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보내며
2012.09.21 10:05
웃고 떠들 수 있었던 많은 날들
거기 우리가 함께 살아 있어서 이별이 없을 줄 알았던 시간들
우리는 한 번도 그대를 친구라 부르지 않았죠
아니 한 번도 언니라 부르지 않았고 동생이라 말하지 않았죠
하나의 이름, 집사님…동자 집사님…이동자 집사님…
아니 어쩌면 그렇게 많은 다정한 호칭들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언어로 이미 서로 주고 받았는지도 몰라요
그래서 오늘 그대를 친구라 부르는 시간이 어색하지 않아요
웃으면 너무 환해서 활짝 핀 꽃처럼 향기 가득해 보였던 얼굴이
벌써 그리워져요
서로 사랑하는 사이는 세월이 없다는데 엊그제가 천 년 같네요
그리고 다시 천 년이 엊그제 같을 거예요
사랑하는 아내를 보내는 마음
사랑하는 엄마를 보내는 마음
사랑하는 친구를 보내는 마음 슬프지만은 않아요
천국 길은 아무나 걷는게 아니니까요
이 땅위에서 가장 많이 고통받은 예수님이 가신 천국길은
그대와 같이 온전히 아름답지 않으면
그대와 같이 순결한 신부가 아니면 갈 수 없다는 걸 우리가 알아요
그래서 우리의 눈물은 슬픈 의미만은 아니에요
‘수고했다, 나의 어여쁘고 착한 딸아’ 칭찬 받는 천상의 소리 여기까지 들리네요
이제 하늘과 땅 사이 기다림이 있어요
주님이 그대를 기다렸고 이제 그대가 우리를 기다리네요
그래서 오늘 우리의 이별은 만남을 위한 것이기에 쓸쓸하지 않아요
모든 것이 아름답고 꽃 보다 더 아름다운 곳
모든 것이 빛나고 별 보다 더 빛나는 곳
모든 것이 따스하고 햇살 보다 더 따스한 곳
전쟁과 두려움이 없는 곳 아픔이 없고 눈물이 없는 곳
그 곳에서 기쁨으로 우리가 다시 만날 것을 믿어요
그래서 오늘 눈물은 나지만 웃으면서 보낼께요
영원한 아내여, 영원한 엄마여, 영원한 친구여…
사랑하는 그대여…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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