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와 도교

2004.03.26 08:30

길버트 한 조회 수:2099 추천:43

1. 한국 한시의 도교적 제 양상
한국 한시에서 도교와 관련된 영역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이에 대해 유선시(遊仙詩)·현언시(玄言詩)·선취시(仙趣詩)·연단시(煉丹詩)·의속시(儀俗詩)로 나누어 검토하기로 한다.
遊仙詩는 신선전설을 제재로 선계오유(仙界 遊)나 연단복약(鍊丹服藥)을 통해 불로장생의 염원을 노래하거나, 혹은 이진거속(離塵去俗)하는 선계의 노님을 통해 현실의 갈등과 질곡을 서정 극복하려 한 시를 말한다. 이들 시에는 황홀한 신선세계의 묘사를 통해 강렬한 구선(求仙)의 흥취(興趣)를 노래하거나, 현실 삶의 굴레를 벗어나 인생의 번뇌를 훌훌 털어버리는 자유와 초월을 노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언시(玄言詩)는 노장의 철리를 천술하거나 천문류(天問類)의 천도를 탐색하는 내용,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의 정취를 추구하고 있는 시를 포괄한다.
선취시(仙趣詩)는 은사( 隱士)를 가송(歌頌)하며 은일사상을 고취하거나, 취락(醉樂)을 즐기며 산수간을 노니는 선적 흥취를 노래한 시를 말한다.
연단시(煉丹詩)는 내단 수련과 관련된 도사의 연공가결류(鍊功歌訣類)의 시를 뜻하며 넓게는 양생 주제의 시를 포괄한다. 조선중기 이래 수련도교의 성행은 이러한 煉丹詩를 탄생시켰다.
의속시(儀俗詩)는 도교 제초의례(齋醮儀禮)의 묘사나 수경신(守庚申)과 같은 신앙습속(信仰習俗)과 관련된 내용을 담은 시이다.

(1) 유선시(遊仙詩)
遊仙詩는 고려 때부터 제가의 문집에 간헐적으로 나타나나 대부분 仙趣詩에 더 가까웠고, 조선초기 이래 중기에 이르러 매우 활발히 창작되었다. 김시습(金時習)의 <준허사>(<凌虛詞>) 5수를 비롯하여, 이달(李達)의 <보허사>(<步虛詞>) 8수, 이수광(李 光)의 <유선사>(<遊仙詞>) 20여수, 허균(許筠)의 <상청사>(<上淸辭>) 18수, 정두경(鄭斗卿)의 <유선사>(<遊仙詞>) 11수, 김정희(金正喜)의 <소유선사>(<小遊仙詞>) 13수 등은 유선시의 창작이 어느 특정 개인의 한때의 호기(好奇) 취미에 기인하지만은 않음을 보여주며, 특히 허난설헌(許蘭雪軒)의 <유선사>(<遊仙詞>) 87수 및 이를 차운한 장경세(張經世)의 <유선사>(<遊仙詞>) 87수, 이춘영(李春英)의 <독신선전>(<讀神仙傳>) 53수, 임전(任 )의 <독한무제고사>(<讀漢武帝故事>) 4수나, 신흠(申欽)의 <독산해경>(<讀山海經>) 13수 등의 연작들은 이들 유선시의 창작이 단순한 상상에 의한 것이 아니라 도교 경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나, 신선전설에 대한 폭넓은 독서와 선망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말해준다.

옥구슬 꽃 바람 타고 청조가 날자 瓊花風軟飛靑鳥(경화풍연비청조)
서왕모 기린수레 봉래도 향해 가네. 王母麟車向蓬島(왕모인차향봉도)
목란 깃발 꽃술 배자 흰 봉황 수레타고 蘭旌蘂 白鳳駕(난청이비백봉가)
난간에 웃고 기대 요초를 줍는구나. 笑倚紅欄拾瑤草(소이홍난습요초)
푸른 무지개 치마 바람이 헤집으니 天風吹擘翠霓裳(천풍취벽취예상)
옥고리 경패 소리 댕그렁 댕그렁. 玉環瓊佩聲丁當(옥황경패성정당)
선녀들 짝을 지어 거문고 연주하자 素娥兩兩鼓瑤瑟(소아양양고요슬)
삼화주 나무에는 봄 구름 향기롭다. 三花珠樹春雲香(삼아주수춘운향)
동 트자 부용각서 잔치를 파하고서 平明宴罷芙蓉閣(평명연파부용각)
청동은 푸른 바다 백학타고 건너가네. 碧海靑童乘白鶴(벽해청동승백학)
피리소리 사무쳐서 오색 노을 날려가고 紫簫吹徹彩霞飛(자소취철채하비)
이슬 젖은 은하수엔 새벽별이 지는구나. 露濕銀河曉星落(노습은하효성락)

