관계를 스님과 어머니의 성행위도 있었을지 모를 것이라고 상상하게 된다. 왜 어머니는 스님을 죽였을까? 라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간질발작 증세가 나아지면서 절에서 내려온 모녀가 일상으로 돌아 온 듯 하지만 어머니는 꽤 많은 돈 뭉치를 남기고 스님의 옷을 만들어 다시 절로 들어갔다.
인물묘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아파트의 옆집에 사는 남자이다. 박영숙은 806호에 살고 그 남자는 801호에 산다. 쌀밥처럼 하얗고 말끔한 그의 얼굴로 연한 갈색을 띠는 눈은 꼭 고양이의 그것과 닮아 있다. 의심을 잔뜩 품은 눈. 순결을 바치기 직전에 소녀가 가지는 그런 눈을 가지고 있다. 전쟁기념관을 방문했을 때 어지럼증이 일자 전쟁 체험실을 갔다가 그 앞에서 매표소 직원으로 801호에 사는 그를 만났다. 발작의 전조증상과 같은 미세한 전율을 그것은 마치 어둠 속에서 사냥의 기회를 노리고 있는 맹수의 움직임과 같았다. 은밀하고 긴장된 숨소리. 뒷덜미에 소름이 돋는다. 두터운 귓불에 뜨뜻한 입김이 느껴진다. 숨소리는 점점 더 거칠고 빨라진다. 동시에 숨소리도 멎는다. 그와의 이성으로 생각하고 싶은 자신의 느낌을 그린 것 같다. 그는 어느 날 그녀의 아파트 초인종을 누른다. 그녀를 관찰한 것을 알게 되었고, 그는 군대에서 당한 성적 고통으로 이 세상은 강하거나 거세를 하고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녀에게 문신을 해 달라고 한다. 그에게 따뜻하고 보드라운 느낌을 받는다.
3. 추리적 전개상황과 주인공의 의문.
철공소에서 용접을 하는 김사장에게서 맡을 수 있는 냄새가 났다. 쇠의 비릿함과 땀내가 섞인 그런 냄새. 사장의 팔뚝에 그려진 칼은 아름다웠다. 사장을 따라 서울로 올라왔다. 어머니의 바늘을 가지고 옷감에 수를 놓았다면 그녀는 인간의 연약한 육체에 수를 놓겠다. 사장은 그녀의 탈피를 도와줄 빛이었다. 그녀가 문신을 하게 된 동기이다.
그녀는 절을 찾아가면서 스님을 죽인 것은 어머니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머니가 스님을 죽였다고 생각한 것은 기념관에 전시된 무기들처럼 실현 불가능한 살의는 인간의 내면세계에 일어나는 일에 불과할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남녀의 성행위 이전의 상상적 관계를 가지는 것처럼 많은 전쟁들이 미화되어 있었듯이, 스님의 아름다움을 지켜 주기 위해 누군가가 사건을 은폐시켰을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다. 부엌은 흐트러짐 없이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다. 수챗구멍에 밥알 하나조차 남아 있지 않다. 식칼이나 길고 뾰족한 젓가락, 무쇠로 만들어진 솥, 아궁이 속에서 불타는 나무, 한 번의 점화로 요사채를 날릴 수 있는 프레온 가스... . 마음만 먹는다면 무엇이든 살인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머니가 스님을 죽였을 만한 증거는 어디에도 없어 보인다. 그리고 어머니의 자살소식을 문형사한테서 듣는다. 사체는 금정산 계곡 하류에서 발견되었다. 시체 보관 실에 보관되어 있는 시신을 인수해 가라고 들었다. 수화기 속의 목소리는 명부(冥府)를 읽고 있는 저승사자의 것 같았다고 했다. 왜 그런 비보를 듣고도 먹던 음식을 계속 먹을 수 있을까? 나는 여기에 의심을 했다. 그러면 감정이 없어서였을까? 아니면 슬픈 감정의 동요를 느끼지 못할 만큼 예측하고 있었을까? 얄팍하게 썬 마늘을 고기 사이에 올린다. 기름이 불 위로 떨어져 방안 가득 단백질 탄내를 풍긴다. 육즙을 흡수한 마늘을 입 속에 넣는다. 덜 익은 마늘이 혀끝을 아릿하게 자극한다. 마늘을 씹으며 바위에 찢긴 그녀의 어머니의 모습을 상상한다. 그러나 상처투성이 여자의 하얀 알몸만 떠오를 뿐 어머니의 얼굴이 생각나지 않는다. 어머니는 여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절에서 가져온 어머니의 침낭과 바늘쌈 속에서 왜 스님의 머리카락이 나왔을까? "바늘을 잘게 잘라 매일 마시는 녹즙에 넣어 봐. 가늘고 뾰족한 바늘 조각은 내장을 휘돌아 다니면서 치명적인 상처들을 만들지. 혈관을 따라 심장에 이르면 맥박을 잠재우며 죽음을 부르는데, 아무런 외상도 없어."
이건 그녀의 어머니가 남긴 마지막 말이다. 세상이 힘들고 어려울 때 닥치면 복수라도 하듯 유언처럼 남긴 이 섬뜩한 말. 하지만 어머니가 죽이지 않아도 노후한 스님은 죽게 되었을 텐데 왜 실행을 했는지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801호에 사는 남자는 매일 저녁 승강기에서 내려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다. 길게 두 번 벨을 누르지 않아도 그가 그녀에게 오고 있다는 것을 안다. 발끝으로 사뿐히 걷는 발소리와 문 앞에서 내쉬는 깊은 숨소리를 느낄 수 있다. 그녀는 그의 가슴에 새끼손가락 만한 바늘 하나를 그려 주었다. 티타늄으로 그린 바늘은 어찌 보면 작은 틈새 같았다. 어린 여자아이의 성기 같은 얇은 틈새. 그 틈으로 우주가 빨려 들어갈 것 같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무기를 가슴에 품고 있다. 가장 얇으면서 가장 강하고 부드러운 바늘이 바로 그녀 자신인 것이다.
4. 결론.
주인공인 박영숙은 절에서 고양이를 죽일 만큼 잔인할 수도 있으며 프레온 가스를 이용해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도 알만큼 잔인한 면이 드러난다. 이것은 사회의 적응하지 못하고 평범하지 못한 태생과 신변의 일들이 어둡다는데 결론을 내린다. 그녀가 하는 일조차 조직폭력이나 일반인이라도 올바른 사고보다 강인해지려는 사람들의 표상처럼 문신을 해주는 역할이다. 신체적 결함과 지병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인간의 내면에서 거부할 수 없는 성욕을 그려내고 있다. 어머니의 유품에서 나왔던 바늘과 없어진 바늘의 촉수 끝은 어디로 갔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살인의 동기이다. 작품에는 나타나 있지 않는 내용이다. 801호에 사는 남자가 군대에서 성추행을 당했던 것처럼 스님에게 욕을 당했던 것인지 스님과의 사랑을 느끼고 연정을 품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전자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신도들의 반대로 부검조차하지 않은 상황이니 알 길이 없다. 단지 어머니의 자살로 어떤 인연에 대한 결자해지(結者解之)의 마음을 가졌던 것 같다.
직접적 성행위가 없이 생각과 갈등만을 가지고 그녀는 모종의 삶에 대한 쾌감을 느끼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모른다. 고기를 먹어도 야채와 다른 음식들을 곁들이지 않고 고기만을 먹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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