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과 현대시

2004.05.04 07:13

길버트 한 조회 수:1005 추천:20

1. 관점에 따라 명칭과 의미가 다르게 해석돼 온 '동학혁명'

동학란인가, 동학혁명인가 아니면 갑오농민전쟁인가? 동학혁명은 이 땅의 험난한 현대사를 반영하듯이 그 명칭마저도 다양하게 불리어 왔다. 조선조 지배체제에 대한 반체제 저항 운동으로서 난리인가. 아니면 이 땅의 누적된 제반 구조적 모순과 부조리를 광정하여 하원갑 다음에 상원갑 좋은 시절이 오게 하려는 정치·경제·사회·문화적 변혁을 위한 민중혁명운동인가? 그도 아니면 계급투쟁으로서 농민들의 지배계급에 대한 해방 전쟁의 성격을 지니는가 하는 관점에 따라 그 명칭과 의미가 다르게 해석돼 온 것이다.
1894년의 동학은 "용천검 드는 칼을 아니 쓰고 무엇하리/무수장삼 떨쳐입고 이 칼 저 칼 언즛들어/호호망망 넓은 천지 일신으로 비껴서서/칼노래 한 곡조를 시호시호 불러내니"라는 동학시 [검결(劍訣)]처럼 반외세 민족해방의식과 반계급 사회해방의식 및 반봉건 인간해방의식을 핵심 이념으로 하는 혁명운동의 시발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동학혁명의 이념은 이후 1919년 3·1운동으로 이어지고, 다시 1960년 4·19혁명으로, 그리고 80년 5·18광주민주항쟁으로 이어지는 이 땅 근대화·민주화 운동의 횃불로서의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2. 좌절될 수밖에 없는 절망감 담긴 당시 민요들

동학혁명은 당대에 구전되던 민요들에 수용되면서 대중에게 널리 퍼지기 시작한다.

① 새야 새야 파랑새야/녹두밭에 앉지마라/녹두꽃이 떨어지면/청포장수 울고 간다//새야 새야 파랑새야/녹두잎에 앉은 새야/녹두잎이 깐닥하면/너 죽을 줄 왜 모르니//새야 새야 파랑새야/너 뭣하러 나왔느냐/솔잎 댓잎 푸릇푸릇/하절인줄 알았더니/백설이 펄펄/엄동설한이 되었구나
― [새야 새야 파랑새야]부분

② 가보세 가보세/을미적 을미적/병신되면 못가리
― [가보세 가보세]

③ 개남아 개남아 김개남아/억만군사 얻다 두고/짚둥주리가 웬말이냐
― [개남아 개남아 김개남아]

인용시들은 당대 민요에 있어서 동학이 어떻게 수용되고 있는가를 잘 보여 준다. 먼저 흔히 [파랑새요]라고 불리는 ①시는 전봉준 장군을 '녹두밭/녹두꽃/녹두잎' 등으로 드러내고 있다. 특히 '떨어지면/울고 간다/너 죽을 줄/엄동설한' 등의 강렬한 시구 속에는 당대 민중들이 지도자 전봉준에 대해 품고 있던 경모심과 함께 현실에 대한 위기감 및 뿌리깊은 절망감이 담겨 있다고 하겠다.
[파랑새요]는 전봉준으로 표상되는 당대 민중들의 희망의 노래이며 동시에 절망의 노래로서의 이중적 성격을 지닌다. 한편 시 ②, ③도 가보세와 김개남이라는 중의법을 통해서 당대 민중들의 열린 소망과 함께 절망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처럼 당대의 민요에는 동학혁명이 민중에게 하나의 희망을 던져주는 역사의 후천개벽 메시지로서 받아들여지면서도 그것이 끝내 좌절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데 뿌리깊은 절망감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그 비극성이 심화되어 드러난다.
일제 강점기에 동학혁명은 그 정신이 천도교로 이어져 3·1운동의 하나의 주도 세력이 되지만, 현대시적인 표현을 획득하지는 못한다. 하기야 3·1운동 자체가 당대에는 "큰 길에 넘치는 白衣의 물결 속에서 울음소리 일어난다/銃劍(총검)이 번득이고 軍兵(군병)의 말굽소리 소란한 곳에/분격한 무리는 몰리며 짓밟히며/땅에 엎디어 마지막 비명을 지른다/땅을 두드리며 또 하늘을 우러러/외오치는 소리 느껴우는 소리 구소에 사모친다"라는 심훈(沈熏)의 시 [통곡 속에서]에 이르러 겨우 상황시의 편린을 엿볼 수 있을 뿐이지 않은가?
이 점에서 조운(曺雲)의 시 [고부 두성산(古阜 斗星山)은 선구적인 의미를 지닌다.

