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학- 동시 3편의 감상
2004.04.23 02:52
1.
풀잎
박성룡
풀잎은
퍽도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어요.
우리가 '풀잎'이라고 그를 부를 때는
우리들의 입 속에서는
푸른 휘파람 소리가 나거든요.
바람이 부는 날의 풀잎들은
왜 저리 몸을 흔들까요.
소나기가 오는 날의 풀잎들은
왜 저리 또 몸을 통통거릴까요.
그러나, 풀잎은
퍽도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어요.
우리가 '풀잎' '풀잎'하고 자꾸 부르면
우리의 몸과 맘도 어느덧
푸른 풀잎이 돼 버리거든요.
박성룡님의 <풀잎>을 보고 김수영님의 시 <풀>을 자연스럽게 생각해봤다. <풀>이 애환을 가진 민초의 상징이었다면 시인은 아픔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시로 승화시켜 많은 사람들을 감동하게 해서 위안을 삼았다. 학기초에 가졌던 동시가 일반 기성 시와 어떻게 다를지 궁금증은 수업을 들으면서 별 반 다르지 않았다. 시가 어른들의 전유물이라면 동시는 그야말로 아이들, 꿈나무의 전유물인 것이다. 아동을 위한 세계를 이해하고 물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고심하기 전에 가슴에 푸르고 싱싱한 향기를 심어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동시인 <풀잎>은 아이들의 순수한 서정과 보이는 그대로의 꾸밈없이 그렸다고 할 것이다. 화자는 어린아이의 세계로 들어가서 풀잎의 이름이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사물에 대한 관찰력과 소리에 대한 세심한 관찰력이 뛰어나다. '풀'을 발음하기에 앞서 다문 입에서 밖으로 내밀어 원음과 다르게 '풀닙'으로 발음되면서 목소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입안에서 있다가 나오는 소리로 휘파람 같은 현상을 화자는 놓치지 않고 서술하고 있다. 1연에서 자신이 깨달은 현상을 신이 나 즐거운 마음으로 자연과 함께 하고있다. 2연에서는 화자가 아동의 심리와 호기심, 의문 나는 것을 서술하면서 바람이라는 외부적 요인에 의해 풀잎들이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풀을 의인화해서 몸을 흔들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또 하나는 시제가 지금이 아닌 과거의 시점에서 봤던 기억을 회상하고, 소나기가 올 때 몸을 통통거리는지 궁금해하고 있다. 사람은 웬만한 바람이 불어도 몸을 흔들지 않으며 소나기가 와도 몸을 통통거리지 않기 때문이다. 바람과 소나기에 몸을 움직일 수밖에 없지만 3연에서 화자는 오히려 그런 풀잎을 선호하면서 몸도 마음도 푸른 풀잎이 될 만큼 깡충거릴 수 있는 상쾌한 마음을 가진다고 풀잎을 좋아하는 이유를 나열하고 있다.
2.
철조망과 나팔꽃
김숙분
철조망 손엔
가시가 돋혀 있었습니다.
'다칠라….'
모두 다 인상을 쓰며
그 앞을 지나쳤습니다.
철조망은
외로웠습니다.
어느 따스한 봄날
조그맣고 여린 손이
철조망을 꼬옥 붙잡았습니다.
나팔꽃
덩굴손이었습니다.
"넌 내가 무섭지 않니?"
"당신이 아니었다면 난 일어설 수 없었어요."
철조망은
다른 손도 내밀었습니다.