허난설헌(1563∼1589)의 <망선요>(<望仙謠>)이다. 굳이 경화(瓊花) 난정(蘭旌) 이피(蘂 ) 홍난(紅欄) 취예상(翠霓裳) 옥환(玉環) 경패(瓊佩) 요슬(瑤瑟) 주수(珠樹) 자소(紫簫) 등을 거론치 않더라도 선계는 불변과 영원을 상징하는 玉 모티프와 신성과 고결을 나타내는 색채 이미지로 가득 차 있고, 그밖의 소품들도 화려와 사치가 인간의 상상력을 다하고 있다. 청조(靑鳥)를 길잡이 삼아 서왕모(西王母)는 화려한 치장으로 백봉황이 끄는 수레를 올라탔다. 바람은 건 듯 불어 그녀의 푸른 무지개 치마를 헤집는다. 그 서슬에 팔찌며 패옥이며 서로 부딪쳐 쟁그랑 쟁그랑 해맑은 음향을 낸다. 선녀들이 짝을 지어 거문고를 연주하면, 삼화주 나무는 향기도 그윽하게 구름에 잠겨 있다. 밤새 즐겁던 잔치는 먼동이 트면서 끝이 난다. 날이 새기 전에 그녀는 천상의 선계로 복귀해야 하는 것이다. 이번엔 백학을 탄 청동들이 푸른 바다 위로 앞장 서 날아가고, 그네들이 부는 피리 소리는 허공에 사무쳐 오색 노을도 덩달아 나부낀다. 이때쯤 이슬에 젖은 은하수엔 새벽 별이 져서 인간의 세상은 광명한 아침을 맞이한다.
대개 이들 작품은 <<사기>>(≪史記≫)에서 적고 있는 삼신산(三神山)의 형상에 바탕을 두어 선계(仙界)의 장려(壯麗)한 모습을 휘황하게 묘사한 뒤, 선연(仙緣)을 확인한 후 각몽의 과정으로 이어지는 유선시의 기본 결구를 충실하게 갖추고 있다. 이러한 낭만적 상상력은 단순히 수사적 재능의 과시를 넘어서는 감염력을 발휘한다.

(2) 현언시(玄言詩)
현언시는 노장의 철리를 천술하거나, 불공(不公)한 현실에서 눈을 돌려 소요유의 경계를 추구하며 천도를 탐색하고 있는 시들을 포괄한다. 玄言詩는 기진절속(棄塵絶俗)하고 불모영리(不慕榮利)하며, 청심과욕(淸心寡慾)을 마음에 새겨 반박귀진(返樸歸眞)함으로써 정신의 자유와 초월을 추구한다. 때로 현언시는 안빈낙도(安貧樂道) 존성본도(存性體道)를 종지로 하는 유가의 도학시나, 일체사물에 체현된 선취(禪趣)를 감수하는 불가의 선기시(禪機詩)와 중간 지점에서 만나기도 한다.

뜻있는 이 사업을 중히 여기고 志士惜事業(지사석사업)
작은 이 금구슬을 사랑한다네. 宵人戀珠金(소인연주금)
두 가지 다 경영할 겨를 없거늘 經營兩不暇(경영양불가)
세월은 쏜살같이 달려가누나. 羲和走  (희화주침침)
거친 둔덕 온갖 풀은 시들어지고 荒壟 百草(황농폐백초)
어리석고 어진 이들 한데 묻혔네. 賢愚同一 (현우동일침)
어떤가 날마다 술 마시면서 何如且日飮(하여차일음)
마음을 비워두고 배를 채움이. 實腹而虛心(실복이허심)

최유청(崔惟淸)(1095∼1174)의 <잡흥>(<雜興>)의 제6수이다. 돌아보면 덧없는 세월이었다. 사업을 성취코자 매진하는 志士의 삶을 일군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구슬과 금붙이에 연연하는 소인(宵人)의 길을 걷지도 않았다. 황량한 둔덕 위에 우거졌던 온갖 풀이 시들어 그 자취를 찾을 길이 없듯이, 경륜의 사업을 꿈꾸던 지사의 어짐도, 주금(珠金)에 얽매이던 소인(宵人)의 어리석음도 종당에는 한줌 흙으로 돌아갈 뿐이다. 명예를 꿈꾸는가? 이욕을 탐하는가? 모두 다 부질없는 짓이다. 차라리 허망한 욕망과 집착을 훌훌 던져놓고 날마다 술로 배채우고, 그 대신 마음은 비워둠이 어떨까?
8구의 '실복허심'('實腹虛心')은 老子 ≪道德經≫ 제 3장에서 취하였다. 그 글에 일렀으되, "어짐을 숭상치 않아야 그 백성이 다투지 않게 되고, 얻기 어려운 재화를 귀히 여기지 않아야 백성이 도둑질하지 않는다. 하고자 함을 드러내지 않아야 백성의 마음이 어지럽지 않다. 그러므로 성인의 다스림은 그 마음을 비우고 그 배를 채우며, 그 뜻을 약하게 하고 그 뼈를 강하게 하여, 항상 백성으로 하여금 앎도 없고 욕심도 없게 하여, 아는 자가 감히 작위하지 못하게 한다. 무위를 행하면 다스려지지 않음이 없다"고 하였다. 이른바 절성기지(絶聖棄智)의 무위지화(無爲之化)를 말한 대목이다.

志士가 자신의 사업으로 마음을 채우고 그 뜻을 다잡는 것이나, 小人이 욕망에 사로잡혀 다른 것을 돌아보지 않는 것이나, 따지고 보면 다를 것이 하나 없다. 상선약수(上善若水), 흐르는 물이 자신을 낮추고 버려 만물을 이롭게 하듯, 허심실복(虛心實腹) 즉 마음을 비우고 배를 채우는 함포고복(含哺鼓腹)의 삶이야말로 至人의 참 모습이 아니겠는가?

내 장차 내 발을 씻으려 하나 吾將濯吾足(오장탁오족)
滄浪이 어찌 내 욕됨을 즐겨 받으랴. 滄浪豈肯受吾辱(창낭기긍수오욕)
내 장차 내 귀를 씻고자 해도 吾將洗吾耳(오장세오이)
영천이 어찌 내 잘못을 즐겨 감싸랴. 潁川豈肯帶吾累(영천기긍대오루)
내 발은 본래 절름발이라 吾足本跛 (오족본파벽)
편히 앉아 나가잖으니 뉘라 비난하리오. 安坐不出誰削迹(안좌불출수삭적)
내 귀는 본시 귀머거리라 吾耳本聾 (오이본농외)
나쁜 말 들리잖는데 뉘라 괴이타 하리. 惡言不至誰爲怪(악언불지수위괴)
無用의 쓰임이 큰 쓰임이거니 無用之用爲大用(무용지용위대용)
이말 깊이 음미하며 하루 세 번 외운다. 深味斯言日三誦(심미사언일삼송)