두성산이언마는 녹두집이 그 어덴고
뒤염진 늙은이 대답은 하지 않고
고개를 배트소롬하고 묻는 나만 보누나

솔잎 댓잎 푸릇푸릇 봄철만 여기고서
일나서 패했다고 설거운 소리마라
오늘은 백만농군이 죄다 琫準(봉준)이로다.

1947년에 발표된 이 시조는 전봉준 생가를 찾아가서 느낀 소회를 드러내면서 민족혼과 민중혼의 상징으로서 전봉준을 추모한다. 말하자면 억눌린 민족의 한과 민중의 울분을 "뒤염진 늙은이의 배트소롬한 고개" 및 "오늘은 백만 농군이 죄다 봉준이로다"라는 표현을 통해서 강력하게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짤막한 시조형식 속에 '배트소롬한 늙은이'의 형상과 '백만농군=전봉준'이라는 진술로서 민족사관·민중사관의 한 모습을 날카롭게 제시한다.
이처럼 일제 강점기에 동학혁명과 그 정신은 3·1운동과 광주학생 사건 등으로 분출되었지만 그 문학적 표현은 비교적 미미한 실정이다.


3. 현대시에 표출된 동학혁명의 정신과 이념

동학혁명이 현대시에서 그 구체적인 표현을 얻은 것은 4·19혁명이후 60년대에 이르러 신동엽에 의해서였다.

껍데기는 가라
4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東學年(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하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1967년 발표된 시 [껍데기는 가라]는 동학혁명의 정신과 이념을 4·19혁명과 연결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반외세 민족 해방의식과 반계급 사회해방의식, 그리고 반봉건 민주화의식을 알맹이로 하는 동학의 이념은 그래로 4·19로 접맥되어 자유·평등·민주·민권운동으로 부각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동학과 4·19를 병치시킨 것은 신동엽의 시의식이 민족주의·민중주의 역사의식에 자리잡고 있음을 말해 주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아사달과 아사녀를 시적 인물로 등장시킨 것은 분단의 극복, 민족의 화합을 강조하는 뜻을 담고 있으며, 흙가슴과 쇠붙이를 대응시킨 것은 온갖 무력주의와 저항하는 민중적 생명력의 소중함을 강조한 것이 된다.
삼국시대와 동학, 그리고 오늘의 분단시대에 민족과 민중이 주인이 되지 못하는 이 땅 역사의 비극성을 비판하는 동시에 자유·평등·민주·민권주의 이념을 새삼 강조함으로써 동학혁명의 정신을 4·19혁명으로 계승하고자 의도하는 것이다.
동학혁명이 현대시에 나타나는 모습은 전봉준을 핵심 상징으로 하면서 70∼80년대 이 땅 민족문학·민중문학의 한 중심 문맥을 형성하며 전개된다.

