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청

2014.03.14 04:39

이영숙 조회 수:278 추천:24

구수하다. 그리고 참 달다. 엄마의 맛이어서 더 달고 구수하지 않았을까? 지금 어디서도 그런 맛을 느껴볼 수 없다. 설탕이 몸에 나쁘다는 것 외에도 그 단맛이 나에게는 그리 탐탁지 않다. 단맛의 대명사 꿀. 우리는 어떤 것을 맛보고 달고 맛있는 것을 ‘꿀맛 같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꿀이 달다지만 조금만 많이 먹으면 속이 쓰리다. 거기에 비해 조청은 속이 거북하지도 않고, 너무 달아 느끼하지 않고 딱 적당하다.   겨울에 최소한 한번은 우리 집에서 그 구수하고 단 맛이 풍겨 나온다. 길거리에 집이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우리 집을 한 번씩 획 돌아보며 잠시 주춤거리며 지나간다. 그들도 맛보고 싶었을 게다. 학교를 파하고 돌아올 때나 혹은 외출했다 올 때, 집이 내 시야에 들어 올쯤이면 벌써 그 맛이 느껴진다. 단맛, 구수한 그 맛.   아픈 큰 아들이 있다. 특별한 병은 없었지만 늘 비실비실하는 허약한 막내딸도 있다. 자녀들이 걱정인 엄마는 해마다 온갖 종류의 조청을 만들어 자식들의 건강을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잘 고아진 조청을 서울에 있는 둘째 아들에게도 나누어 주고, 시집살이하느라 고생인 딸에게도 좀 보내야 한다.   조청을 만들이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이틀은 넉넉히 잡고 해야 한다. 잠을 설쳐가며 밤새 부엌과 방을 오가는 엄마. 불이 너무 세도 타버려서 안 된다. 너무 약해도 적당한 묽기를 맞추지 못한다. 불 온도가 중요하다. 밤을 새워 은근한 불로 고아야 한다. 엄마의 정성과 사랑으로 만든 조청이 우리의 건강을 지켰다.   조청을 달이는 엄마의 그 끈기와 정성은 바로 우리를 키워낸 원동력이다. 속 썩이는 아들을 말없이 기다리는 엄마의 마음. 아픈 아들이 조금이라도 더 났고 있는지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며 기대하는 심정. 느지막이 낳은 막내딸이 하루하루 자라는 모습을 지루하지도 않게 묵묵히 바라보는 엄마. 넉넉지 않은 살림에 하루하루 살아가기 힘들어도 조그마한 좌판에서 얼마의 돈이 들어와 가족이 함께 끼니 이을 것을 바라며 작은 셈으로 하루를 마무리 하는 엄마.   엄마는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다. 항상 여유롭게, 느긋하고 편안하게 바라본다. 돈이 많은 이웃을 부러워하지도 않고, 성공하여 금의환향한 남의 자식을 내 자식과 비교하지도 않는다. 그저 주어진 형편에 만족하고, 지금이 최선이라며 편안하게 살아가는 엄마. 조청을 고우는 그 마음이 자녀를 향한 마음이고, 여유롭게 살아가는 방법인 게다.   요즘처럼 인스턴트시대에는 생각하기도 어렵다. 뭐든지 후딱 만들어 내고, 간단히 돈으로 해결하는 요즘 시대에 조청을 먹기 위해 이틀을 밤잠 설치며 만들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조청이 먹고 싶다. 엄마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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