이달충(李達衷)(?-1385)의 <취가>(<醉歌>)이다. 창랑(滄浪)의 물에 발을 씻으라던 굴원(屈原) <어부사> (<漁父詞>)의 漁父가 있고, 천하를 맡아달라는 요(堯)임금의 말을 듣고 더러운 말을 들었다하여 영수(潁水)에 달려가 귀를 씻었다는 허유(許由)가 있다. 또 그 말을 듣고 그 귀 씻은 물로 내 송아지에게 마시게 할 수 없다며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던 소부(巢父)의 고집은 어떤가. 나는 아직 그 경지에 이르지 못해 진망(塵網)을 벗어나지 못하니 육침(陸沈)의 심회가 없을 수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내 발은 절름발이라 날랜 걸음을 뽐내기에 부족하고, 내 귀는 귀머거리니 귀 씻을 무슨 말이 아예 들려올 까닭이 없다. 다만 저 莊子의 '無用之用'의 활훈(活訓)을 좌우명 삼아 날마다 외워 그 경계를 그리워할 뿐이다.

아침에 책 잡으면 하루 해 저물도록 朝把陳篇至日斜(조파진편지일사)
고금을 미뤄보니 많은 느낌 일어나네. 細推今古感偏多(세추금고감편다)
明妃는 미색으로 靑塚에 묻혀 있고 明妃以色埋靑塚(명비이색매청총)
屈原은 忠을 품어 멱라 물에 죽었구나. 屈子懷忠死 羅(굴자회충사율라)
金谷엔 사람 없어 푸른 풀만 우거졌고 金谷無人空綠草(금곡무인공녹초)
蒼梧의 무덤 가엔 갈까마귀 울음운다. 蒼梧有墓只啼鴉(창모유묘지제아)
賢愚貴賤 할 것 없이 모두 한데 돌아가니 賢愚貴賤同歸盡(현우귀천동귀진)
그 어찌 평생토록 취치 아니 하리요. 其柰平生不醉何(기내평생불취하)

광진자 홍유손(狂眞子 洪裕孫)(1431∼1529)의 <장진주>(<將進酒>)란 작품이다. 책을 펼쳐 고금(古今)의 치란흥쇠(治亂興衰)의 자취 더듬으니 공연히 마음 속에선 생각만 자욱하다. 왕소군(王昭君)은 빼어난 미모 때문에 오랑캐의 첩이 되었고, 굴원(屈原)은 忠을 지키느라 멱라수에 몸을 던져 고기밥이 되었다. 거부 석숭(石崇)의 금곡(金谷)의 장원도 덧없이 잡초 속에 파묻혀 있고, 舜임금 묻히신 창오(蒼梧)을 들판에는 저물녘 갈까마귀 울음소리 처량하다. 모든 것 덧없다. 인간 세상 조금 잘나고 못난 것이 무슨 상관이던가? 다만 두 손이 성하니 잔을 잡을 뿐이다.

(3) 선취시(仙趣詩) 제 2강 한국 한시와 도교(2)
선경승지(仙境勝地)를 찾은 나그네는 그윽한 신선(神仙)의 흥취에 젖게 마련이다. 그밖에 선계(仙界)에의 동경(憧憬)과 은일(隱逸)의 추구, 仙人을 그리워하거나 도연(陶然)한 취락(醉樂)의 정신을 노래한 시들을 모두 선취시(仙趣詩)로 분류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실려 있는 제영시(題詠詩) 중에는 이러한 仙趣를 노래한 것이 많다.

아득한 누각 기둥 구름이 피어나고 樓逈雲生棟(누형운생동)
높은 산은 푸르러 옷자락에 방울 듣네. 山高翠滴裳(산고취적상)
연꽃 바람 산들산들 맑은 향기 보내오니 荷風細細送淸香(하풍세세송청향)
이 바로 仙鄕에 든게로구나. 便是入仙鄕(편시입선향)
잎 지매 가을 기운 짙음을 알고 木落知秋氣(목락지추기)
달 밝아 밤 한기가 오싹하구나. 月明生夜凉(월명생야량)
난간 기대 이따금 술잔 따르니 倚欄時復引壺觴(의난시복인호상)
나와 세상 둘다 서로 까맣게 잊었네. 身世兩相忘(신세양상망)

안노생(安魯生)(고려말, 생몰미상)의 영해(寧海) 12詠 가운데 <읍선루>(<揖仙樓>)이다. 아득한 누각은 구름에 잠겨 있다. 그 뒤로 높은 산은 창취(蒼翠)한 이내(嵐)에 젖어 있어 거니는 나그네의 옷에 푸른 물이 들 것만 같다. 바람은 또 어쩌자고 연꽃의 향기를 실어 오는 것이냐.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며 내음으로 맡아보는 흥취가 흡사 유세독립(遺世獨立)의 신선인양 도저하여 가눌 길 없다. 잎이 지니 가을임을 알겠고, 밝은 달빛에 밤 공기는 더더욱 싸늘하다. 읍선루(揖仙樓), 신선이 반갑다고 절하는 누각에 기댄 나그네는 한기를 몰아내려 자꾸만 술잔을 기울인다. 거나한 풍류에 나도 세상도 서로 잊고 말았다. 그저 풍경의 일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여섯 자라 사선봉을 머리 위에 이었는데 六鼇頭戴四仙峯(육오두대사선봉)
바다 빛깔 해맑아 道의 기운 자욱하다. 海色澄明道氣濃(해샛진명도기농)
먼 하늘 쏘아보니 만경 파도 넘실대고 眼穿長空波萬頃(안천장공파만경)
흥겨워 앞산 드니 구름은 몇 겹인고. 興入前山雲幾重(흥입전산운기중)
노을 타고 올라가 太淸에서 노니는 듯 已似登霞遊太淸(이사등하유태청)
바람을 올라타고 赤松子를 따르는 듯. 更欲御風追赤松(갱욕어풍추적송)
검은 학 쌍쌍이 같이 날며 울음 울고 玄鶴雙雙互飛鳴(현학쌍쌍호비명)
흰 갈매기 짝을 지어 나를 맞이 하는구나. 白鷗兩兩相迎逢(백구양양상영봉)
외론 뗏목 띄워놓고 어디러로 간단말고 孤 橫泛 何向(고사횡범묘하향)
孔夫子 가고 없어 따를 곳이 없노매라. 夫子旣沒嗟莫從(부자기몰차막종)
푸른 바다 가없는 물 기울여 쏟아내어 倒瀉滄溟無盡水(도사창명무진수)
십년 묵은 티끌 자취 단번에 씻어내리. 一洗十載風塵 (일세십제풍진종)

