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문학의 발전을 위한 제언
2003.06.10 03:57
어제 문학토방에서 진지한 대화와 토론은 발전을 위한 제안의 여지를 남겼다고 봅니다.
시간의 흐름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문제의 제안보다 실천될 수 있는 방법의 모색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인귀 선생님의 비전 제시 중에 한국문학과 미국에 사는 한인문학의 차이와 극복을 위한 노력의 제안이라고 정리가 될 것 같습니다. 여러 선생님들과 선배님들의 고견을 귀담아 들었습니다. 의견과 방법들을 말씀 해 주셨는데 어느 것이 옳고 그른 것이 아닌 종합하면 나름대로의 일리가 있으셨습니다.
제가 말씀 드렸던 것을 다시 한번 정리하고 싶습니다. 한국문학과 이곳의 문학의 차이는 급속도로 변하는 문화의 인식입니다. 한국의 문학은 두꺼운 독자층과 출판과 각종 매체가 발달되어 있고,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의 수와 일반인과 문학을 위해 종사하는 사람들의 수를 감안하면 다 헤아리지 못할 정도입니다. 또한 교수님들과 평론가들이 주위에 많기 때문에 문학적 깊이와 질적 향상은 이곳과 비할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한국적인 문학을 동시에 같은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발전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 있는 반면 이곳의 문화와 문학은 어쩌면 낙후되어 있거나 발전되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줄 압니다. 이민 1세대와 2세대간의 현격한 사고의 차이도 있겠지만 우선 이민 온 1세대라도 5년 이만 되신 분들과 10년 이상 되신 분들조차 한국을 떠나 올 때의 정지된 모습의 고국 정도로 생각하고 미국의 문화를 체험하게 되다보니 자연스럽게 혼합되어 생활하고 있습니다. 결국 고국의 향수와 지난날의 추억을 그려내는데 그치기 쉽습니다. 또한 힘든 이민 생활의 고달픔을 달래며 치열한 자신과의 싸움을 하면서 좋은 글을 썼다고 해도 교정을 하거나 두 문화를 습득하고 살다보니 의미전달을 제대로 못하는 수도 있고, 작품을 들고 비평을 들을 곳을 찾을만한 곳이 극히 한정되어 있다고 봅니다. 미약하나마 오랫동안 글을 써 오셨던 분이나 글을 봐 줄 수 있는 소수의 분께 의지하는 정도입니다. 자아성찰을 통한 끊임없는 글쓰기와 아낌없는 노력을 해야 할 것으로 봅니다.
미주문학의 발전에 대한 방법적 모색을 제안하면
각종 문학행사나 공모전이 있는데 그곳에 투고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봅니다. 그 사람들에게 미주문학의 개방과 문인들과 동반을 도모할 수 있다면 양적 발전을 꽤 할 수 있으며 최소한의 독자들을 확보하는 셈입니다. 투고하는 사람들의 삼분의 일만 수용할 수 있어도 어림잡아 지금 문학하는 사람들의 배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아직도 바다 속의 보물처럼 찾지 못하는 문학인을 찾아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자칫 양적으로 인원을 늘이면 질적으로 떨어지지 않을지 우려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그것은 차후라고 생각합니다. 문학은 결국 일년이나 이년을 습작하다 말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행사의 내용입니다. 어떤 행사가 있다면 그것은 일반인보다 문학인을 위한 행사였습니다. 한국에서 교수님이나 강사가 초빙되어 와도 참석하는 인원의 수도 적을뿐더러 시간의 제약과 개개인에게 과연 얼마만큼의 효과적이었나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제안을 하면 앞으로 행사가 있다면 공동주최든 협찬이든 후원이든 언론과 매스컴을 통해서라도 일반인들과 함께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일반인들은 장차 미주문학의 독자요, 문학인이 될 수 있는 토양입니다. 세 번째는 아주 민감한 부분입니다. 작가의 작품에 대한 합평이 어려워 보입니다. 한국에서와 비교를 하지 않아도 아시겠지만 산 속에 있는 사람은 산의 크기를 모를 수 있습니다. 동료나 선배님이나 선생님들께 산의 바깥에서 산의 크기를 봐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즉, 작품을 놓고 칭찬과 일반적인 인사적 대화보다 잘못되었거나 고칠 수 있는 부분 등을 바로 봐 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변방의 문학이라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민생활의 독특한 문학도 있지 않겠습니까? 한국문화와 서양문화의 융화된 우리들만의 양식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발전 승화 시키면 한국의 문학과 견주어 손색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시대는 하이버텍스트의 개관으로 문학은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첨단과학의 발달로 새로운 문학의 이정표를 세워야 하며 그 방법으로는 사이버 문학의 참여입니다. 그것의 시발은 시화전과 멀티미디어의 시와 음악과 영상이 어우러질 수 있는 문학의 개발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물론 질적 수준의 향상은 더 말 할 나위가 없겠죠. 질적 수준은 자신의 노력과 많은 작품들을 보고 느껴야 합니다. 책꽂이에 놓여진 시집에 손이 가기 어려워도 인터넷은 쉽게 연결할 수 있습니다. 지금 네트웍을 통해 수백, 수천의 문학 작품이 열려 있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百聞이 不如一見)이라고 했습니다. 배우지 않고는 발전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 개인의 문학적 성취와 미주문학의 발전을 위해 말씀 드렸습니다. 많으신 분들의 고견을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시간의 흐름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문제의 제안보다 실천될 수 있는 방법의 모색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인귀 선생님의 비전 제시 중에 한국문학과 미국에 사는 한인문학의 차이와 극복을 위한 노력의 제안이라고 정리가 될 것 같습니다. 여러 선생님들과 선배님들의 고견을 귀담아 들었습니다. 의견과 방법들을 말씀 해 주셨는데 어느 것이 옳고 그른 것이 아닌 종합하면 나름대로의 일리가 있으셨습니다.