ⓛ 봉준이가 운다. 무식하게 무식하게/일자 무식하게, 아 한문만 알았던들/부드럽게 우는 법만 알았던들/왕 뒤에 큰 왕이 있고/큰 왕의 채찍!
― 황동규, [삼남에 내리는 눈] 부분

② 하늘을 향해 부끄럼없이 틀어올린 상투며/오른쪽 이마엔 별명보다 큰 혹/무명저고리에 단정히 맨 옷고름/폭포처럼 몇가닥 곧게 뻗은 수염/천리길을 몸 묶인 채 흔들리며/매섭고 그러나 이젠 자유스런 눈빛으로/산천초목을 끌어안은 녹두장군
― 조태일, [내가 아는 시인 한 사람은] 부분

③ 눈 내리는 萬頃들 건너가네/해진 짚신에 상투 하나 떠나네/가는 길 그리운 이 아무도 없네/녹두꽃 자지러지게 피며 돌아올거나/울며 울지 않으며 가는/우리 봉준이/풀잎들이 북향하여 일제히 성긴 머리를 푸네
― 안도현, [서울로 가는 전봉준] 부분

이 세 편의 인용시는 60년대, 70년대, 80년대 시에서 전봉준이 우리 현대시에서 중요한 문맥으로 살아 있음을 잘 보여 준다.
시 ①은 전봉준을 통해 이 땅 민중의 한과 울분을 드러내며 사대주의로 멍들어 온 역사 전개과정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시 ②는 녹두장군을 자기네 집 조상으로 삼고 있다는 한 시인을 예로 들어 동학혁명의 정신을 오늘에 되살리는 일이 참으로 중요함을 강조한다. 시 ③은 동학혁명과 그 이념이 80년대를 살아가는 젊은 시인들에게도 여전히 시정신의 한 뼈대를 이루고 있다는 점을 제시한다.
이들 시편들이 강조하는 것은 한마디로 말해 동학혁명의 정신이 이 땅에서 사람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근원적인 힘이 될 수 있음을 말해 준다고 하겠다. 그것은 올바른 민족해방과 민중해방이란 명제가 바로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일이며 사람을 가장 소중한 것으로 여기는 동학사상의 중요한 한 반영이라고 할 수도 있으리라.
이러한 전봉준이 상징하는 바 민족주체사관과 민중주체사관은 풀과 꽃, 땅과 사람으로서의 폭넓은 상징 체계를 형성한다.
먼저 풀과 꽃은 민중적 생명력의 표상으로서 식물적 상상력의 범주를 지닌다.

갑오년 白山에 솟은 푸른 참대밭/우리들의 가슴을 뚫고/사무친 아우성이 솟아오르는 소리/안개 속에서 달빛 속에서/어둠을 뚫고/굳은 땅을 뚫고/모든 뿌리들이 일제히 터져나오는 소리
― 문병란, [竹筍] 부분

타네/불타네/녹두꽃 타네/별 푸른 시구문 아래 목 베어 횃불 아래/횃불이여 그슬러라/하늘을 온 세상을/번뜩이는 총검 아래 비웃음 아래/너희, 나를 육시토록/끝끝내 살아.
― 김지하, [녹두꽃] 부분

인용시에서 참대·죽순·녹두꽃과 같은 식물 심상은 그대로 민중적 생명력의 한 표상이 된다. 이 밖에도 조재훈의 [삿대울 굴참나무], [진달래], 임홍재의 [청보리의 노래], 정희성의 [피의 꽃], 최두석의 [대꽃], 고재종의 [대숲이 부르는 소리] 등 일일이 예거하기 힘들 정도로 풀과 꽃, 나무 등은 동학혁명과 연관된 민중적 생명력 또는 민중사관의 연쇄체계를 형성한다.
아울러 이러한 식물 심상은 김관식 [황토현에서], 양성우 [만석보], 김진경 [우금치의 노래], 정희성 [황토현에서 곰나루까지], 그리고 신동엽의 [금강]처럼 지명과 연결되면서 '백제 의식' 또는 '전라도 정신' 및 '광주 상징'으로 나타난다. 오랜 역사 과정에서 소외와 억눌림 또는 울분으로 점철된 민중적 생명력을 표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동학혁명이 4·19혁명으로서 4월 상징 및 80년대 5·18광주민중항쟁으로서 5월 상징으로 점철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미치고 싶었다/4월이 오면/산천은 껍질을 찢고/속잎은 돋아나는데/4월이 오면/곰나루서 피 터진 동학의 함성/광화문서 목 터진 4월의 승리여
― 신동엽, [4월은 갈아엎는 달] 부분