조욱(趙昱)(1498∼1557)의 <유사선봉차통천동헌판상운>(<遊四仙峯次通川東軒板上韻>)이란 작품이다. 익숙한 신선 고사로 시상을 열었다. 파도에 출렁이는 사선봉은 마치 전설 속의 여섯 자라가 그 아래서 머리로 봉우리를 떠받쳐 파도에 따라 오르내리는 것만 같다. 동해의 쪽빛 물결은 안개에 잠겨 있어, 이를 자욱한 '도기'('道氣')에 견주었다. 만경창파를 눈 앞에 두고 자욱한 산운(山雲) 속을 노니노라니 이 몸이 마치 하늘로 둥실 올라 태청(太淸)을 노니는 듯, 옛 신선 적송자(赤松子)를 따라 바람 타고 오르는 듯 하다고 했다. 나라에 도가 없으매 뗏목을 타고 떠나겠다던 孔子도 가고 없는 지금, 나는 이 바닷가에서 갈 곳을 몰라 이렇게 서성이고 있다. 그러나 현학(玄鶴)과 백구(白鷗)가 반겨주는 이 동해 바닷가에서 저 푸른 동해 물결에 지난 십년간 풍진(風塵) 세상의 자취를 말끔히 씻어 내어, 물씬한 仙趣 속에 거듭남의 기쁨을 만끽하고 싶은 것이다.

(4) 연단시(煉丹詩)

<<도장>>(≪道藏≫)에 수록된 도교 경전 가운데는 내단 수련의 과정이나 단계를 가결(歌訣)의 형식을 빌어 정리한 것이 많다. <<요호환란결송>>(≪龍虎還丹訣頌≫)에는 7언시 64수가 실려 있고, <<금액대단시>>(≪金液大丹詩≫)에는 5언율시 80여 수가 수록되어 있는데, 주된 내용은 내단수련의 원리와 공법(功法)에 대한 설명이다. 이밖에 <<환단금액가>>(≪還丹金液歌≫)나 <<환단가결>>(≪還丹歌訣≫)등은 모두 시의 형식을 빌어 내단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는 예에 속한다. 이런 시들을 본 발표에서는 연단시(煉丹詩)로 규정한다. 연단시(煉丹詩)는 넓게는 양생(養生) 주제의 양생시(養生詩)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한다.
먼저 이인로(李仁老)(1152∼1220)의 <조기소두효동파>(<早起梳頭效東坡>)란 작품을 살펴보자.

가물대는 등불은 등잔받침 닿아 있고 燈殘綴玉 (등잔철옥파)
드넓은 바다는 금까마귀 머금었다. 海闊涵金鴉(해활함금아)
묵묵히 앉아서 오래 숨을 참고서 默坐久閉息(묵좌구폐식)
단전을 손으로 슬슬 문지르네. 丹田手自摩(난전수자마)
쇠한 터럭 쑥대인 양 어지러운데 衰 千絲亂(쇠빈천사난)
해묵은 빗 초생달이 빗긴 듯 하다. 舊梳新月斜(구소신월사)
손길 따라 소록소록 떨어지나니 逐手落  (축수락비비)
가벼운 바람이 눈을 쓸어가는 듯. 輕風掃雪華(경풍소설화)
황금은 단련하면 더욱 정해지듯이 如金鍊益精(여금연익정)
백번을 거듭해도 많다할 수 없다네. 百鍊未爲多(백연미위다)
어찌 다만 이내 몸 상쾌할 뿐이랴 豈唯身得快(기유신득쾌)
목숨 또한 가없이 늘여 준단다. 亦使壽無涯(역사수무애)
늙은 닭은 거름 흙서 목욕을 하고 老鷄浴糞土(노계욕분토)
지친 말은 바람 모래 발을 구른다. 倦馬전風沙(권마풍사)
이또한 능히 스스로를 기름임을 此亦能自養(차역능자양)
나는 소동파에게서 이 말을 들었노라. 聞之自東坡(문지자동파)

