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은 흔적이다. 손이 남긴 흔적은 손자국, 흰 눈위에  발자국, 코피가 옷에 묻으면 핏자국,  땟자국, 눈물자국, 키스자국, 등등 눈에 보이는 자국들은 이렇듯 많다. 칼자국처럼 지을 수 없는 증거 표증이 될 때는 가슴이 서늘해 지기도 한다. 현장에 남겨진 작은 흔적 하나로 사건이나 범죄 진상 그 유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입 뻥긋 안해도 수천 단어의 언어로 말해주고 있는 자국의 위력은 그래서 대단하다. 그러고 보면 손바닥 열고 금 자국 지문이야 말로 이 세상 어디에도 동일성이 없는 유일무이의 아이디 감별 촉이지 않는가.

 

천성적으로 동물사랑 낭만으로 시작된 나의 개사랑이 하마트면 식어갈 위기를 맞을법 했다. 특히 혓바닥이 진한 보라색, 퍼플 텅(purple tongued )의 개는 사나운 기질(Very protective)로 간주되어 온 개의 생리구조를 나는 알 턱이 없었다. 이웃에 사는 스카티 (Scottie)는 나의 견공 친구다. 아들네가 집안에서 키우는 순한 제이크(Jake)와 같은 종자 블랙 라바도어다. 몸이 날렵한것 부터 키도 크기도 체구도 너무 흡사하다. 이웃 친구 네오미가 늘 데리고 산책할 때면 새까맣게 윤기 흐르는 늠름한 모습이 영국 왕실의 귀족 사냥견의 품위다. 오히려 스카티가 네오미를 데리고 산책을 리드하는 것 같다. 네오미는 유방암 절개 수술 후 회복기에 있다. 그녀의 규칙적 산책은 치료차원이어서 비오는 날 우산을 쓴 주인 옆에 같은 보폭으로 동행하며 간병을 실행하는 스카티의 충성을 나는 눈여겨 봐왔다. 이 블래 라바도어는 탁월한 후각능력이 뛰어난 탓에 특수 감식견으로 적합하다고 한다. 지금은 네오미의 도우미후견견 같다. 이 주택 단지 독서클럽 회장인 네오미는 내가 소개한 위안부 (Comfort Women)이야기< 용의 눈물* >소설책을 교재로 삼았을 때 책 내용도 논할겸 나를 독서클럽에 초대, 식사까지 대접해 주었다. 책을 좋아하고 개를 좋아하는 우리는 그 이후 더욱 친해졌다.

 

그 날은 화요일, 날씨가 2월 치고 너무 더운 감이 들었다. 뒷뜨락으로 가는 시멘트 바닥을 물로 씻으며 봄기운에 취해있는 화단의 화초들을 손질하고 있었다. 한가한 오후 한 나절 나의 흙손은 바빴고 흙일은 내 마음을 즐겁게 해주고 있었다. 마침 네오미가 스카티와 지나가다가 철문 사이로 나를 보고 아는 채 불렀다. 입구에 있는 세이고 팜(Palm) 소철이 보기 참 좋다며 일상 얘기에서 한국의 구정에 대해 물어왔다. 얘기 도중 불현듯 차고 냉장고 안에 있는 어제 저녁 투고 박스에 가지고 온 스테이크 살점이 생각났다. 주인 네오미에게 허락을 받았다. 손바닥에 살점을 작게 찢어 네오미 먼저 나는 나중, 우리는 번갈아 성찬 보너스를 줬다. 키까지 낮추어 가면서 앉은 자세로 스카티에게 후하게 하사하며 교감을 즐기고 있었다.

 

마지막 한 조각은 내 차례였다. 나의 내민 손바닥에 놓인 고기살점 대신 눈 깜짝 사이에 오른쪽 팔이 왕창 깨물리었다. 나는 뒤로 나자빠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내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예상치 않았던 일이라 눈에서 번개가 번득였다. 놀랐다. 충격이었다. 경계심 전혀 없는 무방비의 아주 우호적 분위기였는데 말이다. 주인이 야단을 치자 개는 두 앞발 모으고 고개까지 땅바닥에, 눈도 내려뜨고 정말 사과하는 시늉을 하며 뉘우치는 듯 엎드린 저자세가 되었다. 붉은 피 범벅인 내 상처를 보고 나보다 더 놀라고 미안한 사람은 개 주인 네오미였다. 예의상 태연한 척 했지만 처음 당하는 일이라 속으로 나는 겁이 덜컥 났다. 필요한 모든 예방주사를 접종한 애완견이라 안심해도 된다는 네오미 말이 다소 위로가 되긴 했다.