터벅터벅 먼지나는 들길을 지나/새우깡 묽은 소주 한병 풀무덤에 뿌린 후/밤하늘 멀리 사위어가는 달빛 아래/염병하듯 서있던 돌비석 사이에 누웠을 때//그 수 많았던 전쟁에서 호령은커녕/아예 그런 일에는 관심조차 없이/묵묵히 대오를 지켰던 흰 옷 입은 농민군의 그림자
― 임동확, [망월동에서 하룻밤을] 부분

오랜 일제 강점으로 인해 민족적 주권과 민족혼이 박상(剝喪)되고, 그에 뒤이은 분단으로 인해 인간적 존엄성과 총체성이 깨뜨려지는 상황에서 동학혁명은 전봉준과 그에 따른 몇몇 상징체계를 통해서 민족 주체성을 회복하고 인간적 존엄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의 결정을 보여 준 것이다.



4. 동학을 전면적으로 다룬 신동엽·송수권 등의 시들

동학혁명은 현대시사에서 몇 편의 서사시집을 탄생시킴으로써 현대시사의 확대와 심화에 기여하게 된다. 간접적으로 동학혁명이나 그러한 정신사적 시대 상황을 다루고 있는 서사시는 신경림의 [남한강]이나 문병란의 [동소산의 머슴새], 고은의 [백두산]등이 있지만, 직접적으로 동학을 노래하고 있는 것은 신동엽의 서사시 {금강}(을유문화사, 1967)과 장효문의 {서사시 전봉준}(전예원, 1982), 그리고 송수권의 동학서사시집 {새야 새야 파랑새야}를 꼽을 수 있다. 이들 세 작품들은 앞의 현대시들이 부분적으로 동학혁명 또는 그 정신을 노래하고 있는 데 비해 전면적으로 그러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어서 관심을 환기한다.
먼저 {금강}은 동학운동을 우리 현대시의 중심 테마로 이끌어들인 첫 번째 서사시이다. 서화(序話)와 모두 26 장으로 된 본시, 그리고 후화(後話)로 짜여진 총 4, 800여 행의 이 서사시는 길이나 내용면에서 보더라도 당대까지 최대의 작품으로 기록된다. 이 작품은 민중혁명으로서의 동학과 1960년대의 사회·역사적 정황을 병치 구조로 하여 시를 전개시키고 있다.
이러한 작품 구조는 {금강}이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동학혁명이지만, 시인은 이 동학혁명이 오랜 세월 누적돼 온 한국사의 구조적 모순에서 비롯된 것이며, 동시에 이것은 해방 이후 분단 역사의 전개와도 밀접히 대응되는 현재적 사건으로서 의미를 지닌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동학혁명의 고난으로 가득 찬 전개 과정이나 비극적인 결말 그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동학혁명이라는 근대사 최대의 한 사건을 통해서 우리의 지난날 잘못된 역사를 되돌아 비판해 보고 현재의 여러 가지 모순과 문제점을 조명해 봄으로써 당대 한국사와 현실이 당면하고 있는 구조적 모순과 현실적 난관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강조한 것으로 이해된다.
{금강}에서 시인이 제기한 중심 문제는 크게 보아 세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첫째는 한국사의 근원적 모순과 부조리가 외세 의존과 중앙집권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비판하면서 민족 주체성과 인간 평등사상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신라 왕실이/백제, 고구려 칠 때/당나라 군사를 모셔왔지/우리들은 끄덕하면 외세를/자랑처럼 모시고 들어오지"(6장에서)처럼 외세 의존을 비판한다. 아울러 "피기름 샘솟는/중앙도시는 살찌고/농촌은 누우렇게 시들어 가고 있다"(13장에서)처럼 중앙집권제의 병폐를 날카롭게 지적하면서, 그러한 모순과 문제점들을 평등의 정신으로 극복하자는 데서 60년대 당시 사회의 역사적 활로가 열릴 수 있음을 강조한다.
둘째는 민주주의 지향성 또는 민중정신을 드러낸 것으로 이해된다. 4·19와 5·16을 겪고 나서 씌어진 {금강}은 "4워달 우리들 밥은 익었었는데/누군가가 쇳가루를 뿌려놓은 것 같구나/연인이여, 너와 나의 쌀밥에/누군가가 쇳가루를 뿌려놓은 것 같구나"(6장에서)처럼 '밥'과 '쇳가루'를 대조시켜 이 땅의 중심 과제가 자유·평등·민주·인권의 인문주의 확립과 그에 따른 민중정신 고양에 있음을 역설한다.