1.2구는 먼동이 트기 직전, 순양지기(純陽之氣)가 충일한 상태를 이름이다. 해뜨는 곳을 향해 고요히 사려 앉은 시인은 폐식(閉息)의 행공(行功)에 들어간다. 閉息이란 글자 그대로 숨을 참는 것이니, '內不出, 外不入'의 상태로 호흡을 조절하여 내면의 안정을 추구하는 태식(胎息) 수련이다. 4구에서 이른바 단전을 문지른다 함은 도가(道家) 수련체조의 일종인 십이단금(十二段錦) 가운데 제 8 '찰난전'('擦丹田')에 해당하는 것으로, 왼손으로 신(腎)을 밀면서 오른손으로는 단전을 36번 마찰하고, 다시 손을 바꾸어 교대로 시행하는 법이다. 그 다음으로는 즐발소두(櫛髮梳頭)이다. 하도 빗어 낡고 닳아 초생달 같이 잘룩해진 빗으로 빗질을 한다. 道家에서는 머리털을 血의 나머지로 보아, 빗질을 많이 하면 막힌 혈맥을 통하게 하여 눈을 맑게 하고 風을 없앤다고 보았다. 한 번에 적어도 120회의 빗질을 한다.
이하 6구는 즐발(櫛髮)의 공능에 대한 설명이다. 13구에서 16구까지는 소동파(蘇東坡)의 <차운자유욕파>(<次韻子由浴罷>)시에서 그 뜻을 취한 것이다. 東坡의 시는 늙은 닭과 지친 말이 자신의 양생을 위해 제각금의 방법을 쓰듯 자신은 理髮과 閉息으로 양생의 묘를 얻는다는 내용이다. 제목만으로는 새벽에 일어나 머리를 빗다가 두서 없이 일어난 느낌을 노래한 듯 하지만, 따져보면 이렇듯 양생의 차서와 단계가 엄연하다.
우리 나라의 경우 본격적인 연난시(煉丹詩)의 창작은 수련 도교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조선 전기 이후 이루어졌다.
權克中은 특이하게 내단 수련의 과정을 노래한 연작시 <금단음>(<金丹吟>) 20수와, <<삼동계>>(≪參同契≫)의 로화(爐火) 개념을 부연하여 정기·약물·화후(鼎器 藥物 火候)에 관해 설명한 <금단삼사>(<金丹三事>) 3수, 내단(內丹)의 세 단계를 설명한 <단법삼관>(<丹法三關>) 3수를 남겨, 煉丹詩에 있어 단연 독보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금단음>(<金丹吟>)에는 ≪道德經≫과 <<현원결>>(≪玄元訣≫), 삼동계 (≪參同契≫)등의 道書를 內丹學의 관점에서 이해하여 설명한 내용 뿐 아니라 內丹 수련의 과정과 단계를 친절한 비유로 풀이한 내용이 담겨 있다.

아이 적엔 마치 純乾과 같아 童時如純乾(동시여순건)
神氣가 완전하여 결함이 없다. 神氣完無缺(신기완무결)
자라서 乾에서  로 변하면 及長乾成 (급장건성리)
陽氣를 얼마간 빼앗긴다네. 一分陽氣奪(일분양기탈)
점점 艮이나 坤이 되면은 漸漸艮而坤(점점간이곤)
純陰은 마침내 사라진다네. 純陰則死滅(순음칙사멸)
易卦를 사람 몸에 맞춰 풀이한 易卦配人身(역괘배인신)
≪參同契≫는 진실로 妙訣이로다. 參同誠妙訣(참동성묘결)

위는 <金丹吟> 제5수이다. 어린아이는 순건(純乾)인지라 신기(神氣)가 온전하나, 점차 성장함에 따라 純乾하던 神氣는 이음( 陰)으로 변하여 純陽의 一氣를 흩게 된다. 마침내 간(艮)과 곤(坤)으로 내려와 純陰의 기운이 사라지면 노쇠하여 죽는다. 후한(後漢) 위백양(魏伯陽)은 <<주역삼동계>>(≪周易參同契≫)에서 ≪周易≫의 계상(卦象)을 인체에 비유하여 內丹수련의 여러 단계를 밝힌 바 있다.
<난법삼관>(<丹法三關>)은 모두 세 수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수에는 '초관연정인선'('初關煉精人仙') '중관연기지선'('中關煉氣地仙') '상관연신천선'('上關煉神天仙')의 부제가 붙어 있다. 丹法을 이루는데는 통과해야 할 세 관문이 있는데, 그것은 煉精과 煉氣, 그리고 煉神의 단계이다. 煉精의 경지를 얻으면 이를 일러 人仙이라 하고, 煉氣의 단계는 地仙이라 하며, 마침내 精氣神 3보(3寶)를 하나로 투득하여 관통하는 煉神의 경계에 이르면 이를 天仙이라 하는 것이다. 이는 송나라 떄 李道純이 <<중화집>>(≪中和集≫)에서 말한 '삼관설'('三關說')을 채용하여 부연한 것이다. 다음 시는 이 가운데 중관(中關)의 경지를 나타낸 시이다.

첫 단계 공부가 익숙해지면 初地工夫熟(초지공부숙)
中關으로 가는 길은 평탄하리라. 中關道路平(중관도로평)
烏兎의 진액를 같게 나누어 等分烏兎液(등분오토액)
文武의 火候로 함께 익힌다. 文武丙丁烹(문무병정팽)
黍米珠가 희미하게 드러나면은 黍米從微著(서미종미저)
金丹은 대성을 고하게 되리. 金丹告大成(금단고대성)
나는 이제 전날의 내가 아니니 我非前日我(아비전일아)
萬化가 내 손안서 생겨나리라. 萬化手中生(만화수중생)