 

달려가 진통제와 항생제를 집에서 가지고 온 네오미는 우선 소독 식염수로 씻고 네오스프림 항생제 연고도 발라주고 ‘아이 엠 쏘 쏘리’를 울먹이는 목소리로 되풀이하며 사과 하고 미안해 했다. 병원(Urgent Care)에 갔을 때 기다림이 너무 길었다. 문 닫는 8시까지 어림도 없어 남편 식사준비 차 일단 집으로 귀가, 욱신거리는 밤을 보냈다. 그 다음날 일찍 찾아간 병원에서는 써내는 설문지도 여러 장, 파상풍 (Tetanus Vaccine) 주사 까지, 물린 부위 드래싱이며 개에 물린 환자를 심각하게 다루며 치료해주었다. 사람을 무는 개에 대해 리포트를 작성하란다. 도시마다 동물 오디난스(Ordinance)는 다른가 보다. 나는 거절했다. 주인이 애완견을 버려야 하는 (Disown) 절차를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디스온하는 방법은 죽이는 길이었다. 내 팔에 있는 스카티의 깊은 이빨 자국은 단순사고였다. 상습 공격이 아닌 우발적 실수로 인해 주인이 애완견을 잃게 된다면 이를 어쩌나! 그것은 의도된 헤프닝이 아니었기에 네오미와   스카티 사이를 떼 놓을 수는 없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소독 항생제 연고약과 항생제 처방 알약을 서둘러 타왔다. 상처가 다 나은 듯 보여도 10일 동안 계속 복용할 것을 월그린 약국은 친절하게 충고해줬다. 빨리 신속 대응했기에 빨리 나으리라 나는 믿는다. 독을 품고 성깔 잔뜩 난 공격이 분명 아니었다. 이 사건으로 스카티는 더 트레닝(Obedience School) 교육을 받을 것이며 앞으로 분명 조심할 것이다. 주인과 헤어지는 작별 같은 단절은 없을 것이다.

 

개에게 물렸을 때 응급처치 법은 소독약을 빨리 바르는 게 가장 상책인 것임을 상식으로 알아둘 일이다. 소독약이 없으면 흐르는 수돗물로 씻어주면 그나마 좋은 방법이란 것을 배웠다. 지금 내 오른 팔은 이빨자국 두 군데가 지혈은 되었지만 벌겋게 성이 나있고 욱신거린다. 이빨 자국이 곪는 것인가, 노랗게 염증이 보인다. 혹시 개 이빨에 붙어 있던 세균이 상처 속으로 들어가 이런 염증을 일으킨 것은 아닐까 싶어 항생제 복용도 시간 맞추어 열심히 한다. 항생제 연고도 열심히 바르고 공기 통하게 그 부위를 노출시키고 있다. 후후 불면서 지금 상처부위를 내려다본다. 


보통 개의 혀는 발갛다. 보라색 혓바닥을 가진 스카티의  이빨 자국 흉터는 도장처럼 ‘믿지 마라’ 개 조심을 상기시킬 것을 나는 안다. 지금은 길 들여 졌지만(tamed) 개의 조상은 늑대였다. 들짐승 야성이 개 속성 안에 비활성화로 숨어있는 내력을 나는 잊고 있었다. 깊은 이빨 자국 두개가 내 오른 팔에서 반들거리는 살갗피부로 뜬다. 여름이 오면 긴 소매 옷을 선호하게 될것이다. 


며칠 후 배달된 카드와 기프트는 향기 좋은 커다란 양초 선물, 그 내용을 옮겨본다.

'Dear Young,

Just a little something to let you know how much I regret Scottie's behavior with

you. 

I'm so sorry, words cannot express my embarrassment and 

I do appreciate your understanding!

Thank you for being such a sweet neighbor and friend.'

Noemi and Scottie


*Daughters of the Dragon: A Comfort Woman's Story by William Andr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