김숙분 님의 <철조망과 나팔꽃>을 보면서 미국에 이민 온 나로서는 조국의 분단상황이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쩔 수 없는 민족의 아픔이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는 아니지만 한민족에게 상처로 남아 있다고 본다. 철조망이 무엇인가. 보호보다는 적대적 관계 내지는 경계의 상징어이다. 시각적 날카로움을 수반해서 누구도 가까이 가려 하지 않는다. 이 시의 1연에서 의인화된 철조망의 손에 가시를 들고 있는 것은 창 같은 흉기를 연상하게 된다. 일례로 심상이 고운 사람이 얼굴에 흉터가 나 있고, 강렬한 눈빛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심상을 생각지 않고 첫인상에서 험악하다는 것을 느낀다. 아마 아이들이 연상된 이 모습을 보면 울음을 터트릴 수도 있을 것이다. 2연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사람들만이 아닌 모든 생물체를 포함해서 철조망을 바라보는 시각은 경계와 공포를 넘어 가까이 하려 하지 않는다. 함께 할 수 없는 암흑의 세계를 그리고 있으며 몸이 불편한 지체장애자와 순간의 실수로 사회에 낙인찍힌 사람들을 포함한다고 하겠으나 이것은 동시로 국한 해석해야 할 것이다. 3연에서 1행의 '철조망'은 홀로 놓여있음에 대한 처지를 강하게 잡아내고 있다. 외로움에 고개를 떨군 철조망의 쓸쓸함이 짙게 베어있다. 이 시의 전체적인 반전을 가져오는 사건이 4연에 있다. 외롭고 쓸쓸한 것, 동화에서 나오는 할아버지 집에 돌아온 새들처럼 나팔꽃은 날카로운 철조망의 손을 잡는다. 철조망은 누군가 모르거나 잘못 알고 잡은 줄 알고 손을 잡은 대상에게 오히려 안부와 걱정으로 묻는다. 그렇다. 세상의 모든 만물은 더불어 함께 있는 것이고 귀중하지 않은 것은 없다. 자세히 보면 소용없는 것 같은 것도 실체가 분명하게 들어 날 때 나팔꽃과 철조망처럼 서로를 의지하고 살아간다는 교훈이 담겨 있는 시이다.
3.
해바라기 씨
정지용
해바라기 씨를 심자.
담모퉁이 참새 눈 숨기고
해바라기 씨를 심자.
누나가 손으로 다지고 나면
바둑이가 앞발로 다지고
괭이가 꼬리로 다진다.
우리가 눈 감고 한 밤 자고 나면
이슬이 내려와 같이 자고 가고,
우리가 이웃에 간 동안에
햇빛이 입맞추고 가고,
해바라기는 첫 시악시인데
사흘이 지나도 부끄러워
고개를 아니 든다.
가만히 엿보러 왔다가
소리를 꽥깩! 지르고 간 놈이
오오 사철나무 잎에 숨은
청개구리 고놈이다.
정지용님의 <해바라기 씨>는 <향수>라는 시와 함께 자연을 노래한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인간은 자연을 헤치거나 이용만 하지만 자연은 한번도 인간에게 해를 끼치게 한 적이 없다. 문학과 예술에 있어서도 자연주의가 성행하였던 것만 봐도 만고의 진리일 것이다. 시골의 향수가 베어나는 이 시는 봄날의 풍경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해바라기는 물론이고 파종하는 씨앗들을 참새는 지키고 있다가 날름 먹어내곤 했던 그 모습을 그림처럼 연상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생명사상의 기초 위에 비록 참새가 농작을 헤친다 해도 원망이나 성을 내지 않고 타자의 눈을 가리겠다고 하는 자신의 수동적 행위를 보인다. 또한 3연과 4연은 자연의 오묘한 현상을 인간의 생활과 함께 편안하게 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거짓과 시기가 없고, 사기와 이율 배반적이지 않은 형태의 행위로 사람들을 깨닫게 해주고 있다. 화자가 본 행복한 혼사의 모습에서 해바라기 꽃이 피어 난 모습을 비유했다. 인간이 자연과 함께 성장하고 짝을 만나 더욱 풍성한 생활을 영위하는 것처럼 말이 없는 땅은 거짓이 없다. "심은 데로 거두리라"는 성경의 구절처럼 결실이 맺어진 해바라기이다. 고국의 혼사는 인륜지 대사이다. 연지곤지 찍고 곱게 차려입은 한복과 수줍은 색시의 홍안을 연상하게 하는 새색시. "'시악시"는 색시의 방언으로 시악씨, 시약시로 불려지는 것 같다. 서정주의 <정오의 언덕>에서도 '시약시'라는 시어가 나오는 것만 봐도 뜻이 통하지 않는 것은 아닐 것이다. 혼사예식 행위 후에 맞는 첫날 밤 동네 사람들이 몰래 훔쳐보는 풍습에 따라 합방하는 모습을 문풍지를 뚫고 짓궂게 쳐다보는 모습을 자연 속에 있는 청개구리를 통해 의인화시켜 자연과 더불어 함께 하는 모습을 그렸다. 자연의 세계를 들여다보듯 해바라기를 바라보고 있다. 고향의 냇가에 가서 청개구리의 울음을 듣고 싶다.