3구의 오토(烏兎)는 금오옥토(金烏玉兎)의 줄인 말이다. 일월(日月)을 가리키나 사람의 몸으로 치면 심신(心腎)이 된다. 內丹家는 오토(烏兎)를 연홍(鉛汞)의 별칭으로 말하니, 오토액(烏兎液)은 바로 심액신수(心液腎水)를 이름이다. 그러므로 3.4구는 심수(心水)와 腎水(신수)를 순환하되, 文武의 火候(화후)로 조절하여 성태(聖胎)를 결양(結養)함을 뜻한다. 5구의 서미(黍米)는 金丹을 가리키는 도교 술어로, 음양의 기운인 연홍(鉛汞)을 닦아 결태(結胎)가 이루어진 상태를 지칭한다. <<삼극치명전제>>(≪三極致命筌蹄≫)에 "일점성난서미주"("一点成丹黍米珠")라 하였는데, 그 주에 이르기를, "한점이라는 것은 붉은 물의 검은 구슬인데, 크기가 기장쌀만하므로 한점이라 한 것이다. 丹을 이룸은 희미한데서 드러난다. "일점자적수현주야, 대여서미, 고왈일점: 성단자, 종미이저야" (一点者赤水玄珠也, 大如黍米, 故曰一点; 成丹者, 從微而著也"라 하였다. 小周天의 경지를 넘어 丹田에 胎가 맺히는 中關 大周天의 경지를 얻고 나면 나는 이미 전날의 내가 아니며, 온갖 조화가 내 손 안에서 비롯됨을 느끼게 되리라는 것이다. 權克中의 煉丹詩를 꼼꼼히 분석해 보면, 그의 內丹書 섭렵의 범위가 대단히 광범위하고 정심한 것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5) 의속시(儀俗詩) 제 3 강 한국 한시와 도교(3)
도교 교단이 공식적으로 성립되지 않았던 우리의 경우, 도교의 의례를 묘사하거나 재초(齋醮)의 절차 및 의궤(儀軌)를 서술한 내용의 시는 그리 많지 않다. 고려시대에는 왕실차원에서 삼교정립(三敎鼎立)에 바탕한 과의도교(科儀道敎)가 활발히 전개되었다. 특히 복원궁(福源宮) 건립은 재초과의(齋醮科儀)를 중심으로 하는 과의도교(科儀道敎)의 성립을 가져왔고, 이밖에 도교 행사를 관장하던 기관으로 구요당·정사색·성숙전·태청관·소격전·소전색·청계배성소(九曜堂 淨事色 星宿殿 太淸觀 昭格殿 燒錢色 淸溪拜星所) 등등이 있었음을 문헌은 적고 있다. ≪東文選≫에 수록된 도교 재초시(齋醮時)의 축문인 초례청사(醮禮靑詞)는 그런 의미에서 흥미로운 자료가 된다.

구름 개인 긴 하늘에 별빛이 차가운데 雲散長空星斗寒(운산장공성두한)
瓊章을 읽고 나선 天壇에 예배하네. 瓊章讀罷禮天壇(경장독파예천단)
옥황의 축복인듯 香霧도 자옥터니 玉皇降慶固香霧(옥황강경고향무)
金母가 내려올젠 채색 난새 타고 오네. 金母來時駕彩鸞(금모내시가채란)
경쇠소리 울리건만 사람은 고요하고 寶磬有聲人寂寂(보경유성인적적)
瑤臺도 깨끗해라 달님은 둥그렇다. 瑤臺無累月團團(요대무누월단단)
삼청궁 제사 마쳐 겹문 모두 닫았어도 三淸醮畢門重鎖(삼청초필문중쇄)
푸른 등 殿 비추며 밤새도록 밝혀있네. 照殿靑燈徹夜 (조정청등철야난)

김시습(金時習)(1435∼1493)의 <방우어삼청궁적초립동> (<訪友於三淸宮適醮立冬>)이다. 삼청궁(三淸宮)은 지금 三淸洞에 있던 도교의 제초(祭醮)를 관장하던 소격서(昭格署)를 가리킨다. 제목으로 보아 三淸宮에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그때 마침 행해진 立冬醮를 보고는 느낌이 있어 지은 시이다. 구름 한점 없이 맑은 밤하늘에 별빛이 차갑다 하여, 이날의 제사가 별자리를 향해 올리는 성숙초(星宿醮)였음을 암시했다. 흰옷에 검은 두건을 쓴 제관은 제물을 진설하고 향을 피우고는 축문을 낭낭히 읽은 뒤 하늘을 향해 百拜의 예를 올린다. 그러자 이에 감응하듯 향무(香霧) 농연하더니, 金母가 채란(彩鸞)을 타고 곧 강림할 것만 같았다는 것이다.
이어 머리엔 소요건(逍遙巾)을 쓰고 문채(文彩)가 화려한 도복을 입은 道流들이 나와 보경(寶磬)을 24번 울리고, 道經을 소리 높혀 낭창한다. 그리고는 푸른 종이에 쓴 이른바 초례청사(醮禮靑詞)를 불에 태움으로써 齋醮의 모든 절차는 끝이 난다. 올려다보면 하늘엔 아무 일 없다는 듯 둥근 달만 떠 있다. 이윽고 齋醮가 끝나고 모든 문은 굳게 잠기었다. 그러나 청등(靑燈)만이 밤을 새워 전각을 환히 비추고 있다. 金時習의 위 시는 실제로 소격서(昭格署)에서 제초(齋醮)의 광경을 직접 목도하고 그 차례에 따라 서술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재초의례(齋醮儀禮)는 소격서(昭格署)가 공식적으로 혁파된 선조조(宣祖朝)까지도 그 명맥을 유지했던 듯, 李達을 비롯한 三唐詩人의 문집에는 이에 관련된 시문이 다수 있다.

夜殿은 텅비었고 경쇠소리 적막해라 仙磬廖廖夜殿空(선경요요야전공)
흰구름 속 뭇별들 멀리서 절을 하네. 衆星遙拜白雲中(중성요배백운중)
잠시후 道士가 문을 닫아 건 뒤에 須臾道士關門後(수유도사관문후)
上界의 바람 불어 한점 향기 나부끼네. 一點香飄上界風(일점향표상계풍)

