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의 외출

2013.03.13 12:00

이영숙 조회 수:292 추천:72


얼마만인가?  열 손가락을 모두 꼽아보며 세고 또 세었다.  머리를 열심히 끄덕이며 계산을 해보아도 감이 잡히지 않는다.  미국에 와서는 물론 전혀 없었다.  하긴 요즘 내 기억이 오락가락하여 혹시 한번쯤 있었던 일을 잊었는지 모르겠다.  아마 없었을 것이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대충 계산하여 십칠 년쯤 되지 않았을까?  영화관에 간 것 말이다.  얼마 되지 않는 그 돈이 없어 못 간 것이 아니다.  뭐 그리 열심히 살아 시간이 허락지 않아 이렇게 오랜 세월 영화관 문턱을 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안쓰러워할 건 없다.  
  영화관에 가는 것이나 TV시청을 즐기지 않는다.  나름대로 이유는 있다.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나는 우선 그 소리가 싫다.  이런저런 복잡한 소리들이 나를 피곤하게 만든다. 또 하나,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가슴 아프고 슬픈 사연이나, 마음 졸이고 무서운 이야기에 나를 맡기기 싫은 것도 있다.  안 그래도 힘들고 고단한 내 삶에 뭐가 부족하여 남의 것까지 더한단 말인가.  결코 내가 도울 수도 없을뿐더러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그곳에서 눈물 흘리며 가슴 아려해야 하겠는가.  그렇다고 내가 드라마 시청이나 영화 관람을 완전히 담 쌓고 사는 건 아니다.  가끔 나 자신 드라마에 빠져들기도 한다.  영화관엘 가기도 한다.  아직도 그 영화 못 봤어? 라는 말을 듣고 싶지도 않다.  십칠 년쯤(아마 그렇지 싶다) 전에 한국에서 “타이타닉”을 본 게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그 영화 역시 ‘아직’ 못 봤다는 게 시대에 조금은 뒤떨어진 모습으로 보일 만 했으니까.  친구와 함께, 늘 그렇듯이 가슴 졸이며 봤던 기억이 있다.  물론 좋은 영화였다.  보기를 아주 잘 했다고 스스로 칭찬했다.  
  며칠 전 신문에서 읽었다.  “7번방의 선물”이란 영화가 한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단다.  그게 미국에 상륙했다나?  신문은 “착한 영화”라 표현했다.  신문은 소개하기를 일반적으로 ‘착한 영화’들은 많은 관객을 끌기가 쉽지 않는데 이 영화는 ‘상식’을 뛰어넘어  크게 히트했다고 말했다.  은근히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상식을 뛰어넘은’영화를 보고 싶었다.  그래서 ‘큰맘’ 먹었다.  혹시, ‘그 영화도 보지 않았다니’라는 말 들을까 염려되기도 하고.
  그런데 영화를 보았다는 것보다 더 기억될만한 일이 함께 생겼다.  영화를 딸과 함께 보았다는 거다.  딸은 대학생이다.  기숙사에 있으며 아주 가끔 주말에 집에 온다.  내가 ‘7번방의 선물’을 보고 싶다고 같이 가겠냐고 물었다.  솔직히 설마 했다.  의외로 딸은 자기도 보기를 원했다며 함께 가잔다.  얼마나 반가웠던지.  친구가 아닌 엄마와 영화관엘 가겠다는 딸이 기특하다.  어릴 때는 엄마와 함께 식당에 가는 것도 원하지 않았던 아이다.  가끔 외식을 하고 싶어도 식당에서 먹지 않고 사가지고 와서 집에서 먹었다.  그때는 엄마들이 딸과 함께 외출하는 것을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른다.  그런 딸이 나와 함께 영화를 보러 가다니.  달력에 커다랗게 표해둬야지.  
  영화는 우리의 눈물을 한없이 빼냈다.  조명을 어둡게 하여 주위 사람 신경 쓰지 않고 울고 싶은 사람 마음껏 울고 가게 배려(?)해주었다.  영화가 막을 내리고 밖을 나와 화장실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눈이 뻘겋게 부풀어 올라있었다.  모두가 똑같으니 부끄러울 것도, 숨길 것도 없었다.  정의를 나타내야 할 사람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이용해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사람을 죄책감 하나 없이 무너뜨릴 수 있다니.  그 사실이 억울하고 분해서 더 울었을 것이다.  나도 그 피해자처럼 힘없고 약한 사람 중의 하나이니까.  나도 그렇게 당할 수 있다는 생각, 그 주인공이 나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더 많이 울지 않았나 싶다.
  영화관에는 연인들과, 친구들과 온 사람들이 많았다.  친구가 아닌 엄마와 영화를 보고 나오는 딸이 고마워 맛있는 저녁을 사주려 했다.  딸과 단 둘이 영화관에 간 것, 내 삶의 한 장에 행복한 점으로 남을 것이다.  고마운 마음에, 착한 딸에게 어떤 것이든 해주고 싶어 거창한(?) 저녁을 사주겠다고 제의했다.  늘 엄마의 주머니 사정을 염려하는 딸은 무엇을 먹어야 할 지 한참을 고민했다.  심사숙고 하는 딸은 조용히 기다렸다.  “엄마....” 드디어 결정했나보다.  부르는 소리에 잔득 기대하고 바라보았다.  과연 무엇을 먹으려 그렇게 오래 생각했을까?   “그래, 뭐 먹고 싶니?”  나의 반짝이는 눈빛과 달리 약간은 풀어진 듯한 눈으로 쳐다보는 딸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참으로 기가 막혔다.  
“그냥, 집에 가서 라면 끓여 먹을게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41 시원하고 허전하고 이영숙 2015.09.07 137
140 커피 한 잔 이영숙 2014.11.29 174
139 멕시코 선교 다녀와서 이영숙 2014.07.24 126
138 고향은 여전히 거기에 이영숙 2014.07.16 261
137 한국이 맛있다 이영숙 2014.03.14 292
136 농군(農軍)이 되다 이영숙 2014.03.14 416
135 안경과 단추 이영숙 2013.12.10 428
134 세잎클로버와 네잎클로버 이영숙 2013.12.10 634
133 30달러의 행복 이영숙 2014.06.10 202
132 조청 이영숙 2014.03.14 278
131 다르다 이영숙 2013.10.13 180
130 40도와 43도의 차이 이영숙 2013.09.12 390
129 응답 이영숙 2013.07.10 275
128 비워진 화분 이영숙 2013.05.08 301
127 9년을 기다려 온 편지 이영숙 2013.06.08 339
126 버려지기 싫어서 이영숙 2013.04.12 255
» 모처럼의 외출 이영숙 2013.03.13 292
124 거울 이영숙 2013.01.01 457
123 합작품 이영숙 2012.10.29 357
122 그는 모른다 이영숙 2012.09.24 377

회원:
0
새 글:
0
등록일:
2015.06.19

오늘:
0
어제:
0
전체:
4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