셋째는 결국 해방 후 이 땅의 궁극적인 문제가 민족 주체성을 확립하고 분단 극복으로서 통일을 이루어내는 데서 해결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동학혁명 당시의 청·일군이나 해방 후 미·소련군의 진주가 끝내 이 땅에 일제 강점과 민족 분단을 초래했다는 점에서 민족 주체성을 확립하고 분단을 극복해 나아가는 일만이 민족의 활로를 열어갈 길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금강}은 동학혁명이 4·19혁명으로 이어지면서 새삼 이 땅과 역사의 주인이 한민족이며 그 대다수 구성원으로서 소외된 다수, 즉 민중이라는 점을 구체적인 작품을 통해 형상화한 역작이라고 평가된다. 장효문의 {서사시 전봉준}은 {금강}과는 조금 달리 동학혁명을 역사적 사실 그 자체에 충실하여 묘파하고 있다. 모두 10장으로 짜여져 있는 이 작품은 동학영웅 전봉준의 탄생으로부터 시작되어 관헌에 의해 죽음을 당하는 과정까지를 사건 중심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영웅서사시의 범주에 속한다.
먼저 제1장의 '어둠 및 바람새재가 우는 소리'는 양반 관료의 학정이 극심한 시대 상황과 전봉준의 탄생 및 성장 과정을 그리고 있다. 특히 이 부분에서는 백성들의 애환을 쑥국새 울음으로 상징화하면서 비극성을 심화해 가고 있다. 제2장 '사랑과 미움 그리고 죄와 벌'에서는 전봉준의 동학 입교와 전라도 고부 군수 조병갑의 학정을 생생히 묘파하면서 사건을 본격화한다.
제3장에서는 전봉준의 지휘 아래 동학 농민이 봉기하는 모습이, 4·5장에서는 전봉준·손화중·김개남을 중심으로 한 동학군의 무장투쟁이 그려져 있다. 6·7장에서는 일군과 청군이 출동하면서 동학군과 정부군 사이에 휴전이 이루어지고 동학군이 해산되는 과정이 다루어진다. 아울러 8·9·10장에서는 동학군의 재봉기와 우금치전투가 다루어지면서 전봉준이 배신에 의해 체포되고 동학혁명이 좌절되는 얘기로 작품이 마무리된다.
그러고 보면 이 작품은 보국안민의 항일 구국 투쟁으로서 동학혁명의 전체적인 전개 과정과 그 의미를 형상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봉준을 핵심 고리로 한 영웅 서사시의 측면과 민족의 고난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민족 서사시의 면모를 함께 지닌다고 할 것이다.
동학 서사시집이란 제명을 붙인 송수권의 {새야 새야 파랑새야}는 첫 부분이 서정시로, 둘째 부분이 핵심 부분은 서시와 1, 2, 3, 4부로 짜여진 서사구성으로, 셋째 부분은 다시 '새벽'이라는 서정시로 구성되어 있는 서정·서사 복합 장르의 형식을 취한다. 서사시의 틀을 핵심으로 하면서 서정시를 앞뒤로 붙여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대신하는 형국이라고 하겠다.
송수권의 역사 인식은 비관적인 데서 출발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민족의 저력과 민중의 생명력을 믿고 사랑하는 낙관론적 지평으로 열려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서사시집에서도 지배자들로서 부패한 양반들의 횡포와 수탈 속에서 꿋꿋하게 이 땅을 지켜가는 민초들의 모습을 통해 그러한 역사 의식을 담보해 낸다.
전체적인 면에서 이 송수권의 서사시집은 전봉준에 기대는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면서 허구적인 인물 '바우'와 그의 아내 '달래'를 중심으로 하여 전개되는 특징을 지닌다. 모두 4부로 구성된 이 작품은 동학혁명 당시와 80년대 이 땅의 상황을 함께 어우르면서 외세 의존성을 비판하면서 민족 주체성을 강조하고 민중 생명력을 능동적으로 고양하고자 하는 내용과 의도가 그 주제에 해당한다.
"이 땅이 어떤 땅 어떤 하늘이냐"라면서 "오늘 우리들 패배의 이야기는/또 얼마나 아름다운 밤을 부를거냐"라고 외치는 결구는 동학혁명이 우리 역사에서 갖는 현재적 의미를 강조한 것이 아닐 수 없다. 80년 광주 민중항쟁을 겪으면서 동학혁명을 떠올리고 그 비극적인 결말을 통해 바람직한 역사의 방향성과 참된 인간의 길이 어떠하며 어떠해야 하는가를 질문하고 있는 것이다. 실상 후기에서 시인이 '우리 새벽 아름답구나/우리 새벽 힘차구나'라고 시집을 마무라한 것도 동학과 5·18의 비극적인 의미를 넘어서 이 두 혁명적 사건들이 오늘날의 역사와 현재의 삶을 함께 충격하는 신성한 힘으로 살아 있음을 강조한 것이 된다.