풀잎
박성룡
풀잎은
퍽도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어요.
우리가 '풀잎'이라고 그를 부를 때는
우리들의 입 속에서는
푸른 휘파람 소리가 나거든요.
바람이 부는 날의 풀잎들은
왜 저리 몸을 흔들까요.
소나기가 오는 날의 풀잎들은
왜 저리 또 몸을 통통거릴까요.
그러나, 풀잎은
퍽도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어요.
우리가 '풀잎' '풀잎'하고 자꾸 부르면
우리의 몸과 맘도 어느덧
푸른 풀잎이 돼 버리거든요.
박성룡님의 <풀잎>을 보고 김수영님의 시 <풀>을 자연스럽게 생각해봤다. <풀>이 애환을 가진 민초의 상징이었다면 시인은 아픔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시로 승화시켜 많은 사람들을 감동하게 해서 위안을 삼았다. 학기초에 가졌던 동시가 일반 기성 시와 어떻게 다를지 궁금증은 수업을 들으면서 별 반 다르지 않았다. 시가 어른들의 전유물이라면 동시는 그야말로 아이들, 꿈나무의 전유물인 것이다. 아동을 위한 세계를 이해하고 물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고심하기 전에 가슴에 푸르고 싱싱한 향기를 심어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동시인 <풀잎>은 아이들의 순수한 서정과 보이는 그대로의 꾸밈없이 그렸다고 할 것이다. 화자는 어린아이의 세계로 들어가서 풀잎의 이름이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사물에 대한 관찰력과 소리에 대한 세심한 관찰력이 뛰어나다. '풀'을 발음하기에 앞서 다문 입에서 밖으로 내밀어 원음과 다르게 '풀닙'으로 발음되면서 목소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입안에서 있다가 나오는 소리로 휘파람 같은 현상을 화자는 놓치지 않고 서술하고 있다. 1연에서 자신이 깨달은 현상을 신이 나 즐거운 마음으로 자연과 함께 하고있다. 2연에서는 화자가 아동의 심리와 호기심, 의문 나는 것을 서술하면서 바람이라는 외부적 요인에 의해 풀잎들이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풀을 의인화해서 몸을 흔들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또 하나는 시제가 지금이 아닌 과거의 시점에서 봤던 기억을 회상하고, 소나기가 올 때 몸을 통통거리는지 궁금해하고 있다. 사람은 웬만한 바람이 불어도 몸을 흔들지 않으며 소나기가 와도 몸을 통통거리지 않기 때문이다. 바람과 소나기에 몸을 움직일 수밖에 없지만 3연에서 화자는 오히려 그런 풀잎을 선호하면서 몸도 마음도 푸른 풀잎이 될 만큼 깡충거릴 수 있는 상쾌한 마음을 가진다고 풀잎을 좋아하는 이유를 나열하고 있다.
2.
철조망과 나팔꽃
김숙분
철조망 손엔
가시가 돋혀 있었습니다.
'다칠라….'
모두 다 인상을 쓰며
그 앞을 지나쳤습니다.
철조망은
외로웠습니다.
어느 따스한 봄날
조그맣고 여린 손이
철조망을 꼬옥 붙잡았습니다.
나팔꽃
덩굴손이었습니다.
"넌 내가 무섭지 않니?"
"당신이 아니었다면 난 일어설 수 없었어요."
철조망은
다른 손도 내밀었습니다.