이달(李達)(1539∼1618)의 <유삼청동>(<遊三淸洞>)이다. 야전(夜殿)이 텅비었고 경쇠소리 들리지 않으니 재초(齋醮)의 절차가 모두 끝난 것이다. 올려다 본 하늘에는 뭇별들이 北斗를 향해 일제히 절을 한다. 이윽고 도사가 걸어나와 仙宮의 문을 굳게 닫아 걸자, 앞선 재초(齋醮)에 뒤미쳐 화답하듯 상계(上界)에서 일진의 바람이 불어와 殿 위에 태우던 향을 흩날리게 하더라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도교가 민간신앙의 대상이 되면서 그 일부가 습속화되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예가 三尸信仰과 이를 바탕으로 한 守庚申의 습속이다. 三尸는 삼팽(三彭) 또는 삼충(三 )이라고도 하는데, 사람의 몸 속에 있으면서 그 사람의 죄상을 낱낱히 기록하였다가 庚申日만 되면 사람이 잠든 틈을 타서 하늘에 올라가 옥황상제에게 그 지은 죄를 낱낱히 고해 바쳐 수명을 감하게 한다는 영적 존재이다.
갈홍의 <<포박자>>(≪抱朴子≫)에 이미 삼호(三尸)에 관한 기록이 보인다. 한대(漢代)의 참위사상(讖緯思想)이 神仙思想과 결합하여 司命과 사과(司過)의 개념이 道敎에 전입되면서 이런 관념이 생겨났다. 三尸의 기능과 성격에 대한 논의는 후대로 내려올수록 활발해져 道士의 수행에 있어 三尸의 박멸은 중요한 과제의 하나로까지 되었다.
그런데 이 三尸란 벌레는 반드시 庚申日 밤에 사람이 잠든 뒤에야 사람의 몸에서 빠져 나올 수 있다고 믿었으므로, 守庚申 즉 庚申日 밤을 아예 잠자지 않고 꼬박 세움으로써 三尸가 자신의 과실을 사과신(司過神)에게 보고하는 것을 원천봉쇄할 수 있다고 믿는 守庚申 신앙이 성행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守庚申 신앙은 민간에서 뿐 아니라 왕실까지 매우 광범위하게 유포되었다.
≪高麗史≫ 권 26, 元宗 7년(1266) 4월 경신일조(庚申日條)를 보면, "태자가 安慶公을 맞아다가 연회를 열고 음악을 연주하면서 새벽까지 밤을 새웠는데 그때 나라의 풍속에 道家의 말에 의하여 매년 이 날이 되면 반드시 모여서 밤새껏 술을 마시며 잠을 자지 않았다. 이것은 이른바 守庚申이란 것이다. 태자도 역시 당시의 풍속을 따라 그렇게 한 것인데 당시 여론이 이를 비난하였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 이후로도 ≪高麗史≫ 庚申日의 기사를 보면 왕이 삼계초제(三界醮齋)를 지내거나 죄수를 석방하거나, 재상들과 더불어 주연을 베푸는 등의 관련 내용이 어김없이 실려 있음을 보게 된다. 조선조에 들어서도 守庚申의 습속은 계속되었다.
≪東閣雜記≫에는 태조가 庚申日 밤에 鄭道傳을 비롯한 모든 공신들을 불러 잔치를 베푸는 기사가 실려 있고, ≪王朝實錄≫의 수다한 경신일 기사만 하더라도 守庚申 신앙이 당대에 얼마나 널리 퍼져 있었는가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한시에도 이 守庚申과 관련된 시가 매우 많다. 한 예로 둔촌 이집(遁村 李集)(1314∼1387)의 <염석일수정제군자>(<念惜一首呈諸君子>)의 서두는 "지난해 山寺에서 庚申日 밤에, 정답게 마주 앉아 흐르는 세월 안타까워 했네. "거년산사경신야, 단난공석세월류"(去年山寺庚申夜, 團欒共惜歲月流)라 하였는데, 儒者들이 山寺에서 佛僧과 함께 앉아 道敎의 守庚申을 행하는 말 그대로 三敎合一의 현장을 목도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 둘러앉아 庚申日을 지키니 兒曹環列守庚申(아조환열수경신)
떡 과일 앞에 두고 웃고 떠들며 장난치네. 餠果前頭戱 頻(병과전두희소빈)
곁에서 박수치며 즐거운 일 함께 하니 拍手傍觀同樂事(박수방관동락사)
늙은이도 참으로 그 가운데 사람일세. 老翁眞是箇中人(노옹진수개중인)

양곡 소세양(陽谷 蘇世讓)(1486∼1562)의 <경신야>(<庚申夜>) 4수 연작의 첫 수이다. 위 시에서 보듯 수경신(守庚申)은 나중에는 老少間에 어우러져 즐기는 同樂의 자리로 변하게 된다. 庚申日은 두 달에 한 번은 어김없이 찾아오니, 수경신(守庚申)은 말하자면 벗들이 한자리에 모여 회음(會飮)하는 잔치의 구실로 되었던 것이다.