5. 민족·민주운동을 지켜 온 동학의 정신

동학혁명은 이 땅의 근대사에서 아니 우리 현대 시사에서 아직도 진행중이며 미래완료형으로 전개돼야 할 내용임에 분명하다. 그것이 충격하기를 희망하는 것은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오늘의 역사이며 미래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역사의 주체 세력인 민족과 그 추진력이자 원동력으로서 민중의 솟구쳐 오르는 힘이 인내천(人乃天)사상으로서 동학을 형성하고 마침내 동학혁명을 일으킴으로써 이 땅 근대사에 반외세 민족주체사상, 반계급 사회해방사상, 반봉건 인간해방사상의 기치를 높이 치켜들게 된 것이다.
이러한 동학혁명은 그것이 비록 당대로서는 실패한 것으로 기록될 수밖에 없었다고 하더라도 이후 이 땅 역사에서 자유·평등·민주·민권의 소중함을 일깨우면서 민족적 정기와 민중적 생명력을 되살리는 역동적 에너지로서 작용해 온 데서 곧 의미를 지닌다. 일제 강점의 혹독한 수난 속에서 3·1운동과 광주학생사건을 비롯한 수많은 민족·민중운동을 점화하는 원동력이 되었으며, 해방 후 고된 분단의 역사 속에서 계속된 군사독재와 맞서 싸우며 민족적 자존심을 지키고 인간적 존엄성을 확보해 가는 데 정신적인 지주로서 작용해 온 것이다.
"사람이 바로 하늘이다"라고 하는 인내천(人乃天)의 동학사상과 그 혁명운동은 이 땅 100년 현대사의 어둔 밤길에서 역사의 새벽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찬 횃불로서 면면히 이어져 왔으며, 오늘의 역사에서도 여전히 밝게 타오르는 현실 극복의 원동력이라는 점에서 현재진행형이자, 통일의 그날과 그날 이후까지도 우리 민족의 앞날을 밝혀 줄 희망의 메시지라는 점에서 미래완료형으로 남아 있다고 하겠다.

회원:
0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12
어제:
4
전체:
104,8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