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論

2003.07.03 10:06

길버트 한 조회 수:878 추천:35

1. 서론
신동엽과 함께 1930년대 가장 대표적인 시인이다. 김수영은 대략 1945년경부터 시작활동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49년에는 박인환, 김경린, 양병식 등과 함께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이라는 사화집(詞華集)을 내었는데, 여기에 시 두 편을 실었다. 그러나 시인 자신은 1956년에 쓴 '병풍' 과 이듬해에 쓴 '폭포' 를 자신의 실질적인 처녀작으로 꼽고있다. 이렇게 그는, 초기에는 모더니즘에 경도되어 근대화된 도시성을 노래했지만, 4.19를 경험하게 되면서는 보다 문제의식을 가지고 현실 속에서 자유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관부 연락선>을 썼던 소설가 이병주님과 술을 마시고 논쟁을 벌이고 나오다 버스에 치여 1968년 죽었다.

폭포(瀑布)는 곧은 절벽(絶壁)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規定)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向)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季節)과 주야(晝夜)를 가리지 않고
고매(高邁)한 정신(精神)처럼 쉴사이없이 떨어진다.

금잔화(金盞花)도 인가(人家)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瀑布)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醉)할 순간(瞬間)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懶惰)와 안정(安定)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진다.
<폭포> 전문.

2. 시적 양심의 출발
김수영은 박인환의 서점을 중심으로 문인들과 교류하며 당시 초현실주의나 모더니즘에 경도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법적 측면의 자유로운 무의 세계를 추구했지만 거칠고 투박해서 미학적 완성도가 떨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자세는 종래의 우리 시에 대한 파격성으로 구현되는데, 일종의 비타협적인 자기 발견의 일환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그의 시는 어떤 형식의 구애 없이 온 몸으로 밀고 나가려 한다. 모더니티란 내용적인 것과 형식적인 것이 있는데 내용적인 것이 강화되어야 하는 것을 말하며 온몸으로서 육체로서의 시학을 강조했다. 이는 첫 시집인 <달나라의 장난>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속물세계에 떨어지지 않으려는 반역의 정신은, 50년대 이후 자유의 문제로 확산되기 시작한다.

3. 비애와 설움으로의 자유
김수영의 시에서 자유의 문제가 구체적으로 반영되기 시작한 것은 55년 발표된 <헬리콥터>부터인 것으로 보여진다. 여기서는 아직 비애와의 병치를 통한 소극적인 원형으로 제시되고 있다. 즉, 여기서 자유는 어떤 고통의 수락과 더불어 적극적인 대결로서 획득되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초기 시에서 보여주는 설움이 깔린 소극적인 현실개입은 시 <폭포>에 오면서 변화를 보이게 된다. 즉, 그것은 사회 속에 잠재되어있는 일체의 타성과 안정을 강렬한 의지로 배격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후, <영롱한 목표>에서도 이를 잘 확인해 볼 수 있다. 이렇게 김수영은 60년, 특히 4.19를 기하여 정치적, 사회적 이상과 접목된 방만한 자유를 통하여 고삐 풀린 말처럼 자유롭게 역사와 현실을 누비게 된다. 이렇게 김수영은 자신의 자유의지를 마음껏 보여주게 되는데, <하. 그림자가 없다>같은 작품에서는 시적인 아름다움보다는 자신의 진보관, 정치관을 거리낌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후에도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 <나는 아리조나 카보이야>, <육법전서와 혁명> 등에서도 계속 보여진다. 이는 정치적 이상과 시적 이상이 궁극적으로는 합일이 되어야 하나 현실에서는 어렵다는 반증이 되며, 동시에 정치적 자유가 실현되었다 해서 시적 사명은 종결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지속되던 이런 시작활동은 5.16을 맞으면서 다시 난해한 시를 쓰기 시작했다.
5.16을 거친 김수영의 현실인식은 일차적으로 자기무능, 자기축소의 아이러니를 거쳐 투사된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파자마 바람으로>, <죄와 벌> 등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여기서 보여지는 아이러니는 독자들에게 결국, 이면에 숨겨진 참된 것(의미)과 표면에 나타난 오도된 것(표현)의 이중의미를 끊임없이 파헤쳐야 하는 사고과정을 겪게 해준다.

4. 풀의 의미.
김수영이 생전에 남긴 작품 중 이 작품만큼 관심과 논의의 대상이 된 예는 없을 것이다. 1968년 5월경에 발표한 작품으로 이는 마지막으로 발표한 작품이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이전에 초기시 들에서 보여준 난삽한 포즈를 극복하고 시인의 방향성을 분명하게 제시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는 중주의적인 입장에서 민중들의 운동성을 내포하였으면서도 서정성을 잃지 않은 뛰어난 모습을 보여준다. 굽힘 없는 정신의 한 과정을 보여주면서, 구성적으로도 반복, 역설 등을 통한 빼어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풀> 전문.


5. 결론.
1945년부터 문단 활동을 시작한 김수영은 특히 4.19 이후의 시 작업이 우리 문학사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는 다른 시인들과 달리 내면적 특성에 사회적 활동을 성공적으로 연동시키며 시세계를 펼쳐나간 시인이다. 이렇게 그의 시에서는 대사회적 지향과 내면적 지향이 함께 어우러진 점이 주목된다. 또한, 김수영은 난해시를 옹호하였는데 그것은 자유 추구 의식에 부수하는 현상이었다. 이렇게 그는 온몸을 던져 시와 자유를 위해 소신을 굽히지 않은 시인이었다. 이러한 김수영의 미래를 위한 선도자가 되려는 투지와 노력은 지금까지 시인들의 표준이 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김재홍 교수님이 다녀가셨다. 강연회에서 김수영 시인의 사회적 참여시를 승화시킨 대목에서 한번 더 김수영을 살펴 보았다. 아직도 내게는 자연을 노래 할 것인가, 현실적 사회참여를 노래 할 것인가 아니면 그냥 주어진 길을 묵묵히 가야 하는 것인지 생각해 본다. 나에게는 어떤 진로보다 먼저 시에 대해 문학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우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게으른 자에게 다산의 시보다 몇 편 안되어도 주옥같은 시를 창작해야겠다는 변명을 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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