2. 한국 한시와 도교의 의미

한국 한시에 있어서 도교의 의미는 무엇일까? 모두(冒頭)에서 한시의 작가가 시종 유자(儒者)였다는 사실이 도교적 문학 관습이 지닌 의미를 축소할 수 없다고 하였는데, 실제 이들에게 유교(儒敎)와 도교(道敎)는 특별한 종교적 신심은 배제된 채 사유체계와 상상체계의 이면에서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상보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사회적 존재로서 출처궁달(出處窮達)에 연연치 않는 군자(君子)의 의연함을 사모한다지만, 막상 세사(世事)는 언제나 공정치 아니하고, 시비(是非)는 늘 전도(顚倒)되며, 정의(正義)는 불의(不義) 앞에 항상 좌절을 경험하게 마련이다. 현실의 부조리한 폭력 앞에서 인간은 믿어 의심치 않던 천도(天道)의 소재에 회의하며 초월을 꿈꾼다. 그 초월의 모식은 다양하다. 태청세계(太淸上界) 위에 황금의 궁궐을 세워 놓고 정신의 만유(漫遊)를 통해 보허등공(步虛登空)을 꿈꾸거나, 선경승지(仙境勝地)를 찾아가 선계(仙界)를 향한 채워지지 않는 열망을 노래하면서 어딘가 있을 도원(桃源)의 낙토(樂土)를 꿈꾸고, 안개 속에 떠돈다는 옛 신선을 찾아 헤매 이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玄言의 哲理를 되새겨 상처받은 왜소한 자아를 위로하고, 자기 모순의 해결 통로를 찾아 나서기도 한다. 이러한 열망은 더 나아가 스스로 신선이 되고자 하는 내단수련(內丹修鍊)의 길로 자아를 부추겨 환골탈퇴(換骨奪胎)의 금단(金丹)을 이루고자 하는 成仙에의 열망으로 승화되기도 하였다.
遊仙詩가 보여주는 것은 원초적 상징으로 가득 찬 상상력의 세계이다. 푸른 하늘 저편 은하수 건너에 열 세 개의 하늘이 차례로 열리고, 그 끝 대라천(大羅天)의 하늘 위에 우뚝 솟은 白玉의 누대(樓臺)와 황금 궁궐, 다층적 위계로 이루어진 신들의 세계, 영원과 불변, 지고와 순결을 상징하는 수많은 遊仙 제재들은 고대인이 꿈꾸었던 유토피아의 모습을 완벽하게 재현해 내고 있다. 설사 그것이 실현 불가능한 것일지라도 결코 허황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이루어질 수 없다고 해서 꿈을 꾸는 행위가 배격되어야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삶의 공포요 절망이 아닐까? 인간의 세상은 언제나 시비의 다툼이 끊이지 않고, 사람은 병들고 늙고 죽으며, 부귀는 덧없고 빈천은 고통을 안겨다 줄뿐이다. 진정한 자유는 어디에 있는가? 초월은 가능한가? 유선시는 중세인이 꿈꾸었던 자유와 초월에의 의지를 대변한다. 인간의 의식이 한계에 달할 때 무의식의 세계가 열린다. 무의식의 세계에서는 잃어버린 꿈과 원초적 상징들이 건강하게 살아 숨쉬고 있다. 인간은 여기에서 소생의 원기를 얻는다.
玄言詩가 보여주는 哲理의 세계는 遊仙의 꿈과 어떻게 만나는가? 흔히 종교로서의 道敎를 철학으로서의 道家와 구분하곤 한다. 그러나 문학 작품 속에서 道敎와 道家는 변별 없이 넘나든다. 저 老子의 道法自然과 莊子의 無用之用, 그리고 소요제물(逍遙齊物)하는 나비의 꿈은 생사우락(生死憂樂)의 질곡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遊仙의 욕망과 본질의미에서 다를 것이 없다. 우선사부(遊仙辭賦)에서 西王母가 건네주는 천년반도(千年蟠桃)나 안기생(安期生)의 대추를 먹고 환골성선(換骨成仙)하는 것이나, 광막한 仙界를 소요하는 도중에 眞人을 만나 生死의 묘결(妙訣) 또는 至樂의 소재를 듣고 황연히 깨달아 迷妄을 깨치는 모식은 道敎와 道家의 그것이 하나로 통합되어 넘나드는 의미임을 일러준다. 西王母의 반도(蟠桃)나 安期生의 대추가 약물을 통해 成仙하겠다는 外丹的 발상이라면, 眞人의 妙訣은 마음의 迷妄을 깨쳐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內丹的 사유의 흔적인 셈이다.
仙趣詩는 꿈의 흔적을 보여준다. 아무리 천상 선계로의 飛翔을 꿈꾼다 해도 인간은 언제나 지상에 발을 딛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사는 나약한 존재일 뿐이다. 현실은 언제나 불만스럽고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 육침(陸沈)의 심회를 간직한 채 내밀한 꿈꾸기는 계속된다. 仙趣詩에는 眞人의 소망을 품은 지상적 존재들이 지닌 仙界로 향한 뿌리깊은 동경과 선망, 실존을 구속하는 제도의 억압과 사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자유의 꿈이 아로새겨져 있다.
煉丹詩는 깨달음의 세계, 成仙에의 구체적 의지를 표현한다. 육신이 곧 정노(鼎爐)이고 마음이 바로 단약(丹藥)임을 깨달아 정기신(精氣神) 삼보(三寶)를 보전하여 성태(聖胎)를 교결(交結)하고, 욕망을 억제하여 잡상(雜想)을 물리쳐 外物에 흔들림 없는 완전한 인격을 갖추려는 것이다. 이때 神仙은 먼 하늘 저편에 있지 않고, 발길이 닿지 않는 깊은 산에 있지도 않으며, 바로 내 자신이 神仙이 되어 앉은자리에서 현세의 구속을 벗어 던져 초월의 경계로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의속시(儀俗詩)는 漢詩에서 道敎가 단순히 관념적 관습적 제재의 차용에 머물지 않고, 신앙의 차원에서 의례화(儀禮化)되고 민간의 의식에까지 침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소중한 시사를 준다. 수많은 수경신시(守庚申詩)는 문인 지식인층 뿐 아니라 당시 왕실에서 민간에까지 널리 퍼져 있던 민간 신앙화된 도교의 잠재적 영향력을 가늠하는 한 척도가 된다.
이렇듯 한시 속의 도교 제재는 매우 다양한 층위를 보여준다. 중세적 자아의 꿈꾸기로서 낭만적 상상력의 공급원이 되는가 하면, 인간의 실존을 위협하는 현실의 폭력에서 벗어나는 방어기제로서의 역할도 담당한다. 이는 한마디로 초월과 자유를 향한 의지로 요약할 수 있겠다. 도교는 한국 한시, 나아가 한국 문학 전반에 걸쳐 상상력의 한 모식(模式)을 제공했고, 宇宙 死生 自然觀을 구성하는 사유체계와 상상체계 속의 중요 원리로 기능 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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