김숙분 님의 <철조망과 나팔꽃>을 보면서 미국에 이민 온 나로서는 조국의 분단상황이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쩔 수 없는 민족의 아픔이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는 아니지만 한민족에게 상처로 남아 있다고 본다. 철조망이 무엇인가. 보호보다는 적대적 관계 내지는 경계의 상징어이다. 시각적 날카로움을 수반해서 누구도 가까이 가려 하지 않는다. 이 시의 1연에서 의인화된 철조망의 손에 가시를 들고 있는 것은 창 같은 흉기를 연상하게 된다. 일례로 심상이 고운 사람이 얼굴에 흉터가 나 있고, 강렬한 눈빛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심상을 생각지 않고 첫인상에서 험악하다는 것을 느낀다. 아마 아이들이 연상된 이 모습을 보면 울음을 터트릴 수도 있을 것이다. 2연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사람들만이 아닌 모든 생물체를 포함해서 철조망을 바라보는 시각은 경계와 공포를 넘어 가까이 하려 하지 않는다. 함께 할 수 없는 암흑의 세계를 그리고 있으며 몸이 불편한 지체장애자와 순간의 실수로 사회에 낙인찍힌 사람들을 포함한다고 하겠으나 이것은 동시로 국한 해석해야 할 것이다. 3연에서 1행의 '철조망'은 홀로 놓여있음에 대한 처지를 강하게 잡아내고 있다. 외로움에 고개를 떨군 철조망의 쓸쓸함이 짙게 베어있다. 이 시의 전체적인 반전을 가져오는 사건이 4연에 있다. 외롭고 쓸쓸한 것, 동화에서 나오는 할아버지 집에 돌아온 새들처럼 나팔꽃은 날카로운 철조망의 손을 잡는다. 철조망은 누군가 모르거나 잘못 알고 잡은 줄 알고 손을 잡은 대상에게 오히려 안부와 걱정으로 묻는다. 그렇다. 세상의 모든 만물은 더불어 함께 있는 것이고 귀중하지 않은 것은 없다. 자세히 보면 소용없는 것 같은 것도 실체가 분명하게 들어 날 때 나팔꽃과 철조망처럼 서로를 의지하고 살아간다는 교훈이 담겨 있는 시이다.
3.
해바라기 씨
정지용
해바라기 씨를 심자.
담모퉁이 참새 눈 숨기고
해바라기 씨를 심자.
누나가 손으로 다지고 나면
바둑이가 앞발로 다지고
괭이가 꼬리로 다진다.
우리가 눈 감고 한 밤 자고 나면
이슬이 내려와 같이 자고 가고,
우리가 이웃에 간 동안에
햇빛이 입맞추고 가고,
해바라기는 첫 시악시인데
사흘이 지나도 부끄러워
고개를 아니 든다.
가만히 엿보러 왔다가
소리를 꽥깩! 지르고 간 놈이
오오 사철나무 잎에 숨은
청개구리 고놈이다.
정지용님의 <해바라기 씨>는 <향수>라는 시와 함께 자연을 노래한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인간은 자연을 헤치거나 이용만 하지만 자연은 한번도 인간에게 해를 끼치게 한 적이 없다. 문학과 예술에 있어서도 자연주의가 성행하였던 것만 봐도 만고의 진리일 것이다. 시골의 향수가 베어나는 이 시는 봄날의 풍경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해바라기는 물론이고 파종하는 씨앗들을 참새는 지키고 있다가 날름 먹어내곤 했던 그 모습을 그림처럼 연상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생명사상의 기초 위에 비록 참새가 농작을 헤친다 해도 원망이나 성을 내지 않고 타자의 눈을 가리겠다고 하는 자신의 수동적 행위를 보인다. 또한 3연과 4연은 자연의 오묘한 현상을 인간의 생활과 함께 편안하게 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거짓과 시기가 없고, 사기와 이율 배반적이지 않은 형태의 행위로 사람들을 깨닫게 해주고 있다. 화자가 본 행복한 혼사의 모습에서 해바라기 꽃이 피어 난 모습을 비유했다. 인간이 자연과 함께 성장하고 짝을 만나 더욱 풍성한 생활을 영위하는 것처럼 말이 없는 땅은 거짓이 없다. "심은 데로 거두리라"는 성경의 구절처럼 결실이 맺어진 해바라기이다. 고국의 혼사는 인륜지 대사이다. 연지곤지 찍고 곱게 차려입은 한복과 수줍은 색시의 홍안을 연상하게 하는 새색시. "'시악시"는 색시의 방언으로 시악씨, 시약시로 불려지는 것 같다. 서정주의 <정오의 언덕>에서도 '시약시'라는 시어가 나오는 것만 봐도 뜻이 통하지 않는 것은 아닐 것이다. 혼사예식 행위 후에 맞는 첫날 밤 동네 사람들이 몰래 훔쳐보는 풍습에 따라 합방하는 모습을 문풍지를 뚫고 짓궂게 쳐다보는 모습을 자연 속에 있는 청개구리를 통해 의인화시켜 자연과 더불어 함께 하는 모습을 그렸다. 자연의 세계를 들여다보듯 해바라기를 바라보고 있다. 고향의 냇가에 가서 청개구리의 울음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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