제가 말씀 드렸던 것을 다시 한번 정리하고 싶습니다. 한국문학과 이곳의 문학의 차이는 급속도로 변하는 문화의 인식입니다. 한국의 문학은 두꺼운 독자층과 출판과 각종 매체가 발달되어 있고,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의 수와 일반인과 문학을 위해 종사하는 사람들의 수를 감안하면 다 헤아리지 못할 정도입니다. 또한 교수님들과 평론가들이 주위에 많기 때문에 문학적 깊이와 질적 향상은 이곳과 비할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한국적인 문학을 동시에 같은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발전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 있는 반면 이곳의 문화와 문학은 어쩌면 낙후되어 있거나 발전되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줄 압니다. 이민 1세대와 2세대간의 현격한 사고의 차이도 있겠지만 우선 이민 온 1세대라도 5년 이만 되신 분들과 10년 이상 되신 분들조차 한국을 떠나 올 때의 정지된 모습의 고국 정도로 생각하고 미국의 문화를 체험하게 되다보니 자연스럽게 혼합되어 생활하고 있습니다. 결국 고국의 향수와 지난날의 추억을 그려내는데 그치기 쉽습니다. 또한 힘든 이민 생활의 고달픔을 달래며 치열한 자신과의 싸움을 하면서 좋은 글을 썼다고 해도 교정을 하거나 두 문화를 습득하고 살다보니 의미전달을 제대로 못하는 수도 있고, 작품을 들고 비평을 들을 곳을 찾을만한 곳이 극히 한정되어 있다고 봅니다. 미약하나마 오랫동안 글을 써 오셨던 분이나 글을 봐 줄 수 있는 소수의 분께 의지하는 정도입니다. 자아성찰을 통한 끊임없는 글쓰기와 아낌없는 노력을 해야 할 것으로 봅니다.
미주문학의 발전에 대한 방법적 모색을 제안하면
각종 문학행사나 공모전이 있는데 그곳에 투고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봅니다. 그 사람들에게 미주문학의 개방과 문인들과 동반을 도모할 수 있다면 양적 발전을 꽤 할 수 있으며 최소한의 독자들을 확보하는 셈입니다. 투고하는 사람들의 삼분의 일만 수용할 수 있어도 어림잡아 지금 문학하는 사람들의 배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아직도 바다 속의 보물처럼 찾지 못하는 문학인을 찾아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자칫 양적으로 인원을 늘이면 질적으로 떨어지지 않을지 우려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그것은 차후라고 생각합니다. 문학은 결국 일년이나 이년을 습작하다 말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행사의 내용입니다. 어떤 행사가 있다면 그것은 일반인보다 문학인을 위한 행사였습니다. 한국에서 교수님이나 강사가 초빙되어 와도 참석하는 인원의 수도 적을뿐더러 시간의 제약과 개개인에게 과연 얼마만큼의 효과적이었나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제안을 하면 앞으로 행사가 있다면 공동주최든 협찬이든 후원이든 언론과 매스컴을 통해서라도 일반인들과 함께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일반인들은 장차 미주문학의 독자요, 문학인이 될 수 있는 토양입니다. 세 번째는 아주 민감한 부분입니다. 작가의 작품에 대한 합평이 어려워 보입니다. 한국에서와 비교를 하지 않아도 아시겠지만 산 속에 있는 사람은 산의 크기를 모를 수 있습니다. 동료나 선배님이나 선생님들께 산의 바깥에서 산의 크기를 봐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즉, 작품을 놓고 칭찬과 일반적인 인사적 대화보다 잘못되었거나 고칠 수 있는 부분 등을 바로 봐 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변방의 문학이라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민생활의 독특한 문학도 있지 않겠습니까? 한국문화와 서양문화의 융화된 우리들만의 양식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발전 승화 시키면 한국의 문학과 견주어 손색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시대는 하이버텍스트의 개관으로 문학은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첨단과학의 발달로 새로운 문학의 이정표를 세워야 하며 그 방법으로는 사이버 문학의 참여입니다. 그것의 시발은 시화전과 멀티미디어의 시와 음악과 영상이 어우러질 수 있는 문학의 개발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물론 질적 수준의 향상은 더 말 할 나위가 없겠죠. 질적 수준은 자신의 노력과 많은 작품들을 보고 느껴야 합니다. 책꽂이에 놓여진 시집에 손이 가기 어려워도 인터넷은 쉽게 연결할 수 있습니다. 지금 네트웍을 통해 수백, 수천의 문학 작품이 열려 있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百聞이 不如一見)이라고 했습니다. 배우지 않고는 발전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 개인의 문학적 성취와 미주문학의 발전을 위해 말씀 드렸습니다. 많으신 분들의 고견을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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